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fanfic] Summertime

가까운 곳에 위치한 - 그렇다고 해도 평생 찾아가본 일은 없다. 처음부터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어쩌면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게 아닌 건지도 모른다 - 화물용 비행기 이착륙장 탓에 해리스 노블랜드의 온도는 타 지역보다 섭씨 3도가 더 높다.
『얼레. 무더위가 왜 비행기 탓인가?』
『비행기가 날아가는 소리만 들어도 땀이 차니까.』
하늘을 올려다보면 구름이 회색의 양철 뚜껑으로 보일 정도다.
지긋지긋한 열기. 아스팔트는 지글지글.
등팍이 젖어 둥근 소금의 얼룩을 그리고 있다.
나 같은 노인네에게 무더위는 건강에 좋지 않다. 심장이 엇박자로 뛰어 현기증이 난다. 불어오는 바람도 땀을 식혀주지 않는다. 되려 피부를 활활 핥는 열기에 짜증이 치솟는다.

『자네는 뭐든지 비행기 탓으로 돌리는군. 잘 해보라카이. 마누라 뱃살이 불어난 것도 다 뱅기 잘못이지.』
『뚱보는 자네 마누라잖나. 내 마누라는 날씬해! 그리고 미인이야!』
『망할 콩깍지... 그 나이가 되어서... 카아악, 퉤.』
더러워 죽겠다며 아니꼬운 시선으로 날 쳐다보는 이쪽은 친구인 제이크다.
잠시 소개하자면 일주일에 단 한 번도 샤워를 하지 않는 추악한 게으름뱅이에다 맥주를 너무 마셔 코가 빨간 작자다. 입냄새 지독하고, 머리는 벗겨졌다.
『그래, 내 머리는 인디언이 기념품 만든다고 홀랑 벗겨갔다. 어쩔겨.』
기분이 상했다는 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지만 그렇다고 해도 제이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팔순이 내일 모레인 우리 나이에 신속한 반응 - 이를테면 주먹을 쥐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는 동작은 무리다. 몸이 안 따라주는 걸 억지를 부렸다간 동네 돌팔이 의사인 팔머 군에게서 무릎 관절에 대한 일장 연설을 들어야 한다.
깡마른 몸집의 팔머를 나는 대단히 싫어한다. 술을 끊으라고 하지를 않나, 담배를 줄이라고 하지를 않나... 딱 잘라 말해 인생 사는 맛을 모르는 녀석이다.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폐암 무섭다 담배를 끊나.

『폐암은 아니지만... 거시기가 암이라며.』
아까까지도 입을 삐죽거리던 노인네가 표정을 바꾸더니 조심스럽게 참견을 해왔다.
뻣뻣한 다리를 주무르던 나는 콧방귀만 뀌었다.
『걱정일랑 치우게, 제이크. 내 묘비에「프랭크는 전립선암으로 죽었다, 얼레리꼴레리~」라고 적진 않을테니.』
푸념조의 내 말에 친구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래? 의사가 좋은 얘기를 해줬나보군. 수술을 하면 괜찮아진다고 하던가?』
『알게 뭐람. 팔머가 하는 말의 절반도 제대로 알아듣질 못했는데. 골치가 아파 한쪽 귀로 흘려들었네. 나중엔 눈 뜨고 한참 졸았던 것 같기도 하고... 어허! 그렇게 노려보지 말게. 치료를 포기한 건 아니니까. 다만 이 나이에 악착같이 덤비는게 좀 그래서 그래. 치료비 문제도 그렇고...』
『...』
자기 일처럼 좋아하던 제이크는 어느새 쌍심지를 곤두세운 채 이쪽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 마음을 안다. 화가 났다라기 보다는 속상한 것이리라.
그래서 일부러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우리는 곧 떠나간다. 누구도 그걸 막을 수 없다. 육신은 병들고, 정신은 쇠락해간다. 다리 하나는 이미 무덤 속에 집어넣었다. 저승사자의 낫질 소리가 가깝게 들려온다. 쉭쉭, 이러고 무거운 뭔가를 허공에 대고 휘둘러대는...

