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다가서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린다는 건 바로 이런 걸 가리키는 것이겠죠? 나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오늘도 당신에게 다가서고 있어요.
하지만 리나님... 그대는 결코 나라는 마족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아요. 봐요, 손가락으로 겨우 뺨을 슬그마니 눌러봤을 뿐인데 눈에 불을 밝히고 화를 내고 있잖아요.

『제로스! 너 자꾸 귀찮게 할래?!』
『어머, 오해라고요. 전 그저 머리카락이 붙은 걸 떼려 했을 뿐이라고요.』
『아까는 실밥이 묻었다고 했지? 그 전엔 하루살이 벌레가 달라붙었다 했고. 한 번 속지 두 번 속냐?! 너 지금 나에게 시비거는 거야 뭐야!』

저런∼, 또 때리려는 거예요? 주먹 쥐고 그렇게 으르렁대지 말아요. 상처를 낸 것도 아니고 만진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뭘 그래요. 억울하다고요. 죽어라 끌어안고 허리를 비틀기를 했나요, 아님 등가죽이 휘어져라 붙잡고 억지 키스라도 했나요. 그러니까 너무 구박하지 말아요. 자꾸 그러시면 저는 더 나쁜 짓하고 싶어진단 말예요. 이런 짓, 저런 짓, 요런 짓...♡

『에잇, 이젠 귀찮아! 죽어버렷!』

겨우 팔꿈치 안쪽을 살짝 꼬집었을 뿐입니다만. 어라? 이번엔 코브라 트위스트가 아닌가요? 기술이 그새 많이 느셨군요. 뭐라고요? 엄마 아빠 용가리가 뭐요? 기술 개발도 좋지만 그 이름은 어떻게 좀 해주십사... 와아아! 빠르기도 하지. 이거 아차하다간 머리통 깨지겠는데요. 멋진 발차기 기술입니다. 칭찬을 해드리죠.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맞긴 싫어요. 아프진 않지만 기분이 좀 그래지거든요? 그러니까 오늘은 그냥 피할래요.

『이리와서 얌전히 나에게 그냥 맞아줘!! 야! 제로스!』
그래요. 그렇게 내 이름을 불러줘요. 저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리 안왓?! 제로스!!』
그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나는 참 좋아요. 아세요? 당신은 내 이름을 불러도 되는 유일한 여자라는 걸... 오직 그대만이 내 이름을 부를 수 있지요. 전 오직 당신에게만 허락했습니다. 앙칼진 목소리일지언정... 그래도 상관 없습니다.

『야! 제로스!』
『싫어요. 전 얻어맞을 법한 짓은 아.직. 하지 않았단 말예요.』

얼레? 그런데 이게 뭐람. 어디서 들려오는 쩌적 소리? 난 분명 잘 피했는데?
『꺄아악! 사고쳤다아아아! 난 몰라!! 엉뚱한 걸 잡았다아아아!!』
아항∼. 근사합니다. 키메라 하나 날아갔군. 이거 정말 장관입니다. 눈부신 햇살을 배경으로 파란 돌이 하늘을 날고 있군요? 그렇다고 그렇게 놀란 얼굴은 하지 말아요. 키메라 하나 잡았다고 누가 뭐라고 하진 않을 거예요. 만약 누가 뭐라고 하면 저에게 말만 하세요. 내가 가서 가죽을 벗겨서 소금에 저린 다음 독에 담아 깊은 땅속에 묻어버리겠어요. 말씀만 하십시오. 리나님이 원하신다면 그 즉시 왕국 하나라도 초토화 시켜버리겠어요. 어허허. 그렇게 쌍심지를 곤두세우며 노려보지 마세요. 농담이었습니다. 마족은 농담도 못합니까? 드래곤만 농담하라는 법 있나요?

『그렇게 비실비실 웃지만 말고 어떻게 좀 해봐, 제로스! 제르가디스가 죽었어!』

달려가지 말아요. 제르가디스씨는 그렇게 많이 다치지 않았을 거예요. 지겨울 정도로 튼튼하니까.
리나님? 울상짓는 거예요? 이봐요, 내 앞에서 그런 얼굴 하지 말아요. 뭐가 걱정된다고 그러세요. 봐요. 숨 쉬고 있네요. 눈이 좀 돌아갔지만 충격을 받아서 그런 것일 뿐, 아쉬울 정도로 말짱합니다. 뱃가죽에 구멍 뚫리지 않았으니 그렇게 만져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치잇. 노골적으로 안심해 하는 표정을 지으시는군요. 당신이란 여자... 못 말려.

『에라, 나도 모르겠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묻어버리자!』

난 알아요. 당신이 일부러 그러고 있다는 것을... 장난끼와 뒤섞인 교묘한 계략.
정신을 차린 제르가디스씨가 버럭 화내면서 당신의 뒷머리를 주먹으로 냅다 후려갈겼으면 하는 거지요? 그렇게 해서 자신의 실수를 대충 무마하려는 거지요? 그 인간이 화내면 그걸로 당신은 안심할 수 있다는 거죠? 죄값을 치뤘다... 이거지요?

역시나.
제르가디스씨가 엉망으로 화를 내고 계십니다. 저런? 저 인간이 웃고 있군요. 살 떨려라.
리나님... 아무래도 저 퍼러딩딩 인간이 단단히 삐진 모양입니다.

