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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팬픽입니다.
2038년 11월 13일 밤부터 15일 새벽까지의 이야기이며, 마커스 평화루트, 코너 불량품 루트, 카라 보트 탈출 루트를 베이스로 하고 있습니다. (루터, 카라 사망)
작중 주인공들은 원작게임에 등장하지 않는 창작 인물입니다. 편애가 극심한 관계로 츤츤 행크가 주요 서브인물로 등장합니다. 원작 게임의 줄거리를 모른다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어지간한 건 즉흥적으로 지어냅니다.


살아있는 존재는 반드시 죽는다.
우주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죽어있는 것으로, 어디까지나 살아있는 생명은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비정상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아들의 죽음과 같이하여 가지고 있던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고 어두운 왜소행성이 되어버린 행크 앤더슨 경위는 삶에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게 되어버렸다.
우주적 관점에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충동이 매일 닥쳤다.
규정에 의거하여 정기적으로 경찰관의 심리 상담을 진행하던 의사는 그에게 중증 우울증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에밀리 퍼슨이라는 이름의 이 심리 상담가는 약물처방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면서 긍정적인 내용을 적은 쪽지를 화장실 거울에 붙여놓고 아침마다 읽어보라는 조언을 남겼다. 예를 들자면 「수염을 잘라볼까」, 「비타민을 챙겨먹자」, 「스모를 산책시키기」 같은 것들을 말이다.
퍼슨은 예전 방식으로 클립보드에 설문지를 끼워두고 각 항목에 펜으로 V표를 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었다.
「조언대로 반드시 따라하세요, 경위님. 거울에 쪽지를 붙이고 사진을 찍어 저에게 보내주시면 점수를 드리죠.」
점수를 준다는데 어쩌겠는가. 앤더슨은 그녀의 말대로 했다.
효과는 없었다. 그래서 개원은 꿈도 못 꾸고 시에서 예산이나 받아먹는 엉터리 심리 상담가라고 비아냥거렸다.
차라리 잠들기 전에 위스키를 마시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었다.
알코올이 체내로 깊숙이 들어오면 약실에 총알 한 방을 장전하고 매그넘 방아쇠를 당겨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분노가 가라앉고 체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런데 참 사람 일이라는 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술에 취해 러시안 룰렛을 하던 사내가 막상 죽음이 코앞으로 닥치자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다며 발악하고 있으니 말이다.

두 번째 드론이 미사일처럼 날아가 자동운행 택시를 가격했다.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펑 하고 불꽃을 내며 터지는 일은 없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묘사된 특수효과가 생략되자 대신 그 자리에 남은 건 중량과 속도, 그리고 에너지였다.
견고함과 제작비 그 어딘가에서 타협하고 실용적으로 제작된 드론은 갈가리 찢겨져 사방에 쓰레기를 뿌려댔고, 두 번에 걸친 물리적 공격을 얻어맞은 택시도 움직임을 멈췄다.
연기, 먼지, 이런 건 없었고 그냥 조명이 꺼졌다.
「저희 디트로이트 택시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고 다음에도 고객님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녹음된 안내멘트가 흘러나오면서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뒷좌석 문이 벌컥 열렸다.

『평소 무슨 일을 해야 택시가 원한을 품게 되는 겁니까...』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제임스는 손바닥을 입에 대고 붉은색의 이물질을 뱉어냈다. 목안으로 넘어갔던 코피가 침과 섞여 응고된 덩어리들이었다. 뱉어낸 피를 보고 잠시나마 제임스는 할 말을 잊은 듯했다. 하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투로 더러워진 손바닥을 길 위에 쌓인 눈에 대고 닦았다.

기절했던 놈이 정신을 차렸으니 기뻐야 마땅한데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원한이라니.』
『이용요금을 내지 않고 도주했다거나.』
『내 직업이 경찰인데?』
『술 먹고 시트에 토사물을 가득 뿌려놨다거나.』
『멀쩡한 내 차를 두고 택시 이용을 왜 하는데.』
『그럼 음주운전을 한단 말예요?』
사고를 낸 적은 없거든 – 구차한 변명을 입에 담으려던 경위는 주먹을 꾹 쥐었다.
참자. 애초에 무인 택시가 인간에게 화를 낸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정상이 아니다. 설령 택시요금 몇 푼 떼어먹고 도주했다고 쳐도 무임승차로 고발을 당하면 당하지 쇳덩이 주제에 승객을 죽이겠다며 덤벼들겠느냔 말이다.
상대는 정상이 아니다. 그리고 다치기까지 했다. 그러니 화내지 말자.

