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되, 사람은 사람이 아니로다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뒷문을 열고 나온 남자는 건장한 체격이었다.
그런데 눈의 모습이 좀 이상해서 초점이 맞지 않고 왼 눈과 오른 눈이 각자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소름끼치기 이전에 상대방이 나를 보지 않고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어서 불편했다.
그런다고 해도 뒷문을 열고 나오게 만든다는 소정의 목적을 달성했기에 한껏 느긋해진 마음가짐으로 그에게로 접근했다. 약간의 헛소리를 주절거린 뒤, 적당히 손찌검을 당하고 내쫓기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동전을 뜻하는 저급한 손동작을 취해보이며 헤헤 웃었다.
“나리, 연고 없는 그것을 가지고 오면 이곳에서 값을 후하게 쳐주신다 하여...”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
“아이코! 언짢게 여기지 말아주십시오. 나리의 표정을 보아하니 소인이 헛소문을 들었나 봅니다.”
“누구에게 들었느냐.”
“저는 그저 은밀히 돈벌이를 하고 싶었을 뿐으로... 보시다시피 제 사정이 좋지가 않아서요. 그런데 실수를 한 것 같네요. 나리, 화내지 마십시오. 제가 엉뚱한 착각을 했나 봅니다. 그냥 이대로 갈 터이니 못 본 척해주십시오.”
이쯤에서 뺨 싸대기가 날아들어야 했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충격에 대비했다.
그런데 망했다. 검은 갈기의 강아지가 사납게 짖으며 달려왔고, 그 겁 없고 쬐꼬만 녀석은 사내의 가랑이 사이를 쏙 지나쳐 건물 안으로 냉큼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달리면서도 계속 짖어 흡사 모양새가 도둑을 잡으러 가는 것 같았다.
나도 당황했는데 남자는 오죽했겠는가.
저 새끼 잡으라며 사내가 몸을 비틀어 돌렸다. 나는 뒷문 도로 닫지 말라고 발을 밀어 넣었다. 순간적으로 우리 두 사람의 동선이 뒤엉켜 모양새가 아주 우스워졌다.
이 마당에 남의 말 절대 안 듣는 금릉이 밥상에 밥숟가락을 얹는다며 뛰어들었다.
절대로 내가 그린 그림은 이런 게 아니었다. 골치가 다 아파왔다. 내가 주문한 음식은 카레 돈가스 매운맛 2번인데 이래서는 조리해서 나오는 음식이 우유 없이는 먹을 수 없다는 마라탕 매운맛 7번이 될 판국이었다.
여전히 초점이 잘 맞지 않은 눈으로 날 쳐다보던 남자가 부리나케 문을 움켜잡았다.
그가 원하는 건 내가 발을 끼워 넣어 닫지 못하게 된 뒷문을 닫는 거였다. 서둘러 발을 빼지 않으면 발이 뭉개질 참이었다. 나도 젖 먹던 힘을 내며 뒷문을 꽉 움켜잡았다.
보았느냐. 이것이 배추 250근을 배달하던 팔뚝의 파워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 그냥 갈 테니 못 본 척 해주십시오. 저도 어디 가서 입 뻥끗 안 하겠습니다.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듣지 않았습니다. 저기요, 사장님. 맹세코 소문 안 나게... 꽤액!”
힘은 남들보다 곱절로 세도 몸무게는 체중미달이었다.
사내는 앞뒤 가리지 않고 나를 한손으로 들어 그대로 반으로 접어버리려 했다.
금릉이 번쩍 달려와 니킥을 날리지 않았다면 가뜩이나 얇은 뼈가 동강이 났을 뻔했다.
“구린내! 엎어져 있지 말고 일어나!”
편석 바닥으로 거침없이 내던져진 나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한쪽 뺨과 이마가 몹시 쓰라렸다. 내팽개쳐지면서 편석에 피부가 갈린 모양이었다.
“금릉, 이 망둥어 꼴뚜기 같은 놈... 얌전히 보고만 있으랬지 누가...”
“구린내! 빨리 일어나라니까!”
금릉이 늘어진 내 몸뚱이를 짐짝처럼 끌고 건물 안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보통 이 경우엔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하는 거 아니었나.
가까운 곳에서 강아지가 사납게 짖고 있었다. 금릉은 그 소리를 따라 거침없이 안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무릎으로 명치를 맞은 사내가 거기 서라고 고함을 질러댔고, 이제 식탁으로 올라온 음식은 위장이 녹는다는 불짬뽕 매운맛 10번이 되었다.
