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 of interest (4)

감정의 동요는 곧 손가락의 떨림으로 이어졌다.
차라리 주먹을 쥐고 있을 걸 - 습관대로 손을 올려 안경테의 위치를 바로 잡으려 한 핀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무의식적 행동을 저주했다. 미세한 경련은 자판에 손을 올려놓았을 때보다 한층 더 두드러져 보였고, 말 그대로 바들바들 떨면서 콧잔등 위에 걸쳐진 안경을 매만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꼴사나웠다.

『핀치.』
『별 거 아닙니다. 피곤해서요. 아무래도 비타민이 부족한가 봅니다.』
고용주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리스에게는 몸이 피곤해서 그런 거라며 에둘러 변명했다. 아무렴, 자조하듯 웃으면서「알아차렸습니까? 곤란하네요. 아무리 노력해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는 건 참 힘들군요」이럴 수는 없지 않은가.
다행스럽게도 리스는 무례한 사람이 아니라서 피곤할 적엔 따뜻한 차를 마시는게 좋습니다, 등등의 말들을 주워대며 짐짓 속아주는 척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차를 가져오기도 했다. 설탕 한 스푼을 넣은 티백 녹차였다. 그리고 리스는 핀치가 차를 다 마실 때까지 고용주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핀치가 혼자 있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물론 차 한 잔 마실 시간 만큼의 배려였다. 이후 참을성이 바닥났다는 표정으로 다시 등장,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고 뭔 일이 있느냐 고집스럽게 캐묻기 시작했다.
『핀치.』
발자국 소리도 내지 말고 등 뒤에서 접근하는 건 반칙입니다, 리스 씨.
핀치는 미간을 찌푸리는 것으로 전직 CIA 요원의 사람 놀래키는 행동을 비난했다.
『무슨 일이긴요. 다리가 아파서 그럽니다. 젊은 사람은 이해를 못하겠지요.』

이건 아주 거짓말은 아니다. 따라서 불만스럽게 꾹 다물어진 리스의 입술이 살짝 풀렸다.
『다리가 아프다는 양반이 3층까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합니까.』
『그럼 어쩌라고요. 걷지 말고 날아다닐까요.』
『클락 켄트(수퍼맨)의 망토를 빌려 입으라곤 하진 않았어요. 당신에겐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잘 아니까. 제 말은 승강기를 복구하는게 좋겠다는 거예요. 전기와 수도가 끊기지 않았는데 승강기도 작동하게 하면 되잖습니까.』
『그렇게까지 하자면 남의 눈에 띕니다, 미스터 리스.』

버려진 것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물건이든, 장소이든... 혹은 사람이든.
뉴욕시에서 예산 부족으로 폐쇄를 명령했던 도서관 역시 그래서 이름이 없다. 저평가되어 지역 저축 은행에 헐값으로 매각, 이후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부동산에 투자한 저축 은행 또한 도산하자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서 도서관은 껍데기만 남은 유령 건물이 되어버렸다.
핀치는 이곳을 림보 같은 곳이라고 표현한다. 지옥와 이승의 애매한 경계... 천국에 가지 못한 어린 아이들의 영혼이 최후의 심판 전까지 안식을 취하는 장소...

핀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영혼들은 정기적 안전 검사를 실시할 전문 인력이 뭔지 모를 것이고, 전기 요금 고지서를 염려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런 건 살아있는 인간들의 걱정거리니까요. 덧붙여 기록으로 남는 흔적이고요. 그리고 그건 누군가 눈여겨보는 수고를 들인다면 특별한 의미를 찾아낼 정도의 흔적이겠지요. 그래서 만약 누군가 그 흔적을 발견한다면, 당신과 저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될 겁니다.』
리스는 수긍했다.
『별 수 없이 클락 켄트더러 망토를 빌려달라고 해야겠군요.』
예절바르고 사려심 깊은 그는 같잖은 농담을 껄떡대면서도 웃지 않았다.
핀치는 그런 그의 꽉 막힌 부분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국경지대의 유전을 놓고 수단과 남수단이 전면전 양상을 띄고 있는 것을 그쪽이 왜 걱정하고 있는 건지는 설명이 되지 않네요... 혹시 헤그리드 유전에 투자한게 있는 건가요? 아니면 달리 다른 이유라도...?』
꽉 막힌 부분만 문제가 아니다. 리스에게는 다른 부분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존에겐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고 처음부터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이쪽에서 미주알고주알 뭐든지 다 말해주겠다는 것과 같은게 아니다.
어느 누구에게도「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은 분명 있고, 그것은 리스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리스가 자신의 뒤를 캐고 있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래서는 안 되는 거다.
머리 속에서 수십 개의 질문들이 회오리치면서 멀미와도 비슷한 증상을 야기시켰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겁니까. 당신이 날 미행한다는 거 알고 있어요. 나에게 관심을 가졌으면 가졌지, 수단으로 떠난 월 잉그램의 존재까지 알아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나는 지금 너무나 불편해요, 속이 안 좋아요. 나는 지금 당장 의자에 앉아야 해요.
현기증에 고통받으며 체중을 기댈 수 있는 의자 등받이를 더듬었다.

『왜 그런 질문을 하신 건지 묻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리스 씨와는 관계 없습니다.』
그는 비밀스러운 사람이다.
건드려선 안 되는 영역을 제3자에게 침범당하는 건 원치 않는다.
그 누구라도 가까이 오게 두지 않았다. 접근하려는 자는 격퇴될 것이다.
왜 그걸 몰라주느냐고 눈빛으로 물었다. 어쩌면 핀치는 울상을 짓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리스는 표정이 없었다. 그는 기뻐할 적에 기뻐하지 않고, 슬플 적에 슬퍼하지 않도록 훈련받았다. 감정이 폭발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잘 제어했다.
『현지 시각 5월 2일에 유엔 안보리에서 48시간 안에 전투를 중지하지 않으면 경제 제재를 하겠다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어요. 그쪽 사람들도 경제 제재가 뭔지는 잘 아니까 급한 불은 곧 꺼질 겁니다.』
『그.러.니.까. 리스 씨와는 상관이 없다니까요.』
『제겐 여권도 있답니다. 잘 만들어진 가짜이긴 하지만요.』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여권이라뇨. 수단으로 비행기라도 타고 가려고요?』
『글쎄요. 단순히 기분 전환을 위해 관광을 하러 가고 싶은 것일 수도 있죠. 아니면...』
『아니면... 뭐요.』
『당신이 거액의 기부금으로 후원하고 있는 MSF(국경없는의사회) 수단 지부를 둘러보고 올 수도 있죠. 그곳에 있는 의사 선생님들이 안전하게 잘 있는지가 궁금해서요.』
핀치는 이를 악물고 대꾸했다.
『됐네요, 정부군이든 반군이든 MSF 사람은 안 건드려요.』
『호오, 그거 참 좋은 이야기네요. 잘 되었어요. 걱정 꺼리를 덜었으니까요.』
리스는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슬슬 일이나 하러 갑시다」종용했다.

Posted by 미야

2012/05/07 13:44 2012/05/0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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