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되, 사람은 사람이 아니로다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동물을 싫어하진 않는다. 직접 키워본 적은 없어도 개는 귀엽고, 고양이는 예뻤다.
그런데 이렇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남의 종아리를 잘근잘근 씹고 있는 개는 하나도 안 귀엽고 하나도 안 예뻤다.
“......!!!”
나는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고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았다. 그런데 그것도 어느 정도 것이어야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괴성을 목구멍 안으로 삼키며 고꾸라졌다.
아직 어린 강아지라고 해도 이빨은 날카로웠다.
문제는 얘가 사람을 물고도 그저 재밌는 장난으로 여기고 있다는 거였다. 검은 갈기를 가진 강아지는 흡사 간식을 조르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살기는 요만큼도 없었다. 그런데 왜 잘근잘근 물어뜯는 거냐곳! 내 종아리는 간식용 닭가슴살이 아니얏!
다리를 질질 끌고 몇 걸음 걸었다. 강아지도 질질 끌려왔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바닥에 누웠다. 강아지도 따라 누웠다.
아니 진짜 얘가 왜 이러는 건지 알려줄 사람?
나는 입안으로 주먹을 쑤셔 넣었다. 저 수상한 저택에서 집 지키는 용도랍시고 이 어린 강아지를 풀어 키우며 ‘맹견 조심’ 안내 문구를 붙였을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비명을 지르면 필연적으로 사람이 밖으로 나오게 되어있었다. 그럼 우르르 몰려나온 사람들에게 뭐라고 할 건가. 한 푼만 줍쇼?
갑자기 개의 무는 힘이 달라졌다. 열심, 열심, 열심, 이러면서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가려 했다.
덩치는 조랭이떡 같은 게 고집은 또 대단해서 싫다고 했더니 더 꽉 물었다.
“살살, 제발 살살! 따라갈 테니 제발!”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리 멀리 가진 않았다는 점이다. 높은 담장을 따라 모서리를 돌고 나자 씹고 있던 나를 퉤! 뱉고, 제 주인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향해 꼬리를 흔들며 앙앙 짖었다.
“꼬마 선자야, 조용히 해. 쟤는 똑똑한 것 같으면서도 가끔씩 이상하게 굴더라.”
높은 담벼락을 절반쯤 기어 올라간 소년이 짖지 말라며 손가락을 하나 세워 입에 가져갔다.
“쉬, 쉬! 것보다 뭘 끌고 온 거야. 그건 요괴가 아니잖아. 식살귀를 찾으라니까 거지를 물고 왔네.”
날 보고 거지라고 하는 건 괜찮지만 일단 담벼락에서 내려온 뒤에 뭐라고 했음 좋겠다.
이제 나는 근심에 젖었다. 개가 짖고 있고, 개 주인으로 보이는 이는 도둑처럼 담을 넘는 중이다. 발을 딛은 부분의 회석이 떨어져 증거도 충분했다. 소란을 알아차리고 집안에서 사람이 나온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개와 놀다 실수로 공이 안으로 넘어갔는데 죄송하지만 주워다 주시겠어요?
“무슨 소리야. 도둑질이라니. 여긴 사람 사는 집도 아닌데. 말투가 괘씸하군.”
소년이 발끈하더니 올라타던 담벼락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러더니 적반하장 격으로 화를 냈다.
아니, 지금 화를 낼 사람이 누구인데. 댁의 개가 날 물었다고.
손으로 종아리를 쓸어보니 작게 구멍이 뚫렸다. 살짝 검붉은 피도 베어 나왔다. 나는 손을 들어 소년에게 피를 보여주었다. 피라고 하기엔 색이 지나치게 검어 흡사 연필 검댕처럼 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구멍 났다.
“네 강아지가 날 물었어.”
“아직 훈련이 덜 되어서 그래.”
소년은 별 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그 태도가 몹시 못마땅했다.
“훈련이 덜 된 개를 데리고 도둑질을 하려 하다니. 미친 거 아냐?”
“너 바보냐? 여긴 집이 아니라 기산 온씨가 오래전에 세운 감찰소잖아. 저기 걸린 간판 안 보여? 폐쇄되어 문 걸어잠군 감찰소에 뭐 훔쳐갈 물건이 있다고 도둑질을 하겠... 어라.”
