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보드 A/S 마치고 돌아옴. 지화자! ※

요괴보다 더 요괴 같다...라.
나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억지로 당겨진 미세한 근육이 가시에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쑤셔왔음에도 나는 계속해서 웃고 있었다.
확실히 요괴다. 혈관으로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어도 이래선 제대로 된 인간이라 할 수 없다. 깨끗하게 닦인 유리창에 반사되어 보인 어린아이의 얼굴은 흡사 솜씨 뛰어난 장인이 나무를 깎아 만든 훌륭한 가면처럼 보였는데 입가에 그럴 듯한 미소가 걸렸음에도 따스함은 쌀알 한 톨 만큼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저 그럴 듯하게 흉내를 내고 있을 뿐, 얇은 껍질을 벗겨보면 그 내용물은 텅 비어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마음도 없고, 감정도 없으며, 오롯이 남은 것은 모방이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장난치듯 활짝 펴보았다.
순식간에 미소가 지워지고 어쩐지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가 나타났다.
내렸던 손을 움직여 다시 얼굴을 가렸다가 또 한 번 활짝 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웃고 있는 안즈가 유리창에 비쳤다.
어느 쪽이 나일까.
어쩐지 둘 다 내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진짜 나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알맹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나조차 모르는 어딘가에 있는 걸까.

가게 안에서 인기척을 느낀 종업원이 하던 일을 멈춘 채 이쪽을 응시했다. 손등으로 눈을 비비는 것으로 보아 헷갈려하는 눈치다. 잘 만들어진 두 개의 가면을 빠르게 바꿔 쓰는 사람이 밖에 서있는데 키를 보면 어른도 아니고 어린애다. 피로함에 허깨비를 보았다고 여겼던지 딱딱하게 굳은 어깨를 손으로 주물러댔다. 입모양으로 알 수 있었다. 사내는「아무래도 잠이 부족했었나봐」혼잣말했다.

그 길로 가게를 지나쳐 큰 길을 향해 똑바로 걷기 시작했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락연은 내가 따라오기를 얌전히 기다리며 제자리에 서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의외였다. 저 혼자서 가버릴 기세였음에도 그가 움직인 거리는 실제 얼마 되지도 않았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 탓일까, 그렇다면 이해가 간다.
『나를 뭘로 보는 거에요. 나는 친구를 혼자 두고 가지 않아요.』
이제는 눈을 휘둥글 뜰 차례였다. 친구라니. 설마, 말다툼 비슷한 걸 했으니 친구가 된 건가.
『친구? 너와 내가?』
『친구죠.』
『난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최소한 인간의 관점에선 지금의 너와 나의 관계를 친구라고 하기 어렵다고 본다만.』
『그런가요?』
『요괴의 관점이라면 잘 모르겠어. 네가 말해봐. 너와 나는 친구인 거냐?』
락연은 여전히 불쾌한 감정인 것 같아 이런 질문을 던지는게 매우 불편했다.
친구가 아니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한 입에 꿀꺽 삼켜진다거나... 아니면 야밤에 습격을 받는다거나.
아니면 그와 반대일지도. 동무가 되자 말을 꺼내는 순간 날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 상대는 요괴니까.
아슬아슬하게 흔들거리는 징검다리를 지팡이로 쿡쿡 찔러보는 기분이다. 잘못 쳤다가 뒤집어지는 날엔 골탕을 먹는 건 온전히 내가 될 터인데 - 샛강은 건너가야 하고, 징검다리의 품질은 의심스럽고. 차라리 바지 밑단을 걷어 올리고 물속으로 첨벙대며 들어가는 편이 속편하려나.

