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 of interest (24)

오늘의 격언, 당신의 보스를 화나게 만들지 말라.

핀치는 대단히 만족스러워하는 얼굴로 녹차를 마셨고, 리스는 그토록 원한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이것이 설탕 한 스푼의 위력이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리스는 황산화 효과가 뛰어나다는 해바라기유로 만들었다는 도넛을 가져왔다. 디알파토코페롤과 리놀레산, 비타민 A와 비타민 B 복합체가 풍부하다 광고하는 제품이었다. 그래봤자 기름져 인간의 심장에는 좋을 리가 없었으나 - 어쨌든 요점은 그의 보스가 도넛을 맛있게 한 입 베어 물었다는 것이고, 리스의 눈에는 그 행동이 화해의 제스츄어로 읽혀졌다.

『캐서린 그로보스는 골동품 판매를 겸한 작은 화랑을 운영하고 있더군요.』
NHERI(미국가정교육리서치연구소) 조사원으로 분장하는 건 결국 핀치의 몫으로 돌아갔다.
싸구려 넥타이를 걸쳐봤자 존의 외모는 학교니 가정교육이니 하는 것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검댕으로 눈가를 칠한 사자가 자신의 정체는 대나무 잎을 먹는 팬더라고 주장하는 것과 흡사했다.
반면 핀치는 두꺼운 안경 탓인지「교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 별명을 부르는 사람이 라이오넬 후스코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게 과연 별명 맞느냐 헷갈리는 부분이 아주 없지는 않겠으나... 아무튼, 팬더라고 주장하는 사자보다는 사정이 나아서 서류 케이스를 들고 갈색 양복을 걸치자 멀리서 학교 종소리가 들려왔다.

『교양 있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핀치는 마치 행복한 꿈을 꾸는 듯 풀어진 표정을 지었다.
상대 여자가 미인이었나? 아니면 먹고 있는 (고열량) 스트로베리 크림 도넛이 마음에 들어서? 리스는 양쪽 가설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음, 이거 정말 맛있는데요.』
후자였군, 리스는 짐짓 시선을 내리깔았다.

『다만 앤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했습니다. 법적 책임을 진 보호자라는 인식은 강했으나 애정으로 대하며 키워야 하는 조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성적 평가라던가, 교과 과정이라던가, PSAT 시험준비 등등에 대해선 1시간이든 2시간이든 말할 자세가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앤의 최근 관심이 무엇인지, 교우 관계는 어떠한지를 물었더니「조카의 사생활은 당신과 관계 없어요」식으로 철저하게 입을 다물더군요. 화랑 주인이라는 건 위장이고 사실은 변호사일 거라고 착각까지 했을 정도입니다. 아무튼...』
불편한 침묵이 잠시 이어졌다.
『제출된 학력 평가는 매우 우수합니다.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핀치와 리스는 나란히 서서 사진 한 장 붙지 않은 채 텅 빈 보드판을 응시했다.
『흠... 혹시 당신이 만든 기계가 더위를 먹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핀치.』
『기계가 오작동을 했을 거라고요?』
『아니면「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와 학교에 보내세요」라는게 기계의 의도일 수도 있겠군요. 제가 관찰한 앤은 공황장애가 의심될 정도로 외출을 아예 하지 않았어요. 사흘 동안 단 한 번도 현관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으니까요. 덕분에 저도 집안에 들어가 볼 기회 자체가 없었고... 열화상 카메라만 가지고는 알아낼 수 있는게 거의 없었어요. 바로 그 점이 문제일 겁니다. 10대 청소년이 외부와 단절된 채 집안에만 죽치고 있으니 기계가 신호를 보낸 거예요.』
핀치는 눈을 감은 채 검지를 까딱까딱 흔들어댔다. 그럴 리 없잖아요, 잠깐 기다려봐요, 이건 매우 재미없는 농담이었어요, 기타등등의 의미가 함축된 동작이었다.
『미스터 리스. 기계는 직접적인 위협만을 감지합니다. 기계가 앤의 번호를 보내왔다면 조만간 그녀에게 문제가 생긴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럼 처음으로 돌아가야겠군요, 기계가 더위를 먹은 겁니다.』

말은 그렇게 했으나 리스는 해가 지면 다시 앤을 관찰하러 가겠다고 말했다.
『미안하지만 핀치, 이번엔 도움이 필요합니다.』
『알겠어요. 밖에서 무선 장비로 앤이 집에서 사용하는 컴퓨터를 해킹해달라는 거죠?』
『간단한 샌드위치와 장비, 그리고 빈 물통을 휴대하고 21시에 제쪽으로 합류해 주세요.』
『그렇게 하죠.』
그렇게 대답한 핀치는 나머지 스트로베리 크림 도넛을 전부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Posted by 미야

2012/06/15 14:39 2012/06/1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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