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조사] 풀피리 10

제2장 혼백, 망령, 그리고 엉망진창

※ 오리캐×설양(아님!) BL 호러물입니다. 잔혹한 묘사 있습니다.
묵향동후 작가의 표절 논란, 드라마 진정령의 동북공정 논란은 일단 접어둡니다.
어쨌거나 포스타입에는 못 올리겠군.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남망기가 ‘위영!’ 이름 부르는 걸 너무 많이 들은 탓에 설양의 이름이 설영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설양이 꺼내든 은침은 길이가 무려 한 뼘이 넘었고 굵기는 짧은 젓가락 정도 되었다.
은색의 몸체에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호가 빼곡히 새겨져 있었고, 설양의 손바닥 위가 아니라 방물장수 손바닥 위에 있었으면 여인의 머리꽂이 장식이라 해도 그런가보다 싶을 정도의 크기였다.
그런데 내가 저걸 왜 머리장식이 아닌 은침으로 알아봤느냐 하면...
침의 끝자락에 검붉은 얼룩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저게 핏자국이라는 데 내가 일만 금을 건다.

“금란대에서 다섯 개 정도는 챙겨왔다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하나밖에 안 보이지 뭐야. 한참을 뒤엎어도 이거 하나밖에 안 나오더라. 이게 불행인지 행운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벌벌 떨고 있는 내게 그가 은침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눈 크게 뜨고 잘 보라는 의미였다.

“궁금해? 궁금하겠지. 이건 어떻게 쓰는 물건이냐 하면...”
설양의 손에 영력이 실리면서 희게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렇게 영력을 띄운 손에 힘을 주더니 내 오른쪽 귀 바로 윗부분 지점으로 깊게 찔러 넣었다.
“이렇게 하는 물건이란다.”
찌르는 척이 아니라 진짜로 끝까지 박아 넣었다.
두개골에 구멍을 내고 뇌의 깊은 안쪽까지 닿은 다음에야 누르는 걸 멈췄다.
흡혈귀를 죽이기 위해 정수리에 정은으로 만든 대못을 박는다더니 더도 말고 딱 그거였다.

“아냐, 아냐. 안 죽어. 그러니 그런 얼굴 하지 마. 이건 의식을 제어하는 도구야.”
부르르 경련하며 주저앉으려는 나를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우면서 설양이 말했다.
“게다가 원래는 세 개를 사용해야 하는 물건인데 하나밖에 쓰질 않아 그냥 숙취처럼 느껴질 거야. 워, 그만 침 흘리고... 찡그리지 말라니까. 가뜩이나 못생긴 얼굴이 더 개구리처럼 되어버리잖아.
익숙해지면 괜찮아. 진짜야. 속이는 거 아니라니까. 금린대에서 은침을 더 가져와 여기랑 여기, 추가로 박아주면 아픈 것도 모르고 아무 생각이 안 날 거야. 지금은... 음. 약간 불편할 수는 있겠다.”

이게 불편하다고 말할 수준이겠냐. 머리에 젓가락이 들어갔는데!
소주를 앉은 자리에서 안주도 없이 퍼 마신 것 같았다. 냄비뚜껑이 심벌즈처럼 쾅쾅 쳤고, 땅바닥이 물결쳤고, 눈앞이 빙빙 돌았다. 독이 온몸에 퍼지며 쥐어짜는 고통이 엄습했다.
이번에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울음을 참을 수 없어 입으로 엉엉 소리를 내며 설양의 바짓단을 붙잡고 매달렸다.
머리에 박은 침을 빼달라고, 제발 용서해달라고, 앞으로 발가락도 핥겠다며 애걸했다.
주인님이라고 부르겠다고, 앞으로 걸레가 되겠다고 맹세도 했다. 간이고 쓸개고 다 줄 테니 이 고통을 멈춰달라고 빌었다. 뇌가 이물질에 눌려 찌그러지고 있었다.

