제5장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되, 사람은 사람이 아니로다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난 어린애가 싫어.”
그럼 보내주던가.
“일지 쓰는 건 더 싫어 죽겠어.”
투덜이 스머프가 빙의했냐. 이것도 싫어, 저것도 싫어, 남경의는 악의는 없는 편인데 생각 없이 말을 툭툭 뱉는 성격인 것 같았다. 객잔의 방이 덥다고 투덜거렸고, 창문을 열자니 술주정뱅이들이 떠들어 시끄럽다고 투덜거렸고, 밥이 맛이 없었다고 투덜거렸으며, 하루 종일 수고하였으나 식살귀는커녕 급 낮은 주시도 못 봤다며 투덜거렸다.
정자세로 앉아 마찬가지로 일지를 쓰고 있는 동료가 아무런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이쪽은 이제 막 사춘기가 온 10대처럼 시끄러웠다.
실제로도 여드름 짜느라 정신없을 연령대이긴 한데... 훔쳐보는 시선을 느낀 남경의가 퍼뜩 고개를 들더니 먹물 묻은 붓으로 날 가리키며 질책했다.
“으이그! 어떻게 박선망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걸려가지고는!”
그러니까 그게 내 잘못이냐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억울하다. 팔 높게 들고 반성할 까닭이 과연 있는 거야?
사연인 즉 이러하다.
마을로 돌아가라는 남사추에 말에 나는 얌전히 그 말에 따랐다. 수행자들이 몰려들어 식살귀를 잡는다며 법석을 떨고 있는데 함부로 숲속을 어슬렁거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도중에 바쁜데 방해하지 말라며 다그치는 수사들과 마주쳤다.
공을 쌓을 욕심에 마음이 급해진 그들은 나무로 만들어진 나침반처럼 생긴 희한한 물건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다 날 밀쳤다.
그래서 넘어져 박선망에 걸렸냐고? 아니. 그건 아니고.
넘어지면서 가지고 있던 이릉노조 초상화를 흘렸는데 그게 한 수사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놈이 감히 내 앞에서 위무선의 더러운 낯짝을 들이밀어?!”
이릉노조에게 묵은 원한이라도 가진 사람이었는지 그가 검을 뽑아들고 버럭 화를 냈다.
나는 진정하라는 몸짓을 해보이며 뒷걸음질을 쳤고, 거기에 비탈길이 있는 지는 꿈에도 몰랐고, 실수로 발목을 접질렀고, 굴렀다.
그래서 구르다가 박선망에 걸렸냐고? 아니. 그건 아니고.
“뭘 빙빙 돌려 변명을 하고 있는 거야. 넌 그저 눈앞에 박선망이 보이니까 그게 뭔지 궁금했던 거잖아! 일부러 건드려놓고 왜 아닌 척하는 건데.”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 투명하게 빛나고 있어 신기한 마음에 손으로 살짝 건드려 봤...”
“고의로 저지른 게 맞잖아! 그게 한두 푼짜리인 줄 알아?!”
비싼 물건이었나 보다. 하긴, 비싼 물건이니 수사들이 두 번이나 박선망을 망가뜨린 날 죽이려 든 거겠지. 말리던 남가 소년들과 드잡이도 하고.
“경의. 목소리를 낮춰. 객잔 사람들이 놀라서 다 몰려오겠어.”
“몰려오라고 그래! 내가 억울하고 분해서라도 계속 소리를 지를 거다. 장래희망이 도사인 철부지 어린애 때문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우리가 부순 것도 아닌데 박선망 값도 물어주게 생겼잖아!”
“경의, 진정하라니까.”
“못해! 덕분에 써야 할 일지 분량이 곱절로 늘었어! 여기엔 식살귀 소문만 무성할 뿐이지 실제로는 아무 것도 없었는데! 이건 완전 멍청한 짓이야!”
으르렁거리던 소년은 먹물이 튀어 서안이 엉망이 되는 걸 개의치 않으며 붓을 탁 소리가 나게끔 내려놓았다.
“저기... 이 근처 무덤이 파헤쳐진 건 사실인가요?”
“넌 궁금해 하지 마! 팔이나 똑바로 올려. 거기서 더 내려오면 벌 받는 시간을 늘릴 테다.”