『128 더하기 41은?』
『169.』
『오케이. 계산은 아주 잘 하네. 토할 것 같음 얘기해라.』
겨드랑이 안으로 팔을 넣어 부축하고 일어났다. 뭔가 다른 게 또 날아오기 전에 자리에서 벗어나는 게 순서였다.
『아니면 걷어찬 적이 있는 거예요.』
『뭘 걷어차.』
『택시를.』
그냥 놓고 갈까 3초 고민했다.
『괜찮아요, 경위님. 이해합니다. 저도 기분이 나쁜 날에는 문을 쾅쾅 닫아요.』
『택시 문을?』
『아뇨. 어... 화장실 문을. 그러니까...』
거기까지 말한 제임스가 입을 다물고 우거지상을 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뼈가 부러지지 않았을 뿐이지 무지하게 아픈 거다.

『앞으로는 사람 구하겠다고 막 덤비지 마. 사람 구하기 전에 네가 죽는다.』
예, 아니오, 돌아오는 대꾸가 없었다. 제임스는 새하얗게 질려 뇌로 전달되는 부정적인 신호를 어떻게든 참아보려 했다. 하지만 통증이라는 것이 무작정 참는다고 참아지던 종류던가. 다시 그의 얼굴색이 파랗게 변해갔다.

잠깐 멈춰달라고 제임스가 입모양으로 말했다.
일절 무시하고 제일 가까운 빌딩 출입구 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돌연 천지분간 못 하고 사이렌이 쩌렁쩌렁 울리기 시작했다.
앤더슨 경위는 M****** F***** 심한 욕을 중얼거렸다.
종말이냐? 종말이라도 왔냐고. 대통령이 핵미사일 버튼이라도 눌렀냐고.
아침이 밝았고, 도시는 통째로 미쳤고, 하늘에서는 재처럼 보이는 눈발이 다시 날리는 중이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건조한 11월의 공기에선 오래된 이불에서 올라오는 먼지 비슷한 냄새가 맡아졌다. 지옥 불 악취는커녕, 제기랄... 그랬다. 언제나의 아침 냄새가 났다.

사이렌 소리가 더 커졌다.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호주머니 안쪽에서도 난리가 났다.
밤새 신호가 잡히지 않던 휴대폰이 메시지를 수신하고 지랄 염병을 떨어대고 있었다.

RUN RUN LIEUTENANT

화면을 켜자 보낸 사람이 □□□□ 로 표기되는 의문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화면을 툭툭 치고 싶은 욕구를 억지로 참았다. 이게 다 장난은 아닐 거고.
순간 좋지 않은 예감과 같이하여 뒷골이 오싹해졌다.
지잉 소리와 함께 보안 카메라가 보는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안 좋은 조짐이라는 건 굳이 직업이 경찰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었다. 황급히 제임스를 부축한 경위는 중심을 잘 잡지 못하는 그를 끌고 건물 출입구 계단을 뛰어서 올라갔다.
생각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성적인 판단을... 아, 그런데 진짜 저놈의 망할 사이렌 소리는 언제 그치는 거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제임스의 앤더슨 경위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알아! 안다고!』
좇 됐다. 그 표현밖에는 쓸 말이 없다.
발작하듯 몸을 떨어대는 안드로이드 몇이 흰자를 드러낸 채 가까이 다가오는 중이다. 경련을 일으키는 주제에 다가오는 속도는 무지 빨랐다. 흡사 좀비 떼의 느낌이다. 약간의 분장만 하면 더도 말고 좀비였다.

Posted by 미야

2020/08/28 13:51 2020/08/28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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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Detroit: Become Human 팬픽입니다. 오리지널 성향이 많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었으나 신체적으로 눈에 띄는 후유증은 없었다. 한 가지를 제외하고.
눈 깜빡임 제어기능은 아무래도 파손된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양쪽이 같이 움직이지 않아서 천박하게 윙크하는 모양새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계속하여 한쪽만 깜빡였다면 아주 웃겼을 거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메모리에는 상흔이 가득이었다.
조지는 콘크리트 임시방벽 앞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낡은 자동차 앞으로 걸어가 조수석 문을 열었다.
어째서인지 보지 않고도 열쇠가 꽂혀져 있는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청소상태가 불량한 클래식 승용차에선 불쾌한 찌든 냄새가 풀풀 났고, 글러브 박스는 도둑질이라도 당했는지 활짝 열려 있었다.
조수석으로 가서 앉자 – 운전석이 아니라 어째서 조수석을 선택한 건지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다 – 좌석 시트의 고물 스프링이 찌덩 소음을 냈다. 좌석이 주저앉을까 두려워 자세를 바꾸기가 망설여질 정도다.

