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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리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곳곳에 지뢰밭처럼 깔린 설정 오류 발견시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레드 썬을 외쳐주기 바람. 그나저나 요즘 쥰쥰은 맛있는 햄버거를 봐도, 고소한 아몬드를 봐도, 잘 빠진 나이프를 봐도, 썩 괜찮아 보이는 부적을 봐도, 눈치껏 딘의 호주머니에 챙겨주고 싶다는 욕구에 떨고 있습니다. 맛 갔어, 간 거야! 크앙~! ※


요람에 누운 아기가 위험에 처할 일은 없다. 천장에 매달린 채 피를 흘리던 엄마 메리가 비명과 함께 불에 타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동생을 안고 집밖으로 무작정 뛰어나가지 않아도 된다. 치솟던 화염, 뜨거운 열기, 그것은 이미 일어났던 일이고, 결코 바뀌지 않을 과거이다. 오래 전에 불은 꺼졌고, 악마는 커다란 상흔을 그들 가족에게 남긴 채 떠났다.
『형?』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그의 약해빠진 마음이다. 딘은 까칠하니 짧은 수염이 돋아난 뺨을 미친 듯이 문질러댔다. 정말이지 우습지 않은가. 페인트 냄새가 진동하는 새 집에서 오금이 저려 움직일 수가 없다니. 계단을 절반만 올라간 동생이 근심에 젖어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니, 비난하고 있다. 연약한 그를, 어리숙한 그를, 듬직하지 못한 사내를, 전혀 형 답지 않은 그를 냉정한 눈초리로 뜯어보고 있다. 아버지 존을 빼어닮은 눈으로 꾸중하고 있다.
 가슴이 욱씬거렸다.
나는 바보다. 이곳은 켄자스의 그 저주받은 집이 아니다.
한참만에야 체념하고 샘을 향해 어서 위로 올라가라 손짓했다.

『뭐 하냐, 동생아. 2층 침실을 확인해 본다며.』
여전히 움직이려 하지 않는 샘을 다그쳤다. 아직까지도 차가운 눈으로 위 아래를 죽 훑어보는 동생의 시선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실험대 위로 올라간 개구리를 해부하는 거냐 - 힐난의 빛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버럭 화냈다.
『샘!』
『그 전에... 딘도 이리로 올라와서 보겠어? 내가 발견한 걸. 여기서 보니까 여기 마루는 무지 이상해.』
오해였다. 샘은 딘이 아니라 마룻바닥을 지긋이 관찰하고 있었다.

가까이선 내용을 결코 볼 수 없는 그림이 있다. 한참을 떨어지고 나서야 그림 한 가운데에 칠해진 갈색의 얼룩이 사람의 코였음을 깨닫게 된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면 눈이 보이고, 다시 입이 보인다. 내가 뭘 잘못 보았나 싶어 반대로 가까이 다가서면 사람의 이목구비는 어느새 마법처럼 사라지고 캔바스 위로 두껍게 칠해진 투박한 물감 덩어리들만 남는다.
마찬가지였다. 기구를 타고 하늘로 높이 올라가고 나서야 나스카 대 평원에 그려진 인류 문화 수수께끼가 나타났다. 동생의 말대로 계단으로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화가가 몰래 숨겨둔 그림이 바닥에서부터 떠올랐다.

둥그런 원이다. 그것도 일부러 자를 대고 오려낸 듯한 완전한 모습이다. 그러나 인테리어 업자가 그렇게 하는게 예뻐보이겠거니 싶어 처음부터 색을 달리하여 바닥을 깐 것이 아니라는 점이 바로 문제였다. 딘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결의 방향과 미묘한 변색의 결과로 이러한 효과가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웃기지 말라고 해라. 그런게 가능하다면 원숭이가 실수로 자동차를 분해한 뒤에 다시 그 부품으로 비행기를 조립해낼 수 있다.

