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드롭 2-02

오래된 동물 오감 실험 중에 이런게 있었다.
센서가 달린 우리 안에 실험용 쥐를 집어넣고 버튼을 누룰 적마다 먹이를 공급한다. 영리한 쥐는 재빨리 이를 학습, 단추를 누르면 맛있는 먹이가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점을 알아차린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실험자는 버튼을 누르면 먹이통에 전기충격이 가해지도록 몰래 이를 수정한다.
대부분의 쥐의 주둥이가 전기가 올라 벌겋게 탔다.
그런데 극히 소수의 쥐는 - 사실 딱 한 마리만 - 사전에 이런 꿍꿍이를 짐작이라도 한 건지 배가 고픔에도 버튼을 누르지 않고 버텼다. 구석에 웅크리고 눈만 반짝였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그 모습은 흡사 우리를 탈출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강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실험실 직원이 쥐를 잡기 위해 손을 뻗자 쥐는 사람의 손가락이 잘려 나갈 정도로 물어뜯었다.

쥐가 아닌 인간도 - 매우 극소수의 인간도 사전에 위험을 감지한다. 설명되지 않는 힘이다. 그들은 더할나위 없이 극적인 순간이 오면 별 이유 없이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고 말한다. 메스꺼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안절부절 하다가 곧 폭발물에 타이머가 장착된 건물에서 서둘러 빠져나간다. 빠져나갈 수 없으면 제자리에서 방방 뛴다. 일반인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는 그들은 일종의 천연 탐지기나 마찬가지다. 미리 귀띔을 해준 것도 아닌데 먹이통을 건드리면 먹이가 아닌 전기충격이 떨어진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리고는 극도의 불안에 떤다.
- 내 주변엔 그런 사람 없었어.
반복하여 말해두지만 극히 소수다. 지진이 나기 전에 머리를 감싸쥐고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사람이 어디 흔할 것 같은가. 아예 없다고 단정지어도 무방하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헨리는 그런 종류의 사람을 두 명이나 알고 있다.
한 명은 관리사문관인 카터다.
그녀는 거의 전설이다. 군 복무 시절엔 카터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병사들이 제법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녀가 들판에 앉으면 앉았고, 바위 옆으로 엎드리면 다들 따라서 엎드렸다. 작전 중 사망자 수는 마법을 부린 것처럼 줄었다. 이게 심해지자 카터가 인상을 찡그리면 장군의 명령에도 아랑곳없이 부대원들 전부가 몸을 사리게 되었다. 그래서 방출되었다 - 카터를 핑계 삼은 명령 불복종 사태가 빈번히 발생했다. 골머리 앓던 군에서 카터를 행정 방면으로 강제 전역시켰다는 건 아마 사실일 게다. 당시 조스 카터의 별명은 무당의 딸이었다.