“아걸. 나는 기회는 한 번 뿐이라고 말했어.”
설양이 휘파람을 불자 주시가 몸종처럼 빠르게 달려 나왔다.
나는 초점이 엇나가는 눈으로 그들이 하는 짓을 지켜보았다. 주시들은 벌레 먹은 염복을 입고 있었는데 옷깃에 나무 부스러기가 잔뜩 붙어 있었다. 아무래도 나무로 만든 관을 부수고 나온 듯했다.
나와는 달리 죽은 지 오래되었던지 움직임이 뻣뻣했다. 환자 부축이라도 하는 모양새로 내 양팔을 단단히 잡았을 적에 높이가 맞지 않아 내 두 다리가 허공에 둥둥 떴다.

“벌 받을 시간이야.”
그렇게 말한 설양은 다시 풀피리를 입에 물었다.
쇠가 긁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났고, 주변을 에워싼 주시들이 출동을 명받은 군졸들처럼 일제히 방향을 틀었다.

옛날 옛적, 배가 고픈 한 어린아이가 있었어요.
그 소년에게 어느 귀한 집 나리가 손짓했어요.
아이야, 아이야. 맛있는 간식이 먹고 싶지 않니? 내 말을 들어주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단다.
배고픈 아이가 달려가 ‘시키는 대로 할 게요, 나리’ 씩씩하게 외쳤어요.
그럼 이 편지를 건너편 주점에 배달을 해다오. 아주 쉬운 일이지.

편지를 건네받은 술집 주인이 아이의 뺨을 때렸어요.
이런 경거망동을 보았나. 욕설을 적어 내게 읽으라 하다니.
입술이 터진 아이는 깜짝 놀라 외쳤어요. 편지의 내용은 난 몰라요. 글을 몰라요. 약속한 사탕은요?
술집 주인이 사탕보다 더 좋은 걸 맛보게 해주겠다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어요.
머리를 때려라, 어깨를 짓눌러라, 배를 후려쳐라, 다리를 꺾어라.
밟아라, 밟아. 어떠냐, 어떠하냐. 맛이 근사하지? 아주 맛있을 게다.


설양이 흥얼거리는 제멋대로의 곡조에 맞춰 주시들이 쿵쿵 뛰었다.
주시들의 뒤로는 녹색으로 빛나는 귀혼불이 병풍처럼 둥둥 떠서 공중을 배회했다. 귀혼불은 다시 요괴를 불러냈고, 형체가 불명확한 잡귀들은 눈더미처럼 굴러 저마다 크기를 키워갔다.
머리를 산발한 처녀귀신, 피부가 파란 청귀, 머리에 뿔이 돋은 사영귀, 십악불사의 여귀사신이 소란을 떨며 돌아다니는 백귀야행이었다.
그 행렬의 맨 앞줄에 양팔을 붙잡혀 둥실둥실 끌려가는 내가 있었고, 악신들이 키득키득 소리 내며 뒤를 따랐다.
 
“어디로... 지금. 설 공자. 가는 겁니까.”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설양은 은침이 박힌 머리부위를 꾹꾹 눌렀다. 그것도 화분에 식물을 옮겨 심고 흙을 다지는 식으로 야무지게 눌렀다.
“어디라고 말해준들, 정신이 흐릿할 텐데 기억이나 할 수 있겠어?”
“새... 풀어... 끼. 야. 그만. 말할 때.”
“응? 지금 뭐라고?”
좋게 말할 때 풀라고.
입 밖으로 제대로 된 문장이 나오지 않아 유감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내 몸뚱이는 대궐 같은 집 청당 한복판에 내던져졌다.
편돌에 뺨을 대고 자빠진 상태로 올려다보니 커다란 마당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어 있었다. 그들 중 다섯은 차고 있던 검집에서 이미 검을 뽑아든 상태였다. 밖이 소란스러워 상황을 살피러 나왔다가 떼를 지어 몰려온 악신잡기를 보고 혼비백산한 눈치였다.
검을 들었어도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않은 자들이었다. 뿌옇게 흐려진 옹이눈으로 보기에도 자세가 초보 티를 벗지 못했다. 검법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고 평소 구색만 겨우 갖추고 창고지기나 했을 사람들이었다.
“가, 가까이 오지 마! 가까이 오지 말라고!”
그러니 저런 말을 하며 주춤거려도 다 이해를 해줘야만 했다.