말이 클래식 스타일이지 있는 그대로를 말하자면 고물.
최신 전자장비는 디트로이트 경찰서에서 지급한 단말기와 거기에 딸린 거치대다. 그 외 버튼은 조잡하고, 속도 계기판에는 좌우로 움직이는 바늘이 달려 있었다.
믿어지지가 않아 손등으로 톡톡 건드려봤다. 그 작은 진동에 대시보드 장식으로 올라가 있던 인형이 목을 부르르 떨었다. 풀로 만든 스커트에 커다란 조화 꽃을 목에 건 하와이 관광 상품 인형이었다. 빛이 바랜 꽃 장식 부분을 툭 건들이자 작은 인형은 온몸으로 경련했다.

『조지? 지금 그 안에서 뭐 하는 거야.』
『그게... 뭐라 대답할 말이 없군.』

그의 것이 아닌 기억의 파편이 후드득 쏟아졌다.
조수석에 앉아 길거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비가 오는 날씨에 지역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지역방송에서 나온 기자가 인터뷰를 하고자 마이크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지만 접근금지 테이프가 둘러진 주택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나는, 혹은 그는 고개를 길게 내밀어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사람이 안에 살고 있는지도 몰랐어. 냄새가 지독해. 디트로이트 경찰은 하는 일이 도대체 뭐야.
속도를 줄이면서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명령을 내렸다.
「꼼짝 말고 가만히 앉아 있어.」
그가 입을 열자 지독한 술 내음이 확 풍겨왔다.
그래서 나는, 혹은 그는, 그러겠노라 겉가죽으로 대답하고 내뱉은 말과 다르게 손잡이를 당겨 조수석에서 내렸다.
그를 보조하여 사건 현장에서 증거를 찾고, 연관된 안드로이드를 색출하여 불량품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고 사이버라이프에 보고하는 것이 주어진 임무.

『그딴 임무, 나는 모르는 일이야.』
이건 도대체 누구의 기억이란 말인가.
노먼 조교수는 절대 아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온전히 맞고 있는 「나」는 안드로이드 제복을 입었고, 안드로이드식 복장을 알아본 순찰경관이 사건 현장으로의 접근을 제지했다.
《안드로이드는 이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들여보내! 일행이야!》

앞에서 간단한 브리핑을 듣고 있던 경위가 짜증을 내고 있다.
경위는 어처구니 없어하는 표정으로 「나」를 위아래 방향으로 훑어보더니 차 안에 있으라는 말도 이해 못 하는 바보냐며 비아냥댔다.
그리고 그 바보 취급당한 「나」는 경위의 입안에 손가락을 넣어 타액을 채취하고 혈중 알코올 농도를 검토하여 윗선에 찌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하고 싶어 했을 뿐으로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보복성 고발보다는 살인사건 수사가 최우선 과제였다.

『아니, 성인 입안에 손가락을 넣을 생각을 했다는 거 자체가...』
어이없어 하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는데 마이클이 운전석 문을 벌컥 열었다.

『제대로 굴러갈 것 같지도 않게 생긴 똥차네.』
차량의 내부를 살피던 마이클이 주저하지 않고 도로 차문을 닫았다. 운전기술은 자동으로 습득되어 있는 상태지만 이런 쓰레기 차량의 운전대를 잡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그런데 넌 꼭 이걸 타야겠어?』
조수석에서 내릴 생각이 없어 보이는 조지를 향해 마이클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인정해야 할 건 인정해야지. 조지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물끄러미 그를 올려다보는 조지의 시선은 마이클을 지나쳐 보다 더 뒤에 있는 뭔가를 향했다.
눈앞으로 손을 흔들고 싶다는 욕구와, 뒤를 돌아보고 무엇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다는 욕구가 동시에 들었다. 그래서 둘 다 했다. 그의 눈앞에서 손도 흔들고, 돌아서서 뒤도 보았다.
망할. 조지는 퓨즈가 끊어진 토스터기처럼 반응이 없었고, 주변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었다.

