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조사] 풀피리 37

제6장 구름 위의 무간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택무군에게 말대꾸를 한 일로 집안 제일 높으신 분이 화가 단단히 났다.
남선생님은 서슬이 퍼렇게 되어 문하생에게 명령해 날 정당 마루에 강제로 세우게 했다.
교훈을 뼈에 새기려면 매질을 해야 한다고 믿는 양반이라 찬바람이 쌩쌩 부는 얼굴로 책편(회초리)으로 무려 서른 대를 때리겠다고 했다.
절편은 크기가 빠따라서 어린애를 때리는 용도로는 적합하지 않다나.
그나마 봐줘서 회초리 서른 대였다.

문하생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바지를 허벅지 위까지 걷어 올렸다.
“......”
오른쪽 어깨를 붙들고 있던 문하생이 내 몸에 남은 흉터를 보고 흠칫하더니 숨을 삼켰다.
잘렸다가, 찢어졌다가, 붙었다가, 도로 떼어내는 걸 반복하면 아무래도 흔적이 남는 법이다.
왼편에 선 문하생은 감정을 드러내는 건 적절하지 않다 여겼는지 아예 정면만 바라보며 내게 눈길을 주지 않았......
남계인 선생님이 호랑이처럼 포효했다.
“나라에는 정해진 규칙이 있고, 민간에서는 서로가 정한 약속이 있다. 이러한 약속을 무시하고 혼인을 장난처럼 여기었으니 네가 어떠한 만행을 저질렀는지 알겠느냐!”
읭? 지금 뭐라굽쇼?

거리를 두고 법정 증인처럼 뒤에 선 수사들이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렸다.
‘밤마다 여성 수사들 거처를 찾아 뒷산을 헤맨다는 소문이 있어 어린 녀석이 밝힌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봤더니 정체가 단수였대. 그 주방에서 일하던 채수당 넷째아들 있잖아... 그 넷째한테 당장 혼인해주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막 소리를 지르며 행패를 부렸다는 거야.’
‘허어... 단수라고 차별하긴 싫지만 소동은 반갑지 않군.’
‘어디를 가든 단수가 말썽이군. 얼마 전 거기서도 비슷하게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하지 않던가. 이름이 금현우... 금현우였을 거야. 전 종주의 혼외자식인 자가 단수취향이라서 저 사람이 좋아, 이 사람이 좋아, 이러고 엄청 해괴한 짓을 저질러 결국 성씨도 빼앗기고 모친 집으로 쫓겨났다고 하더라고.’
‘나도 그 소문 들었는데. 그런데 그 단수 놈이 집적거린 대상이 하필이면...’
‘크흠! 그건 말하지 마시게. 좋은 이야기도 아닌데. 그리고 마침 악보를 배우는 목적으로 손님께서 걸음을 하셨으니 실수로도 귀한 분의 귀를 어지럽혀선 안 될 것이야.’
‘아무튼 말세로고. 깝데기가 벗겨지지도 않았을 나이에 남자를 덮치다니. 발칙하군.’
‘채수당 넷째는 혼절하여 쓰러졌다던데?’
‘깨어나선 소지품을 꾸려 집으로 도망쳤다더군.’
‘미친놈이 결혼해달라고 쫓아오면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쳐야지. 현명한 처사야.’

왼편에 선 문하생은 귀가 안 들리는 척하며 여전히 정면만 쳐다보았다.
오른편의 문하생은 귀가 붉었다.
남계인 선생님은 단호했다.
“때려라!”
맞는 건 괜찮아도 오해는 풀어야 했다.
나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남계인 선생님을 응시했다.
선생님은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기가 무섭게 금언술을 걸어 주둥이를 꿰매어 놓았다.
아니야. 그거 아니라고. 내 입! 말하게 해줘! 억울해. 오해야!

회초리를 다 맞고 난 뒤엔 상처에 약을 바를 엄두도 내지 못하고 한실 구석에 서서 다시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종아리가 아픈 건지, 아니면 의도치 않게 퍼진 헛소문이 억울한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나더러 단수취향이란다. 나에게 시비를 걸던 놈에게 연심을 품어 – SM 취향이냐. 그게 말이 돼?! - 결혼하자며 덤볐고, 청혼 받은 놈은 미친놈에게 순결을 잃을 수 없다며 운심부지처를 떠났...... 택무군을 보며 손가락으로 내 입을 가리켰다. 홧홧한 통증이 문제냐. 이러면 내가 가해자가 되어버리잖아!