가까스로 눈을 뜨고 보니 그 어디에도 불빛이라 할 게 없어 진짜로 폐가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텅 비어있는 건 아니었다. 마당 한 가운데로 거대한 닭장처럼 철책이 빙 둘러져 있었고 그 속으로 헐벗은 남자들이 저마다 술 취한 것처럼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죄다 얼굴은 시퍼랬고, 눈은 썩은 동태 눈깔이었다. 몸을 흔들다 옆 사람과 부딪치면 그르륵 그르륵 이상한 소리를 내며 다른 방향으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뭐야 이건! 좀비가 닭장 안에 바글바글하잖아!’
금릉과 내 인기척을 알아차린 좀비 하나가 철책에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눈동자가 절반은 썩었으니 앞을 볼 리 없는데 정확히 내 쪽을 바라보며 이를 딱 소리를 내어 물었다.
“금릉아. 여기는 폐쇄된 감찰소라며. 감찰소라는 게 원래 이런 거 모아놓는 곳이야?”
“너, 바보냐?! 그럴 리가 없잖아!”
금릉이 옆으로 날 밀치며 소리쳤다.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번쩍이는 칼날이 스치고 지나갔다.
상대방이 무기를 들었으니 금릉도 검을 빼들었다. 그런데 내가 봐도 금릉이 열세였다. 일단 주변이 너무 어둡다는 게 문제였다. 불을 켜두지 않은 것도 그렇지만 솟음 장대 위로 천을 커튼처럼 걸어 작은 별빛까지 차단했다.
금릉은 재주가 빼어난 편이었지만 어둠 속에서 적과 대치할 정도로 수련을 한 건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온 검 날의 빛을 보고서야 가까스로 막기만 했다. 남자의 실력이 수준 아래라서 다행이었다. 솜씨가 좋았더라면 어림짐작만으로 검을 막는 일도 쉽지 않았을 터였다.
“신호탄! 금릉아! 신호탄 같은 거 없어?!”
“그런 촌스러운 건 하인들이나 가지고 다니는 거야!”
내가 진짜 여기서 무사히 나가면 학부모 면담 간다.
품을 뒤져 가짜 도사에게서 받았던 불쏘시개 부적을 꺼내들었다. 손바닥에 대고 짝 소리 내어 박수를 쳤다. 요령이 없어서인지 반응이 없었다. 그럼 더 세게 간다. 다시 박수를 짝 쳤다.
주황색 불꽃이 솟구치자 바로 코앞으로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데 낯빛이 감마선에 오염된 헐크 색깔이었다. 아무래도 걸어 다니는 시체가 철책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기겁을 하고 코앞으로 다가온 역겨운 녹조라떼를 힘껏 떠밀었다. 덕분에 불타는 부적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기껏 얻은 광원이 제 역할도 못해보고 사그라졌다.
괜찮다. 별 거 아니다. 당황하지 말자. 공짜로 얻은 부적이 아직 두 장이나 남았다.
이때 스윽, 스윽, 빗자루로 마당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이 난리통에 바지런히 청소를 하는 건 아닐 테고. 갑자기 빛을 본 눈이 어둠을 낯설어하여 사물이 죄다 흐릿했다. 그런 나와는 반대로 상대는 매우 능숙하게 섬돌을 밟고 내려왔다. 그가 걸을 적마다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스윽, 스윽, 이러고 독특하게 끄는 소리가 났다. 아마도 옷자락이 매우 긴 옷을 입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부적을 꺼내 짝 소리 내어 손뼉을 쳤다.
불꽃이 타오르자 어둠에 잠겼던 남자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을 입었는데 무장은 하지 않았고 대신 상황에 맞지 않게 손에 대나무 피리를 쥐고 있었다.
우리 둘의 눈이 마주쳤다고 느낀 순간 그가 피리를 입으로 가져갔다.
본능적으로 피리를 불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 전에 이미 숨을 불어넣은 악기에서 쨍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공기가 바뀌었다. 피리 소리는 차갑고, 기괴했으며, 얼얼했다.
좋지 않은 것들이 피리소리를 듣고 저마다 웅성거리며 동요했다. 그리고 나 또한 저 밑바닥으로부터 동요했다. 귀 안으로 집게벌레가 잔뜩 들어가 살을 물고 뜯으며 쟁알쟁알 떠드는 느낌이었다. 아프다기 보다는 소름끼쳤다.