『카펫을 깔아서 전에 살던 세입자들은 이걸 미처 몰랐던 모양이군. 봤다면 난리발리 쳤겠지.』
얼룩 부위를 발로 쿵쿵 찍으며 딘이 말했다.
『혹시 바닥에 깔린 배관이 잘못되어 저 부분만 물에 젖었던 건 아닐까.』
그래도 만사가 조심스러운 샘은 제일 그럴 듯한 이야기를 꺼내며 그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리하여 이 모든 건 죄다 우연이다? 샘... 자연에선 콤파스를 대고 그린 듯한 모양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 네가 더 잘 알잖아. 삼각형 모양의 산이 있기를 하냐, 정육면체 모습의 바위가 있기를 하냐. 정말로 네 말대로 배관 문제였다면 얼룩이 찌그러진 타원 모양이어야 맞지. 어쨌든 확인해볼 방법은 딱 하나야.』
『켁!』
『저 속으로 뭐가 있는지 보게 뜯어보자.』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다. 새로 수리를 끝낸 집안에 몰래 들어와 마룻바닥을 마구 뜯어낸다? 지하실 바닥을 삽으로 파헤치는 것과는 수준이 달라도 끝장으로 다른 일이다. 흙이야 도로 덮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강제로 깨부순 거실 바닥은 집주인이 돈을 들여 고쳐야 한다. 뻥 뚫린 구멍을 보고 마구 비명을 질러댈 사람들 얼굴이 훤하다. 아이고, 맙소사.
『있잖아, 딘. 우리 이렇게 갑자기 막 나가도 괜찮은 거야?』
쪼그리고 앉은 샘은 신고를 받은 경찰차가 출동했다는 투로 근심에 젖었다.
나이프를 꺼내 각각의 나무판의 이음새 부분으로 칼집을 넣으려는 딘은 콧방귀를 뀌었다.
『아서라. 너나 나나 진작부터 막 나가고 있었어. 몰랐어?』
딘이 보기엔 마룻바닥을 뜯는 일이나 지하실 바닥을 삽으로 파는 일이나 거기서 거기였다.

그렇다고 해도 쉬운 일은 아니다. 칼집을 넣었다고 그게 자리에서 쉽게 떨어질 것 같으면 인테리어 업자는 중간에서 농간을 부리고 사기를 친 거다. 얼굴이 빨갛게 되도록 힘을 주었지만 나무판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칼날을 비틀어 보았다. 살짝 위로 들렸다가 도로 원위치.
약이 바짝 오르려 한다. 좀 더 강력한 도구가 필요하다. 곡괭이라던가, 드릴, 그것도 아니면 손도끼, 정 뭐하면 총이라도 한 번 쏘아서... 애 낳는 감각으로 끄응 소리내어 힘을 주었다. 순간 칼날의 끝부분이 따악 부러졌다. 제기랄 욕하고 벌떡 일어나 얄미운 바닥을 발로 쾅 찍었다.

일 하는 도중에 성질을 부리지 말라고 얼마나 귀 따갑게 주의를 들어왔던고. 냉정함을 잃으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판단력이 흐려지면 지도나 나침반 없이 산에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버린다. 그 결과야 뻔하다. 조난당해 꼴 사납게 죽게 된다. 존은 아들에게 이 점을 반복하여 말했다. 화가 나도 화를 내지 말라고. 감정을 제어하지 못 하는 자는 사냥꾼의 총을 잡을 자격이 없다고 늘 강조에 강조를 더하곤 했다.
「참으로 옳으신 말씀입니다, 아버지.」
대포 터지는 굉음과 같이 하여 꺼진 바닥 아래로 와당탕 굴러 떨어지면서 딘은 아버지 존이 얼마나 현명하고 지혜로웠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뭡니까, 정말. 이렇게 허망한 죽음이라니.
새카만 암흑의 바다에 빠져 엉덩이부터 휩쓸리면서 딘은 흐릿해진 눈을 감았다.

