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fanfic] judgment 06

※ 제멋대로의 망상을 달리는,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이상하다 싶은 건 전부 패스해주세요. 현대물엔 쥐약...;; 아아, 어렵다. ※


말쑥한 수트 차림새의 남자는 기자로 변신한 그들 형제들과 가벼운 악수를 나눔과 동시에 찡그림인지, 아님 미소인지 모를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반갑다는 것과, 반갑지 않다는 뉘앙스가 각각 절반이었다.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함은 아마도 상류 사회 특권 계층을 수도 없이 접대하면서 터득한 자기 보호 본능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딱 잘라《싫습니다》내지는《좋습니다》라는 걸 주장하지 못하는 가엾은 중생이었다.

왕을 모시는 시종장인양 양 손바닥을 살짝 포갠 자세로 남자는 샘과 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제 전화 통화로 인터뷰는 곤란하다고 말씀을 드린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그래도 이렇게 직접 찾아와 주시기까지 하셨으니 기쁘기 그지 없군요. 이렇게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다는 건 저희 선생님에겐 더할나위 없는 영광입니다. 자, 일단은 안으로 들어오시겠습니까. 밖은 춥습니다.』
남자의 말투에서 샘은「정중한 거절법」이라는 제목의 필수 교양 과목을 떠올렸다.
모르는 사람은 저 말에서「이얏호, 문턱 하나를 넘었다!」라며 좋아할 것이다. 덧붙이자면 그 모르는 사람 중에는 어린애처럼 방긋 웃는 딘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철 모르고 기뻐하기엔 너무 이르다. 십중팔구 저 사내는 빙빙 돌려 과장되게 말하는 것으로 약간의 시간을 허비한 뒤에,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지 않도록「미안합니다만」내지는「안타까운 일입니다만」이란 수식어구를 잔뜩 붙여선, 귀찮은 손님들을 도로 찬바람 몰아치는 문 밖으로 내칠 것이 뻔했다.
동의를 나타내며 살짝 끄덕이는 턱의 움직임이라던가, 반짝거리는 구두를 응시하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동작 전부가 꾸며진 연극이다. 애초부터 그 머릿속으로 저울질되는 건 없다. 그가 가지고 있는 메뉴얼엔《예정에 없는 손님들을 응접실로 안내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지 않다. 무작정 현관문을 두들겨 가뜩이나 바쁜 사람을 귀찮게 만든 침입자들은 그 나름대로의 노하우로 곧 처치되어 원래의 장소로 돌려보내질 것이다. 물론 그 침입자들의 직업이 외판원이 아닌 언론인이라는 점에서 평소때보다 곱절의 공을 들이겠지만 말이다.

『제 이름은 힐케마이어라고 합니다. 오겐 맥콰드 선생님의 개인 비서이지요.』
거기까지 말한 오겐의 비서는 안쪽으로 열 다섯 걸음만 움직이고 다시 동작을 멈췄다. 사내를 따라 움직이던 윈체스터 형제 또한 싫든 좋든 제자리에 멈추어 서지 않을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신호등에 불이 켜지면서「당신들이 가진 패스워드로는 여기까지만 진입이 가능합니다」라고 알려주고 있음이다. 딘은 손가락으로 콧망울을 만지며 소금에 절인 레몬을 혀 위로 올려놓았다는 식의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에게 집안을 보여달라! 아울러 집안 어딘가에 있을 당신의 주인을 만나게 해달라!
하지만 고개를 길게 빼고 안쪽을 살펴보려고 해도 악마와도 같은 미소를 띈 힐케마이어가 중간에서 이를 가로막아 그의 염탐을 교묘하게 가로막았다. 이거, 쉽지가 않다.

