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 of interest (49)

순차배열을 하자면 49번은 38번 글 다음입니다. 순서 엉켰음...


일라이어스는 자신의 식사를 직접 조리하는 걸 좋아한다.
전문 요리사처럼 솜씨가 있다거나, 엄선된 좋은 재료로 괜찮은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그의 주 식사 재료는 결혼 경험 전무의 독신 남성이 선택할만한 인스턴트 종류였고, 따라서 포장지에「전자렌지에 3분간 데워 드세요」설명이 적혀져 있는 것들이 다수였다.
하지만 그는 도마 위에 양파와 홍당무를 올려놓고 맵시 있게 썰 줄 알았으며, 냄비 위에 갖은 재료를 넣고 나무 주걱으로 휘젓는 일을 사랑했다. 간을 보고, 양념을 넣고, 고기에 후추를 뿌리고... 그리고 그는 그의 사랑해 마지않던 어머니 멀린 일라이어스가 찬장을 열고 순백의 접시를 꺼내는 광경을 상상했다.
이것은 그의 환타지.
손바닥으로 바람을 일으켜 코로 익어가는 감자의 향취를 들이마셨다.
속눈썹을 붙이고, 눈두덩이에 아이새도우를 바르고 아름답게 치장한 어머니는 얼룩 하나 없는 테이블 위로 나이프와 포크를 세팅한다. 그녀의 옷은 눈부시게 하얗다. 피로 얼룩지지 않았다. 그들은 식탁에 앉을 것이고, 일용할 양식을 주심에 신에게 감사 기도를 올린 뒤 맛있게 먹으리라.

『보스.』
부하의 부르는 목소리에 그의 표정이 굳었다.
이번에도 치즈를 너무 많이 넣은 걸까. 인스턴트 입맛인 만큼 그는 느끼하고 들쩍거리는 걸 좋아한다. 당연히 칼로리가 높다. 살이 찌는 건 물론이거니와 몸에 좋지 않다며 옆에서 타박한다. 그들이 여드름을 고민하던 소년이었던 시절에도
- 한때 같은 위탁 시설에서 자란 적이 있다. 8개월 17일 간이었다 - 탄산 음료를 먹지 못하게끔 형제들을 감시한 사내다. 심지어 몰래 콜라를 마시고 있던 여자 형제의 입에 순전히 토하게 만들기 위해 손가락을 넣었던 적도 있다. 소년은 통제광이었다.
일라이어스는 가스렌지의 화력을 약하게 줄이고 요리 중인 그릇에서부터 몸을 돌렸다.
『치즈 이야기는 아니었음 좋겠는데.』
푸른색 앞치마에 손을 비벼 닦으면서 투덜거렸다.
『나트륨 이야기도 좀 그렇고.』

얼굴에 길게 흉터가 난 사내가 미세하게 몸을 움찔 떨었다.
아, 일라이어스는 눈치 챘다. 그는 말하고 싶어 한다... 두목, 치즈는 더 먹으면 안 됩니다 - 그러나 모든 일에는 중요도에 따른 순서라는게 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음에 고통스러워하며 당장 보스에게 알려야 할 용건을 입에 올렸다.
『그들이 창고 문을 닫고 예의 게임을 시작했는데요.』
『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 10분 뒤에 문을 도로 땄답니다.』
일라이어스는 빙긋 웃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치즈-치즈 이러면서 고열에 시달리는 환자처럼 묘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부하가 재밌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어중간한 숫자로는 존을 제압하긴 어려울 거라고 짐작을 했지. 그래... 10분?』
흉터의 사내는 한층 더 기분이 나빠졌다.
그들이 판 함정을 존이 무사히 빠져나갔다는데 그의 보스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잘 했어요, 훌륭해요,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는군요, 기타등등. 부아가 치민다.
『오른팔은 다쳤다더군요.』
『쓸데없어. 그는 왼손잡이야.』
일라이어스가 싱크대 위에 올려놓은 라디오를 만지작거렸다. 사실 그는 음악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최신 유행 음악이 아닌, 박자가 느리게 흘러가는 오래된 노래들은 그럭저럭 들어줄 법하다 여겼다. 마침 라디오에서는 무디 블루스의「하얀 공단에 싸인 밤」이 흘러나왔다. 일라이어스는 질투에 가득차 입술을 질끈 다물고 있는 부하를 향해「이 밴드는 노래가 괜찮아. 그치?」라고 말했다.

