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을 읽고 뜨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아쟁은 1680년 2월 22일 그레브 광장에서 화형당했다. 세비뉴 후작부인은 이 광경을 목격하고 자신의 딸에게 이렇게 썼다.
<어느 관사가 내게 말하더구나. 피고가 여자일 때는 어느 정도 부드럽게 대한다고. 내가 물었지. 어떻게요? 불을 붙이기 전에 목졸라 죽이나요? 그가 답했어. 아니오. 머리에 나무토막을 던지지요. 아니면 형리의 부하들이 여자의 머리를 쇠갈고리로 내리치지요. 알겠니? 아가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지독하지는 않단다.>


1. 후작부인이나 되는 사람이 화형 장면을 목격?! 공개처형이 아무리 일반적이라지만 이건...;; 참수형을 당한 머리를 마을 입구에 장식하던 시대와 뭐가 다르다는 거야, 정말!
2. 머리를 쇠갈고리로 내리치는데 그게 지독하지 않다는 거냐?!

17세기면 그래도 이성이 깨어났을 시기라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진짜지 시대와 장소를 잘못 만나면 죽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을 거다.

Posted by 미야

2007/04/22 10:12 2007/04/2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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