야무지게 벌서게 만들면서 남경의가 눈을 부라렸다.
“기분을 풀어, 경의. 소문에 불과한 거면 어찌 보면 잘 된 일이지.”
남사추가 그리 말하며 붓 놀리던 걸 멈췄다. 도중에 딴짓을 하던 동료와 달리 쉬지 않고 적었기에 분량을 다 채운 듯했다.
“늙고 이가 빠진 짐승이 사냥을 하지 못하게 되자 인가로 내려와 무덤을 훼손한 건지도 몰라. 생각지 못한 우연의 일이 부풀려져 그게 식살귀 소문으로 변한 거 아닐까.”
납득할만한 추론이었다. 남경의가 그럴듯하다며 맞장구를 쳤다.
“사추, 넌 일지에 그렇게 적었어?”
“아니. 선생님이 추측은 일지에 적지 말라고 해서 적지 않았어.”
“선생님은 짧게 쓰는 걸 좋아하시지. 그런데 또 택무군은 판단은 본인이 하신다며 뭐라도 좋으니 일단 적으라고 하시잖아. 아... 어쩌지. 그런데 사추 넌 저 애기 도사 이야기는 적었어?”
“간단하게만 썼어. 마을 아이가 다른 수사가 설치한 박선망에 걸렸기에 너랑 내가 도와줬다고만 했어.”
거기까지 말한 남사추는 손짓을 하여 나더러 가까이 오라고 했다.
상냥한 부름이었지만 나는 결코 다섯 걸음 이상 가까이 가려 하지 않았다. 앞서 말했지만 난 그들이 입은 흰옷이 너무 싫었다.
“저, 저 망할 똥고집 봐라! 표정이 왜 저래!”
“경의, 너무 뭐라 하지 말고... 아직 어린애잖아.”
“그래봤자 우리랑 그렇게 차이도 안 나. 사추, 넌 너무 물러 터졌어!”
어쨌거나 손들고 벌 서는 건 그만하면 되었다며 드디어 축객령이 떨어졌다. 밤이 깊었다는 거였다.
그런데 나에게 달리 돌아갈 집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말이지.
머리카락을 앞으로 내려 얼굴을 가리고 나무로 만든 장대를 들었다. 확인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이제 이야기를 돌려 내가 실수로 발목을 접질르고 비탈길을 굴렀던 때로 되돌아가자.
심하게 구른 건 아니었다. 깎아지른 낭떠러지도 아니었고, 풀이 많이 자란 경사 진 언덕이라서 몇 번 몸을 뒤집는 정도로 그쳤다.
그런데 마침 머리를 아래로 향한 상태로 처박혔기에 바닥에 남은 묘한 흔적을 가까이 볼 수 있었다.
나란히 고랑이 패인 두 개의 줄이 길게 이어졌는데 내게는 그게 꼭 의식이 없는 사람을 질질 끌고 간 것처럼 보였다. 한 사람은 겨드랑이에 팔을 넣어 상체를 들었고, 한 사람은 다리를 들었는데 길이 평탄하지가 않아 다리를 든 사람이 도중에 놓아버린 거다.
이상했다. 마을에서 크게 다쳐 산을 내려왔다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은 없었다.
자국을 더듬어 따라가자 외발바퀴 수레자국으로 바뀌었고, 드문드문 잡풀을 꺾은 자국을 남겼을 뿐, 이내 사라졌다. 경험이 부족한 나로서는 이후 추적이 곤란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수사들은 저마다 귀신을 잡을 생각만 했지 고개를 숙여 땅을 보지 않아 사람이 남긴 흔적을 죄다 놓쳤다. 식살귀와 외발수레는 서로 상관이 없으니 이쪽에 대한 건 그냥 놓아버린 거다.
이후 이곳저곳을 뒤지다가 박선망을 건드려 망가뜨린 건 순전히 우연이고.
따지고 보면 우연 70%에 본인과실 30% 되겠지만.
아니 진짜로 뭔가 반짝거린다 싶었는데 순식간에 확 움직이더라고, 그게. 맹세코 살짝만 만졌거든.
‘아무튼 구울 같은 건 결코 아니야.’
