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 of interest (47)

『일단 이 말부터 해두지. 승자는 50,000 달러를 가져가게 될 거요.』
불온한 압력을 받아 일그러지던 분위기가 꿈틀거리며 요동을 쳤다. 가파른 급경사의 벼랑 아래로 무너져 내리던 토사가 도랑을 만나 갈피를 못 잡고 몇 갈래로 퍼져 휩쓸려 내려가는 모양새였다. 난잡하기도 하거니와 한치 앞도 예상하기 어려웠다. 격류는 무거운 통나무를 수면 위로 들어 올려 교각의 가장자리를 쾅쾅 들이받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떠밀려 가게 만드는 것, 그것이 돈의 위력이었다.
『5만 달러?!』
여섯 자루의 권총을 보고 질겁을 하던 젊은이가 삽시간에 만개한 벚꽂이 되어 말을 더듬었다. 빨간색 립스틱을 바른 섹시한 여성을 찬미하듯 휘파람을 부는 자도 있었다.
존은 호기심을 드러내며 백발의 노인 쪽을 쳐다봤는데 이쪽은 거의 목이 졸렸다. 혼전임신한 딸이 집안의 저축한 돈을 몽땅 들고 라스베가스로 날랐다는 식이어서 가뜩이나 주름지고 멍한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꼴딱꼴딱 침 삼키는 소리만 들리니 조용해져서 좋군. 그럼 이쯤해서 게임 룰을 설명드려도 될까요?』
레게 머리가 썩은 과일에 탐닉하는 파리처럼 손바닥을 마주 비볐다.

『자, 자. 이번 게임은 배틀로얄 입니다. 참여하신 모든 분들에게 위험수당으로 기본 2,000 달러 팍팍 쏩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말 그대로 대박이 나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카운터는 빛나는 구슬 조명과 요술 커튼이 있는 무대로 올라와 세계적인 마술사를 소개하는 진행자처럼 어깨를 으쓱였다. 순간 박수라도 쳐야할 것 같은 충동이 일었다.
『살아남지 못 하면요.』
『정 무서우면 로그-오프하고 집으로 그냥 가던가.』
삐약 뺙뺙 이러고 암탉 울음소리를 흉내내던 그가 팔을 뻗어 출입구를 가리켰다. 무리 중 절반 가량이 그의 화려한 손동작을 따라 입구로 고개를 돌렸다.
『알거지가 되긴 하겠지만 몸에는 긁힌 자국 하나 안 생길 겁니다. 게임 난이도를 고려하여 이번 한 번만 서비스로 기브 업 기회를 드릴테니 포기하실 분은 포기하십쇼. 괜찮아요. 안 붙잡아요. 헤코지도 하지 않습니다. 나가실 입구는 저쪽입니다.』
『알거지...?』
『이보쇼, 선생. 당연한 거 아뇨. 병아리 치킨에겐 땡전 한 닢 없는 거예요.』

여섯 명의 남자들이 각각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서로를 훔쳐보며 치열하게 눈치를 살폈다.
최악의 경우 재수 옴 붙으면 죽게 된다. 과다 출혈로 저승 구경이 코앞임에도 병원 구경조차 못할 수 있다. 핸드폰을 사전에 압수당해 통신 수단도 없거니와 설령 외부로의 연락이 가능하다고 해도 범죄 현장으로 구급차를 부를 사람도 없다.
하지만 5만 달러는 대단히 유혹적이다. 어차피 인생은 한 방이라고 하지 않던가.
할 것이냐, 말 것이냐.
나이가 가장 어려 보이는 사내가 긴장감을 견디지 못하고 맹렬하게 엄지손톱을 씹어 먹기 시작했다.

『나는 포기하도록 하지.』
존은 홀가분하게 선언했다.
『그럼 남아서들 재밌게 놀아. 그럼 난 이만 가보겠네.』
마음의 동요라고는 요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담백함, 통신 판매업자의 권유 전화를 거절하는 식의 산뜻한 마무리는 모두를 펄쩍 뛰게 만들었다.
『어이, 형씨? 꼼짝 말고 거기 서! 가긴 어디를 가!』
『왜 인상 구기고 화를 내나. 기브 업 기회를 준다며. 그건 거짓말이었어?』

동요.
술렁거림.
존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상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음절을 강요하여 말했다.
『기브 업.』

