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조사] 풀피리 22

제4장 뜬소문과 재화욕심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한참 떨어진 곳에서 폭죽이 올라왔다.
피요용 귀를 찢는 소리의 끝자락으로 자색의 연꽃무늬가 팡 하고 떠올랐다.
신호탄이다! 나는 반색하며 걷던 방향을 바꿔 폭죽이 터진 곳으로 가고자 했다.
목숨을 건진 수사들과 하인들이 드디어 채비를 정비하고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낙오가 된 자들도 저 불꽃을 보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저리로 몰려갈 거다.

“안 갈래.”
그런데 소년의 반응이 신박했다.
“뭐?”
“모양이 모란문(牡丹纹)이 아니고 구판연(九瓣蓮)이잖아. 싫어. 안 갈래.”
빨리 가자는 재촉에 금릉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가 모란이나 연꽃이나 똑같이 꽃인데 차별하고 앉았어.
삐거덕 소리를 내며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려는 금릉의 목덜미를 얼른 붙잡았다.
자존심 강한 도련님은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며 당장 놔라 언성을 높였다. 그래봤자 배추보다 가벼웠다. 덜렁덜렁 흔들리는 작은 새끼 고양이를 왼손으로 안고 오른손으로는 무성한 덤불을 헤쳤다.
작은 가시가 달린 줄기들이 서로 복잡하게 뒤엉켜 뚫고 가기가 영 성가셨다.

“싫다고 했잖아! 명령이야! 내려놔!”
“명령이라굽쇼? 미안한데 내가 네 녀석 부하는 아니라서.”
“건방진 놈! 나중에 용서해달라고 빌어도 소용없을 줄 알아! 하인들을 시켜 널 몽둥이로 때려주마!”
“어머나~ 그 몽둥이로 날 때려줄 하인들이 저기 있네? 그러니 저기로 가자.”
“안 된다니까! 구판연이잖아! 외숙부가 저 신호를 보고 달려오면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내 두 다리가 부러져! 편지만 써놓고 몰래 나온 주제에 야렵에 실패했냐며 야차처럼 화를 내실 걸? 절대로 모란문이어야 해! 네가 몰라서 그렇지 저기로 가는 건 호랑이 입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격이라고.”
금릉이 다리를 동당거리며 아우성쳤다.

녀석이 외숙부에게 다리뼈가 부러지든 말든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그리고 곰의 입보다 호랑이가 낫다. 둘 다 맹수라서 매섭기는 거기서 거기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호랑이 입 크기가 살짝 작다. 그러니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선택은 호랑이 입이다.
나는 금릉의 몸을 옆구리 쪽으로 흘리면서 등허리를 사선으로 비틀었다.
주변을 충분히 경계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와 말다툼을 하는 와중에 살짝 주의가 흐트러졌던 모양이다. 이렇게까지 가까이 다가왔을 때까지 눈치를 못 챈 건 오롯이 내 실수다. 단단히 각오하기도 전에 식인 곰의 몸통 박치기가 이어졌다.

“우와악!”
이건 바닥에 내동그라진 금릉의 비명.

나는 손에 감고 있던 곤선삭을 수평으로 팽팽하게 잡아당겨 일종의 방패막이로 사용했다. 금속 줄이 튕기는 저음의 굉음과 함께 곤선삭이 곰의 벌어진 아가리 한 가운데를 정확히 후려쳤다.
언젠가 내가 큰돈을 벌면 곤선삭 제작 비밀을 캐고 말테다. 모양은 그렇고 그런 밧줄인데 내가 이것보다 더 튼튼한 걸 본 적이 없다. 괴물이 된 곰의 이빨도 막아주고, 보물이다 보물.

송곳니가 곤선삭에 갈리자 통증을 느꼈던 것 같다. 기습에 실패한 곰은 입을 다물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런데 우리의 악연이 어디 하루 이틀이었냐고. 물러서는 척하여 사람을 방심하게 만들었다가 더 깊게 입질한다는 걸 내가 모를 리 있나. 나 역시 곤선삭을 내리는 척하다 더욱 팽팽하게 들어올렸다. 이걸 몰라 몇 년 전엔 발목이 통째로 날아갔다.
“사람을 그만큼 먹었음 만족이라는 걸 하라고, 이 망할 새끼야!”
욕을 얻어먹은 곰이 눈에서 거짓말처럼 밝은 레이저를 쏘아댔다.
현생이 아니라 전생 시절에도 사람 고기를 탐닉하면 힘이 세졌다가 초현실적인 괴물로 변한다는 전설 같은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같은 소재로 만들어진 컴퓨터 호러 게임도 있었다.
나는 저 망할 놈의 곰이 지금까지 사람을 얼마나 많이 헤쳤을지 짐작이 안 갔다.

