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 of interest (46)

핀치는 600번 서가로 달려갔다. 항목은 기술. 평소 리스가 무기류를 감춰놓는 곳이다.
『이런, 젠장!』
미닫이 장치가 달린 서가는 머리카락 하나 남김없이 깨끗하게 치워진 상태였다.
도서관을 통구이로 날려먹기 전에 진작에 정리를 해두어라 잔소리를 퍼붓던 사람이 이제와 왜 여기를 청소했느냐 화를 낸다는 건 넌센스다. 하지만 핀치는 발작적으로 손을 떨어대며 이성을 잃었고, 애꿎은 책들을 갈퀴로 헤집어 바닥으로 쓰러뜨리며 분노했다. 그리고 울부짖었다.
『수류탄 정도는 하나쯤 흘리고 갔었어야죠, 존!』
수류탄과 소음탄도 구분 못하면서 희망 하나는 야무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핀치는 어딘가로 깊숙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은 플랜-B 가방과 플랜-C 가방을 찾아 다시 몸을 일으켰다. Plan, Plan. 리스가 말장난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Plant(식물) 쪽을 찾아보자. 아닌가? 그럼 Planet(행성)일지도. 갈팡지팡 몸은 왼편으로, 얼굴은 오른편으로 향한 채 팔을 휘둘러댔다. 뽀얗고 굵은 먼지만 날리는게 아니고 서가에 꽂혀져 있던 책들이 발잔등을 향하여 찬바람 맞은 낙옆인양 떨어져 내렸다.
핀치는 등을 둥글게 만 엉거주춤한 자세로 흐느꼈다.
멍든 발가락이 쑤시고 아파 눈물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마침내 몸의 균형을 잃고 무너져내린 그는 책들을 끌어앉고 짐승처럼 헐떡거렸다.
무기.
그만의 무기.
찾아내야 했다.

이스트 사이드에 위치한 허름한 창고로 듬성듬성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남자들이 대여섯 명 나타나 자기네들끼리 떠들며 자물쇠를 뜯고 출입구를 닫거나 열었다.
때 아닌 인기척으로 분위기가 매우 어수선했다.
『이런 곳으로 전기가 들어올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아무렴 촛불 켜놓고 일을 하겠냐. 발전기 시설을 돌리고 있어. 아님 너무 어두워서 대낮에도 앞을 더듬거리며 움직여야 할 걸. 창문을 판자로 모두 막아놓았다고.』
『콜록, 먼지가 지독하군.』
『조심해. 유리 깨진 거 안 보여?!』

리스는 별 관심이 없다는 자세로 다른 각도에서 흉물 그 자체가 되어버린 건물의 외관을 보고 있었다. 40년대에는 군수품을 제조하는 - 아마도 군복이었던 듯하다 - 공장이었고, 전쟁 이후에는 의류업 관련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그래봤자 당시 미국의 기성품 의류는 거품 가격에 품질이 형편없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의류 산업은 몰락했다. 공장이 문을 닫은 이후 이곳은 오랫동안 물류보관 창고로 쓰였다. 땅값이 요동친 90년대 초반 재개발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좋았던 시절도 잠시였고 2001년 9.11 사태 이후 뉴욕시 재정 상황이 악화되자 언제 첫 삽질을 뜰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것 봐라, 이런 곳에 여자 브래지어가 다 있다. 어이! 브래지어가 있다고!』
그들 중 하나가 호들갑을 떨며 높은 소리로 웃었다.
『시끄럿! 촌뜨기. 여자 속옷 처음 보냐?!』
『누가 여기서 재미 좀 봤던 모양인데. 음? 그런 것 같지?』
리스는 틈틈이 눈동자를 움직여 그들의 움직임을 관찰했고, 대화내용, 그리고 소지품에 신경을 썼다.
이름은 전부 알고 있다. 프로필도 파악한 상태이다. 잘 알지 못했거나 부득이하게 놓쳤던 부분은 일라이어스가 친절하게도 막강한 자금과 인력을 들여 빠진 곳 전부를 메꿔주었다.
이들의 두목은 일명 라비니에라고 불리는 놈으로 전과 8범의 사기꾼이다. 전자상거래 위반으로 구속되었다가 재작년에 출소. 중고 노트북을 헐값에 판매한다고 해놓고 무거운 전화번호 광고책자를 발송하는 식의 사기를 잘 쳤다. 막연히 상상하던 마왕과는 거리가 멀다. 솔직히 실망했다.
FBI가 잡아간 사탄과의 관계? 두 사람은 이종 사촌이다. 어렸을 적에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자랐다고 하지만 생각만큼 사이가 썩 좋지는 않다. 3년 전 라비니에를 밀고한게 사탄이라는 말이 있다. 사탄의 여자를 라비니에가 건드려 관계가 틀어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속칭 카운터로 불리우는 돈 계산하는 놈과 그의 애견들은 라이커스 아일랜드 감옥 동기로 잡범들이다. 왼편에서부터 프랭키, 마크, 산발타, 크로우, 알버트, 웨슬리, 버트이고, 그리고 여기서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데상트라는 놈이 하나 더 있다. 데상트의 진짜 이름이 핸리 포드라는 건 일라이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는 프로그래머다. 음란물 사이트를 제작, 관리하는 일을 하다 인터넷 가짜 상거래 사기로 라비니에와 인연이 생긴 듯하다. 소액 결재를 유도하는 포르노 스팸 메일 발송이나 하던 놈이 출세했다고 일라이어스가 짜증을 부렸다. 좋지 않다. 리스는 음주운전이나 노상방뇨를 가져다 붙여도 상관없으니 핸리 포드를 서둘러 체포하라고 카터에게 일러뒀다. 일라이어스의 눈밖에 났다면 빨리 수감시키는 편이 좋다. 예전처럼 산 채로 못질해서 벽에 박아놓으면 떼어내기도 곤란하거니와 자칫하면 불구가 되어버린다.