금언술은 풀릴 기색이 없고, 한실은 주인의 기분을 대신하듯 온도가 싸늘했다.
“종아리를 맞았음에도 반성을 하는 태도가 아니구나.”
억울하다고! 서안 앞으로 조로록 달려가 손짓 발짓을 열심히 했다.
홧김에 ‘결혼하자!!’ 소리를 질렀던 건 맞다.
그런데 ‘혼인빙자 욕설죄’가 ‘무고’보다 더 심한 취급을 받으면 그건 형평성이 안 맞지.
공평하게 따지려면 심안인지 심선인지 하는 애를 잡아다 물증도 없이 날 도둑놈 취급한 죄부터 물어야 할 거 아냐. 게다가 평소에 그렇게 날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는데. 그런데 걘 집으로 돌려보내고!
아, 그런데 걔 이름이 도대체 뭐지. 계속 이놈, 저놈, 부를 수는 없는데.

“이름도 모르고 청혼한 거냐!”
택무군이 책망하는 얼굴로 따졌다. 화가 단단히 나 평소의 우아하고 따뜻한 분위기는 간 곳 없고 냉랭하고 쌀쌀맞았다. 표정이 딱딱해지자 동생과 정말 일란성 쌍둥이처럼 빼닮아 내심 신기했다. 함광군이 형장, 형장, 이러고 극존칭을 쓰는 걸 보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제인데 냉기를 저리 풍기자 하루 한시에 태어난 사람들 같았다.
“손바닥을 내밀거라!”
어른에게 말대꾸한 걸 꾸짖기 이전에 예절교육이 더 절실하다며 보충설교가 이어졌다.
여기서 보충설교라 함은 손바닥을 대나무 편책으로 때리는 걸 의미한다. 중학교 시절에 플라스틱 자로 손바닥을 맞는 것처럼 따끔거리는 게 느낌이 비슷했다. 내 몸 상태를 고려하여 일부러 힘을 빼고 때리는데도 벌이 와서 침을 쏘는 듯했다.

“그렇군요. 저 아이가 최근 둘째 형님의 골칫덩이라는 그 걸람이라는 아이군요.”
악보와 고금을 준비하고 네발 향로 옆에 다소곳이 앉은 이가 낮은 소리로 쿡쿡 웃었다.
공식적인 접객실인 아실이 아니라 개인 처소인 한실에서 잠시 자리를 비운 택무군이 돌아오길 기다려도 괜찮은 특별한 손님 – 금언술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 벌겋게 변한 손바닥을 감추며 그를 향해 가만히 머리를 조아렸다.
사내는 미간에 붉게 단사를 찍고, 옷깃과 소매, 허리띠에 화려한 꽃을 수놓은 옷을 입고 있었다. 금사로 자수를 놓은 무늬가 빛에 따라 번쩍번쩍 빛이 났다. 과한 느낌으로 금을 써 복장이 요란스러울 법도 한데 사람 자체가 화사해서 그런지 잘 어울렸다. 머리에는 비단으로 만든 검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사극에서 관리들이 쓰고 다니던 관모와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중앙으로 큰 보석을 달아 보다 화려했으며 역시나 테두리로 금박을 입혀 번쩍번쩍했다.
“명월청풍 효성진에게 이름을 받은 아이라고 들었는데.”
입꼬리를 올려 살짝 웃자 방안이 환해졌다.
“과연 그렇군. 바람이 불어 운심부지처의 나무가 소란스럽구나. 산바람이 거세면 숲이 시끄러우니 그래서 걸람(傑嵐)이야. 명월청풍 효성진이 사람을 잘 보았어. 너 때문에 둘째 형님의 장탄식이 늘었다. 이 말썽꾸러기 악동아.”
현대식 양복을 입고 수제 구두를 신고 있으면 전도유망한 배우라고 해도 통할 것 같은 사람이었다.
택무군과는 종류가 다른 미인이었다.

척 봐도 혈연관계는 아닌데 서로 형님, 아우님, 호칭을 하는 것으로 보아 꽃이 만개한 도원에서 날을 잡아 같이 술을 마신 관계가 아닐까 싶었다.
아우임을 자처한 자가 하얗고 고운 손을 모아 택무군을 향해 예를 표했다.
“둘째 형님, 이 아우의 식견이 아직 짧습니다만, 그래도 감히 말씀드리자면 예절의 배움이 성현의 글을 익히는 것보다 먼저입니다. 예(禮)를 모르면 덕(德)을 모르고, 덕(德)을 모르면 도(道)에 이르지 못하니까요. 그러니 그 아이에게 급한 건 글공부가 아니고 예절공부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도울 일이 있음 돕겠습니다. 형님께서 저 아이로 인해 고민이 많으시니 이 아우, 가만히 있지 못하겠습니다.”
“아니야. 너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둘째 형님. 저는 조카 여란이 때문에 속을 썩인 적이 많아 이런 문제엔 능숙합니다. 그런데 둘째 형님은 지금껏 천둥벌거숭이를 다룬 적이 없으시지요. 함광군은 어려서부터 모두의 모범이었고 몸가짐이 특출했으니 어른 속을 썩일 일이 언제 있었겠습니까.”
택무군은 동생 칭찬을 들었음에도 어쩐지 할 말이 있다는 얼굴로 잠시 머뭇거렸다.
보아하니 그 함광군도 어른 속을 제대로 썩인 적이 있는 거구먼, 눈치껏 때려 맞췄지만 겉으로 내색하는 건 주제 넘는 일이었다. 지금의 대화 주제는 함광군이 아니라 말썽꾸러기인 나였다.