『우와앗?! 디, 디인~!! 딘!』
워낙에 순식간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미처 보지도 못 했다. 투명한 팔이 형의 바지를 붙잡고 잡아챈 것도 같다. 중력이란 것이 사람을 아래로 끌어내린 거라고 하기엔 시야에서 사라진게 너무나 갑작스럽다. 보통 바닥이 꺼지는게 이런 식은 아닐 터인데?! 썩지도 않은 나무판이 성인 남자의 발길질을 견디지 못 하고 꺼진 것도 대단히 수상쩍거니와, 무슨 수챗구녕으로 물이 빠져나가듯 사람 몸뚱이가 빨려 들어간 것도 납득하기 힘들었다.
일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샘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형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하느님, 맙소사! 디인~!!』

저 위에서 말벌에 쏘인 곰이 나 죽는다 울부짖고 있다. 그 소리가 대단히 성가셔서 - 구덩이에 빠진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니까 제발 조용히 하란 말이닷 - 딘은 의식의 가장자리에서 가까스로 앞으로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았다. 그렇다고 해도 고맙다 인사를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코앞에서 큰 북과 작은 북을 동시에 팡팡 두드려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음이다. 샘의 목소리는 원래 조곤조곤하다. 밤중에 불 꺼놓고 시시콜콜한 주제로 잡담을 나누다보면 어느새 잠이 들어버린다. 내 목소리는 자장가가 아니야 - 라고 항의하지만 그건 본인이 몰라서 하는 소리. 그런 주제에 흥분하면 300년간 전문가로부터 조율을 전혀 받지 못한 금관 악기로 돌변한다. 그 끼꺽대는 소음이 얼마나 대단한지 완전히 사람 미치게 만든다. 그래서 딘은 동생이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는 걸 매우 싫어한다.
『혀엉~!! 제발 대답해, 무사해?! 형~!!』
귀가 아팠고, 머리가 울렸고, 앞 뒤를 구분할 수 없었다.
딘은 빌었다. 누구라도 좋으니까 저 망할 곰의 주둥이에 손수건을 틀어 넣어라.
속이 울렁거렸다. 아니, 그보단 팔과 다리가 송두리째 떨어져 나간 것 같아 무서웠다. 제발 아무 일 없기를 기도하며 손가락을 까닥 움직여 보았다. 다행이다. 격렬한 통증이 뇌를 후벼팠지만 정상적으로 움직여 주었다. 이를 다시 말하면 최소한 뼈는 부러지지 않았다. 신음하며 무릎을 구부렸다. 몸에 걸쳐져 있던 판자 조각 때문에 생각만큼 쉽지는 않은 동작이었다.

『움직일 수 있어? 괜찮아? 내가 곧 내려갈테니까 조금만 참아!』
위로부터 한 줄기 밝은 빛이 내려와 시야를 교란했다. 손전등으로 아래를 비춰보고 있는 모양이다. 잔해들의 더미 한 가운데서 널브러져 있을 몸뚱이의 무사 여부를 확인하느라 램프의 빛은 좌로, 우로, 그리고 위 아래로 계속하여 움직였다. 거실 바닥으로부터 3m 아래로 떨어진 딘은 덕분에 멀미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여기다 맹렬한 전자 음악만 더해지면 나이트 바가 따로 없겠다. 엑스타시를 복용한 것도 아닌데 위장이 부글 끓었다. 이렇게 애원할테니 제발 손전등은 그만 흔들어라.

『딘~!! 내 목소리가 들리면 움직여. 제발 움직여줘. 아니다, 혹시 머리 다쳤어? 그럼 내가 갈 때까지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둘 중의 하나만 선택해, 자식아! 움직일까, 아님 움직이지 말까.』
짜증 섞인 형의 목소리에 샘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다행이다. 말투로 보아 크게 다치지 않았다. 신께 감사를 드리며 손전등을 움직여 딘의 얼굴을 비췄다.
그것이 눈부셨던지 잔뜩 찡그린 그가 손바닥으로 목을 치는 시늉을 하며「컷!」을 외쳤다.

『차로 돌아가서 밧줄을 가져올게.』
『그러지 말고 손전등부터 던져.』
『응?』
『손전등! 귀 먹었냐! 손전등 내놔!』
 
샘은 일단은 형이 시키는대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잘 조준해서 던졌다고 해도 벌러덩 누운 자세로 떨어지는 손전등을 두 손으로 받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주변이 어두운 것도 감각을 둔하게 하는데 일조했다. 게다가 부러진 판자 조각이 피부를 쏠아대고 있어 방해가 되었다. 오로지 감각만으로 내려오는 문명의 선물 - 손전등을 낚아채는데 성공은 챘지만 덕분에 팔뚝으로 없던 생채기가 하나 생겼다. 활활 달아오르는 쓰라림에 딘은 아뜨뜨 소리를 내었다.