『소리는 나에게도 들리는데 자네가 표현한 것과는 조금 틀린데.』
『으음...』
정확하게는 어린 소년이 양손에 운동화를 쥐고 걸음아 나 살려라 달아나는 소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호기심이 발동한 제이크가 목을 길게 빼고 주변을 탐색했다.
『무슨 일이지.』
그와 거의 동시에 호리호리한 몸집의 꺽다리 소년이 우리집 앞을 광속의 스피드로 스쳐 지나갔다.
그보다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선「거기 안 서, 샘 윈체스터?!」협박하는 외침이 들려왔고.

눈빛만으로 묻고 있는 제이크를 위해 짧게 대꾸했다.
『오드리네 집에 월세를 얻어 살고 있는 아이들일세. 아까 달아난 놈이 차남. 목청이 찢어져라 고함을 질러댄 쪽이 장남.』
오드리 할망네 집에 잠시 신세를 지고 있는 그들 식구들에 대해선 제이크도 잘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낯선 동네로 이사를 와서 처음으로 이웃과 악수를 나누는 자리에서「댁의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거나 전등이 기이하게 깜빡거리는 일은 없나요」질문을 던지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

『짐이라고 했던가?』
『아니. 그 남자의 이름은 존일세.』
『짐이 아니라 존이었나. 아무튼 그 존이라는 남자는 직업이 수리공인 모양이야. 저번엔 캐서린 여사의 집을 방문해선 똑같이 그 질문을 했다더군.』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하면 망가진 수도관을 살펴준다는 겐가?』
『배관보다는 전기 쪽이 전공인지도 몰라. 삑삑 소리가 나는 작은 라디오 같은 걸 들고 다니는 걸 봤거든. 계기판이 달린 작은 장치로 여기저기를 살피더라고. 빨간 단추가 반짝거리는데 그게 뭐요 - 하고 물어보니까 쑥스럽다는 표정으로 나쁜 게 없는지 찾아보고 있다고 대답하던 걸?』
『옳커니! 마침 잘 되었군! 지하실에 누전이 되는 곳이 있는데 그 남자가 고칠 수 있을까?』
『아마도.』

고칠 수 있나, 없나는 직접 물어보면 된다. 때마침 씩씩거리며 언덕을 내려온 장남을 불러세웠다.
『이보게, 젊은이.』
『예, 할아버지!』
이 친구는 싹싹하니 성격이 좋다. 맨발로 달아난 동생의 다리몽둥이를 분질러야겠다는 고결한 의무는 잠시 접고 구린내 나는 영감탱이들이 부르는 소리에 반응하여 가까이 다가왔다.
『왜 그러십니까?』
그거 참 예의도 바르지. 제이크와 나는 흐믓하게 미소를 지었다.
『자네 아버지가 수리공이지? 그럼 누전되는 곳을 고칠...』
『아까 보니 샘이 빠르게 뛰어가던데 뭔 짓을 저질렀나?』
제이크의 말을 자르고 도중에 끼어들었다. 하여간 이놈의 못 말릴 호기심.

다시 분통이 터지는 모양이었다. 장남의 목소리가 끝도 없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녀석이 나 몰래 내 소지품을 뒤졌어요! 만지기만 하면 괜찮은데 그걸 망가뜨렸다고요!』
『저런. 뭘 망가뜨렸는데?』
『아시아 쭉쭉빵빵..........』흥분해서 솔직하게 불었다가 부끄러움에 뺨이 붉어졌다.『잡지요!』덧붙여 울분을 토했다.『차, 창간호라서 여지껏 기념으로 가지고 있던 거였는데!』
제이크와 나는 서로 눈짓을 나눴다. 그런 걸 누가 속아. 창간호는 핑계지.
『귀하다는 것도 모르고!』
딘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걸 하필이면 냄비받침으로...!!』
청년을 손가락 마디를 뚝뚝 소리내어 꺾었다.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샘 윈체스터!』

지하실 누전은 까마득히 잊어먹었다. 제이크는 응응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을 보니 발이 엄청 빠르던데 이렇게 여유를 부려서 어디 잡을 수 있겠나.』
『물론 잡을 수 있죠!』
딘은 주머니에서 자동차 열쇠를 꺼내 이것 보라며 눈앞에서 흔들어댔다.
제이크와 나는 다시 의미심장하게 시선을 주고받았다.
뛰어서 달아난 사람을 자동차로 따라가 잡겠다니... 이거 너무 불공평하다.