『혹시《헤더의 자녀들》재단 설립을 두고 취재를 나오신 건가요?』
지금은 법으로 제작 자체가 금지된 상아 세공의 초호화 흑단 테이블을 배경으로 하고 선 힐케마이어는 다시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무척 좋은 일이 될 겁니다. 1년에 2만달러씩, 뜻을 같이 하는 서른 아홉 분이 재단 기금을 후원하게 됩니다. 원래 헤더의 자녀분들은 모두 마흔 다섯분이 됩니다만, 지난해 또 한 분이 노환으로 세상을 뜨셔서... 그것으로 교육, 의료, 인권운동 등등을 돕게 되지요. 이미 전미 유색인 지위 향상 협회(NAACP)와도 긴밀한 협조를 맺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할 가치가 충분하며, 오히려 이 일을 시작이 늦었다고 생각하시고 계십니다. 아시고 계시겠지만 오겐 맥콰드 선생님은...』
성질이 나려 하고 있으니 어서 그 입 다물라.
딘은 펜과 메모지를 요구하며 블라블라 이야기를 늘어놓던 힐케마이어의 말꼬리를 잘랐다.
『길게는 부탁 안 드립니다, 힐케마이어씨. 제가 뭐 하나를 적어드릴테니 이 메모를 댁의 선생에게 보여드리고 우리와 만나줄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봐 주시겠습니까. 그걸 보시고 나서도 돌아가라고 하면 군소리 없이 돌아가겠습니다. 하지만 10달러를 걸고 장담하는데 선생님은 우리를 그냥 돌려보내려 하지 않을 걸요.』
『저어, 스탠리 플레니건씨? 무슨 메모를...』
『댁의 선생이 이 메모지를 들여다 보는 일엔 5초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손바닥을 펴보이며 딘이 강조에 강조를 더했다.
『5초, 딱 5초면 됩니다.』
딘은 비서를 쳐다보았고, 그와 눈싸움을 벌렸다.

헤에, 딘이 이겼다.
실수로 눈을 깜빡인 힐케마이어는 찜찜한 표정으로 딘의 위아래를 쳐다보았다.
패자는 말이 없다고 하던가.「잠시만요」를 말한 그는 이윽고 등을 돌리고 사라졌다.

샘은 불현듯 궁금해졌다. 그래서 작은 목소리로 살짝 질문했다.
『메모지에 뭐라고 적었어? 딘.』
『쉿! 누가 엿들을 수 있으니까 플래니건이라고 불러. 어쨌든 이 형은 글자는 적지 않았어.』
『뭐?』
『대신 간단한 그림을 그렸지.』
그리고는 오른쪽 손가락 다섯 개를 물고기 지느러미라도 되는양 팔랑팔랑 움직였다.

그것은 진실로 마법의 키워드였다. 안쪽에서 제법 커다란 쾅 소리가 나면서 사람이 빠르게 뛰쳐나왔다. 커다란 돌로 만들어진 전설의 입구가 활짝 열리면서 흥분한 백발의 마법사가 뾰족하게 생긴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맨발로 달려나왔다. 그런 마법사의 양편으로는 처녀 아닌 자가 부주의하게 손을 댄 유니콘이 반 광란하여 날뛰었다. 주의하라, 벼락이 일직선으로 내리꽂고 있음이다. 방어의 주문을 외울 줄 모르는 일반인들은 그래서 오딘의 아들이자 천둥의 신 토르의 분노 앞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당신들, 도대체 누구야!』
딘이 건낸 메모지를 구깃하게 쥐고 있는 노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혈색이 없어 손등이 파르죽죽하다. 덕분에 피부에 자라난 검버섯이 한층 더 눈에 들어왔다.
『만약에... 만약에... 단순히 장난을 치는 거라면 당신네들, 죽도록 후회하게 될 거요!』
오겐 맥콰드의 짙푸른 눈동자가 경고를 담아 번득였다.
『누구로부터 들은 거요, 젋은이. 헤더의 오른쪽 손가락이 여섯 개라는 건 비밀인데!』

