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75

※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마이클이 사용하는 필명은 어나미머스(Anonymous : 작가불명)다.
이를 접한 출판사 직원의 첫 반응은「저속한 농담이군요」. 그 다음엔 연필을 씹으며 짜증을 부렸다.
「계속 그러실 거예요?」
「어... 음.」
「독자들이 이상하게 여긴다는 거 아시죠?」
「그런가?」
「심지어 이 팬레터를 봐요.《친애하는 OOO 씨. 니 작품 졸라 쿨하다...》받는 사람 이름이 동그라미로 그려져 있으니 이걸 반송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판단이 안서요.」
「나도 모르겠는데. 그냥 애나가 적당히 알아서 하면 안 될까.」
「마이클!」
나태하고 게으른 성격의 소설가는 목덜미만 벅벅 문지를 뿐이었다.

조앤 롤링의「해리 포터」시리즈의 성공 이후 판타지 문학이 갑자기 군집을 이루며 번창했다.
그중에는 저속한 부류의, 애들 장난과도 같은, 뒤죽박죽의 플롯을 가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내용으로 코흘리개 애들 심성에 빌붙어 먹는 소설도 우르르 쏟아져 나왔는데 크게 보면 마이클이 쓴 책도 다르지 않았다. 그가 주인공으로 내세운 건 하프 뱀파이어 영웅으로 - 뱀파이어면 뱀파이어지 작가를 닮아 이 또한 어중간하다 - 건물 지붕을 날아다니며 현대 미국을 근심에 잠기게 하는 강도나 강간범을 응징한다. 다만 보름달이 뜨는 날엔 살짝 맛이 간다. 지나치게 완벽한 영웅은 매력이 없는 법이다. 그 점을 잘 아는 마이클은 주인공을 가끔씩 위아래로 흔들어 수렁에 빠뜨리곤 한다. 동료인 여성은 강력계 형사로 몸매가 쭉쭉빵빵이다. 그리고 동양인이라서 쿵푸를 한다. 아... 요점만 정리하니 눈물이 나올 정도로 구닥다리다. 그래도 나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는게 수수께끼라면 수수께끼랄까, 조만간 CW에서 TV 시리즈물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판권 계약은 3개월 전에 이루어졌다. 마이클은 순식간에 돈방석에 올라앉았다.

『흥! 그딴 엉터리 유명세 금방 없어질 걸. 막장 소설에 막장 드라마, 빨리 망해버려라.』
최근 사귀게 된 극성맞은 친구 놈은 욕인지 된장인지 모를 발언을 퍼붓고도 태연자약이었다.
음... 마이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친구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소아암 환자를 위한 자선 바자회에서 처음 만났는데 어리둥절해 하는 마이클과는 달리 저쪽에서 일방적으로 엉겨 붙었다. 이름은 로건 피어스, 고인이 된 잡스 다음으로 유명한 IT업계 억만장자다. 젊은 사람이 성격은 대단히 괴팍하여 뉴욕 시장이 참석한 만장하신 파티 장소에 물 빠진 청바지를 입고 등장했다. 높으신 분들 틈새에서 불량 청바지는 너무했다. 그래도 로건은 자신의 청바지 차림새를 스스로 재밌어했다. 그리고 빌려다 입은 티가 팍팍 나는 마이클을 발견하더니 그의 펭귄 턱시도를 마음껏 비웃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대낮에도 뜀박질하는 하프 뱀파이어? 그 친구는 마늘도 잘 먹어?』
욕을 하면서도 마이클이 쓴 책 다섯 권을 하룻밤 사이에 전부 읽어본 눈치다. 이를 바꿔 말하면 무지하게 재밌게 봤다는 거다.
그는 가만히 숨을 쉬었다. 설정은 늘 구멍투성이다. 주인공이 마늘을 먹었던가?
『어... 글쎄. 피자는 잘 먹어.』
『얼씨구. 마늘은 빼고 주문하는지 안 하는지 작가도 몰라요?』
『그럴지도... 것보다 이거 맛있어, 로건. 이걸 뭐라고 한다고? 두 번 튀겨낸 피에로기?』
『다 식어빠졌는데 뭐가 맛있다고.』
『전자렌지에 데우니까 먹을만 해.』
『하나도 안 괜찮아요, 그건 조리하고 바로 먹어야 한다고. 게다가 폴 제니스 레스토랑에서 만든 그건 제대로 된 맛도 아니야.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공습대피소를 개조한 오래된 가게가 하나 있는데...』
『그만해. 만두 하나 먹겠다고 러시아까지 날아갈 수는 없잖아.』
『과연 그럴까. 나에게는 전용 제트기가 있사옵니다.』
『관두라고 했다, 이 졸부야.』
역시나 이상한 남자다. 제트기를 택시로 착각할 정도로 낭비벽이 하늘을 찌르는데 먹다 남은 만두를 일부러 포장하여 친구에게 가져다주다니. 포크를 쪽쪽 빨며 로건을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러자 로건의 표정도 이상해졌다.
『음식을 버리면 벌 받아! 이 세상에서 기아 인구가 얼마나 되는 줄 알아?!』
『그래서 그걸 주방장 앞치마를 향해 던져버리는 대신 나 먹으라고 가져왔다고?』
『바로 그걸세. 칭찬해주고 싶지? 감탄사를 연발하고 싶지? 부비부비 하고 싶어지지? 자! 내 머리를 쓰다듬어도 된다고 허락하겠네!』
질리려 한다... 쓰다듬기 좋은 각도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로건을 옆으로 훌쩍 떠밀었다.