벌레가 새카맣게 꼬인 걸 장대로 건드리니 머리만 남은 작은 짐승이었다.
맹금류는 덩치가 작은 개나 고양이를 사냥하여 잡아먹으면 머리는 안 먹고 버린다던데 이 숲에도 매나 올빼미가 살고 있는 눈치다. 잘려나간 단면이 제법 깨끗했다.
‘무덤을 파는 수고를 해서 시체를 먹는 애들이 이런 공짜 진수성찬을 마다하겠어? 식살귀가 아니야.’
짐승의 머리를 장대로 툭툭 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쨌든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야기잖아.’
그런데 왜 굳이 오지랖을 부려가며 공동묘지까지 살펴보려 하는 건지는 하느님도 모를 것이다.
이 세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평장을 한다.
땅을 깊게 파서 관을 묻은 뒤에 평평하게 다진다는 얘기다.
재물이 있는 사람들은 수고를 더 들여 봉분을 쌓기도 했는데 일반적이진 않았다. 무덤지기를 따로 두지 않는 이상 봉분 자체로도 부장품을 노리는 사람들의 표적이 되었기에 부자들은 위로 올리는 대신 아래로 더 내려갔다. 심하면 핵미사일에도 끄떡없을 방공호처럼 굴을 파서 관을 안치했다.
그렇다면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가게 되는 공동묘지의 모양새는 어떠할까.
뻔 한 거 아닐까. 상대적으로 얇게 묻힌다.
바닥에 납작하게 깔린 판자를 발로 밟고 올라섰다.
판자 아래 묻혀있을 망자를 모욕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었다.
‘나무에 두께가 있어. 내 몸무게가 올라가도 끄떡 하지 않을 정도야.’
최근에 뜯어낸 적이 있는지를 확인해보고자 더듬더듬 가장자리를 만져봤다. 글쎄다. 만지는 것만으로는 확실하지 않았다. 덮개로 쓰인 널빤지는 오래되었고 여러 번 재활용되었다.
‘시취는 나지 않아. 이 무덤은 오래되었고 최근에 사람을 묻은 것 같지는 않아.’
뚜껑을 여는 일엔 적절한 도구가 필요해 보였다. 아무리 허술하다고 해도 사람 손으로 뜯어낼 정도로 대충 만들지는 않았다.
‘여기 말고 다른 곳을 더 볼까.’
늦은 밤이라 움직임에 어려움을 느꼈지만 수 곳의 무덤을 살펴봤다.
그렇게 해서 알아낸 건, 오래된 무덤은 상대적으로 멀쩡했고 새로 만든 무덤 몇이 땅을 판 흔적이 남았다. 여자가 묻힌 관은 안 건드렸다. 어떤 표식을 남겨 구분하는 건지 나로서는 짐작이 가지 않았는데 열린 관의 크기로 보아 파헤쳐진 건 전부 남자다.
부자들은 안 건드렸다. 파내는 일에 수고를 더 해야 할 테니 가난한 탓에 얇게 묻힌 사람만 골라내어 팠다.
“버크와 헤어인가.”
이쪽 세계에서도 시신이 돈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저쪽 세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시신을 팔아 돈을 챙기는 무리들이 있었고, 심지어 무덤에서 파낼 시체가 없자 여관에서 사람을 죽여 팔아치운 살인자도 나왔는데 그게 버크와 헤어다.
“법해어가 뭐야?”
“아니. 버크와 헤어.”
“그러니까 법해어가 뭐냐고.”
순간 몸이 공중으로 번쩍 들렸다.
소스라치게 놀라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는데 멱살이 잡혔다는 사실 보다는 상대가 하얀 소복을 입고 있었다는 점에 까무러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공동묘지에 하연 소복이면 딱 그거잖아.
“처녀귀신이다~! 처녀귀신! 히이익!”
“누구더러 처녀귀신이라는 거야! 이놈이 눈이 삐어서!”
따악, 하고 매운 주먹이 앞 통수에 날아들었다. 부리부리하게 눈을 치켜 뜬 남경의가 한 번 치는 걸로는 부족하다며 같은 자리를 또 때렸다. 눈앞으로 별이 번쩍였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