달빛에 비친 내 얼굴을 알아보고 개 주인이 펄쩍 뛰었다.
“이게 누구야. ‘구린내’잖아? 약양에 간다던 놈이 왜 여기에 있어?”
부잣집 귀한 도련님 금릉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삿대질했다.
시간과 장소가 매우 적절치 않았다. 강아지가 둘이서만 놀지 말라며 앙앙 짖었다. 금방이라도 뒷문을 열고 사람이 나올 것만 같아 가슴이 쫄깃거렸다. 얼굴을 쓸어내린 나는 일단 장소를 옮기자고 했다.
천만다행으로 금릉도 새벽부터 짖는 강아지가 부담스러웠는지 그러자 하고 내 뒤를 따라왔다.
“어떻게 된 거야?”
적당히 떨어진 골목길에서 우리 둘이 동시에 말했다.
좋다. 레이디 퍼스트. 나는 질끈 눈을 감고 금릉을 향해 먼저 말해보라고 했다.
“소문에 이 부근으로 식살귀가 나온다고 해서 잡으러 왔어.”
열 세 살짜리가 공덕을 쌓겠다고 아주 몸이 달았다.
선부의 가정에선 어디까지를 상식으로 여기는 건지 모르겠으나 주변에 정신이 제대로 박힌 어른이 있다면 말려야 하는 거 아닐까. 지금은 10대 아이들이 밖을 돌아다니기엔 매우 늦은 시간이었다.
애초에 10대 아이가 귀신을 잡겠다고 날뛰는 것부터가 나에겐 이해 불가능이긴 하다.
“식살귀? 그럼 산으로 올라갔어야지. 다른 수행자들은 무리를 지어 다 산으로 올라가던데?”
팔짱을 낀 자세로 내가 그 부분을 지적하자 금릉이 심통이 난 표정을 지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얼굴만 봐도 대충 견적이 그려졌다. 의욕 하나는 드높았으나 막상 현장에 도착해보니 식살귀를 잡는 도사들끼리 경쟁이 치열해서 일찌감치 흥이 깨진 거다, 이 녀석은.
“흥! 실력도 없는 어중이떠중이들만 잔뜩 몰려 있더라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는 말도 있잖아? 이 귀하신 몸이 그런 놈들과 같이 뛰어야 할 이유를 못 느끼겠더라고.”
말은 저렇게 했지만 정작 산에서 내려온 이유는 어른들이 아직 어려 보이는 이 소년을 사냥에 끼워주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날 더러 방해하지 말고 저리로 가라 고함치던 머리 허연 수사를 떠올리자 의심은 곧 확신으로 바뀌었다. 고지식한 수사는 그저 자기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금릉을 깐봤을 거다. 때로 어떤 자들은 재산이나 실력 이전에 나이를 권력으로 따지는 법이다.
“아항, 어른들에게 밀려났구나.”
“아니거든?! 산에 있어봤자 얻을 소득이 없을 거라는 걸 알아서 내려온 거야!”
주인이 목소리를 높이자 검은 갈기의 강아지가 덩달아 장단을 맞춰가며 옆에서 깡깡 울었다.
주인더러 힘을 내라는 건지, 아니면 약을 올리려는 건지, 개의 표정을 읽기가 어려웠다.
내 시선이 개에 꽂힌 걸 알아차린 금릉이 코를 으쓱였다. 비싼 개인가 보다.
“결정적으로 개가 산속에서 짖지 않았어. 이 개는 작은아버지가 주셨는데 아직 새끼지만 매우 영험한 영견이야. 아무나 키울 수 없는 매우 귀한 개지. 얘는 귀신을 보고 요괴를 물어. 꼬마 선자가 짖지 않았으니 산 위에는 아무 것도 없는 거야. 그래서 다른 선사들은 허탕 치라 하고 나 혼자서 내려왔어.”
“영견? 날 향해선 짖던데? 물기도 했고.”
“아직 새끼라서 그래. 어리니까 실수도 하고 그러는 거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금릉이 무릇 사내라면 사소한 건 가볍게 넘겨야 하는 법이라며 타박했다.
결국 이놈은 개가 날 물었다는 점에 대해 사과할 마음이 일도 없는 거구먼. 캬아...
“그러는 너는. 내 하인이 되기 싫다며 약양으로 간다고 했잖아. 어떻게 된 거야?”
