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조사] 풀피리 25

제5장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되, 사람은 사람이 아니로다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이릉노조, 세 푼에 한 장, 다섯 푼에 두 장! 밤새 잠자리가 뒤숭숭하다? 집안에 우환이 있다? 일단 한 번 붙여봐. 악귀는 악귀로 물리치는 법! 잡귀가 이릉노조를 보고 엉덩방아를 찧는다! 세 푼에 한 장, 다섯 푼에 두 장!”
장대에 홍보 깃발을 달고 크게 외치는 장사꾼의 호객행위에 사레가 들렸다.
이름만 불러도 쳐들어와 흉악을 저지르고 간다며. 그래서 감히 이름도 못 부른다며.
볼드모트는 의외로 싼 값이었다. 한 장에 세 푼밖에 하지 않았다. 술 한 병보다 못한 값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자 장사꾼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스스로 흥이 돋아 이번엔 붉은 물감으로 그린 부적을 꺼내들었다.
“그래도 못 미더우면 이것도 같이 가져가시오. 악귀징벌 부적 한 장에 다섯 푼!”
이럴 수가. 이릉노조 초상보다 부적이 더 비싸다. 볼드모트가 분노하여 어둠을 먹는 자들 표식을 마구 난사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미리미리 준비하여 후회하지 말자! 답녕령 고개에 주시가 매우 많소이다. 왼손에는 이릉노조! 오른손에는 악귀징벌! 양손을 가득 채우면 여행길이 강녕하네~!!”

허리를 숙여 초상화를 구경하던 짐꾼이 속으로 저울질을 하더니 사지 않는 방향으로 마음을 굳힌 모양이다.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건지, 아니면 물건이 마음에 차지 않은 건지는 나도 모른다.
손님이 흥미를 잃고 자리를 뜨려 한다는 걸 알아차린 장사꾼이 재빨리 가격 흥정을 제안하려 했다.
하지만 짐꾼은 노련하게 자신을 잡으려던 팔을 피했다.
“아니 왜?! 이게 어째서 마음에 안 든다는 게야?”
그건 댁이 초상화를 너무 못 그려서 그런 거지.

턱을 괴고 멀찍이 떨어져 돌아가는 모양새를 구경하던 나는 장사꾼의 뒤떨어지는 예술 감각에 혀를 내둘렀다. 눈과 입을 그렸다고 초상화가 되는 건 아니지 않던가. 볼드모트에겐 코가 없었지만 이릉노조에겐 있었겠지. 그런데 저 장사꾼은 콧구멍이랍시고 먹을 찍어 둥글게 점 두 개만 묘사했을 뿐이다.
검은 피부와 송곳니, 힘줄이 툭 튀어나온 인물도 코가 없으니 흉악하다는 인상 이전에 웃겨 보였다.

“왜 웃는 거야, 비렁뱅이 주제에 재수 없게.”
날 알아차린 장사꾼이 침을 탁 뱉었다.
그래도 발로 차거나 욕을 퍼붓지는 않았다. 콘셉트가 ‘도사’라서 어린 거지를 핍박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장사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허리띠에 옥패장식을 걸고 학우선을 모방한 부채를 들었으니 점잖게 손짓으로만 저리 가라고 표현했다.

그런다고 내가 시키는대로 할 사람이 아니지.
“이릉노조가 진짜 이렇게 생겼어요?”
“왜 달라붙어! 살 거 아니면 가라, 얘야. 물건 살 돈도 없으면서 귀찮게 하는 거 아니다.”
“그냥 궁금해서 그래요. 이릉노조가 진짜 세요? 악귀가 보고 걸음아 나 살려라 달아날 만큼 세요? 그런데 왜 부적보다 값이 싸요? 만약 제게 다섯 푼이 있다면 이릉노조 초상 두 장을 사는 것이 좋아요, 아님 부적 한 장을 사는 것이 좋아요?”
장사꾼은 그쪽으로 머리가 비상했다. 생각할 것도 없다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딴 고민을 왜 해! 전부 다 자기 안전을 위해서인데 기왕 돈을 쓸 거, 다섯 푼에 두 푼을 더해서 이릉노조 초상화 한 장에 부적 한 장을 사야지! 한 푼 깎아준다. 사!“
어디 가서 굶어죽지 않을 사람이었다. 세일즈의 귀재였다.
나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수중에 남은 돈을 탈탈 털어 초상화와 부적을 한 장씩 구입했다.
이것으로 얻은 노잣돈이 전부 동났지만 잘 하면 이릉노조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어볼 수 있겠다 싶자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탁월한 선택이다.”
가짜 도사는 태세를 바꿔 빙글빙글 웃으며 돈을 챙겼다.

“그런데 진짜로 이릉노조가 이렇게 생겼어요?”
“그럼! 아주 무섭게 생겼지. 입과 귀에서 연기가 나오고 키가 무려 아홉 척이란다. 이 도사님이 직접 이릉에 내려간 적이 있어 이릉노조 위무선에 대해 아주 잘 알지.”
이릉은 지명 이름이었군.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부적을 이리저리 살피는 시늉을 했다.
“부적 만드는 것도 거기서 배운 거예요?”
“용케 아네. 맞아! 거기서 배웠어. 그 부적을 부정한 것들의 이마에 딱! 붙이면 불이 저절로 붙는단다.”
마음에 드는 설명이었다. 냉큼 부적을 이마에 딱 소리가 나게끔 붙였다.
메야. 아무 일도 안 일어나잖여. 불량품이여? 나는 흉시인데 불 안 붙는데?
“아니, 아니. 네 이마에 붙이는 게 아니라 주시에게 붙이는 거라니까. 얘가 참 아둔하네.”
가짜 도사가 혀를 차며 이마에 붙은 부적을 떼어주려 했다.

