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59

※ 발악한다고 되는 일은 없음. 세상 이치는 다 그런 거임.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오늘날의 사법체제는 개인의 복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결투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던 황야의 서부시대는 진작에 끝나버려 사람 뱃가죽에 총알을 쑤셔 넣자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정의는 법으로써 이루어진다. 죄의 댓가를 묻는 행위는 배심원들에게 돌려야 한다. 당신은 옳고 그름을 명확히 판단할 수 있으나 태초에 선악과를 따먹은 인류를 불꽃의 검으로 징벌하고 에덴에서 내쫓은 대천사의 존재가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리스는 차분한 어조로 그 점을 설명하려 노력했다.
『쏘고 싶어요? 크게 맘 먹었으면 다른데 말고 머리를 조준해요, 데보라.』
차분하게 설명 어쩌고 좋아하네. 모니터링 중인 핀치가 기겁을 한 나머지 붙잡고 있는 마우스로 책상을 탕탕 내리친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미스터 리스! 지금 뭐라고 말한 겁니까. 도발하면 안 됩니다. 총을 내려놓으라고 해야죠!》
음...... 그러니까 얘기가 많이 복잡하다.

감정이 격앙된 여자의 눈동자는 좌우로 와들와들 떨렸다. 불길하게스리 팔도 떨렸다. 그 손아귀에 안전장치가 풀린 22구경 권총이 쥐어져 있으니 누구의 말마따나 도발하는 건 현명치 않은 짓이다. 여자는 방아쇠를 당기기 일보직전이었고, 그 최후의 결심에서 0.5g의 무게를 지닌 한줌의 망설임이 훼방을 놓고 있을 뿐이었다. 깃털보다 가벼울 그 망설임이 떨어져 나간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돌변할 것이다. 데보라와 마주하고 있는 사내들도 그 점은 잘 알고 있어서 엉거주춤 팔을 벌린 자세에서 불필요한 언행을 삼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프랭클린 경위는「대화」를 시도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흥분한 범인과 대치해본 경험이 많은 그는 침착함을 잃지 않으며 긍정적인 제스츄어를 해보였다. 교본대로의 움직임이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천천히 움직일 것, 그리고 협조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것, 동시에 그는 권총집에서 무기를 꺼내는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들 것인지를 계산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아니니까 꺼내자마자 빵! 이런 건 어림도 없다. 그래도 프랭클린의 사격 점수는 상위권이다. 100발을 쏘면 80발은 과녁에 맞았다.

나머지 빗나간 20발을 근심하며 새파란 눈을 깜빡였다.
『데보라.』
『입 다물어, 프랭클린.』
『데보라, 이러는 건 도움이 되지 않...』
『닥치라고 그랬지!』
『도대체 뭐가 문제야. 이러지 말고 말을 해. 그래야 우리가 자네를 도울 수 있어.』
『뭐? 당신이 나를 돕는다고?! 닥쳐! 닥치라고, 이 배반자!』
꽃과 풀을, 그리고 나무를, 녹음에 깃든 생명 전부를 온전히 불사르는 화마가 거기에 있었다. 마음속에 분노가 쌓여, 그런게 있다는 걸 깨닫기도 전에 어느새 차올라 선명한 모습을 갖췄다. 벌겋게 불타는 눈동자가 프랭클린에게 향했다. 우는 것도 같다. 아니면 웃고 있는 것도 같다. 일그러진 입술이 저주를 읊조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러고 싶어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야. 마침내 오늘이 왔어. 난 당신을 죽여 버릴 거야. 배반자는 죽어야 해. 그러니 지옥에나 가버려.』
『데보라!』
『그만둬. 친한 척 이름을 부르지 마! 역겹단 말이다!』