덕분에 쥐고 있던 부적을 또 떨어뜨렸다.
시야가 다시 어둠에 잠겼고, 바로 옆에서 터벅터벅 걷는 소리가 들렸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넙죽 엎드렸다. 피리소리에 반응한 주시가 딱딱 턱을 놀리며 공격의 대상을 찾고 있었다.
‘느리다.’
장르가 좀비물인 건 맞는데 고전 흑백영화인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었다. 이게 ‘부산행’이라던가, ‘킹덤’이였으면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 바로 물어 뜯겼을 거다.
제일 가까이 접근한 주시의 바로 등 뒤로 바짝 붙어 요령껏 그것의 팔을 잡아당겼다. 딱딱 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다가오던 주시가 당겨진 팔을 덥석 물었다. 예, 그럼 식사 맛있게 하십쇼. 빈틈을 노려 그대로 내뺐다.
주시들의 움직임이 영 신통치 않자 피리소리가 더 가파르게 변했다. 조급해 하는 것도 같았다.
그런다고 해도 빠르게 뛰는 법도 모르는 좀비들이 음색에 맞추어 더 빠르게 움직여줄 것 같지는 않았다. 저것들은 그냥 느려 터진 굼벵이들이었다.
상대적으로 마음을 놓고 금릉을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이쪽은 주시보다 곱절에 곱절로 빠르게 뛸 수 있으니 차분하게 잘 피해 도망을...
“놓아라! 놓으란 말이다!”
순간 이마를 쳤다. 전장에서 황금 투구를 쓰고 있는 화려한 외모의 장수가 칼을 휘두르고 있는데 어느 멍청이가 제대로 갑옷도 걸치지 않은 말단 군졸을 잡겠다고 설치겠느냔 말이다. 애초에 나라는 존재에는 관심이 없었고, 피리소리를 들은 주시들 전부가 팔을 뻗어 금릉을 잡겠다며 아우성이었다.
아이의 낯빛이 새파랬다. 좋아하는 아이돌을 향해 팬들이 달려들어도 식은땀이 난다던데, 달려오는 그것들 전부가 좋다고 달려드는 것들도 아니었고 사생팬도 아니었다.
금릉은 필사적으로 앞뒤로 검을 휘두르며 거리를 벌려보고자 기를 썼다. 그런데 들판에 굴러다니는 더러운 시궁창 취급이나 받는 주시의 무서운 점이 바로 칼로 베이는 정도로는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는 거였다. 피와 살이 튀어도 어차피 그것들은 시체다.
피리의 곡조가 가파르게 오르락 거렸다. 이제 금릉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렸다. 포위망이 더 좁혀졌다. 금방에라도 목덜미를 잡힐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애가 얼마나 고집쟁이면 살려달라는 말을 결코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개가 짖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건물 안에서인지, 밖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나 또한 눈앞에 있는 주시의 등짝을 잡아당기며 개처럼 짖었다.
시체가 입고 있던 낡은 옷이 당기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찢어졌다.
‘틀렸어! 이럴 게 아니라 저 망할 피리 소리를 당장 그치게 해야 해!’
황급히 몸을 돌려 검은 옷의 사내가 서있던 마당을 향해 뛰었다.
썩은 내를 풍기는 팔이 튀어나와 내 몸을 낚아채려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부적을 꺼내어 쥐고 세차게 박수를 쳤다.
짝 소리와 함께 불이 붙었다. 동시에 눈에 초점이 맞지 않았던 사내가 튀어나와 제 주인을 지키려는 듯 검을 가로방향으로 후려쳤다.
아까도 말했지만 처리곤란의 더러운 쓰레기 취급이나 받는 주시의 무서운 점이 바로 칼로 베이는 정도로는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는 거였다. 피와 살이 튀어도 어차피 나는 시체다.
살갗이 베어나간다는 감촉을 고스란히 맛보며 팔을 뻗어 불타오르는 부적을 사내의 눈구멍으로 있는 힘껏 쑤셔 넣었다.
“으아아악~!!”
부하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자 검은 옷의 보스가 황급히 피리를 입에서 떼어냈다.
이제 그와 나 사이의 간격은 다섯 자 길이밖에 되지 않았다.
목표물은 저 피리다. 나는 손을 뻗어 피리를 붙잡으려고 -
바로 그때 먼 곳에서 쟁! 하고 현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순간 몸이 뻣뻣해졌고 거짓말처럼 기운이 죽 빠져버렸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