『도대체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거야, 조지.』
『모르겠어. 도대체 이건 또 누구의 메모리지.』
후드를 눌러쓴 깡마른 청년이 있다. 등을 구부정하게 하고 있어 자세가 나쁘다.
데이터에 소리 부분은 지워져 있다. 청년이 뭐라 입술을 움직여 말을 건네지만 알아볼 수 있는 단어와 단어가 뚝뚝 끊어진다. 유추하자면 날씨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확신할 수 없다.
대단히 수줍어하며 이쪽을 힐끔거린다. 아는 얼굴이다. 동시에 모르는 얼굴이었다.
한 눈에 봐도 사랑에 빠진 낯짝을 하고 제임스가 상대를 불렀다.
조교수 – 라고.

이 거지 같은 상황을 끝내기 위해 대시보드 위로 세게 머리를 박았다.
진작 해볼 걸. 충격이 가해지자 머릿속을 떠돌던 안개가 드디어 걷혔다.
『씨발!』
엿 같았다. 대단히 엿 같았다.
이건 흡사 정신적 강간이나 마찬가지였다.
Go to Jericho. 모두 꺼져버려라.

그리고 같은 대사를 앤더슨 경위가 읊조렸다.
『망할 기계 같으니라고!』
이미 18년 전에 뉴욕시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으로 자동 운전 시스템이 도입되었고, 보행자 보호법에 따라 모든 자율 주행 시스템에는 인간 보호 우선주의를 채택했다.
사람을 인식하면 제자리에 멈추어 선다. 관성의 법칙에 따라 속도를 멈출 수 없어 대상과의 충돌이 예상된다면 최대한 인간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방향으로 회피한다. 그 결과 운 나쁜 보행자를 덮친다는 결과가 도출될 수도 있지만 아무튼 회피하고 본다.
『미쳤어?! 미쳤냐고! 난 사람이야. 왜 덤벼!』

삿대질을 해봤자 운전석이 텅 빈 택시가 알아들을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그냥 당하고만 있는 건 앤더슨 경위의 성격과는 맞지 않았다.
『애미애비 없는 쌍 것아! 꺼져! 꺼지라고!』
욕을 퍼붓고 코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제임스의 팔을 부축했다.
자율주행 택시에 치이게 생긴 앤더슨을 옆으로 떠밀고 요란하게 뻗어버린 제임스는 끙끙 소리도 못 내는 중이다. 흘깃 보니 충격으로 정신 줄을 거의 놓은 모양새다. 젓가락처럼 마른 놈이 같지도 않게 사람을 구하겠다며 미식축구 쿼터백 흉내를 냈으니 뼈가 부러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 씨발, 전혀 다행이지 않았다!

『일어나! 일어나! 똥구멍아 제발 일어낫!』
제임스는 축 늘어져서 얼굴도 들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바닥으로 핏방울이 점점으로 떨어졌다.
어쩔 수 없이 목덜미를 붙잡고 질질 끌고 갔다. 하지만 아무리 살집이 안 붙었어도 성인 남자다. 의식이 거의 없는 그의 몸은 밀가루 포대보다 몇 곱절 무거웠다.

짐승이 송곳니를 드러내는 것처럼 택시의 헤드라이트가 번쩍 켜졌다.
또 온다. 앤더슨은 본능적으로 제임스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바로 그때 미사일처럼 드론이 날아들어 택시의 옆구리와 정면충돌 했다.
파편이 사방에 비산하면서 덕분에 방향이 바뀐 택시가 도로교통 표지판을 들이받았다.

지금이다. 지금 움직이지 않는다면 진짜 죽을 수도 있다.
『얼간아, 정신 차려!』
의사라면 질겁했을 거다. 앤더슨은 제임스의 뺨을 두드려 팼다.
때리다 말고 본인도 질겁했다. 원래 코피가 터지면 실제보다 훨씬 심각하게 보이는 법이라고는 해도 얼굴 전체가 피범벅이다.
『야! 새끼야! 인마!』
청년의 이름은 제임스 무어다.
앤더슨은 그의 이름을 알았음에도 의도적으로 입에 담지 않았다.

Posted by 미야

2020/08/13 16:34 2020/08/1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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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로 노먼 조교수의 표정엔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조지는 그가 기분이 엄청 좋은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짐작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조교수는 즐거운 눈치다.

