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fanfic] judgment 15

※ 윈체스터 브라더스의 퇴마 여행기, 드라마 Supernatural 팬픽입니다.
가끔이 아니라 자주 생각하는 건데요, 소금과 성냥불 하나로 귀신 잡는 얘네들, 무지 위태로워 보이지 않나요? 이번에도 뼈 태우는 걸로 걍 끝나네. 어휴. 하여간 불만 많아요. 무려 3주동안 금식시키고 닝닝한 오트밀만 주는 건 너무하다 생각합니다. 허겁지겁 고기를 먹으면 체한다고 해도 그딴 배려 필요 없으얍! 고기, 고기, 고기... 내놓아라, 완소 궁뎅이 고기... ※


욱씬거리는 뒷머리를 부여잡고 신음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봤자 무릎이 타일 바닥에 미끄러지면서 다시금 턱을 찧었다. 아픈 건 둘째고 상당히 볼썽사납게 되었다. 샘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낯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플라스틱 재질의 물통과 거꾸로 세워둔 대걸레였다. 반질반질하게 닳은 수도꼭지, 칸막이, 남성용 변기... 어랍쇼, 화장실이었다.
위장에 들어간 내용물을 게워내기 위해 화장실을 찾았던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점을 빼면 그럴 듯한 가설이다. 끙 소리를 내며 세면대를 의지해 일어섰다. 눈높이가 갑자기 달라지자 헷갈리는 정보를 제때 처리하지 못한 뇌가 경기를 일으켰다. 시야가 핑그르르 돌았다. 죽을 맛이다.
게슴츠레한 눈을 뜨자 거울 속으로「아주 맛이 갔거들랑요」라고 간판을 써붙인, 추레한 몰골의 남자가 나타났다. 이게 정말 자신인가 싶어 뺨을 만져봤다. 촉감이 푸석푸석하다. 거기다 자라난 수염이 지하실 천장으로 퍼렇게 피어난 곰팡이처럼 보였다. 거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대답에「그 사람은 백설공주」라고 충실히 대답했다. 하여 마녀와도 같은 심성을 가진 왕비는 독이 발리워진 사과를 바구니에 넣고 경쟁자를 무찌르기 위해 직접 나서기로 했다.

『미치겠군.』
당장은 낮인지, 밤인지, 아님 새벽인지조차 모르겠다. 환기를 목적으로 달아놓은 창문은 무척이나 작았고, 게다가 작은 원숭이마저 탈출하지 못 하도록 세 개의 쇠창살로 가로막았다. 아무도 저리로 못 나가고, 반대로 들어올 수도 없다. 심지어 빛마저 차단했다. 유리를 사생활 보호 필름으로 검게 코팅해서 시야를 완벽하게 가려놓기까지 했다. 덕분에 바깥 하늘로 태양이 걸렸는지, 달이 걸렸는지, 아니면 24시간 내내 창백한 빛을 내뿜는 할로겐 램프가 걸렸는지 판단이 쉽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 건 손목시계가 9시 12분을 가리켰다는 것이고, 그래봤자 째깍 소리가 멈춰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거였다. 싸우던 도중에 벽에 세게 부딪치기라도 한 모양이다. 분침과 초침 모두 멎었다. 요행을 기대하며 귀에 가져가 흔들어봤다. 그런다고 정상으로 움직이면 이 세상의 시계 수리공들은 밥줄이 끊겨 전멸하고도 남았다. 진작에 포기하고 시곗줄을 풀어 주머니로 넣었다. 싸구려이긴 해도 제법 아끼던 거였는데. 아깝다.