그녀가 콧물을 들이마시는 소리를 냈다. 총구가 둥근 궤적을 그리며 다시금 와들와들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본 프랭클린이 인상을 찌푸렸다. 감정의 동요 및 흥분이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는 강력계 형사다. 그녀의 몸짓은 어딘지 모르게 약에 쩔어 제정신을 놓은 건달을 닮아 있었다.
그는 날카롭게 질문했다.
『데보라.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약을 먹은 건가.』
『약?!』
그녀의 얼굴에 짙은 혐오감이 드러났다.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내가 마약 중독자처럼 보여?』
『자네가 직접 설명해보게. 그럼 맨 정신이라는 건가? 응? 맨 정신이냐고! 과거의 동료였던 사람에게 총을 겨누고 있잖는가! 죽이겠다 위협하면서. 그러니 다시 한 번 더 묻겠네. 데보라, 자네 약을 하나?』
『헛수작하지 마. 나는 맨 정신이야. 하! 그런 식으로 뒤집어씌우려고?! 그게 당신 특기인가 보지? 놀랍네. 에드거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것도 이런 식으로 했어?』
『지금 뭐라고?』
『에드거 디블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것도 이런 식으로 했느냐고 물었어!』
『그게 무슨 개소리야?!』

프랭클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혼란에 가득 찬 그의 얼굴은 어떻게 보자면 데보라 윙필드와 판박이처럼 닮아 있었다. 미궁에 갇혀 소의 머리를 가진 괴물과 마주쳤다. 겁이 나서 다리가 후들거린다. 하지만 무섭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왜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이유라도 알아야 괴물에게 잡혀 먹어도 덜 억울할 것 같은데 눈에 보이는 건 시커먼 총구밖에 없고, 표효하는 소 머리 (여자) 괴물은 이성을 잃었다.
『지금 디블 이야기를 한 건가. 디블 이야기냐고. 맙소사... 그가 배반자였잖아. 그가 정보를 누설했어. 그렇지 않아? 그가 뇌물을 받고 더 락의 체포 작전을 누설했어.』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며 마찬가지로 팔을 벌리고 선 동료 션을 돌아보았다.
『션?』
그리고 달각 소리를 내며 고장 난 회전목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렵게 침을 삼키는 션의 눈빛만 보고도 프랭클린은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간 건지 깨달았다.
퍼즐의 숨겨진 그림 - 은화 30개를 받고 예수를 판 가롯 유다는 누구인가 - 기가 차고 코가 차서 할 말을 잃었다.

『맙소사, 션... 자네.』
『프랭클린. 아니야. 그렇지 않아.』
『너였어? 디블이 아니고?!』
『프랭클린.』
『개자식, 너였어?! 너였냐고.』
『프랭클린. 진정해. 그러지 말게. 저년이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거야.』
『그럼 말해! 더 락에게 붙은 건 자네게 아니라고 맹세해봐! 내 눈을 똑바로 보며 아니라고 말해!』
『젠장, 프랭클린. 내, 내가 아니야. 진짜야. 신에게 맹세코 내가 아니야.』
『이 새끼! 지금 누구 앞에서 수작질을!』
프랭클린과 션은 누가 먼저라고 말하기 어려운 타이밍으로 서로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세 명의 사람. 그리고 세 개의 총자루.
이렇게 된 얘기다.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설득해야 합니다, 미스터 리스.》
『그게 쉬울 것 같습니까? 뱀이 자기 꼬리를 잡아먹는 꼴사나운 형상이라고요.』
데보라는 션을, 션은 프랭클린을, 그리고 프랭클린은 데보라를 조준하고 있다.
갈팡질팡하는 사람들 앞으로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보기도 전에 둥글게 선 세 사람 전부 총 맞아 죽게 생겼다.

마치 영혼을 노리는 저승사자처럼 등장한 리스는 기꺼이 훈수를 두는 걸 사양하지 않았다.
『노리려면 머리를 조준해요, 데보라.』
『뭣?!』
『충고하자면 그립은 두 손으로 쥐는 겁니다. 지금과 같아선 명중시키지 못 해요.』
『다, 당신 누구...』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날 봐요. 내가 하는 걸 자세히 봐요, 데보라. 사람을 죽이려면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리스는 군살 없는 간결한 동작으로 데보라 윙필드의 머리를 조준했다.
이제 네 명의 사람, 그리고 네 개의 총자루가 되었다.

Posted by 미야

2013/01/16 11:47 2013/01/1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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