“가짜 부적이잖습니까.”
지학의 나이에 이른 소년이 참다 참다 참견하는 거라며 인상을 쓰고 우리 사이로 끼어들었다.
나도 눈이 동그래지고, 가짜 도사의 눈도 동그래졌다.
가짜 도사의 말문이 막힐 법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격식이 있어 보이는 하얀 옷을 입은 소년은 나이가 어렸음에도 신선의 기운을 풍기며 이목구비가 준수했다. 무엇보다 싸구려가 아닌 제대로 된 검을 차고 있었는데 그게 날을 세운 진검이라는 점에서 아무래도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림에 불과한 걸 부적이라고 팔면 안 됩니다.”
소년이 강하게 나오며 내 이마에 붙은 부적을 떼어냈다.
“흉내조차 내지 않았군요. 이건 아무런 효능이 없어요.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 이런 걸 쓰려 한다면 그 사람의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아, 뭐, 어쩌면, 그... 그런가요?”
장사꾼이 비굴할 정도로 저자세를 취했다.
“아이에게 돈을 돌려주세요. 그리고 그 부적은 더 이상 팔지 마시고요.”
“예, 예!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공자님.”
“경고하는 겁니다.”
풀이 꺾인 가짜 도사가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팔던 물건을 챙겨 달아났다.

엄한 표정을 짓던 소년이 기세를 누그러뜨리더니 나에게 돌려받은 일곱 푼을 쥐어주었다.
손이 참 따뜻했다.
“도령도 앞으로 속지 않도록 조심해요.”
“고...맙습니다?”
상대방의 친절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일단 흰옷 자체가 싫었다. 배추 가게에서 나에게 당과를 사줬던 이름 모를 선사도, 효성진도, 눈부시게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친절했지만, 결과적으로 친절하지 않았다.

내 표정이 엄청 이상했나 보다. 소년이 고개를 숙여 내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동전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고 입술을 끌어당겨 가식적으로나마 웃었다.
설마, 내가 흉시라는 거 알아본 거야? 그, 그렇다면 참 감사하네요!

“사추. 이제 출발할 거야. 거기서 뭐 해?”
“별 거 아니야, 경의.”
“무슨 일 있어?”
“아냐. 다 끝났어. 터무니없는 가짜 부적을 파는 사람이 보여서.”
소년은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자기네 무리로 돌아갔다.

상인들이 목소리를 낮춰 숙덕거렸다.
‘고소 남씨다.’ ‘고소 남씨가 야렵을 왔다.’ ‘함광군은 안 보이는데.’ ‘어린 소년들이 대단하군!’
한 귀로 흘리면서 골목길로 들어가 몸을 낮췄다.

효성진이 친우 송자침과 함께 설양이 저지른 악마 같은 짓을 고발하였을 적에 현문 세가의 반응은 각각 달랐다.

고소 남씨는 자기네 식으로 알아본다며 뒤로 빠졌다.
운몽 강씨는 혈기가 왕성하여 ‘엿 드세요!’ 라고 했다.
난릉 금씨는 과장된 헛소문이라고 치부했고, 청하 섭씨는 물불을 안 가리고 ‘죽여라!’ 일갈했다.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꼬부랑 낙서를 한참동안 끄적거리던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현문 세가라는 거, 신선이라는 거, 그야말로 쓸데없었다.
‘그나마 청하 섭씨가 우리 편이긴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과거형이다.
왜냐하면 당시 청하 섭씨의 종주였다던 자가 매우 끔찍한 모습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적봉존 섭명결은 생전에 민심을 잘 살피고 무(武)에 맹진하여 ‘바르고 곧은 사나이’ 이미지로 큰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그런 사내가 갑자기 패도를 꺼내 허공에 휘두르며 주화입마에 빠져선, 말리려던 동생까지 상처를 입히고는 칠백으로 피를 쏟고 급사했다.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었지만 섭씨 일가가 젊어서 요절하는 건 집안 내력이라나.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이른 새벽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모양새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나에겐 그놈의 교통사고가 빨간 마티즈 느낌이라서...’
손바닥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 땅바닥에 그린 낙서를 지웠다.

청하 섭씨는 이후 쇠락기에 접어들어 지금은 4대 현문 세가로 취급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구색만 맞춰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 몸을 의탁한 수행자 숫자도 적어 지금은 비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적봉존이 여태껏 살아있었으면 참 좋았으련만.
내 입장에서 정리하자면 천하에 의지하고 믿을 구석 하나 없다는 얘기다.

“아, 찾았다. 요놈! 요놈! 내 돈!”
고소 남씨 소년에게 쫄아 도망갔던 가짜 도사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다가왔다.
이릉노조의 초상화와 부적을 팔았던 값이 아쉬워 멀리 도망가지 않고 주변을 맴돌았던 모양이다. 고소 남씨가 사라지기가 무섭게 날 찾으러 다녔는지 숨소리가 거칠었다.
아이고 형님, 나는 웃으며 일곱 푼 동전을 쥔 손을 반갑게 흔들었다.
어차피 부적은 장난감 같은 거였고, 그에게 물어볼 것이 아주 많았다.

Posted by 미야

2021/11/16 13:16 2021/11/16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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