“금릉아, 달려!”
“뭐?”
“가서 어른을 불러와! 빨리!”
상황이 급박했다. 나는 금릉의 예상 도주 방향으로 뛰어들어 몸으로 가로막고 권투 스트레이트 컷의 동작을 취했다. 글쎄다. 화살에 맞았을 때도 가죽에 작은 생채기만 났으니 많은 기대는 하지 않았다.
큰 북이 울리는 투웅, 소리는 제법 그럴 듯했지만 곰은 그저 움찔거렸을 뿐이었다.
“빨리 가! 뒤돌아보지 말고 달려! 누구든 좋으니 도와달라고 요청해!”
“뭐라고?! 지금 이 몸더러 등을 보이고 도망치라고 말하는 거야?!”
“아, 좀!! 누가 도망치라고 했어? 가서 어른을 불러오라고!”
곰의 시선을 끌며 네 다리로 후다닥 움직였다. 곰은 그런 나를 쫓아오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가 체중을 실어 찍어 내리려 했다. 두더지 게임도 아닌데 여기를 쿵, 저기를 쿵쿵, 찍었다.
“빨리 가라니까! 형이 하는 말 좀 들어!”
정신없이 공격을 피하면서 피 토하는 심정으로 외치자 그제야 금릉이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약간 절룩거리며, 그래도 제법 빠른 속도로 수풀을 가로지르는 아이를 보며 안도했다.
여기서 내가 충분히 시간을 벌어주면 쟨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와라!”
기합을 아무리 넣어도 내 기세가 그저 허풍에 불과하다는 걸 안다며 곰이 주둥이를 들어 미소를 지었다.
철조망으로 분리된 동물원에서 저 얼굴을 봤음 나름 귀엽다고 했을지도.
곰이 앞발을 휘둘렀다. 간발의 차이로 나무 뒤로 돌아 몸을 숨겼다. 머리가 좋은 녀석은 그대로 돌진하여 날 가리고 있는 나무를 정통으로 갈겼다. 그러자 나무를 통해 전달된 충격이 뱃속을 온통 휘저었다.
트럭에 들이받힌 느낌이었다. 고통을 호소하는 배를 끌어안은 채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순간 오른쪽 귀 옆이 뜨끈해졌다. 곰이 휘저은 앞발에 귓바퀴가 날아간 모양이었다.
그럼 다음은 왼쪽이다. 돌아보지 않고 상체를 숙였다. 다리가 꼬였지만 운이 좋아 곰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어이가 없으려니까. 이 마당에 옆구리가 당겨 아프다니!’
전력질주 달리기 도중에 당겨오는 것처럼 옆구리가 욱신거렸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신체 반응이긴 한데... 내가 언제 산 사람처럼 산소가 필요했다고. 그런데 진짜 개처럼 헐떡거렸다.
“우와아아!”
비명인지 괴성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한쪽 무릎을 접은 자세에서 곤선삭으로 곰의 다리를 걸어 잡아당겼다.
균형을 잃은 곰도 비명인지 괴성인지 모를 울음소리를 냈다.
놈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며 발톱을 세워 사방을 긁었다.
“같이 죽자!”
땅을 박차고 일어서며 뒤로 자빠지려는 곰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빈틈없이 주먹을 꽉 쥐고 놈의 심장 부위를 노렸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한 방이었다. 나에게는 이제 다른 수는 없었다.

주먹이 곰의 가슴을 때리는 것과 동시에 놈의 강철 손톱이 내 목덜미를 길게 훑었다.
내가 급소를 노린 것처럼 녀석도 급소를 노렸다.
충격으로 흐려진 눈을 천천히 깜빡거리자 멀리 떨어져 있던 곰의 얼굴이 순식간에 다가왔다. 아니, 그건 얼굴이 아니라 벌려진 입속이었다. 곰의 입안은 더러운 침으로 흥건했다.
‘뭐, 이만하면 시간은 충분히 벌어줬겠지. 열심히 했다, 나라는 녀석.’
나는 천천히 눈을 감...

그때였다. 눈을 감으려던 찰나 휘리릭 소리를 내며 창백한 금속이 총알처럼 날아왔다.
번쩍이는 금속은 곰의 목 한가운데를 정확히 꿰뚫었다.
‘어?’
곰도 멈칫했다.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어리둥절해 했다. 그리고 나를 보며 네가 그런 거냐고 묻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검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온 건지 보지도 못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도 안 갔다.
곰이 깊숙이 끓어오르는 소리를 흘렸다. 입으로 피거품도 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의 눈에서 불빛이 꺼졌고, 놈은 천천히 주저앉았다.
마침내 놈이 모든 움직임을 멈췄을 때 검 손잡이에 달린 보라색 장식 술이 나풀나풀 흔들렸다.

도깨비에게 홀린 기분이 되어 흔들리는 장식 술을 가만히 손에 쥐었다.
아홉 장 꽃잎을 표현한 매듭이 달린 훌륭한 장식이었다. 꽃의 모양이었음에도 고운 여성이 쓰는 물건이라기보다는 남성적 느낌이 강했다. 부드럽지 않고 강직했고, 어딘지 모르게 기색이 날카로웠다.
그러고 보니 허공에 신호탄이 쏘아 올려 졌을 적에 이와 비슷한 무늬가 떠올랐던 것 같기도 하다.
금릉이 어른을 불렀구나.
내 말대로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 안전하게 자기 일행과 조우했다. 다행이었다.
 
통증을 호소하는 목의 상처에 손을 가져가 세게 눌렀다.
상처부위를 눌렀다 떼어낸 손에는 검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패인 자국이 제법 깊었지만 항상 그래왔듯이 며칠 지나면 새살로 덮여 흉터로 바뀔 것이다.
시선을 움직여 곰의 목에 박힌 검을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번득이는 검 날을 보자 어쩐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이 검의 주인은 원거리에서 눈으로 보지도 않고 검을 집어던져 일격으로 곰의 숨통을 끊었다.
끔찍스러울 정도의 실력이었다. 이런 능력자와 마주쳐서 좋을 일은 하나도 없을 거다.

발뒤축을 세워 살금 걸음으로 죽은 곰으로부터 열 걸음 떨어졌다.
과거, 설양이 만든 가슴의 상처부위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오래된 상처가 욱신 저려오며 만감이 교차했다.
생각하지 말자. 생각이 많아지면 혼란스러울 뿐이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어 현장에서 벗어났다.

Posted by 미야

2021/11/12 14:40 2021/11/1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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