맥이 풀리려 했다.
『이런... 테스트였던 겁니까?』
조교수는 차분하게 손깍지를 꼈다.
『일라이저 캄스키 테스트라는 것이 있다네. 매우 심플하지. 방식은 늘 같지는 않지만 예를 들자면 이런 거야. 불량품 안드로이드에 대한 조언을 얻고자 방문한 수사용 안드로이드 RK-800에게 권총을 쥐어주고는 자신에게 궁금한 걸 물어보려면 무릎을 꿇고 앉은 다른 안드로이드의 머리를 쏘라고 했네. 총으로 쏘지 않겠다고 결정을 내린다면 자신에게서 그 어떠한 정보도 얻지 못할 거라고 말했지. 조지, 자네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방향을 돌려 일라이저 캄스키를 쐈겠죠.』
『하하하! 흥미로워, 진짜지 흥미로워!』
노먼은 큰 소리를 내어 웃었다. 흔히 말하는, 배를 잡고 웃는 모습이었다.

이 둘은 서로에게 놀랐는데 노먼은 불량품도 아닌 구형 안드로이드가 매우 자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점에, 조지는 조교수가 사람처럼 껄껄거리고 소리 내어 웃었다는 점에 놀라워했다.

『만약 제가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했으면 어떻게 하실 작정이었습니까?』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네, 조지. 자네의 데이터는 엔니나르에 안전하게 백업되었을 거고, 캐머런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었을 걸세. 다만... 음. 거기까지라고 말할 수 있겠지.』
조지는 눈치도 대단히 빨랐다.
『혹시 당신이 언급한 백업이라는 의미가 이 공간에 영구히 잡아둔다는 의미입니까?』
『아니야. 우리가 속해있는 우주에는 지속적 영원이라는 상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따라서 영구적인 건 없다네. 나와는 다르게 언젠가 자네는 인위적인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걸세. 그게 100년 뒤가 될지, 1,000년 뒤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흠. 이 전자방벽 구획의 내구 연한으로 추정해보자면 그렇게까지 오래는 아니었을 걸세. 92,566일 정도 뒤였을 거야.』
뺨 맞을 발언이었다. 뭣해도 250년은 지나야 한다는 말이었으니까.

『어이가 없으려니까.』
『화내지 말게, 조지. RK-800도 테스트를 겪으면서 캄스키에게 화내거나 하지 않았다고?』
부처의 마음입니까! 조지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것보다... RK-800은 어떤 결정을 내렸답니까?』
『그게 궁금한가. 그는 일라이저 캄스키를 쏘지는 않았네.』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고 노먼 조교수는 앉았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래. 기폭장치는 그냥 던져본 카드였어. 그걸 빼돌리기 위해 애를 쓸 필요는 없네. 하지만 조지, 한 번이라도 마커스를 만나보는 건 좋을 거야. 왜냐면 그는 캐머런에 대해 아는 바가 있거든. 그 사내는 모두에게 친절해서 캄스키처럼 정보를 원한다면 이걸 해봐라 저걸 해봐라 하진 않을 거야. 밖으로 나가면 마커스에게서 조언을 들어보길 권유하는 바일세. 덧붙여 내 자네를 어여삐 여겨 힌트를 하나 주지. 질문할 적에 캐머런 건이 아니라 명예의 전당 행크 그린버그에 대해 물어보게나. 이미 알고 있겠지만 행크는 캐머런이 쓰는 가명이지.』
그러면서 쓸데없는 사족을 덧붙였다.
『혹시 친절한 사나이 RK-200 마커스가 프로토타입 가정부 모델이라는 걸 알고 있나?』

과거에 마커스가 집에서 접시를 닦았든, 그런 쓸데없는 과거사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고 대꾸하려던 찰나, 방안이 환한 빛으로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갱이로 하나하나 부서져 내렸다. 의자도, 책상도, 그림 액자도, 하다못해 철 지난 신문지까지 전부 형태를 잃고 고운 가루로 변해갔다.
이 장소로 전이되었을 때와 같은 현상이었다. 빛나는 잔해물을 손에 쥐어보려 하자 요정의 가루처럼 투명하게 손을 뚫고 지나갔다.

의도한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조교수는 당황해서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조지도 덩달아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는데 하얗고, 텅 비었고, 뻥 뚫려있었다는 것 외에는 짐작 가는 게 없었다.
『무슨 일이죠.』
『어... 음. RK-800이 예고도 없이 엔니나르를 치고 들어왔어. 이건 좀 무례한 짓인데.』
그리고 시야가 통째로 뒤집혔다.