그렇게 생각한 건 동생 쪽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애비뉴 거리까지 죽어라 뜀박질하던 소년이 돌연 방향을 바꿔 엔진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속력을 내던 자동차가 덕분에 옆으로 삐긋했다.
달아난 동생을 잡으려는게 목적이지 치어 죽이려는게 목적은 아니었으니까.
식은땀을 뚝뚝 흘리며 차를 세운 딘이 운전석에서 내렸다.

『임마! 무슨 짓이야! 사고 날 뻔 했잖아!』
『형! 멋지다! 임팔라잖아! 아빠가 형 혼자서 이걸 운전해도 된다고 허락하셨어?!』
멋지다고 하는데 이마를 찡그리고 있을 수 없다. 언제 화산이 폭발했느냐며 표정을 바꾼 딘이 실실 웃음을 쪼갰다. 뭐야... 실망스러운데. 제삿날로 만든다며.
『허락하셨으니까 이렇게 열쇠를 나에게 맡기셨지!』
『정말 근사하다!』
『엣헴!』
『앞으로 계속 형이 운전하는 거야?』
『아빠가 일 끝내고 돌아오시기 전까지만. 어때. 형이랑 같이 드라이브 할까?』
냄비받침이 되어버린 아시아 쭉쭉빵빵은 잊혀졌다.
흥분한 동생을 조수석에 태운 장남은 신나서 사라져버렸다.

『형제들끼리 사이가 좋네.』
『사이가 좋지.』
『그래도 나는 처음으로 내 차를 샀을 적에 우리 마누라를 태웠는데.』
『그랬던가.』
『그랬네.』
『자네는 누굴 태웠는지 기억하나?』
『글세. 그게 누구였더라. 이딴 똥차를 왜 샀느냐며 구박했던 인간이었는데.』
제이크가 발끈했다.
『똥차라고 구박하지 않았네! 제 가격보다 바가지를 썼다고만 했지!』
알게 뭐람. 웃음을 터뜨린 나는 머리를 흔들어대며 구름이 낮게 깔린 하늘을 쳐다보았다.

Posted by 미야

2009/06/28 22:09 2009/06/28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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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렌드 2009/06/29 09:04 # M/D Reply Permalink

    이건 뭐... 새미, 순진한 건가요...계획적인 건가요....( '')

  2. T&J 2009/06/29 10:11 # M/D Reply Permalink

    미야님, 소설 오랜만이네요~~제삼자의 눈으로 보는 샘딘인가요?...ㅋㅋㅋㅋ미야님, 자주자주 뵙고 싶다는...ㅠㅡㅠ

  3. 나마리에 2009/06/29 10:24 # M/D Reply Permalink

    새미 약았어요. ㅋㅋ
    홀라당 넘어가는 딘 형님. 어휴 귀여워요. >.</

  4. 달비 2009/06/29 22:14 # M/D Reply Permalink

    죽어라 달음박질치는 어린 샘의 모습이나 씩닥거리면서 이를 빠득빠득 갈 딘의 모습.. 아 왜이렇게 좋은거죠^^;; 귀여워요 ㅠㅠ

  5. 쥬레스 2009/07/07 21:20 # M/D Reply Permalink

    와 ㅋㅋ 이 형제들 왤케 귀엽나요ㅠㅠㅠ

    샘이 멋지다면서 감탄하니까

    샘이 잡지 태워먹은건 어느새 잊고

    형이랑 같이 드라이브나 할까라니ㅋㅋㅋㅋㅋㅋ

  6. ameretat 2009/07/09 20:24 # M/D Reply Permalink

    귀엽군요ㅋㅋㅋ 같이 드라이브ㅋㅋㅋㅋㅋ 창간호에 대한 사랑은 역시나 동생보다 못했던 거구나, 딘.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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