그리고 이건 잘 알려진게 아니지만... 또 한 명은 - 경비병 시멘스키다.
『무슨 일 있는가, 시멘스키. 얼굴이 귀신 같어.』
『그게 말입니다, 헨리. 무슨 일이 있기는 있는데 아직은 말할 수 없어요.』
『자네가 그렇게 나오면 난 무서워져. 설마, 하늘에서 운석이라도 떨어지는 거야?』
『맙소사, 헨리. 그럴 리 없잖아요.』
『그럼 누가 도둑질이라도 했어? 그래서 그렇게 기분이 안 좋은 건가.』
『그런 종류가 아니에요.』
문을 노크하자마자 대답도 듣지 않고 사무실 손잡이를 돌렸다. 인기척에 반응하는「들어오세요」목소리는 없었지만 그 시간에 카터가 자리를 비웠을 거라고는 짐작 못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화장실에 다녀오는 중이겠거니 여기고 헛기침을 하며 주변을 서성거렸다.
화장실 용변 같은게 아니라는 걸 알았을 적에 그대로 밖으로 나갔어야 했다. 시멘스키는 후회했다.
그날따라 무슨 생각이 들어 남의 책상 서랍을 왜 열어봤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그냥 남이 아닌, 관리사문관의 책상 서랍을 말이다. 완전히 미쳤다.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거기에 은색의 열쇠가 꽂혀 있었다. 그 조그마한 열쇠가 그를 유혹했다. 시멘스키는 지나쳐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무슨 귀신이 씌웠던지 그는 키를 잡고 오른쪽으로 돌렸다. 열쇠는 찰착 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돌아갔다.
『환장하겠네! 내가 왜 그랬을까!』
헨리가 기겁을 하든 말든, 손으로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보고서를 중앙으로 보내지 않았어. 작성은 다 해놓고도 서랍에 넣어두고만 있었어.」
어디 사는 누구의 책상과는 비교되는 모습으로 그녀의 책상은 정갈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바깥만 그런게 아니고 안쪽도 마찬가지였다. 반듯하게 정돈된 필기구 옆으로 여분의 손수건이 눈에 들어왔다. 시멘스키는 감탄했다. 이것이 여성 관리사문관의 책상 서랍이었다. 아래 칸에는 서류들이 차곡차곡 들어가 있었다. 그는 호기심에 그것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 많고 많은 것들 중에서 하필이면.
「손으로 잡은 건 그거 딱 하나였는데!」
그가 집어낸 파일은 마을 근방에서 움무들의 시신 2구를 발견했다는 보고서였다. 발견 장소와 시간. 유류품의 품목, 옷가지, 그리고 시신의 몸에서 발견한 문신의 생김새 등등이 적혀져 있었다. 시멘스키가 상관이었다면 모범적으로 작성된 훌륭한 보고서라고 생각했을 거다. 오직 객관적 사실만이 짧고도 간략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거기에는 카터의 개인 의견은 단 한 줄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개인 의견이 없긴 뭐가 없어. 이걸 따로 빼놨다는게 바로 카터의 의견인 거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봐서는 안 되는 걸 봐버렸다. 그럼 이제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하나.
『제발 그러지 좀 말게, 시멘스키. 어디서 불똥이 떨어질 것 같아 무섭다니까!』
옆에서 헨리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다시 아우성쳤다.

그리고 바로 그 시각.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를 멋대로 누락시킨 장본인은 팔짱을 낀 자세로 사건의 요주의 인물 두 명을 지긋이 쳐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한심해 죽겠다. 성인 남성 둘이서 패닉에 빠져 꺅꺅 떠드는 꼬락서니라니.
『그렇게 뻣뻣하게 서있지만 말고 안젤라를 도와주세요, 미스터 리스.』
『어떻게 도와요. 난 못해요.』
『쉬가 마렵다고 하잖습니까. 데려가서 용변 처리를 도와주세요.』
『나더러 지금 3세 여아의 하의를 벗기라는 겁니까?!』
『무엇을 정색하고 그럽니까. 안젤라는 올해 23세의 나이를 먹은 여성이 아니라고요.』
『안 돼요. 그래도 여자잖아요. 전 못 합니다. 핀치가 하세요.』
『보세요. 전 지금 마이클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잖습니까.』
『하던 우유 공급을 잠시 중단하고 안젤라를 도와주면 되잖아요.』
『우유 공급?!』
리스가 우유 공급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법도 했다. 허리가 부실한 핀치는 체중이 있는 아이를 품에 안지 못했다. 대신 의자에 앉혀놓고는... 젖병 꼭지를 아이 입에 끼워 넣는 요령으로 그대로 푹-
말 못하는 어린애도 불만이 생기면 눈빛이 험악해진다. 마이클은「다 큰 어른이 이게 무슨 짓이야」라는 식으로 핀치를 쳐다보았다. 쪽쪽 빠는 건 빠는 거고, 불편한 건 불편한 거다. 애기가 인상을 마구 찡그리자 핀치는 그 이유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혹시 자신이 분유 용량을 틀리게 했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니면 물의 온도가 너무 차갑다거나...

『안젤라는 제가 화장실에 데려가도록 하죠.』
보다 못해 카터가 손을 더했다.
『그리고 못난이 남정네들더러 보육원 일을 도우라고 누가 그랬는지 알아내야겠어요.』
절묘한 타이밍으로 오줌을 싸기 일보직전인 안젤라가 서러워하며 와아 울음을 터뜨렸다.

Posted by 미야

2012/09/24 12:30 2012/09/24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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