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fanfic] judgment 20

※ 사람 100명이 모이면 그중에 80명은 대체로 무해합니다. 유해한 인간은 20명인데 이중 5명은 대단한 악질입니다. 그렇다면 선한 의인은 100명 가운데 모두 몇 명일까요 한 명도 없답니다.?
왜들 그러고 사나 싶지만 그게 인간이라니 어쩌겠습니까.
다음이 마지막입니다. 진짜지 오래 끌었군요.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


미친 영감의 헛소리였다.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여 이마에 총알 두 발을 박으러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왔다고? 도대체 평소에 무슨 내용으로 기도를 하고 있었던 건지를 진지하게 묻고 싶어졌다. 육체적 고통이 극심하여 머리가 살짝 돈 것은 아닌지를 의심하며 총을 꺼내어 노인이 가까이에서 잘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귄터의 표정에는 공포라는 것이 쏙 빠져 있었다. 애초부터 그런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식이다. 피아노 건반을 아무리 힘주어 눌러도 소리는 나지 않았다. 물기를 잃어버린 먹먹한 눈으로 죽음의 도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도대체...』
『부탁합니다. 이제 그만 나를 보내주시오.』
그건 무리한 주문이었다. 헤더의 표정이 확 나빠지면서 얼굴로 피가 확 몰렸다.
『뭐야?! 이대로 끝내자는 거냐! 그런 뻔뻔하기 짝이 없는! 네가 한 짓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딴 소리를 입에 담는 거냐! 너로 인해 고통받은 나는 어쩌고! 양심도 없는 놈! 너 혼자만 편해지겠다는 거냐! 용서 못해! 절대로 나는 너를 용서 못해! 신은 자비로우시니 아마도 네 기도에 응답하여 널 용서할련지 모르겠다만, 인간인 나는 널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없단 말이다!』
살려달라고 애원을 해야 맞았다. 아직은 죽기 싫다고 발버둥을 쳐야 했다. 그걸 비웃어주며 지옥으로 어서 빨리 떨어지라 저주를 퍼부울 작정이었다. 꼴 사납게 엉엉 울면 더욱 보기 좋을 것이다. 아니면 벌컥 화를 내도 좋았다. 신경질적으로 울부짖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든 말든 심판할 것이다. 공포에 질린 표정을 만끽하며 관자놀이에 총구를 바짝 들이댈 생각이었다. 이건 아니다. 그는 궁지에 몰린 쥐가 되어야 옳았다.

『나를 봐! 그리고 손을 올려 눈을 가려! 겁에 질려 비명을 질러대란 말이다!』
무덤은 그대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구더기는 그대의 어머니가 될 것이다.
맹세코 피 묻은 시트를 쓰레기장에 버려 떠돌이 개들이 핥게 만들 것이다.
『그런데 너는 이런 나를 기다렸다고?! 거짓말이다. 그건 거짓말이다!』
총을 쥔 오른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모든 것을 불투명한 색유리를 통해 쳐다보고 있는 듯한 감각이다. 빨강이 빨강이었던가, 아님 보라색이었던가. 기분이 나빠졌다.
『죽기 싫다고 빌엇!』
목 안쪽으로 피맛이 느껴졌다.
아니, 이미 알고 있다. 그 뜨겁고도 비릿한 것은 피 섞인 가래 같은 것이 아니다. 탯줄이 붙은 채 죽어버린 갗난 아기처럼 더 원초적이고도 터부스런 것이다.
왼손을 높게 들었다.
『돼지!』
노인의 뺨을 세차게 후려갈기려는 걸 샘이 나서서 정중히 말렸다.

격심한 증오로 한껏 달아오른 목소리가 잘 갈린 칼날처럼 쨍쨍 울렸다.
『왜 막는 거야, 윈체스터.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거냐! 날 비난하려는 거냐!』
『침착해. 그리고 제발 목소리를 낮춰. 우리가 이 안에 몰래 들어왔다는 걸 잊지 말아.』
바깥으로 인기척이 들렸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다.
샘은 재빨리 왼편으로 움직여 조화가 꽂혀진 싸구려 꽃병을 들었다.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간 채 조용히 문 손잡이를 잡았다. 혹시 들킨 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살짝 두근거렸다.
뒤돌아 헤더에게 눈짓했다.
『쉬잇. 일이 시끄러워지면 너나 나나 똑같이 곤란해져.』
이대로 화병의 물을 바꾸러 화장실로 가는 척하자. 놀란 직원이 눈을 똑바로 치켜 뜨고 안에서 무슨 일 있느냐고 질문하면 멎적은 표정으로「조카 녀석이 할아버지를 문병왔다가 많이 아프신 모습을 보곤 감정이 격앙된 모양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싸움? 욕설? 고함? 죄다 착각이었다고 우기자. 그것으로 최소한 5분의 시간은 벌 수 있다. 짧으면 짧은 시간이지만, 반대로 길다고 하면 길다고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샘은 소동이 커지지 않기를 희망하며 흰옷을 입은 직원을 찾아 고개를 길게 뺐다.