두 명의 사내가 - 프랭키와 산발타였다 - 억누른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만 떠들고 펄떡 뒤돌아. 다른 사람에게는 기회를 줄 거야. 하지만 댁은 아니야.』
그들은 위협적인 몸짓을 보이며 존에게로 빠르게 접근했다. 두 명 모두 호주머니로 손을 넣고 있었다. 점퍼 주머니가 볼록하게 늘어진 모양새로 보아 안쪽으로 무겁고 커다란 걸 감추고 있는 건 확실했다. 존은 싸움을 원치 않는다는 우호의 동작 - 양팔을 가볍게 벌린 자세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이들 두 명 말고도 카운터가 턱을 앞으로 내민 채 다가왔다. 그의 키가 존보다 두 뼘 가까이 작았기에 싫든 좋든 올려다 보아야 하는 각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카운터 입장에선 내심 그게 불만인 듯했다. 그러니까 허리춤에 차고 있던 데저트 이글을 꺼내 눈앞에서 마구 흔들어대고 있는 것이리라. 전체 길이가 무려 45cm가 넘는 크기다. 존은 그 무식함에 혀를 찼다. 어쩌면 그는 음경이 작은 콤플렉스를 그런 식으로 극복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게임 룰 설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수다, 아저씨.』
그런다고 해봤자 그는 그 정도로 겁을 내지 않는다. 총구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심장 박동 수는 아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배틀로얄이라며. 하나가 살아남을 때까지 싸우라는 거 아니야?』
『맞아. 바로 그거야. 배틀로얄이라는 건 원래 그런 거지. 그런데 우리의 게임 룰은 조금 달라요. 혹시라도 저작권 어쩌고 그럴까봐 약간의 독창적인 변형이라는 걸 가미했거든. 듣고 보면 아주 재밌을 거야.』
다소 희극적인 몸집으로 그가 제자리에서 반 바퀴 빙글 돌았다.
존은 개의치 않고 계속 해보라는 눈짓을 해 보였다.

『여기 여섯 명의 출전자들이 널 쫒을 거다. 네놈은 맨 몸으로 달아나는 거야. 여기 이 사람들이 무장을 하고 널 죽이러 갈테니. 어때? 이제 좀 상황 파악이 되시나. 하나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반드시 하나가 죽어야 하는 게임이야. 꽤 괜찮은 아이디어지?』
존은 그다지 감명을 받은 눈치가 아니었다.
『흠... 그건 몹시 비겁한 행위 같은데.』
그의 주장에 카운터의 표정이 으스스하게 변했다. 목소리 톤도 올라갔다.
『비겁? 지금 비겁하다고 했어? 천만에! 비겁한 건 당신 쪽이지. 우리가 모를 줄 알았나. 이 잘난 정부 요원 나으리. 어째서 가석방된 범죄자로 위장하고 우리 같은 착실한 납세자를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는 건데. 원래는 이란이나 북한에 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면 연쇄 살인마를 잡거나, 테러리스트들을 혼내주던가!』
그가「다들 들어봐」큰 소리로 외치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놈 정체는 CIA야. 나라에서 녹을 받는 귀신이지. 존 프라이드라는 이름도 가명이야. 전부 가짜야. 그런데 이놈은 나라에서 잡으라는 알 카에다는 안 잡고 뭐가 그렇게 심심한지 미국 길거리에서 사람들 엉덩이를 재미삼아 쏘고 돌아다녀. 완전히 맛이 간 또라이야! 재수 없어! 』
45구경이 리스의 가슴을 툭툭 건드렸다.

리스는 은색으로 번쩍이는 금속을 쳐다보았다가 남자의 얼굴로 다시 차분하게 시선을 돌렸다.
『미안하지만 나는 재미로 사람 엉덩이를 쏘고 돌아다닌 적이 없어, 핀레이.』
15년 전에 지워버린 본명으로 불리우자 그는 소스라치게 깜짝 놀란 눈치였다.
『거, 거짓말.』
『진짠데.』
『어... 아니, 것보다 어떻게 내 이름을...』
도중에 말을 끊어먹었다.
『이름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현 CIA 요원이 아니고 은퇴한 전직 CIA 요원이야. 그건 차이가 있지. 사실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어.』
『뭐?』
『아까부터 놀라기만 하고 왜 그러나. 그건 그렇고 기왕 이렇게 된 거, 가르쳐주지 않겠나. 자네에게 돈을 주고 배틀로얄 어쩌고 계획을 세운 사람이 그 또라이 CIA 요원의 정체를 폭로하면서 이름을 뭐라고 하던가.』
『뭐?』
『이름.』
완전히 분위기에 휩쓸린 남자가 당황하여 말을 더듬거렸다.
『클라이너. 존슨 클라이너 라고..』
바로 리스의 눈빛이 변했다. 그리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성가시게 해준 건 이걸로 용서해주지. 알려줘서 고맙군, Thank's 일라이어스.
갈무리해둔 엄지손가락을 뻗어 상대의 왼쪽 눈에 쑤셔넣었다. 통조림을 따는 요령으로 손톱을 들추자 눈알이 거의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크아아아!』
기습의 원칙은 최소의 동작만으로 최대의 데미지를 입히는 것이다.

Posted by 미야

2012/08/03 21:59 2012/08/03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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