학부모 면담을 요청받고 교무실로부터 콜을 받은 젊은 아버지의 안색을 한 택무군이 눈알을 위로 굴렸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모습이어서 옆에 선 나는 그저 황송할 뿐이었다.
“조카가 또 말썽을 피웠느냐?”
“마음이 조급하여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니까요. 개를 키우면 책임감도 생기고 조금 의젓해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새끼 영견을 주었어도 똑같이 말썽을 부리더군요. 얼마 전에는 이종사촌 아이들과 몸싸움이 났는데 반성하라 꾸짖었더니 가출을 하고, 이튿날 이릉노조의 제자라는 것들을 잡는다고 장터를 뒤집었습니다. 알고 봤더니 이릉노조의 제자가 아니라 시장에서 가짜 부적이나 팔던 장사꾼이었지요.”
이번에는 꽃무늬 남자가 눈알을 위로 굴렸다.
두 사내가 한숨을 쉬자 축구공으로 학교 유리창을 깨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그런데 뭔가 익숙한 내용이었다. 영견, 이릉노조의 제자, 가짜 부적.
우울해하는 두 학부모 옆에서 같이 눈알만 또로록 굴리고 있는데 택무군이 부피가 대단한 책을 건냈다.
방금 손바닥을 때려놓고 아픈 손으로 필사하라는 건 아닐 테니 머리 위로 들었다.
정답이었다.
잘 보이는 곳에서 책을 머리 높게 들고 있으라 지시한 택무군이 손님과 같이 악보를 펼쳤다.
고금을 연주하면서 둘이서 새 노래를 배우려는 것 같았다.

연주에 들어가기에 앞서 줄을 튕겨 조율을 하면서 꽃무늬 남자가 말했다.
“둘째 형님, 진심이에요. 금린대로 보내 1년만 예절을 공부하게 하세요. 그럼 사람이 될 겁니다.”
금린대! 그 말에 들고 있던 책을 떨어뜨릴 뻔했다.
아슬아슬하게 자세를 바로잡고 놀란 눈으로 사내를 다시 봤다.
제대로 보지 못한 나, 반성해라. 꽃무늬가 아니라 모란 무늬였다. 저 화려한 것은 모란이었다.
“왜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느냐. 금린대에 가면 밥을 굶을 것 같아서 그러느냐?”
내 쪽을 보며 사내가 활짝 웃었다.
“하인으로 여기진 않을 테니 크게 염려하지 말거라, 걸람아. 둘째 형님이 네게 그리 신경을 쓰는 걸 알고 있는데 아무렴 그런 네게 물을 긷고 산으로 가 나무를 하라 시키겠니. 금린대로 오면 너는 예절공부와 몸가짐을 배우게 될 거다. 마침 조카 여란이가 네 또래이니 친구가 되어도 좋겠지. 조카는 영견 꼬마 선자 말고는 친한 친구가 없어 늘 외로워 했단다. 그러니 꼭 친구가 되어주렴.”
그때까지도 우거지상이던 택무군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영견 이름이 꼬마 선자라고? 그 이상한 이름은 누가 지었지?”
“조카가 직접 지었답니다. 귀여운 이름이지요?”
“귀엽지 않고 이상... 커험! 아니네. 귀엽네. 잘 지었어. 귀에 쏙 들어오네.”

내 다리 맛있다고 질겅질겅 씹던 똥강아지 걔도 이름이 꼬마 선자였는데.
아니겠지? 아닐 게야. 네이밍 센스가 괴상한 사람이 또 있었던 거지.
걔 주인 이름은 금릉이었지 여란이가 아니었거든. 응, 아니야.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책을 머리 위로 드는 일에 온 힘을 다했다.
드디어 악기 조율을 마친 두 사람이 악보를 보며 금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맑고 청아한 음색이 한실을 가득 채워나갔다.

Posted by 미야

2021/12/04 19:40 2021/12/0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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