『후욱.』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틀어 손과 얼굴을 씻었다. 냄새 고약한 입안을 행구고 눈도 비볐다.
찬물로 세안을 하자 나 몰라라 도망쳤던 정신이 조금은 돌아왔다. 덧붙여 뒷통수로 난 혹이 장난 아니게 아파왔다. 손으로 만지자 거뭇거뭇한 가루가 묻어나왔다. 말라붙은 피였다. 킁킁 냄새를 맡아보니 녹이 슨 쇠붙이의 비린내가 났다. 우와, 조금은 위험했던 것일지도. 더듬더듬 상처부위를 확인하자 찢어진 부위가 만져졌다. 더 세게 맞았으면「술김에 실수했습니다」수준으론 안 끝났을 거다. 다행히 출혈은 그리 크지 않았다. 병원에는 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쓰게 웃었다. 어쩌면 토하러 화장실에 온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호출한 경찰이 도착하기 전까지 술집 종업원이 자신을 이곳에 가둬둔 것은 아닐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샘은 긴장하여 고개를 들고 출입구를 노려봤다. 그게 맞다면 저 밖에 곤봉을 쥔 경찰이 가슴 든든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큰일 났다!

「당신을 소란죄로 체포하겠소, 못 말릴 술주정뱅이 양반.」
정말로 수갑을 든 경찰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으면 어쩌지 근심하며 손잡이를 돌렸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여차하면 달아나자 마음을 잡아먹었다.
성호를 긋고.
돌격.
부드러운 찰칵 소리가 나면서 문이 열렸다.
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이 되어 밖으로 한 걸음 나왔다.

그런데 얼씨구? 맨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당뇨병을 걱정해야 할 것이 분명한 배불뚝이 아저씨가 부러진 의자 다리를 씩씩하게 휘둘러댔다는 거였다. 테이블이 엎어졌고, 빈 술병이 날아다녔고, 막판엔 대 소동이었다. 가슴을 훤히 드러낸 여자의 선정적인 사진이 절반으로 꺾여져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걸 샘이 밟았다. 살색을 보고 그게 진짜 사람이라 착각한 샘이 고개를 숙인 찰나, 생판 모르던 주먹이 옆구리를 쳤다. 상당히 아팠음이다. 샘은 그 보복으로 돌려차기 시범을 보였고, 남자는 날아가 갖은 종류의 빈병들이 진열되어져 있던 장식장을 덮쳤다. 와르르 쏟아지던 빈병들의 숫자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 말은 즉, 파편을 주워다 담으려면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고개를 숙여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작은 땅콩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다. 청소 상태는 그리 완벽하진 않다. 허나 유리 파편은 하나도 안 보인다. 구둣발로 바닥을 문질러봤다. 규소 재질의 반짝이는 알갱이는 떨어져 있지 않다.
아까 그 술집... 맞아? 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나절 내내 화장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뻗어 있었다면야 모든게 설명이 되긴 한다. 하지만 그렇게나 긴 시간동안 사람이, 그것도 걸리버가 큰 대자로 쓰러져 있는데 나 몰라라 했을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 수수께끼다. 화장실에 시체가 = 또는 시체 비슷한게 누워있으면 건물 주인은 당연히 긴장하는 법이다. 그리고 일찌감치 호들갑을 떨며 911 버튼을 눌러댔다. 어디 그뿐인가. 도착한 응급요원에게 열변을 토하며 주장했을 것이다. 나와는 관계 없는 시체 = 또는 시체 비슷한 것을 빨리 치워가라고.

『저어, 실례합니다.』
이상한 나라로 도착한 앨리스는 회중시계를 들여다보는 토끼에게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으리라는 걸 잘 알면서도 샘은 무식하게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가 어디인가요?』
어쩐지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남자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뮤직 비디오가 나오던 TV에서 눈을 돌렸다. 남자는 사흘을 내리 야근을 했다는 식으로 투로 매우 지쳐 있었다. 어쩌면 단순히 간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확실히 보통 사람들보다 피부가 곱절로 샛노랬다. 아픈 사람이라 그런가, 대꾸하는 목소리에도 짜증이 가득했다.
『지구. 태양계의 세 번째 행성.』
『예?』
『그럼 당신은 이곳이 화성이라 생각한단 말이오? 웃기는 사람이군.』
겨자색의 피부를 가진 남자가 별 이상한 사람 다 봤다며 쏘아붙였다.
음, 그러니까 지금 이 남자는 샘이 장난삼아 타임 워프에 실패한 외계인, 내지는 미래에서 전송되어온 기계 전사 흉내를 내고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길바닥에서 아무나 붙잡고「당신은 도를 믿으십니까?」라고 질문한 것과 같은 레벨이었다.「여기가 어딥니까?」라는 질문이라니. 지금이 몇 년이고, 대통령은 아들 부시가 맞느냐 물어보시지? 그래서 그따위 질문엔 대꾸를 하고 싶지 않다는 오라를 풀풀 풍기며 다시금 TV로 시선을 돌렸다. 또 거지 발싸개 같은 질문을 하면 그때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겠다는 뉘앙스다. 샘은 더 이상 그를 방해할 수 없었다.