『제기랄, 못에 긁혔잖아. 재수 없게 파상풍에 걸리면 큰일인데.』
『아래는 어때, 딘?』
『독촉 좀 하지 마!』
훅 숨을 들이마시고 좌우로 손전등을 비췄다.
좋다. 흐릿하게 보이는 건 네모 반듯한 나무 기둥이고... 반대편으로 보이는 건 대들보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몸을 추스린 딘은 2차 붕괴를 걱정하며 - 그것이 비록 쓸데없는 염려라고 할지라도 - 머리를 움찔움찔 가슴팍에 넣었다 꺼냈다를 반복했다. 다행히 윗층 마루는 더 무너질 기색은 아니다. 애시당초 바닥이 꺼진게 비정상이다.
머리 위의 안전부터 확인한 그는 버릇처럼 손전등의 건전지 넣는 부분을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그럼 오른편으로는... 옳거니. 용도를 파악하기 힘든 가느다란 파이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왼편으로는... 공간이 제법 넓다. 전반적으로 무슨 창고나 와인 저장실 같은 분위기다. 금주법 시대에 밀주를 만들어 보관했을 법한 그런 음습함이 뇌리를 스쳤다. 어쩌면 진짜로 술통이나 유리병 같은 물건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무판을 옆으로 치우고 더 먼 곳을 보기 위해 쥐고 있던 손전등을 어깨 높이로 올렸다.

『아이고.』
그리고 딘은 신음했다.
『침대잖아!』
금주법 시대의 갱들이 지하실에서 밀회를 즐겼던 건가.
상상하던 술통은 간곳 없고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건 다름 아닌 침대였다.

Posted by 미야

2007/04/25 12:51 2007/04/25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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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d Ties 에서 나온 대 뱀파이어용 무기(?)...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기는 좀 아닌 것 같고. 여하간 쓸모 있는 물건이다.

언뜻 봐선 태양의 심볼이다. <이걸로 뭐?> 싶었는데 의외로 무서웠다.

뱀파이어의 심장 부위에 가져가면 날카로운 햇살 무늬가 차락 소리를 내며 살갗 깊숙이 파고든다. 일단 안으로 파고 들면 그 잘난 뱀파이어도 파워 다운이 되어버리는데 멱살을 쥐고 질질 끌고가도 항의 한 번 못 한다.

크앙, 크앙! 저 물건을 한 다스 훔쳐다가 딘의 호주머니 속에 몰래 넣어주고 싶었다. 이런게 필요하다니까, 윈체스터 브라더스! 소금 부어 성냥 긋고, 걍 끝내버리는 거... 진짜지 너무하지 않냐? 샘이나 딘이라면 기껏해봐야 말뚝 들고 뛰어다녔을 거라는 생각에 무릎을 꿇었다.

Posted by 미야

2007/04/24 19:48 2007/04/24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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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 라고 적고 우걱우걱 여행기라 읽는다. 진짜지 잘 먹는다. 전생에 굶어 원한이 사무쳤냐 -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속을 메스껍게 만드는 신선한 페인트 냄새가 코를 찔렀다.
샘은 호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은 채 여러가지 의미가 함축된「오우~」소리를 냈다.

보통「유령」이라고 하면 낡고, 오래되고, 지저분하고, 버려지고, 삐걱거리는 폐허를 연상시키는 법이다. 거울 대용품으로 사용이 가능한, 반질거리는 새 수도꼭지와는 아무래도 이미지가 맞지 않는다. 더러운 거미줄을 가발 대신 뒤집어쓰고 등장하면 모를까, 샤넬 립스틱을 곱게 바른 유령이라는 건 상식 밖이다.
『일단은 썩 괜찮은... 집으로 보이는 걸.』
수리가 끝난 지붕과 하얗게 칠이 발려진 회반죽, 보강된 나무 기둥들, 새로 짜맞춘 문짝이 세월의 때를 훌륭하게 벗어 던졌다. 얼핏 봐선 새로 지은지 한 달이 넘지 않은 주택처럼도 보인다. 가스 배관에 칠을 새로 했고 마당의 잔디도 보기 좋게 다시 깔았다.
시험삼아 울타리를 붙잡고 좌우로 밀어봤다. 튼튼하게 잘 만들었다. 열 받은 취객이 자동차로 들이받지 않은 이상 허리케인이 불어닥쳐도 끄떡 없을 것이다.

