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조사] 풀피리 12

제2장 혼백, 망령, 그리고 엉망진창

※ 오리캐×설양(그럴 리가!) BL 호러물입니다.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드라마와 소설의 사건 흐름이 다른 관계로 이 글의 동선 또한 꼬여 있습니다.


머리에 박힌 은침 때문이다.
과거와 현실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이면서 나는 일종의 정신착란을 일으켰다.

이곳은 내가 살던 원룸이고, 여기는 영화 속 한 장면이다.
내 이름은 비렁뱅이라는 뜻의 걸람이고, 배추를 배달하던 고아 소년이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셔서 다섯 살 터울 위의 누나가 거의 날 키우다시피 했다. 사진 속 어머니와 누나는 친자매처럼 닮아 있었다. 아버지는 ‘너도 네 엄마를 닮았으면 좋았으련만. 못생긴 날 닮아 인기가 없겠구나.’ 한탄하셨다. 그래도 코는 엄마를 닮았다. 사진으로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그 사실에 만족했다.

어머니 품에 안겨 본 기억은 없다. 그럼 이 어머니는 누구일까.
창과 칼을 든 사병에게 쫓기던 어머니는 날 보호하기 위해 기혈을 눌러 반 가사상태에 빠진 나를 흙속에 나를 파묻었다. 한 시진이 지나면 경직은 저절로 풀릴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전에 돌아와 흙에서 다시 꺼내줄 거라고도 하셨다.
거짓말이었다. 나는 숨이 막혀 거의 죽을 뻔했고, 어쩌면 죽었던 것도 같다.
가까스로 밖으로 나왔을 적에 코와 입속에서 흙이 쏟아졌다.
눈물을 닦고 주변을 둘러보자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움직이는 건 나 혼자 뿐이었다.

‘예전 거래처로 물건을 전부 보내면 어쩌자는 거야!’ 화가 잔뜩 난 부장님이 호통을 쳤다.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아 죄송하다 연거푸 말하는 중에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이틀 전부터 몸살 증상을 보이더니 갑자기 열이 치솟았다.
‘환자분, 제 말 들리세요?’ 증상 발현 후 정확히 사흘 뒤 의식이 흐려졌다.
증세가 빠르게 악화되어 개인보호구를 착용하고 어렵게 문병을 온 누나도 못 알아보았다.
지금도 이렇게 숨 막혀 하는 건 산소호흡기를 주렁주렁 달고 있어서다.

아니다. 여기는 내가 입원해 있던 병원이 아니다. 정신 차려.
나는 땅속에 파묻혔다. 어머니가 날 흙속에 숨겼다.
어머니, 그럼 누나는?
제발 그 지긋지긋한 담배 좀 끊으라고 잔소리하던 우리 누나는?
누나가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숨이 끊어진 내 몸뚱이는 무조건 화장된다. 흙에 묻을 육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럼 땅에 파묻힌 내 작은 몸은 누구의 것이지?

누군가 내 뺨을 세게 쳤다.
신음하며 눈을 뜨자 나는 가로로 동강난 장명등에 체중을 기대어 앉아 있었다.
치미는 불쾌감에 피 섞인 침부터 뱉자 입속 틈새에 껴있던 붉은 살덩이가 같이 빨려 나왔다.
글쎄다. 볼 안쪽을 강하게 깨물어 떨어져 나간 조각 같았다. 아니면 내가 물어뜯은 다른 사람의 살덩이라는 얘긴데 전자이든 후자이든 어느 쪽이든 불쾌하긴 마찬가지라 차라리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설양.”
“어랍쇼. 아직 말을 할 수 있나... 그래.”
“어째서 이 난리를 친 거야.”
커다란 대궐 같은 집이 쥐새끼 한 마리도 없는 것처럼 고요했다. 이만한 크기의 저택이면 가솔들 숫자도 상당했을 텐데 한 명도 남김없이 전부 죽은 모양이다. 불빛이 전부 꺼진 집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이걸 그저 재미로 몰살시켰다고?