“웬 놈이냐!”
그들 중 가장 풍채가 좋아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지붕 기왓장 꼭대기에 올라탄 설양을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평소 장부를 정리하고 주판만 만지던 사람이었는지 이 자의 손에는 검이 쥐어져 있지 않았다.
“당장 내려와라.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행패를 부리는 거냐. 여기가 약양 상씨 가문의 저택임을 모르는 거냐?!”
“잘 알고 찾아온 거니 걱정 붙들어 매쇼.”
“이런 시건방진! 어느 가문의 수행자인데 이리도 무례하게 구는가!”
“미안, 미안. 내가 고아로 자란 잡놈이라 예의가 없어.”

뒷짐을 지고 자세를 달리한 설양이 돌연 팔을 길게 뻗어 날벌레를 잡아채는 동작을 해보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시각, 그 장소에서 설양이 파리를 잡을 리가 없었다.
지척에서 무거운 솥뚜껑이 뜨거운 열을 이기지 못하고 갈라지는 식의 굉음이 났고, 순간 풍채가 좋아 보이던 사내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겨, 결계를... 가문을 보호하는 진법을 부수다니. 네 놈 지금 무슨 짓을!”
눈을 뜰 수 없는 심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온 집안의 문과 창문이 모두 활짝 열렸다. 자물쇠로 단단히 걸어 잠갔던 창고의 문도, 내당의 창문도, 하나도 빠짐없이 비명을 지르며 젖혀졌다.
청당에 모여 있던 가솔들이 에구머니 비명을 지르며 눈 감은 채 도망쳤다.
그 모습을 비웃던 설양이 이번에는 잡았던 날벌레를 도로 놓아주는 동작을 했다.
그러자 큰 바위가 땅에 떨어지는 진동이 울려 퍼지면서 함께 일시에 모든 창과 문이 굳게 닫혔다.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던 가솔들도 저마다 움직임을 멈췄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바보가 아닌 이상 눈치 챌 수 있었다.

“일어나라, 내 귀장군.”
설양의 명령에 엎드려 누운 자세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명령이다. 저들을 전부 죽여.”
“......안.”
“그거 참 고집스럽네.”

범상치 않은 검은색 아지랑이가 발 아래자락서부터 모락모락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니, 안개라고 하기엔 미세한 벌레 같다는 느낌이었다. 크기가 아주 작아 현미경으로 보아야 그 모양새가 드러나는 흉측한 벌레... 본능적으로 꺼려졌고, 소름끼쳤고, 그렇기에 익숙한... 익숙하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방금 ‘익숙하다’ 는 생각을 했나?
수상한 검은 안개가 허리를 타고 올라와 가슴 근처까지 닿았다. 벌레? 왜 나는 이것을 벌레라고 여기는 거지? 수십, 수천만의 더듬이가 갈작갈작 움직이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봉지에 들어간 과자 부스러기가 내는 소음과 흡사한... 고개를 흔들었다. 머리에 박힌 은침 때문에 제대로 이미지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흙속에 내가 있다. 땅속에 누워있다. 나는 정말 작은 아이다.
‘음철! 음철을 찾아!!’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검들이 충돌하며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죽여라~!! 전부 죽여!’
피투성이가 된 검을 휘두르며 그들이 외쳤다.

음철. 검은 쇠. 어둠 속에서 제멋대로 흔들리며 쉬익, 쉬익 뱀처럼 구는 것.
절대로 들키면 안 돼. 숨어야 해.
어머니가 나를 살리고자 흙속에 파묻었다.
소매 붉은 자들이 나를 죽이고자 흙속에서 파내었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입을 헤 벌렸다.
나는 누구지. 여긴 어디지. 저들은 뭘 원하는 거지.
이건 모두 꿈인가. 그거 참 빌어먹을 꿈이네.

시야가 좁아지며 곧바로 제어력을 잃었다.

Posted by 미야

2021/10/28 14:20 2021/10/2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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