샘의 표정이 더욱 이상해졌다. 영감이 없다는 건 별도로 치고 수상한 기척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오염을 막기 위한 비닐 포장은 아직 치워지지 않았다. 정리가 덜 되어 분위기는 산만하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점이 매력적이다.「새 것」의 이미지가 확고부동함이다. 대문 앞으로「임대합니다」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 아이들을 두 명 정도 낳아 키우는 중산층 부부라면 좋아라 하고 연락을 취해올 것 같다. 과연 저런 곳으로 유령이 숨어 가냘픈 호흡을 하고 있을까? 신나 냄새에 산 사람도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그래서 뒤를 돌아다보며「잘못 짚은 거 아냐?」라고 물었다.
딘은 일단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유보했다.

『뒷마당으로 오래 전에 죽은 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뿌리가 썩어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건물 쪽으로 쓰러졌다고 하더군. 다락을 덮치고 침실 쪽까지 멋지게 망가뜨린 모양이야. 마침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아서 큰 문제는 없었다고 해. 만약 사고 당시 사람이 있었으면 큰일날 뻔한 거지. 천만 다행이었다고 인부들 책임자가 그랬어.』
딘은 손가락으로 지붕의 한 지점을 가리키며「저기가 무너졌다」라고 말했다.
『언제까지고 구멍이 휑~ 뚫린 꼬락서니로 내버려둘 수는 없으니까 지붕을 고치면서 곳곳을 손봤어. 주인인 캐빈 쉐퍼드 씨는 동네 반대편에 살고 있고, 세입자 부부는 계약이 채 만료되기 전에 근방으로 이사를 갔다고 하더군. 그게 3개월 전이라고 해. 특별한 문제가 생겨 갑자기 떠난 건 아니야. 집에 대한 불평은 없었으니까.』
『음, 그렇다면 직장 문제이거나 아님 부인의 변덕이었겠지.』
『글쎄다. 어쨌거나 자칫하다간 자기 머리통이 지붕과 같이 해서 날아갈 뻔했다는 걸 알고는 놀란 마음에 세입자 남편이 한 번 들렸어. 서른 다섯 정도 먹은 젊은 사람이었는데 체격이 좋더구나.』
『직접 봤어?』
수고들 하십니다 - 하고 정중하게 인사하더라.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고 넌지시 묻더군. 쓰러진 나무에 그네를 달았다가 아닌갑부다 하고 철거했는데 그게 자기네들 책임이 되겠느냐고. 난 일용직 잡부라 잘 모르겠다고 했지.』
『흐응.』
 
여기서 서성이지 말고 가까이 가보자며 딘이 손짓했다.
발에 스친 포장용 비닐이 바스락 소리를 냈다. 샘은 페인트로 뒤범벅이 된 그것들을 피해 화단 가까이로 바짝 붙어 걸었다. 그리고는 곧 후회했다. 스프링클러 덕분에 물기를 머금은 풀들이 어찌나 미끄럽던지 두 번 정도 어이쿠 소리를 내며 비틀거려야만 했다. 앞장 서던 딘이「조심해, 아가!」라고 주의를 주었다. 못 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샘은 툴툴대며 형의 뒤를 따라갔다.

집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지 현관 문은 잠겨져 있지 않았다. 조금은 부주의하다 싶은 조처였는데 탁 트인 동네 분위기로 보자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닐지 모른다.
샘은 고개를 길게 빼고 뒷문으로 이어진 기다란 자갈 길로 시선을 돌렸다. 눈에 띄는 거라면 언제 버려진 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담배 꽁초가 전부이다. 거기에 EMF 미터기를 가져대봤자 눈금은 요~만큼도 안 움직일 거다.
눈가에 손바닥을 대고 창문을 기웃거렸다. 거실은 녹색 계열의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색감은 괜찮은데 조명이 달려 있던 곳으로 전선이 튀어나와 그게 좀 흉했다.