『그런데 마이클, 이 짐들은 다 뭔가? 어디 나 모르게 여행이라도 가나?』
한참을 깔깔거리고 웃던 로건이 드디어 여행용 가방을 알아봤다.
야무지게 만두를 먹어치우던 마이클은 쓰게 웃으며 손등으로 기름기가 묻은 입가를 닦았다.
『여행? 아니야. 일주일 정도 통조림을 당할 거라서.』
『통조림? 통조림이라니. 그게 뭔데?』
『출판사에서 날 호텔에 가둬둘 거야. 4월에 나올 책이 늦어지고 있다고 난리거든.』
『호오.』
알고 보면 전부 로건 때문이다. 사흘이 멀다 하고 게으른 소설가를 이리 끌고 다니고 저리 끌고 다녔으니 체력이 바닥난 그가 자판을 제대로 두들겼을 리가 없다. 마이클은 술도 못 마시고, 마약을 혐오하는 남자다. 스포츠도 안 좋아하고 비싼 자가용에 관심도 없다. 하지만 조증을 보이는 친구는 그런 마이클을 엄한 할렘가로 끌고 가 건장한 체격의 흑인들과 같이 농구를 했다.
「나이스 슛~!! 끝내줘요, 마이클!」
거짓말이다. 엉금엉금 기던 마이클은 공 한 번 못 만져봤다.

『저어... 그게 수상한 협박편지 탓은 아니고?』
묘한 눈빛으로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로건이 툭 하고 한 마디 던졌다. 장난스럽게 웃던 것도 어느새 지워지고 지금은 정색하고 있다.
『자네 담당이라던 애나가 그것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던데.』
『협박편지? 무슨 편지?』
『팬레터를 가장한 협박편지가 열 두통이나 도착했다고...』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로건은 못 믿겠다는 투였지만 이는 한 치의 거짓 없는 진실이다. 까놓고 말해 신원 불명의 작가에게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을 해서 무엇에 써먹누. 심지어 책 표지엔 그의 얼굴 사진 하나 안 실려 있다. 칼을 들고 쳐들어와도 누굴 찔러죽일지 판단도 못 한다.

문득 궁금해져 질문했다.
『이유가 뭐라던가. 주인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날 죽이고 싶어졌다고 하던가?』
『자세한 건 나도 몰라. 애나가 협박편지를 직접 보여준 것도 아니야. 그저 말만 들었지.』
로건이 작은 목소리로 무어라 투덜거리며 목덜미를 문질렀다.
『것보다 무슨 호텔이라고?』
『크라운 호텔이라고 했네, 로건.』
『흐음...』
특유의 콧소리를 내는 친구를 보고 마이클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안 돼. 이번엔 정말 안 돼. 갑자기 쳐들어와서 같이 놀자고 해도 문을 열어주지 못할 거야. 나는 거기에 일을 하러 가는 거라고.』
『우리 사이에 뭘 그리 각박하게. 게임기 잔뜩 가지고 위문 방문 갈게, 마이클.』
『안 돼!』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쳤다.
그래봤자 청바지를 사랑하는 IT 억만장자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Posted by 미야

2013/02/18 09:43 2013/02/1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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