오, 있다. 하얀 실내화를 신은 남자가 대걸레를 들고 무심한 태도로 바닥을 쓱쓱 닦고 있었다.
머리를 짧게 자른 남자는 청소가 힘들어서 그런지 허리를 구부정히 한 채 도통 이쪽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건만 청소 이외의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되었다. 별 것 아니었다. 샘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대로 아무 일도 아닌 척하자. 느릿한 걸음으로 조화가 꽂혀진 꽃병을 들고 걸레질을 하는 남자의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세면대는 저쪽에 있다.
그러다 얼씨구. 뭔가를 깨달았다며 뒤로 턴, 빠른 걸음으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저기, 있잖아. 복도를 청소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지 않아?』
『......』
비난 아닌 비난에 남자가 걸레질을 하는 동작을 딱 멈췄다. 슬그머니 고개를 들자 자신의 것과 흡사하게 생긴 짙은 초록의 눈동자가 보였다.
순간 미움에 겨워 생닭의 모가지를 붙잡고 와지끈 비틀고 싶은 욕구와, 반가움에 사무쳐 으스러져라 포응하고 싶은 두 가지의 상반된 욕구가 펄펄 솟았다. 그러나 두 가지 행동 모두 딘을 필연적으로 죽게 만들 것이 뻔했다.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샘은 형과의 거리를 지금과 같이 유지하며 필사적으로 힘내어 냉정함을 가장했다.
그럼 죽도록 방망이질을 하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차분히 숫자를 세도록 하자. 열 다섯, 백만 마흔 둘, 일흔 여덟에 다시 아홉... 영 엉망이었지만 샘은 그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 했다.

『딘. 언제부터 이곳에 취직했어?』
취직은 무슨. 놀라움과 당혹감으로 딘은 하느님부터 찾았다.
『반나절 전부터. 오, 하느님 맙소사. 새미.』
『오, 맙소사. 딘. 그건 내가 할 소리다.』
샘은「제임스 브리스콧」이라 적혀진 이름표를 앞뒤로 뒤집어보며 콧방귀를 내뀌었다. 혈기 왕성한 젊은 남자가 다 시들어빠진 할머니들이 득시글거리는 요양원에서 일용직 잡부나 마찬가지인 청소부로 취직한다는 시나리오가 과연 일반 사람들에게 먹혀 들어갈 것인지는 둘째다. 싱크대 위로 더러운 양말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지는 지저분한 남자가 복도를 반질반질하게 잘 닦아낼 것 같은가. 아닌게 아니라 딘이 헤집어 놓은 복도는 누가 오줌을 질질 싸기라도 한 것처럼 온통 물기 투성이다. 요령도 부족하거니와 상식도 꽝.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빙긋 웃었다. 그러나 거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웃음이었기에 가뜩이나 굳은 그의 입술 모양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딘. 이런 곳에선 물 걸레질은 하지 않아. 기름 걸레질을 해야지.』
『응?』
『형이 청소 도구함에서 가지고 나온 물건들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는 소리야. 보나마나 제일 앞에 놓여있는 것들 중에서 아무거나 들고 나왔겠지. 칠칠맞게... 내 말이 틀려?』
『그래서 뭐. 어차피 난 진짜 청소원이 아니라고. 이야, 하여간 너 답다. 보자마자 잔소리냐.』
딘은 환하게 웃으며 피를 나눈 친형제의 팔뚝을 툭툭 쳤다. 어쩐지 흐믓한 표정이다. 역시 샘이다. 말 위에 올라탄 김유신 장군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간장의 맛이 어제와 변함 없으니 오늘도 집안은 평온하겠다.
그러다 퍼득 깨달았다. 온도에 반응하여 모양과 색상이 달라지는 신소재 금속도 아니면서 다채로운 표정을 지었다.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 퍼머를 망친 아줌마처럼 화를 냈다가, 빌라의 열쇠를 잃어버린 부동산 중개업자처럼 당황해 했다가, 잔디밭을 가로질러 가다 실수로 개똥을 밟은 대학생처럼 마구 짜증을 부렸다. 갈피를 잡지 못해 변덕을 부리는 사월의 날씨처럼 엉망이었다. 근심으로 인해 그의 눈동자 색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이 자식! 지금 나에게 그딴 잔소리를 늘어놓을 때가 아니잖아! 샘! 엉뚱하게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바비 아저씨에게 안 갔어?!』
『안 갔어.』
『잘라 말하면 다냐! 하여간 형의 말은 죽어도 안 들어요! 시키는대로 하면 그 밉상 엉덩이로 뿔이라도 돋냐?!』
『돋아.』
『으이그! 알았어. 돌아서서 팬티 내려. 그놈의 망할 뿔, 내가 톱으로 썩둑 잘라줄게.』
한참을 으르렁대며 동생의 두꺼운 어깨를 미움을 담아 밀었다. 도대체가 누굴 닮아서 이렇게 황소 고집인 건지. 그렇다고 해도 팔뚝 두께만 딘의 딱 두 배 사이즈인 동생이다. 밀었다고 움직이면 샘이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딘이 밀친 정도로는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 사실에 살짝 자존심이 상했다.