슬슬 분위기를 타며 앞니에 싸구려 보석을 박은 카운터가 다가왔다. 리스는 그에게 준비한 돈 봉투를 내밀었다. 레게 머리는 이를 드러내며 천박하게 웃었고, 리스는 그 웃음에 반응하지 않았다.
『좀 웃어봐, 아저씨. 웃으면 복이 와요.』
『신경 꺼.』
『하여간 성격 나쁜 아저씨라니까. 알았소. 이번에도 자기 자신에게 거는 건가?』
그렇다 아니다 설명 없이 리스는 건너편 무리들을 향해 고갯짓을 해보였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뭔가 분위기가 다르군. 사람도 많고 시끄러워.』
『헤이~ 벌써 긴장한 거야? 이거 왜 이러시나. 긴장하면 실수한다고. 빵~! 빵빵!』
손가락으로 총을 쏘는 시늉을 하고 난 카운터는 다른 선수들을 향해 걸음을 돌렸다.
『이봐~ 여기를 주목하시라. 내가 누군지 알지? 돈 내놔, 돈!』

출전자들은 리스를 포함해서 일곱이었다. 둘은 나이가 어렸고, 하나는 너무 많았다. 노익장을 과시하기엔 선택한 방법이 최악이었다. 연금도 없이 은퇴한 마당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며 손바닥에 침을 뱉었겠지만 이편에선 잘 해보시라 격려도 할 수 없다. 흐린 돋보기를 쓰고 택시 운전대를 잡는게 차라리 나았으리라.
『어이, 언제 시작하는 거야.』
다수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정신 사납게 다리를 떨던 녀석이 피우던 담배를 아무렇게나 집어던지며 짜증을 부렸다.
『슬슬 배가 고파지고 있다고. 여기서 노닥거리며 시간 죽이고 싶진 않은데.』
이에 화답하듯 크로우와 웨슬리가 묵직해 보이는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카운터가 턱짓을 하자 웨슬리가 가방을 열어 그 내용물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했다.
안에는 근사하게 잘 빠진 권총이 한 가방에 세 자루씩 모두 여섯 개 들어가 있었다.
『어... 이런. 진짜 총이야?!』
나이 어린 쪽이 근심스럽게 질문했다.
『들었던 거랑 얘기가 좀 다른 거 아냐?』
그리고 모두가 의아하게 여기던 점을 지적했다.
『게다가 사람은 일곱인데 이건 또 왜 여섯이야. 셈이 틀린 건 아닐테고... 어이.』
갑자기 주변을 에워싼 공기가 불순해졌다.

Posted by 미야

2012/08/02 23:02 2012/08/0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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