『주변 기전력은 정상 수치야. 건물 내력도 깔끔하고... 카운티 오피스에도 사고가 있었다는 기록은 못 찾았어. 집안에 강도 같은 강력 범죄가 있었다는 기록도 없고. 아직까진 수상하다 싶은 건...』
『이엽!』
『음? 따로 무슨 할 말이라도?』
말꼬리를 썩둑 자른 형을 향해 뒤돌아섰다.
딘은 특유의 입이 근질근질한 사람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잘 들어, 샘. 여기서 이사를 나간 넬슨 씨가 그랬어. 임대 약관에 이런 조항이 있다는 거야. 집안에서 개나 고양이를 키워서는 안 됩니다. 가족 중에 7세 미만의 아동이 있으면 안 됩니다... 집이 망가질까봐 걱정을 하는 것치곤 너무 예민하잖아. 어린애는 여기에 살면 안 된다니.』
마당에 심은 화초의 종류에 대해서까지 엄격한 규정을 지켜야 한다고 우기는 집 주인들이 더러 있다. 규정은 거의 편집증에 가까워 임대차 계약서 두께만 논문집 수준이 되기도 한다. 커튼을 달 적의 주의점, 그리고 창문을 열어 공기를 환기하는 시간까지 시시콜콜 참견을 하는 것이다. 가구 배치시 벽면에서 25cm 떼어낼 것, 벽에 못질 절대 금지, 거실 내 대형 어항 설치 금지, 정원에서의 바비큐 금지. 심지어 자국이 남지 않도록 침대 기둥에 고무 패드를 두겹으로 꼭 깔아두라 엄포를 놓기도 한다. 명문화된 내용이 어찌나 복잡한지 세입자들은 차라리 집을 사는게 낫겠다며 부르르 떤다.
 
그래도 이건 좀 억지다. 애완동물은 그렇다치고 아이들도 안 된다고?
차별성 조항이라며 고발당할 수준의 요구 사항이다. 샘의 눈이 휘둥그레 벌어졌다.
『헤에. 진짜?』
『넬슨 씨의 부인이 둘째를 임신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사를 나갔던 거래.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도 중계인을 통해 출산 전에 집을 비워달라고 연락을 해왔다나. 갑자기 그러는게 어디 있느냐고 불평하니까 여기에 분명 싸인하지 않았느냐며 계약서를 들이밀더래. 그래도 속으로 너무 심했다 싶었는지 이사 비용은 집 주인이 전액 부담을 했다는 거야. 와우~! 놀랍지 않니. 캐빈 쉐퍼드 씨는 애들을 무지하게 싫어하나봐.』
『와! 그거 무지 이상하다!』
『그치?』

까닭이 궁금해진 딘은 벽돌을 나르다 말고 잠시 멈추어 서서 거기에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넬슨은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며 어깨를 으쓱였댄다. 그것으로 얘기는 끝났다. 일용직 잡부 주제에 더 깨물을 분위기도 아니었고, 넬슨은 약속에 늦었다는 투로 짐짓 시계를 쳐다보았다. 이어지는 건 틀에 박힌 이야기였고, 그나마 짧았다.

 『애들이 살 수 없는 집이라.』
『개나 고양이도 살 수 없는 집이야. 오싹하지?』
『고약한 혼령이 머무르고 있는 건가. 어떻게 생각해? 딘.』
『그건 아닌 것 같아, 새미. 혹시 집안에서 쥐가 시끄럽게 돌아다니는 듯한 기척은 없었느냐고 물어봤을 적에 넬슨 씨의 표정을 네가 직접 봤어야 하는 건데. 전등이 깜빡이는 증상도 일절 없고, 수도관에서 이상한 소리도 안 났다고 했어. 오히려 살기 좋은 집이어서 이사를 나가는게 섭섭했다고 하드라.』
『단순히 입에 발린 소린 아니었을까? 쓰러진 나무에 그네를 달았다는 점 때문에 손해 배상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무지 걱정하는 눈치였다며.』
『알게 뭐람. 하여간 중요한 건 내가 맨 처음으로 이상한 전화를 받았던게 바로 저 집안에서 였다는 거야. 아직도 생생해. 워째 집의 구조나 모양새가 켄자스의 불타버린 우리 집이랑 비슷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전...』