자, 그럼 여기서의 문제.
만사 포기하고 밖으로 나갈까요, 아님 가게 안을 한 바퀴 돌아볼까요.
샘은 이도 저도 못하고 주춤거렸다.

『얼레. 세비야의 사도 이시도르가 실수했구먼. 손님 아닌 자를 이리로 보내주시고.』
금방 튀긴 팝콘 접시를 들고 있던 젊은 사내가 못 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귀는 무지 밝았음이다. 샘은「지금 날 보고 그런 건가요?」라는 의미로 두 팔을 벌려보였다.
추측이 맞았던 모양이다. 남자가 욕설일 것이 분명한 단어를 중얼거리며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검은 머리카락에 커다란 키.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은 자다. 어디선가 한 번 봤던 사람 같다.

『저어, 죄송합니다만 아직 술기운이 제법 남아서요. 여기가 어디인가요.』
『흐응... 여기가 어디냐는 질문보다는 여기로 어떻게 왔느냐가 훨씬 더 중요할 것 같은데.』
팝콘을 주섬주섬 주워먹던 남자가 곁눈질로 샘을 쳐다봤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의 눈동자 빛깔이 라일락 꽃을 닮았다.
컬러 콘택트 렌즈라고 하기엔 그 색상이 너무나 엽기적이다. 거기다 수은을 엷게 붓으로 발라대기라도 한 것처럼 번들거리기까지! 조작된 특수효과 같은 것이 아니다. 샘은 움찔하여 뒤로 물러섰다. 설명되어질 수 있는 건 경험에 의하자면 딱 하나이다. 악마다!
『우리는 댁을 이곳으로 초대한 적이 없다구, 막내 윈체스터 씨. 이렇게 예고도 없이 남의 소중한 둥지로 쳐들어오는 건 반칙이라 생각하오만. 물론... 회람판에 적혀진 그대로라면 그러고도 남을 성격이라 생각은 하지만.』
자신의 이름이 불리워졌음에 놀란 샘은 재빨리 생각나는 라틴어 문구를 아무거나 입에 주워담았다.
『DOMINE JESU CHRISTE, REX GLORIAE... 주 예수 그리스도, 영광의 왕이여.』
남자가 혀를 끌끌 찼다.
『에베-』
그리고 접시 속의 팝콘을 쥐어 샘을 향해 콩콩 던졌다.
『왜 이러시나? 보기 흉하게. 나는 쓸데없는 싸움을 매우 싫어해. 이래뵈도 난 평화주의자란 말이야. 그러니까 가만히 있는 자에게 무작정 시비를 걸진 말아주시길. 정 피가 끓어 못 살겠다 싶으면 어물전으로 나가서 저녁 반찬으로 먹을 고등어라도 토막치라고. 그게 아니면...』
마술처럼 크림색의 종이가 남자의 손바닥 위로 둥실 떠올랐다. 그 안에서 영어의 알파벳 글자들이 타자기의 휠이 돌아가는 좌라라락 소리를 내며 떠올랐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위에서 아래로 벌레처럼 무리를 지어 이동했다. 글자들은 차례대로「대학 졸업, 취직, 출세, 은행 융자금 착실히 갚기, 마당 넓은 이층집, 수영장, 예쁜 아내와 자식들...」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가 다시금 흩어졌다.
『아니면 이렇게 만난 것도 운명일테지. 이참에 나와 계약하는 건 어때? 샘 윈체스터.』
사내가 종이를 팔랑팔랑 흔들다 테이블로 올려놓았다.
그 위로 적혀진 단어는「오늘만 5% 특별 할인」이다.
동네 수퍼마켓 세일 문구에 샘도 허둥거렸지만 남자 또한 응? 소리를 내면서 눈을 깜빡였다.
『우왓?! 실례!』
당황한 것이 분명한 사내는 허겁지겁 종이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한참만에야 겨우 근엄함을 되찾고 손을 떼자 글자는「사과 파이-평온한 삶」으로 바뀌었다.