턱을 치켜들며 대들 듯이 해서 샘이 외쳤다.
『딘! 지금은 내 팬티 내리는게 먼저가 아니야.』
『그럼 뭐가 먼저인데. 똥구멍에 난 털부터 족집게로 뽑아야 하냐?』
『헤더가 이곳에 있어! 나랑 같이 왔어!』
『아앙?』
그게 뭔 소리냐며 딘이 커다란 의문부호를 그렸다.
『미하일 요하넨버그! 본명은 귄테 베르겔트래. 그 자를 죽이러 지금 헤더가 이곳에 와 있단 말이야. 나랑 같이 저 방에 들어갔었어. 608호실, 바로 저기! 지금 그녀가 나치를 죽이려고 총을...』
『워워, 새미. 진정해.』
『진정하고 자시고 할게 뭐가 있어? 608호실이라니까! 이러지 말고 둘이서 같이 가자.』
『아니, 넌 진정해야만 해. 새미?』
딘은 동생의 팔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리고 탐색하는 시선으로 샘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에게 듣고 내가 이미 다 확인한 거야. 네가 말한 미하일 요하넨버그는 3년 전에 세상을 떠났어. 고인이라고.』
이제는 샘이 깜짝 놀랄 차례였다.
『뭐?』
『위암으로 2004년에 그는 죽었어. 격심한 고통으로 마지막은 모습이 대단히 흉했다더군. 네가 말한 608호실은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아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빈 방이야.』

그건 바보 같은 소리였다. 샘은 믿을 수 없다며 꺼림칙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 잘못 알았겠지. 형이 실수한 거야. 바짝 말라버린 노인이 저 방 침대에 누워 있었어. 말도 했다고. 그 할아버지, 눈도 깜빡였어. 난 봤단 말이야. 바깥쪽 명찰에도 이름이...』
『이름? 진짜로? 내 눈엔 안 보이는데?』
『하아?』
속눈썹을 깜빡였다. 딘의 지적이 옳다. 동시에 틀리다. 아까까지만 해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다본 그곳으로는 명찰이 붙어 있지 않았다. 사라졌다. 환장하겠다. 라벨을 붙였다 도로 떼어낸 흔적 같은 것도 안 보인다.
흐트러진 머리를 한 손으로 허둥지둥 쓸어 올렸다. 한쪽 뺨에 달라붙어 있던「미치겠군!」문구가 덕분에 다른쪽 뺨으로 옮겨 붙었다. 그 탓에 간지러워진 양쪽 뺨을 두 손으로 쥐어뜯으며 골똘히 생각했다.
『형. 이건 진짜로...』
『됐네, 멍청아. 네가 살짝 돌은 건 결코 아닐게다. 누구에게는 사실이고, 누구에겐 사실이 아닌 것뿐이지. 우리가 이런 걸 어디 한 두 번 당해봤냐. 그러니 바보처럼 굴지 좀 마.』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는 모습을 취하고 있는 그런 동생을 한심하다며 쳐다봤다.

실례하겠습니다. 딘은 방문을 노크하고 손잡이를 단번에 덜컥 돌렸다.
서늘하고 어두컴컴한 방으로 한 걸음 내딛자 알싸한 먼지 내음이 코를 자극했다.
스위치를 만져 어두운 방안의 불부터 켜려 했다. 그래봤자 진작부터 망가진 전원은 들어오지 않았다. 달각 소리를 내며 다시금 위아래로 스위치를 조작했다. 저런, 안 되는 건가. 딘은 살짝 한숨을 내쉬며 어슴푸레하게 물체들의 형상을 긴장하여 관찰했다.
음, 네모낳게 생긴 저것은 침대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저것은...

『어이. 아직 이곳에 있는 거 맞지?』
그녀가 자신을 부르는 것에 반응, 좁은 어깨를 추은 듯이 움츠렸다. 차갑고도 텅 비어버인 눈동자가 딘을 돌아다 보았다. 입술을 꾹 다문 채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무기력하고 힘을 잃은 모습이 왠지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형처럼 보였다.
『헤더...』
처음에는 행여 덤비진 않을까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점차 강렬한 연민으로 바뀌어갔다. 증오심 하나만으로 버텨온 인생, 그 대상을 영원히 잃어버렸으니 방황할 수밖에 없다. 그가 - 원수가 죽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어 유령이라도 죽이고 싶어한다.
이것이야말로 하늘로부터의 심판이 아닌가.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자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자들에겐 천상에서의 빛이 닫지 않는다.
『그 총을 내려놔.』
딘은 부드럽게 명령했다.

Posted by 미야

2007/04/01 19:09 2007/04/0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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