네 하인이 되기 싫다는 말을 한 기억은 없다만.
애가 엄한 현실 왜곡을 하며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러더니 이번에도 잘 씻지 않아 구린내가 난다며 코를 쥐었다.
살짝 억울했다. 씻는 걸 열심히 하지 않은 건 맞는데 얼마 전 묘지를 파는 바람에 더러운 걸 묻혀 와서 악취가 좀 나는 것뿐이다. 그 전까지는 사흘에 한 번 꼴로 개울가에서 세수도 하고 찬물로 사타구니와 겨드랑이도 잘 닦았다.
“사람 일이라는 게 항상 잘 풀리는 법은 아니지.”
“그럼 지금까지 구걸을 하고 다녔어?”
“구걸은 무슨... 세상 구경을 하고 다니는 거지. 그러다 친절한 분들에게 밥도 얻어먹고.”
“그게 구걸이지! 그런데 구린내 너도 참 요령이 없다. 밥을 얻어먹으려면 부뚜막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집을 골랐어야지. 보다보다 문 닫은 감찰소 앞을 기웃거리며 밥 얻어먹을 궁리를 하는 놈은 처음 봐.”
감찰소가 뭐 하는 장소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사람 없는 폐가라는 금릉의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두 눈으로 똑바로 보았거든. 뒷문이 열리고 시체를 몰래 운반하던 사람이 들어갔다 사례비를 받고 도로 나왔다.
“뒷문이 열렸었다고? 구린내 네가 잘못 봤겠지.”
감찰소는 일종의 파출소 역할을 하던 장소였던 것 같다.
예전에는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을 잡아와서 벌을 주던 곳이라고 했다.
그러다 수사들이 점차 타락해 나쁜 짓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잡아와 제멋대로 처벌했기에 지금은 감찰소에 머물던 기산 온씨들을 모두 ‘죽.이.고.’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도록 술법을 써서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고 한다.
‘하여간 이 세계는 뭐든지 극단적이야. 감찰소에서 일하던 사람을 파면하는 게 아니라 전부 죽였다고?’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경지다.
거기다 몰살한 수사들을 제대로 장례를 치룬 것도 아니고 감찰소 내 너른 부지에 합장하여 개개인의 구별 없이 묻었다는 거다. 그게 벌써 십년도 더 지난 옛날 이야기란다.
“그래서 안에 뭐가 있을지 살펴본답시고 문 닫힌 건물의 담을 올라갔어?”
“소문만 무성한 산속보단 이쪽이 훨씬 더 그럴듯하잖아. 악령이 나와도 하나도 안 이상하지.”
언젠가 금릉의 부모님들을 한 번 만나 면담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아이를 잘못 키웠다.
공덕을 쌓겠다는 욕심도 이해를 하고, 본인 실력에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진 것도 다 이해하겠다.
10대니까.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담을 넘는 건 진짜 아니거든.
아무리 오냐오냐 자란 도련님이라서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이라고 해도 무단침입은 좀 그렇잖아. 얘는 진짜 어른이 확실히 잡아주지 않음 커서도 사고뭉치가 되고도 남겠어.
무엇보다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담을 넘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했을 수도 있다는 걸 얘는 모르나?
“지금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
“당연히 잘못했지. 금릉, 넌 조심성을 키울 필요가 있어.”
“뭐?! 조심성을 키워?!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어?!”
“그래, 너 잘났다. 그래도 조심성 없다는 말은 사실이야. 일단 내 말을 하나도 안 믿는 눈치니까 저 건물 안에 진짜로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지. 단, 가까이 있지 말고 멀리서 숨어서 보고 있어. 개가 소리 내지 않도록 잘 지키고. 그럼 잘 봐.”
그렇게 말하고 조심해가며 뒷문으로 다시 접근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무 장대로 문을 통통 건드렸다.
그리고 ‘나리, 잠시만 나와 보세요. 제가 의장지기 아래서 막일을 하는 심부름꾼인데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요.’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렸다.
‘이틀밖에 되지 않아 신선해요.’ 남이 들어도 뜻 모를 말도 덧붙였다.
그래도 인기척이 없자 장대로 다시 문을 통통 건드렸다.
“뭐야 너는. 무슨 헛수작인데.”
포기할까 싶을 즈음에 뒷문의 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한 뼘 정도 열렸다. 빙고.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