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J-fic] Brownie 35

냉장고에 넣었다 방금 꺼낸 듯한 차가운 손이 이마를 덮었다.
등줄기가 섬짓한 건 둘째고 그냥 좋은 거다. 맛있는 얼음 과자 생각도 났겠다, 젠슨은 팔짱을 끼고 간이식 접이 의자에 등을 기댄 자세 그대로에서 이 행복한 느낌을 간결, 극명, 과감하게 표현했다.
『소름끼쳐.』
이래선 백년의 순애보도 한 순간에 식는게 정상이다.
하지만 제러드는 자신이 온혈 동물과는 거리가 먼 파충류 취급당했다는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대신 가깝게 접촉한 피부로부터 여행용 비자를 발급받고 건너온 따땃한 열기 - 어딜 봐도 정상이 아닌게 확실한 - 가 걱정이었다. 체온계를 꺼내 억지로 입에다 꾸셔넣어야 하는 건 아닐까. 아님 등에다 짊어지고 냅다 뛰어야 하는 걸지도. 이마에서 손을 떼어내고 이번엔 귀를 만졌다. 맙소사, 이쪽도 라지에이터처럼 후끈거린다.

『으음... 그렇게 조물거리면 느낌이 이상해져.』
『엇. 그런 쪽으로의 수상한 의도는 없는 거니까 느끼진 말아줘요, 젠슨. 그나저나 제가 지금 손가락 몇 개를 들고 있는지 알아보겠어요?』
『열 여섯 개.』
『장난치지 말고. 이쪽은 진짜로 심각하단 말예요.』
『괜찮아. 해열제를 미리 두 개나 먹어뒀거든. 그나저나... 끙. 지금 몇 시?』
『오후 3시가 좀 넘었어요.』
『큰일났네. 잠시 쉰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그렇게 되었나. 리허설까지 얼마 안 남았잖아.』
『그것보단 충혈된 눈이 더 문제로 보이는데요.』
『아닌게 아니라 눈물이 말랐다. 어쩌지. 나, 지금 술주정뱅이로 보여?』
『술주정뱅이처럼 보이는게 아니고 상당히 아픈 사람으로 보여요. 젠~슨.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시끄러. 뼈가 부러져도 촬영은 취소 못해. 고작 감기 갖고 수선 피우지 마.』
『고작 감기가 아니예요. 미국에서 1년에 감기로 죽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몰라.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는데.』
정색하고 물어보니 대꾸할 말이 없다. 나는 그렇게 머리 좋지 않거든요. 당황해서 대략 많겠거니 싶은 숫자를 아무렇게나 거론했다.
『그, 그러니까... 대충... 한 100명?』
『됐어, 뉴욕시 인구만 821만명이 훌쩍 넘어. 사람은 감기로 안 죽는다는게 숫자로 딱 보이는구먼.』

말은 그렇게 했어도 발 밑이 출렁거렸다. 부드러운 젤리로 만들어진 마루 위를 체셔 고양이가 발꿈치를 들고 걸어갔다. 오른발이 5cm 아래로 푹 꺼졌다가 탄력을 받고 튕겨올랐다. 불가항력적으로 균형을 잃은 몸이 뒤로 기울어졌고, 제러드는 코앞으로 말벌이 나타났다며 펄쩍 뛰었다.
『젠슨!』
『어익후.』
허리를 단단히 붙들리고 나서야 말캉거리던 젤리가 굳어 단단한 바닥으로 변했다. 후후, 심호흡하며 어지러움을 털어내고자 기를 썼다. 거짓말 안 보태고 심장이 살짝 엇박자로 움직였다. 감기로는 아무도 안 죽는다는 발언 - 취소. 롤러코스터를 타고 별들이 빙빙 돌았다.

『젠슨, 젠슨! 기절하면 안 되요!』
큰일났다고 생각한 것 같다. 양팔을 위 아래 방향으로 세게 문지르며 안색을 살폈다. 이럴 적엔 어떻게 하는게 좋더라. 가만 있어 봐라, 텔레비전에서 의사들이 이렇게 하는 걸 봤던 것도 같다. 제러드는 젠슨의 눈꺼풀을 뒤집었다.
『조금만 참아봐요. 내가 도와줄게요!』
그리고는 이것만이 최선이다며 입을 가까이에 대고 후, 숨을 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젠슨은 펄쩍 뛰었다.
『아웃! 이 바보야, 그건 눈에 들어간 티끌을 빼는 방법이잖아.』
『엇.』
『가뜩이나 눈이 시려운데 무슨 짓이야!』
『미안, 미안! 급하다보니 착각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됐어. 일부러가 아니라는 건 잘 아니까.』
『잘못했어요!』
『시끄럿! 됐다고 했잖아!』
『켕.』
오줌 쌌다고 야단을 맞은 강아지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든 말든, 젠슨은 협탁에 놓인 렌즈를 흘깃 쳐다봤다.
「아파서 도저히 착용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이걸 어쩐다... 저걸 안 끼면 죄다 자갈 밭이라는게 문제야. 장님이 콩밭에서 나물을 캐면 카메라맨이 좋아라 하고 봉산탈춤을 출 터인데, 그렇다고 딘 윈체스터가 안경을 쓰고 나갈 수도 없고.」
렌즈통을 손에 쥐었다. 주머니에 넣었다. 미신이라는 걸 알면서도 손가락에 침을 발라 코에 발랐다.
『가자, 판쵸!』
지금으로서는 촬영 종료까지 아무 일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Posted by 미야

2008/01/10 15:45 2008/01/1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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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나기 2008/01/12 00:02 # M/D Reply Permalink

    어찌어찌 이곳에 흘러들어 읽기시작하다가 단숨에 달렸습니다!!!
    촬영현장 일기같아요^^
    판쵸!!! 우리 딘도 csi팬인거군요^^

  2. 로렐라이 2008/02/21 14:43 # M/D Reply Permalink

    판쵸! ㅎㅎ csi 생각나며 정겹네요~
    후후 잘 읽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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