『뒷정리가 지저분해졌어요, 두목.』
『예상했던 거잖나. 우리에 집어넣은 짐승은 난폭해지는 법이니까 원 없이 날뛰었겠지. 아무렴 어떤가. 죽고 다친 사람이 우리 가족도 아닌데 뭐. 정리할 적에 요긴히 사용하라고 5만 달러를 보내줬음 됐지.』
『그 5만 달러, 존의 고용주라는 자가 순식간에 공중으로 날렸다던데요.』
『그런 건 몰라. 나는 분명 뒷정리에 보태라고 돈을 보냈어.』
슬슬 하던 요리로 돌아가도 될까, 이러면서 일라이어스가 가스렌지 쪽을 가리켰다.
『이야기가 지겹군. 것보다 접시를 꺼내주지 않겠어? 넘버원. 식사를 같이 하자고.』
부탁에 흉터의 사내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뭐랄까. 마치 지상 최대의 미녀라도 쟁취했다는 식이었다. 콧대가 높아졌고, 가슴이 늠름해졌다.
『예, 보스.』
그것이 쥐약이 뿌려진 구운 감자라고 할지언정 그는 황송해하며 맛있게 먹을 것이다.

『존.』
가방을 든 핀치가 뒤뚱뒤뚱 다가왔다. 평소보다 더 비틀거리는 걸음이었다. 그리고 안색이 좋지 않았다.
『다쳤군요.』
리스는 별 것 아니라는 투로 상처를 감추었다. 그리고 기뻐하며 웃었다.
해롤드다. 그의 고용주다. 괴짜이고, 혼자 있기 좋아하고, 머리가 좋고, 희귀한 책을 수집하고, 비밀스럽고, 설탕 한 스푼을 넣은 녹차가 취향인, 그리고, 그리고, 정말, 정말, 많이 보고 싶었던 사람이다.
『해롤드. 오랜만입니다.』
『지금 그렇게 웃을 땝니까. 오른팔을 이리 내놓으세요.』
『보기에는 흉해도 상처는 그리 심하지 않습니다.』
『총알이 스치고 지나갔잖아요. 애처럼 굴지 말고, 빨리.』
그렇게 말한 핀치는 서류가방을 열고 의료용 붕대가 아닌 1달러 50센트짜리 다용도 닥트 테이프를 꺼냈다. 붕대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리스는 놀랐다. 동시에 누구에게서 저런 조언을 구했을지 매우 궁금해졌다. 의외로 닥트 테이프는 급히 출혈을 막는데 요긴히 사용된다. 붕대는 멸균처리가 되어 있다는 점이 우수할 뿐, 피를 흡수하는 재질이라는게 문제가 된다. 이물질과 병원균 침입을 막는데 효과적이겠으나 지혈은... 글쎄.

『제가 이곳에 있을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연방법을 위반하는 여러 행위를 저질러서요.』
테이프를 자르다 말고 핀치가 고개를 들어 리스와 시선을 마주쳤다.
『걸리면 가석방 없는 25년형은 받을 겁니다. 뭐, 그 점에 대하여 당신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니까요.』
『핀치.』
『후스코가 당신이 함정에 빠졌다며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핀치.』
『그러니까,.. 나는.』
『핀치.』
『미안합니다, 미스터 리스. 내 손이 많이 떨려서요.』
『진정해요. 나는 당신 앞에 무사히 있어요.』
리스는 팔을 뻗어 가냘프게 떨고 있는 핀치의 손을 붙잡았다.

Posted by 미야

2012/08/07 23:02 2012/08/0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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