딘은 시치미를 뚝 잡아떼고「주간 월드뉴스」신분증을 암행어사 마패처럼 들이밀었다.
『저희들은 기자입니다. 그리고 뉴스 소스는 언제나 비밀입지요. 잘 아시잖습니까. 자... 그러니까 오겐 맥콰드 선생님? 저희에게 잠깐 시간을 내어주시죠.』
발을 구르고, 외마디 분노의 외침을 토해내도 오겐은 그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골동품 경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침을 흘리며 환호성을 지를 것 같은 오겐의 초호화 응접실에는 이미 윈체스터 형제 말고도 선객이 두 명이나 있었다.
지팡이를 쥔 노부인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자주색 가죽 소파에서 일어나려 했다.
『갑자기 시끄럽게... 무슨 일이야, 오겐?』
『무슨 일인지는 제가 묻고 싶습니다. 아아, 일어나지 마세요, 스텔라.』
그걸 만류하면서 맥콰드는 두통을 호소하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뭔진 몰라도 좋지 않은 일인가 보군. 어떠냐, 오겐. 우리가 잠시 자리를 피해주어야 할까?』
노부인 뒤로는 고급 공무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짐짓 뒷짐을 지고 서있었다. 말쑥한 백발에 굳게 다물어진 입술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평생 남에게 굽신거리는 법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을 인상이다. 권력이 뭔지를 아는 눈빛이다.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는 것으로 사람 목을 여럿 다치게 했을 것 같다.

샘은 살짝 긴장했다. 두 사람 다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다. 노부인의 귀를 장식한 다이아몬드 귀걸이는 모르긴 몰라도 그들 형제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벌어들인 돈을 모두 모아도 구경도 못 할 비싼 물건임이 확실했다. 짧고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은 분명 유명 헤어 디자이너의 손길을 탔다. 입고 있는 옷은 또 어떻고. 어쩌면 신발 한 켤레의 가격이 자동차 한 대 가격과 맞먹을지도 모른다.
그걸 깨닫자 갑자기 말문이 막혀왔다.
단순히 장난을 치는 거라면 죽도록 후회하게 될 거라는 맥콰드의 발언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인 셈이다. 이들은 똑바로 선 삼각형의 맨 윗 부분을 차지한 꼭지점이다. 허튼 수작을 부리면 권력과 돈의 힘으로 묵사발을 내버릴 것이 뻔하다. 어떤 의미에선 그들 윈체스터 형제들이 다루는 유령보다 곱절로 무섭고 잔인할 것이다.

오겐 맥콰드가 피곤한 어조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스텔라, 그리고 마이클. 미안합니다만 당신들도 같은 자리에 있어주어야 할 것 같군요. 이 친구들은 스탠리 플래니건, 제러미 도핀입니다. 두 사람은 월드뉴스의 기자들이고...』
기자라는 말에 고급 공무원의 냄새를 풍기던 마이클 프레데릭이 벌레 씹은 얼굴을 했다.
『기자들이 왜.』
『이 친구들은 헤더의 손가락이 여섯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그것도 정확하게 오른쪽 약지가 하나 더 많다는 걸 메모지에 그림으로 그려 저에게 보여주더군요.』
소파에 파묻혀 있던 스텔라 패리니시가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거짓말!』
그리고는 흥분해서 검은색 지팡이로 대리석 타일이 깔린 응접실 바닥을 콕콕 찍었다.
『절대로 사실일 리 없다. 우리들 중 그 어느 누구도 그 이야길 입밖으로 꺼낸 적이 없어! 헤더 언니는 자신의 손을 수치스러워 했어! 항상 감추려 했다고! 그걸 잘 알고 있는데 우리들 중 누가 감히 제3자에게 그 얘기를 떠벌린단 말이냐! 이건 말도 안돼!』
정체불명의 발광체가 서쪽 하늘을 일직선으로 날아갔다고 해도 덜 놀랐을 거다. 아니, 달의 뒷면으로 외계인이 세운 피라미드가 발견되었다고 하는게 차라리 나았다.
스텔라는 딘과 샘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이것들이 감히 내 앞에서 뭔 수작을 꾸미는 거야?!》라며 노골적인 혐오감을 드러냈다.