신나게 얘기하다 말고 딘은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
실수로 금기어를 내뱉었다.
그게 꽤나 속상했던지 딘은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가렵지도 않은 머리를 긁어댔다.
그것은 억지로 봉쇄해버린 기억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모양, 벽에 걸려진 사진 액자,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정원의 나무, 벽지의 색, 아기 방에서 들리던 딸랑 소리...「내가 미쳤지」혼잣말 했다. 덩달아 몸을 움찔거린 동생과는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애꿎은 현관을 노려보는 그의 눈동자는 평소보다 색이 곱절로 짙었다.

『콜록.』
어색함을 감추고저 샘이 기침했다.
엄마가 죽었을 당시 네 살이었던 딘과는 달리 갗난아이였던 샘은 켄자스의 집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기억이 없으니 아무렇지도 않다. 형이 워낙에 끔찍스럽게 생각하니까 덩달아 꺼림직스럽게 여길 뿐이다. 본인 스스로에겐 무섭다는 기분도, 두렵다는 마음도 남아 있지 않다. 사진으로만 그 집이 어떠하다는 걸 보아왔고, 아빠나 형의 입으로 설명만 들었다. 게다가 그 설명은 자세하지도 않았다.
겁에 질린 것이 분명해 보이는 여자가 울면서 창문을 주먹으로 두드리는 걸 환상으로 보았을 적에도「저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그 이야길 들은 딘이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는 걸 보고 나서야「어라, 이게 아닌가 보다」싶었을 정도다. 그러고도 옛날 집으로 돌아가보자 당당히 얘기를 꺼내는 것으로 형을 기겁하게 만들었으니 생각이 없어도 진짜로 없다고 할 수 있다.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내며 딘의 어깨를 쳤다.
『알았어. 여기가 처음 전화를 받은 장소라는 거지?』
『으, 으응.』
『좋아. 그럼 2층부터 올라가볼까?』
조사를 시작하자며 품속에서 측정기를 꺼내든 샘이 계단을 가리켰다.

그걸 보고도 딘은 뒤로 빼는 제스츄어를 취했다.
『난 여기서 일할 적에 2층엔 단 한 번도 올라가지 않았어, 샘.』
『에? 망가진 지붕을 고쳤다며.』
『무거운 자재는 도르래를 사용해서 위로 올렸고, 아래층에서도 할 일은 많았거든. 쓰러진 나무를 베어내고 그걸 치웠어. 2층엔 안 올라갔어.』
저 위로 무서운 괴물이 살고 있다. 그렇게 온몸으로 주장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흐음, 켄자스 집과 그렇게나 비슷하게 생긴 건가.
어쩐지 내키지 않는 기분이 되어 샘 또한 계단 위로는 다리를 올려놓지 않았다. 대신 계측기를 쥐고 있는 팔을 최대한 길게 뻗어 수상한 기운은 없는지를 살폈다. 그것은 전혀 전문가 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런다고 괴이한 에너지를 포착할 수 있다면 진작에 그 집은 무너졌다. 당연히 계측기의 눈금은 정상 수치에 머물렀다. 샘은 스스로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돌았지.』
고개를 흔들며 난간을 잡았다.
그와 동시에 끄응끄응 이 앓는 소리가 들렸다.
『가지 마.』
평소라면 딘은 그런 동생을 향해 제대로 하라며 야단을 쳤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오히려 조사를 방해하려 들었다. 이거, 이거. 조금은 성가시다.
앞으로 그가 보일 반응을 걱정하며 샘이 어렵게 운을 떼었다.
『저어, 아무래도 올라가서 침실 쪽을 살펴봐야 할 것 같은데...』
역시나 생각했던 그대로다. 딘의 얼굴이 굳었다.
『형?』
『그래. 내가 아무래도 노망이 났다. 인정해. 제 정신이 아니야. 그치만 어쩌라고.』
땀으로 축축해진 손바닥을 바지춤에 문지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서 널 다시 데리고 나오긴 싫단 말이야.』

Posted by 미야

2007/04/24 10:06 2007/04/2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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