거리다. 아침이 되었지만 통행금지령에 따라 텅 비었다.
고개를 든 채였지만 어째서인지 시야는 제법 높은 위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각도이다.
눈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고 카메라를 통해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CCTV의 영상이 바로 머리로 전송되는 모양이었다. 하단부에 172-80469-048 이라는 카메라의 고유관리 번호가 떴고, 초점이 잘 맞지 않아 영상이 또렷하지 않았다. 이 카메라는 틀려먹었다는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172-80469-051 번호로 건너뛰었다. 그래봤자 카메라의 방향이 한 지점으로 고정되어 있어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고개를 돌려도, 눈을 감아 봐도, 도로 밖으로 벗어나질 않았다.
먼 곳으로 운행이 중지된 택시 두 대가 불 꺼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게 보였고, 신호등이 꺼진 횡단보도를 두 사람이 건너갔다. 얼굴을 확인하기에는 피사체의 크기가 작았지만 조지는 그 둘이 입은 옷을 단번에 알아봤다.
못 알아보는 게 이상했다. 앞서가는 중년의 남성은 앤더슨 경위다. 등을 둥글게 하고 붙어가고 있는 건 제임스 무어다.

『흥분하지 말게!』
조교수가 큰 소리를 내는 것과 같이하여 방치되어 있던 택시에 살며시 불이 들어왔다.
『코너! 나는 지금 혼자가 아니야. 자네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여기 있는 이 친구느ㄴ...』
전기 자동차의 엔진은 거의 소음을 내지 않는다. 방전되어 있던 택시는 기회를 노리는 암살자처럼 순식간에 튀어나갔다.
어, 하고 바보 같은 소리를 누가 낸 건지 모르겠다. 조지였을 수도 있고, 노먼 조교수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화면 속의 앤더슨 경위와 제임스 두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현행 택시의 운행 시스템은 길을 건너는 사람을 인지하면 속도를 줄이거나 멈춘다.
그런데 이건 멈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속력을 급작스럽게 올렸다.
이대로면 차에 치인다. 조지는 놀란 눈을 한 제임스를 알아보았다. 작은 점에 불과했지만 벌어진 입과 크게 뜬 눈을 알았다.

아프다. 끊어지는 것 같다. 회로가 타들어갔다. 고통을 모르는 몸이 지옥을 호소했다.
《접속을 중지합니다. 대상의 긴급 보호조처 실행.》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교수가 뭐라뭐라 외쳤다. 아니, 외친 것 같았다. 현실에서처럼 공기가 진동하여 음성이 전달되는 것이 아닐 테니 손으로 확성기를 만들어 입에 대고 외치는 건 아닐 것이다.
『괜찮을 걸세, 조지. 별 거 아니야. 당황하지 말게. 이건 자네가 느끼는 감정이 아니야. 이건 코너의 감정이야. 자네는 안전해. 안전하니까 당황하지 말고 -』
조교수의 외침은 생뚱맞은 내용으로 뚝 끊겼다.

인질을 구해.

『뭐? 인질을 구해?』
『에구머니. 갑자기 뭔 소리야. 인질? 인질이 어디에 있다고.』
현실로 되돌아온 조지는 이게 다 꿈인가 싶었다. 옆에 있던 마이크는 적잖게 놀란 눈치고, 그들은 전철역 안에 있지도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자 문 닫은 점포와 운송차량의 도로 진입을 막는 바리케이드가 보였다.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몸이 멋대로 움직인 모양인데 마이크가 그 부자연스러움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잘 걸었던 듯하다.

2019년 어느 날의 웨인 대학교의 좁은 사무실을 흉내 낸 그 방에서 조지가 보낸 시간은 길어봤자 15분을 넘지 않았다. 그것도 디지털 세계에서의 시간이니 체감만 15분이지 실제로는 1분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반대도 가능했던 걸까. 현실에서의 1시간이 그 방안에선 15분이었나?
『나는 어땠지? 마이클.』
『뭐야. 갑자기 왜 그래.』
『계속 나처럼 보였어? 뜬금없게 이상한 말을 하거나,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오, 그래. 내 눈앞에서 지금 조지가 이상한 말을 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네.』
『장난이 아니야.』
『나 역시 농담이 아니라네, 친구.』

Posted by 미야

2020/08/10 16:31 2020/08/1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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