가만히 코를 문질렀다.
『친구가 뭐라고 생각하지? 락연.』
『글쎄요... 관심이 가는데 먹고 싶다는 충동은 생기지 않는 거랄까.』
나도 모르게 숨을 엇박자로 쉬고 말았다. 야, 인석아! 그렇다면 선택지는 걍 하나로 정해져 있는 거잖여!
엉뚱한 방향의 벽을 보며 말을 더듬었다.
『그, 그럼... 우린 친구인 거겠지. 그래, 우린 친구야.』
『분명 친구인 거에요. 이렇게 안즈 님 얼굴을 보니 식욕이라는게 싹 없어지니까.』
이봐. 그건 재수 밥탱이라는 표현이라곳! - 인간은 보통 그런 말을 친구가 아니라 왕 싸가지에게나 한단 말이다!
속으로는 난리법썩 아우성을 쳤으나 겉으로는 평온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구나. 그래, 그래. 이제부터 우린 친구다.』
안즈로 태어나 처음으로 - 반강제적으로 친구 선언을 하고 있음에도 차마 락연의 눈을 볼 용기가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벗이라는 건 뭘까. 
「마음이 닿는 거겠지. 아니면 닿고 싶어 하는 거라던가...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벗은 달과 같은 것이다. 환하게 저 하늘에 떠있으니 가슴이 떨리지. 닿고 싶어 애절해지고.」
시오재의 친구였던 인간은 그렇게 정의했다.
「미묘하게 틀린 것 같은데요. 그건 연인이잖습니까, 폐하.」
「뭣이?! 너는 달을 보며 애인을 떠올린다는 거냐?」
「보통은 그렇지요.」
「괘씸하군. 그렇다면 시오재, 오늘부터 넌 달을 보는 거 금지다. 이건 명령이다.」
늦은 저녁, 술을 마시면서 그는 그렇게 주장했다. 과음으로 이미 눈가가 붉게 달아올랐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세는 꼿꼿해서 지금까지 마신 것이 술이 아니고 우물에서 떠온 맹물인가 싶을 지경이었다.
「그런 억지가...」
「잔이 비었다. 따라라! 불충!」
나는 무릎걸음으로 슬그머니 술상을 피해 자리를 옮겼다. 이때 녀석이 화를 내지 않을 정도로만 거리를 벌리는 것이 중요했다. 이 미묘한 간격에 착오가 생기면 후환이 두려워진다.
「적손. 오늘은 그만 드세요. 건강에 나빠요.」
「너는 내 친구잖아! 그럼 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줘야지! 안 그래?!」
「송구하옵니다.」
「이 불충아! 거기서 왜 사과하는 거야. 너와 내가 진실로 친구 사이가 맞느냐?!」
「최근에는 저도 헷갈리고 있사옵니다. 제가 폐하의 친구가 맞나요?」
친구. 우정. 사람의 마음.
나는 다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관절 친구란 무엇이옵니까. 폐하가 생각하시는 벗이라는 건 어떤 것인지요.」
그는 울분을 느끼는 것 같았다. 술잔을 쥔 손이 어느새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마를 찌푸렸다.
「자꾸 묻지 마. 그딴 거 몰라! 알게 뭐람. 내가 원하는 건 네가 지금부터 나중까지 내 옆에 있어주는 거야.」
「멀리 있어도 저는 폐하의 친구입니다.」
「하지만 닿지가 않아... 닿지가! 벽지 산간 골짜기에 처박혀서, 날 만나러 와주지도 않는데, 차라리 저 하늘의 달은 눈에 보이기라도 하지, 이렇게 어렵게 만났는데 술을 따르라는 소소한 청도 단칼에 거절하고, 가면 같은 얼굴로 웃기만 한다... 불충아, 답하여라. 너는 왜 웃느냐. 이런 내가 재밌느냐?!」
「설마요. 술주정 구경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호오, 그럼 지금 내가 술주정을 하고 있다는 뜻?」
말실수를 했음에 혀를 깨물었다. 벽은의 일개 관리가 대제국의 황제더러 술주정을 하고 있다 탓했다.
가늘어지는 눈매에 긴장하며 가만가만 말을 골랐다.
「술주정이라니오. 비슷은 하지만 아닌 듯하옵니다. 그냥 뭐랄까, 약간만. 그러니까 요만큼만.」
그는 코웃음을 치며 술병을 들어 자신의 잔에 직접 술을 따랐다.
「............ 닥쳐. 기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술주정을 해 보일테다. 그러니 각오하라고?」
「아이고, 적손. 살려주세요.」
「손바닥 싹싹 빌어도 늦었어. 오늘은 코가 비뚤어지는 날이다. 그렇게 알고 내가 주는 잔을 받아라. 이 또한 명령이다. 그러니 쭈욱 들이키고... 옳지.」
진실로 벗이라는 건 뭘까. 어떤 관계일까.
대낮에도 달은 하늘에 떠있다. 하지만 햇살이 강한 탓에 사람의 눈으로는 한 낮의 달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봤자 닿지 않는 건 마찬가지. 어둠 속에 떠오른 보름달이나, 보이지 않는 대낮의 달이나... 우정이라는 건 결국 높은 장소에 걸린 허상에 불과하다.
흔들리는 술잔 속으로 달이 떠올랐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자 문득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도 이와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에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Posted by 미야

2015/07/23 15:25 2015/07/2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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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5/07/23 18:42 # M/D Reply Perma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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