그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예전에 네가 말했지. 요괴를 잡고 악신을 겁박하실 신묘하신 설 공자,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심지어 새끼손가락만 있어도 충분할 겁니다... 그런데 아걸, 나는 새끼손가락이 없어.”
그렇게 말한 설양이 왼손을 활짝 펴보았다.
아뿔싸, 진짜로 그의 왼손은 새끼손가락이 없어 손가락이 네 개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더구나. 내게 새끼손가락이 없으니 요괴를 잡고 악신을 겁박할 수 없겠구나. 내 재주가 신묘하지 않은 건 전부 새끼손가락이 없는 탓이구나... 내가 못난 건 새끼손가락이 없어서구나.”
평소 눈여겨본 적이 없어 몰랐다. 그의 새끼손가락은 밑동부터 떨어져 나가 애초에 존재해본 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내 손가락 이런 거 처음 봐?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우리 아걸은 전혀 몰랐던 것 같네. 세상 돌아가는 일에도 관심이 없고, 사람 돌아가는 일에도 관심이 없고... 우리 아걸은 배추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지.”
설양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지워졌다.
“그래. 난 새끼손가락 하나가 없어. 그렇게 생각하니 굉장히 억울해지더군. 분해서 잠이 오지 않았어. 맹렬한 원망이 들끓었어.”
설양은 짐짓 우는 시늉을 해보였다. 누가 봐도 속지 않을 거짓 울음이었다.
“내 기분이 어떠했겠어, 아걸. 너도 짐작이 가지? 슬펐어. 화났어. 속상했어. 속에서 분이 올라왔어. 그러자 내 새끼손가락을 망가뜨린 인간에게 복수가 하고 싶어지더라. 당연하지! 복수를 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야. 이 사람들 전부를 죽인 건 그래서야.”

그가 흑흑 울음 소리를 지어냈다. 그런데 내 귀에는 킬킬 웃는 소리로 들렸다.
“아걸, 아걸... 전부 네 탓이야. 네가 날 비웃어서 그런 거야. 신묘하신 설 공자님은 새끼손가락만으로도 요괴를 혼쭐낼 수 있다고? 어? 어?”
내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잡아당기던 설양이 몸이 망가져 기력을 잃은 날 힘 주어 팽개쳤다.
“이젠 고개도 못 드나. 허리는 부러지고, 팔은 빠지고, 다리는 잘렸네. 음호부로도 이젠 조정이 불가능한 것 같군. 그래... 여기까지인가 보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대로 무너졌다.

갈기갈기 찢겨 뻘 속에 가라앉은 의식이 다시 돌아온 건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였다.
내 몸은 뚜껑 없는 초라한 관 속에 뉘여져 있었고, 머리와 발 끝자락에 부적을 붙여놓은 상태였다.
반쯤 떴던 눈을 다시 감고 발가락과 손가락을 까딱 움직여 보았다.
찢어지고, 베어지고, 뭉개져 떨어져 나간 신체부위는 어찌된 노릇인지 거짓말처럼 잘 돌아와 붙어 있었다.
주변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럴 수는 없어!”
“나리. 고정하시옵소서!”
“지금 고정이라 하였느냐?!! 야렵을 나간 사이 식솔들이 전부 죽임을 당했는데 어떻게 나더러 고정하라는 말을 할 수가 있어!”
“고정하셔야 합니다, 가주님. 귀에서 피가 나고 있습니다. 여봐라. 어서 와 가주님을 뫼셔라. 그리고 가서 의원을 불러와. 서둘러라.”
“에잇, 놓아라. 놓으라 하지 않았느냐!”
“가주님, 정신 차리세요! 뭣들 해. 어서 의원을 불러오라 하지 않았느냐!”