『미안. 내가 요즘 다른 걸로 정신이 좀 없어서... 아, 아무튼 나는 영혼이나 목숨을 댓가로 요구하지 않을 거야. 속된 말로 요즘엔 그런 건 잘 안 팔리거든. 대신 내가 제안하는 건...』
『거절하겠어.』
『어이? 말꼬리를 도중에 싹뚝 자르지 말게.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
『그쪽은 사람이 아니잖아. 게다가 아버지가 늘 말씀하셨다고. 악마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거 아니라고. 형도 말했어. 악마는 늘 허튼 말만 지껄이니까 전부 무시하라고.』
『쳇. 언제부터 아빠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들이 되었을꼬? 댁은 형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동생도 아니었잖아. 지금 와서 갑자기 착한 아들에 착한 동생이 되기로 작정한 거야? 심하네.』
사내가 내려놓은 메모지는 다시 얼룩 하나 없는 순결한 백지가 되었다.
그래봤자 이미 예상했다는 투다. 별 대수롭지도 않다며 컬이 진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뭐, 맘대로 하라고. 사실 나도 억지로 권유할 필요는 못 느끼거든. 그러니 잘 가게. 나가는 길은 오른쪽이고, 도중에 이상한 걸 만나도 내 탓은 아닐세.』

그는 다시 팝콘을 주워먹는 일에 열중했다. 예의 노란 피부의 사내가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렸다. 이제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건 리키 마틴이다. 열정적인 라틴 댄스의 가락에 맞춰 손가락을 빙글 돌렸다.
난감하다.
원래대로라면 가게 밖으로 나가야 했다.
하지만 샘은 본능의 가르침에 따라 가까운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왜?』
남자가 그런 샘이 영 신경에 거슬린다며 얼굴을 찡그렸다.
『마음이 그새 바뀌었어? 막내 윈체스터 씨.』
『그건 아니지만...』
『그럼 여기 앉아서 뭘 하자는 것?』
『한 가지 확인을 하고 싶어서.』
『뭐?』
『아까 나에게 보여주던 종이 있지. 다시 꺼내봐.』
『이봐! 그건 남의 영업 기밀이나 다를 바 없... 야! 맘대로 그러지 마!』

테이블에 엎어진 종이를 다시 뒤집어봤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아까와는 달리 종이는 백지가 아니다. 큼직하게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귀여운 동생」
요거이 뭡니까! 샘은 잡아먹을 기세로 남자를 쏘아봤다.
남자도 지지 않고 옅은 보라색 눈동자로 맞받아 쳤다.
동시에 맥주병을 옆구리에 낀 가죽 재킷의 사내가 그들에게로 어슬렁 어슬렁 다가왔다.
『동생아, 술이다~ 마시자~♪』
그것이 너무나도 잘 아는 목소리였다는 점에서 샘은 진정으로 살기를 느꼈다.

Posted by 미야

2007/03/17 10:24 2007/03/1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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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aasazi 2007/03/18 23:20 # M/D Reply Permalink

    먹다남은 과자부스러기에 꼬이 는 개미처럼 어느새 예까지 또 와버리고 말았습니다.
    재미나게 보고 갑니다. 주말 밤 잘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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