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되찾은 자식이어라, 제목을 [0.txt]로 박아서 컴퓨터 속에 이런게 있는지도 몰랐답니다. 하여간 이 글은 어디까지나 콘티입니다. 분위기상 가급적 손대지 않았습니다. 제목은 당연히(?) 유키 카오리님의《소년이 부화하는 소리》를 차용했습니다. 《수은의 공주》를 먼저 읽어주시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검은 날개는 이미 드리워졌다.
아이야, 아이야. 손뼉치며 짝짝. 올려다보며 대답하렴.

- 그렇게 손으로 흙을 파면 손가락이 아프지 않아요?
- 물론 아파요. 손톱도 부러진 걸요, 자요. 엉망이죠?
- 피가 나고 있잖아요. 그래도 신음소리하나 내지 않으시다니. 참을성이 무척 많으시군요. 저어, 나무 뿌리가 제법 성가셔 보이는데 도와드려요? 솔직히 이런 숲에서 넓적한 구덩이를 파는 일은 어린애 혼자서 하기 쉬운 일이 아니지요.
- 괜찮아요, 친절하신 사제님. 이건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이예요. 약속을 했거든요.
- 누구와?
- 동생.
- 으음, 제가 알아 맞춰 볼까요. 저기 보이는 가방 안에 들어가 가만히 잠들어 있는 아이?
- 네. 저 아이가 바로 내 남동생이예요. 참 예쁘게 생겼죠?
- 영특하게 생겼군요. 이마도 훤칠하고 코도 오똑하고. 그런데?
- 맞아요, 오늘 아침에 죽었어요.
- 그렇군요.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숨소리가 영 들리지 않더라니만. 그래서 매장을 하시려는 건가요?
- 아뇨, 약속을 지키려는 거예요.
- 약속?
- 만약... 동생은 나에게 말했어요. 어느날 자기가 갑자기 숨을 쉬지 않게 되면 주저하지 말고 이 나무 아래로 데리고 와서 묻으라고 그랬어요.
- 호오∼. 그게 매장 아니던가요?
- 달라요. 이건 의식이예요.
- 의식?
- 동생은 자신했어요. 이 나무의 마력으로 다시금 되살아날 수 있다고.
- 와우∼! 대단한 나무로군요.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는데. 그 말이 진짜?
- 몰라요. 하지만 동생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 그렇군요.
- ...
- 물어봐도 될까요? 당신의 동생... 어째서?
- 아빠가 미워했으니까. 엄마가 멋대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분명 내 동생인데.
- 저런, 그래서 누군가 동생의 목을 부러뜨렸어요?
- 아니요. 그 전에... 커다란 구슬을 억지로 삼키게 했어요.
- 애처롭기도 하지. 어머니가 슬퍼했겠군요.
- 아뇨. 엄마는 웃었어요.
- 그래요? 그렇다면 당신은.
- 난 동생을 살리러 여기에 이렇게 왔잖아요.
- 좋아요... 하지만 아가씨? 동생이 살아나면 그걸로 다 해결이 될까?
- 으응... 일단 그 구슬을 억지로 먹인 건 나니까.
- 짐작은 했소만.
- 괜찮아요, 괜찮아. 그런 얼굴 하지 말아요. 동생은 말했어요. 자길 죽여도 다시 되살아날 수 있다고. 그러니 주저하지 말라고...
- 하여 힘 주어 고개를 꺾었다? 허어, 꼬마 아가씨는 그 말을 믿어요?
- 믿든 안 믿든, 사제님과는 상관 없잖아요.
- 지당하신 말씀... 그래도 이거 하나만 물어볼께요. 동생을 사랑해요?
- 사랑하고 있어요.
- 저기... 동생이 살아나면 집으로 데리고 갈 거예요?
- 아뇨. 밟아버릴 거예요.
- 왜요?
- 그게 재미있으니까.
- 그래서 이것으로 모두 몇 번째?
- 열 일곱 번째.
- 아빠는 뭐라고 그래요?
- 매일 흙장난이나 한다고 싫어해요.
- 그러실테죠. 저기. 아가씨? 인형을 묻고 파내는 장난을 즐기엔 이곳은 너무 더러워요. 썩은 낙엽도 너무 많고... 나처럼 이상한 오빠도 지나가잖아요? 차라리 정원 한 가운데 묻어주면? 그건 어떨까요. 장소를 옮깁시다. 네?
- 장미 나무 아래로?
- 아니면 단풍 나무 아래로.
- 단풍나무 아래로는 내 귀여운 강아지 쉬페른이 누워 있는데... 어쩌지.
- 그럼 쉬페른에게 친구를 만들어줘요, 그럼 좋겠네요.
- 으음. 하지만 쉬페른이 괜찮다고 할지... 방해 받는다고 싫어하면?
- 간단해요. 쉬페른을 밖으로 꺼내주고 잠시 의견을 물어보면 되죠. 싫다고 하면? 그냥 참으라고 해요. 좋다고 하면? 친구가 생기는 거죠. 그나저나 꼬마 아가씨? 저길 봐요... 당신을 찾으러 사람들이 나왔네요.
- 저런! 벌써 들켰나. 아직... 동생을 파묻지 못했는데.
- 어쩌겠어요. 오늘의 장례식 놀이는 이제 그만... 집으로 가요. 어두워졌어요.
- 하는 수 없지. 내일 와서 구덩이를 마저 파겠어요. 사제님.
- 좋으실대로.
- 만나서 반가웠어요.
- 저도 귀여운 공주님을 뵈어 기뻤어요. 그럼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세요. 당신의 남동생이 무사히 되살아나면 제 안부도 전해주고요.
- 저... 잠깐만요. 당신 이름이 뭐였다고 동생에게 말해주죠?
- 수수께끼의 사제 제로스였다고 말해주세요. 그럼 될 거예요, 공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