그러든 말든, 딘은 허락도 구하지 않은 채 가까운 의자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요구했다.
『헤더의 이야기를 해주시죠.』
그것이 요청이 아닌 요구였다는 점에서 오겐 맥콰드, 스텔라 패리니시, 마이클 프레데닉은 사이좋게 몸을 경직시켰다.
이런 시건방진 녀석을 다 봤나. 맥콰드의 눈썹이 살짝 경련을 일으켰다.

『무엇을?』
『아는 것 전부를.』
『뭘 위해서?』
『헤더를 위해서.』
『그것이 왜 헤더를 위한다는 거지.』
『진실이 뭔지를 알아야 그녀를 도울 수 있습니다.』
『그녀를... 도와? 이보게. 돕고 자시고 헤더는 이미 죽고 없다네.』
어이가 없어진 오겐 맥콰드는 고개를 흔들어댔다.

그렇다고 해도 딘은 평점심을 잃지 않았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질문 한 가지를 하지요. 헤더의 무덤은 어디에 있죠?』
오겐은 쉽게 대답을 못하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음... 그건...』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이때 스텔라가 입술을 만지며 뭔가를 떠올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잠깐. 그러고보니 항상 그 점이 이상했었지. 오겐은 기억이 나니? 나는 그 부분에선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아.』
『스텔라?』
『두 달 전에도 안나 로드리와 언젠가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들 중 그 어느 누구도 헤더 언니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어. 그냥... 넴 나탁이라는 이름의 연합군 장교가 와서 슬픈 얼굴로 헤더 언니가 죽어 유감이라고, 하지만 고통은 없었다고 얘기해준 것이 전부야.』
『저런... 틀려, 스텔라. 그 장교의 이름은 넴 나탄이었어.』
『그랬던가? 난 분명히 넴 나탁이라고 기억하는데? 마이클.』
『어라. 넨 나르탁이 아니고?』
이들 대화로 오겐이 다시 끼어들었다.

딘은 쇠꼬챙이로 쑤시는 듯한 두통을 참아가며 끄응 신음했다.
넴 나탁도, 넴 나탄도, 넨 나르탁도 아니다.
영문도 모르게 입안에서 뱅뱅 도는 이름 한 가지.
『네마 나타스.』
손짓 발짓을 섞어 말하던 세 사람이 순간 입을 다물고 딘을 일제히 쳐다보았다.

잔뜩 찡그려져 있던 오겐의 눈이 반가움을 담아 환해졌다.
『이제 알았다! 당신, 넨 나르탁의 가족이었군! 그래서 헤더에 대해 알았던 거고. 이렇게 반가울 수가! 이리 가까이 오시게. 당신도 우리와 같은 헤더의 형제요.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리고 같이 헤더의 만찬에 참석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그때의 이야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그리고 젊은이? 우리들이 저지른 무례함과 실수를 정중히 사과하리다. 댁의 할아버지 이름을 잘못 기억한 우리들을 부디 용서해줘요. 하지만 당시 내 나이가 겨우 여덟이었거든. 그럴 수도 있다는 걸 꼭 생각해줘요.』
얼음은 녹고 꽃이 피어났다. 같지도 않은 오해를 했다는 건 꿈에도 생각 못한 맥콰드는 뛸 듯이 기뻐하며 딘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서 와요, 형제! 반갑소, 반갑소!』
노인의 손은 더할나위없이 따스했다.
그래서 딘은 후추통에 든 가루 전부를 일시에 삼키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의 통증을 느꼈다.

Posted by 미야

2007/02/19 14:53 2007/02/19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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