짐승처럼 울부짖는 가주의 기척이 멀어지고, 대신 몸가짐이 단정하지 않은 발자국 소리는 더욱 부산스러워졌다. 예닐곱 수의 사람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 같았다.
“그래. 살아있는 사람은. 찾았느냐.”
“없습니다. 혹시나 싶어 법보를 보관하는 비밀창고까지 다 열어봤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수색을 계속해. 우물 속까지 뒤져라.”
“틀렸어요! 함아 할멈과 한 살짜리 손주까지 전부 죽었습니다! 임신한 정이도 죽었구요! 얼마 뒷면 출산이었는데 담즙을 토하고 죽었습니다! 악신도 이, 이럴 수는!”
“도망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냐! 변소 똥물에라도 숨은 사람이 없다고?!”
“찾아낸 시신이 일흔두 구입니다. 저택에서 살아나간 사람은 없어요. 야렵으로 자리를 비운 사람을 제외하고 전부 죽었습니다.”
가슴을 치며 가느다랗게 흐느끼는 소리가 이어졌다.

목이 메인 목소리로 누군가 의문을 드러냈다.
“잠시만. 일흔둘? 일흔하나가 아니라?”
“피를 토하고 죽은 시체가 한 구 더 있었습니다, 부사 어르신. 어린애인데 모르는 얼굴입니다. 옷차림으로 보아 집 안 사람은 절대 아닌데... 맨발에 겉옷도 없고 상처 자국이 많더군요. 길을 떠돌다 허기가 져 저희 가문에 밥 동냥을 하러 왔다 변을 당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허!”
“수소문을 하면 아이를 알아보고 장례를 치루겠다는 자가 나올지도 몰라 일단 가관(假棺)에 넣어두었는데요, 부사 어르신. 직접 보시겠습니까.”
“되었다. 지금 그게 급한 게 아니다. 저택을 보호하는 진법에 깨진 흔적이 있다는데 그것부터 조사해!”
서둘러 말한 사내는 다른 사람을 독촉하며 자리를 떴다.

내가 누운 관 주변으로 아무도 없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가만히 팔을 들어 머리로 가져갔다.
얼마나 난리를 쳤음 설양이 끝까지 박아 넣어둔 은침의 머리 부분이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망설이기를 두어 번 하고 난 뒤, 눈을 질끈 감은 채 힘껏 잡아당겼다.
붙었던 뼈와 뇌가 덕분에 도로 망가졌지만,
괜찮다.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아파 죽을 것 같으면서 눈물도 안 나오니 참 편리한 몸이다.

이제 이걸 어쩐다.
노인에, 한 살짜리 어린아이와, 임산부까지 죽었단다.
그 사람들을 헤친 기억은 없지만 전부 내 탓이다. 나는 절망했다.
“하는 수 없지. 이대로 죽어야지...”
증오해 마지않는 은침을 관 밖으로 내던지고 두 손을 가슴으로 가지런히 모았다.
호흡도 없고, 심장의 박동도 멈춘 몸뚱이다.
장례를 치러주면 다행이고, 그렇지 못해도 괜찮았다. 땅에 묻어도 상관없고, 불에 태워도 그만이었다.

만 하루 정도 지나자 사람들이 내 몸을 가관에서 꺼내 큰 자루에 넣었다.
“의장으로 옮겨라. 신분도 확실하지 않은 시체를 여기에 계속 둘 수 없다.”
“예, 부사 어르신. 그런데 시변하여 뛰어다니면 곤란하니 미리 다리를 잘라둘까요. 이 거지는 참변을 당한지라 시변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부사라고 불리던 자는 잠시 고민한 뒤, 피곤에 찌든 목소리로 ‘잘라라.’ 명령했다.

하인 둘이 묶었던 자루의 매듭을 풀고 내 다리를 꺼냈다.
수행을 하지 않은 일반인의 힘으로는 뼈까지 전부 끊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하인은 요령을 피워 힘줄만 베어냈다.


제2장 혼백, 망령, 그리고 엉망진창, 끝

Posted by 미야

2021/10/30 16:55 2021/10/3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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