『제르, 미안해. 아잉아잉!』
『(흥!)』
『제르가디이∼스? 아잉아잉!』

그래도 그는 당신에게 손찌검을 하지 않는군요. 말 없이 벽이나 노려보다니. 속 좁기도 하지.
하지만 이번에 리나님 당신이 저지른 실수는 좀 심각한 듯 싶습니다.
망가진 마혈옥 팬던트 이거 말예요. 물건이예요. 리나님도 대충 눈치채신 듯 하지만 불빛에 잘 비추어보니 보석 뒷면으로《찬미, 위대한 라그라디아》라는 신성 문자가 세팅되어져 있어요. 알을 깍은 솜씨도 솜씨이지만 라그라디아... 그것은 너무나 오랜 옛적에 이름조차 지워진 수룡왕의 본명이지요. 여지간한 인간은 그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건 상당한 고위층의 신관이나 무녀가 가졌을 법한 사연 있는 장신구일 확률이 높아요.
그리고 보니 생각나네요. 듣자 하니 이분의 할아버지가 적법사 레죠였다면서요?

『시끄러워!』

흐으응. 저렇게 꽁한 걸 보니 정말 물건이었나 보네.
그래도 리나님, 그렇게 쪼그라들 필요는 없습니다. 저런 건 그냥 무시하세요. 일주일 정도 지나면 자기가 알아서 화를 풀겠죠. 저런 인간은 내버려두는 것이 상책입니다. 당신이 신경 써서 무어라 하면 더 펄펄 뛰거나 할 뿐이니까... 예나 지금이나 저런 인간들은 가만히 내버려둬야 합니다.

『미안... 망가뜨려서. 저걸 위해서라면 나 뭐든지 할테니까... 화내지 마.』

잠시나마 숨이 막혔습니다. 뭐든지 다 해주겠다뇨? 리나님.
저 돌덩이 인간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는 걸 아세요? 맙소사. 그런 끔찍한 제안을 하시면 나는 어떻게 해요! 자고로 남자에게 숙녀는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엄마에게 배우지도 않았나요? 남자는 다 늑대라고요. 믿는 순간 잡아먹힌단 말입니다. 절대로 안심해도 안되고, 방심도 금물입니다. 보라고요. 기회는 이때다 하면서 이상한 걸 요구하면 어쩌려구 그래요.
젠장... 저 인간이 침을 삼키고 있잖아.
리나님! 이제 어떻게 해요. 난 몰라요.

예? 제르가디스씨가 나 같은 줄 아느냐고요? 실례입니다. 전 어디까지나 숙녀라고요.
어라? 이봐요. 여보세요? 왜 절 무시하는 거지요? 둘만의 세계로 날아가지 마요. 저기... 리나님?

『너는 날 힘들어 하지. 나는 그게 짜증이 난단 말이다!!』

어? 이거 뭐야.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잖아.
헤에∼, 정색해 하는 제르가디스씨라니. 뭐예요, 당신. 리나님에게 화 내는 거예요?
웃기지 말아, 키메라 나으리. 사치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었네? 가우리씨랑 똑같은 대접을 받고 싶었어? 나랑 동등한 위치에 서고 싶었어? 한심하잖아. 당신 혹시 바보 아냐?
나는 알고 있지. 리나님은 당신을 그저 가여워 할 따름이야. 아무리 잘난 척 해보았자 비루 먹은 강아지 신세다 이거지. 측은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고... 넌 보호받는 어린아이일 뿐이라구.
그러니까 물러서. 위치를 알고 자신의 입장을 생각하라고.
한심해서... 이건 코미디입니다.

《제로스?》
《네, 리나님. 말씀하세요.》
《저 녀석 (소곤) 도대체 왜 저러는 거냐? 마구 화내고... 넌 혹시 아니?》

에? 자, 잠깐만. 뭐라고요, 리나님? 제르가디스씨가 지금 무엇 때문에 화를 내느냐고요?
저에게 지금 물어본 거... 맙소사. 정말 모른다는 건가.
그렇다고 해도 절대로 가르쳐드리지 않겠습니다. 내가 미쳤수?

우와앗! 그렇다고 테이블을 걷어차기냐, 제르가디스 나으리? 이봐. 죽어라 날 노려봐도 나에겐 효과가 없다. 하나도 무섭지 않단 말이야. 게다가 이게 뭐람. 리나님에게 물이 튀었어. 너무하군. 그 다혈질 기질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냐? 생각 같아서는 저걸 그냥...!! 오냐 오냐 봐주었더니 마족 무서운 줄도 모르고!
리나님, 일어나요.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요. 그렇게 울 것 같이 그러지 마요. 왜 신경쓰는 겁니까? 저 키메라가 날뛰든 말든... 이봐요. 둘이서 지금 뭐하려는 겁니까?
어, 어... 이봐욧!

『키스해도 될까?』
『응.』

제기랄. 당신은 알고 계셨나요? 저 인간이 가진 은밀한 마음... 너무하는군.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건가요? 아니면... 모르겠어. 당신은 때로 나보다 더 잔혹해요.

『헤헤헤, 제르∼♡ 내가 안마해 줄께.』
『오냐. 꽉꽉 주물러. 꽉꽉.』

화나는군요.
보기 흉해. 닿기만 해도 어쩔 줄 몰라하는 바보같은 남자.
왜요, 흥분됩니까? 이상한 얼굴을 하고 어깨를 구부정히 하는 걸 보니 수상쩍군요.

『어머머, 난 결백해! 목 조르지 않았다고! 이건 절대 거짓말이 아냐! 그러니까 얼굴 새파랗게 질려서 고꾸라지지 말란 말이야, 아잉! 제르가디스으∼!!』

졸라놓고서 딴 소리 하긴.
잘들 놀고 있다... 칫.
아세요? 난 가끔 당신이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지곤 합니다.


PS: 마이너스 버전이라... 원래의 것과 나란히 놓고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