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람을 차별해도 바이러스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요즘처럼 바람이 심하게 불고 밤과 낮의 기온차가 심하게 벌어질 때, 이불 한 번 내차고 자면 자동으로 콧물은 차오르게 되어 있다.
목이 컬컬해지고 기분이 가라앉는다. 수도꼭지 패킹이 헐거워져 콧물은 뚝뚝 떨어진다.
여차하면 재채기에 두통, 발열, 기침까지.

속설에 의하면 바보는 감기에 안 걸린다지만 알고 보면 다 거짓말이다.
『푸에취!』
가우리의 코는 형편없이 헐어버렸다. 손수건은 이미 곰삭 젖었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여기서 훌쩍거리면 저기선 콜록거리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내 접시가 네 접시고, 네 밥그릇이 내 밥그릇이니 전염은 피할 수 없다. 목숨을 걸고 소시지를 반으로 쪼개어 먹는 사이다. 감기도 절반으로 딱 나뉘어 먹는 건 지당한 말씀. 하여 가우리가 콧물을 매달고 산지 정확히 이틀이 지나자 리나의 눈 또한 벌겋게 충혈되었다.
『콜록!』

여기까지 일이 진행되면 제르가디스는 군소리 없이 가까운 약초방으로 걸어가 입에 쓴 약을 한 첩 장만한다.
『여기, 화이투변 감기약 하나.』
남이 먹을게 아니다. 자기가 먹을 거였다.
리나가 근육통을 호소한지 약 반나절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다시금 감기 환자는 쪼개어 분열한다.

『제르? 훗훗훗... 나 좀 잠깐만. 콜록.』
눈물로 촉촉히 젖어 이름을 부른다. 열에 들뜬 눈으로 한참을 응시, 무릎의 힘을 쫘악 빼놓는다. 도망가고픈 생각이 굴뚝이지만 거기서 나오는 연기라는게 나이 18세 육체 건강한 소년다운 욕망이다. 세이렌의 노랫가락에 취한 뱃사람이 따로 없다. 이리 오라 부르는 목소리에 몸이 응답, 싫어도 끌려간다. 여기다 리나가 팔꿈치를 붙잡고 늘어지면 쐐기는 단단히 박히는 셈이다. 아예 만사 포기하는게 차라리 속시원하다.

코앞에서 대포 물살이 터져나오든, 끈적거리는 재채기 파편이 얼굴에 휘감기든.
푸랏차차.
제르가디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 흉악한 걸 고스란히 뒤집어 썼다.

『옮기면 낫는다고들 하잖아.』
손수건을 흔들며 리나는 당당하게 미소지었다.
『아무렴... 넌 오래 살 거다, 리나 인버스. (으득!)』
이런 까닭에 최초의 감기 환자 발생에부터 전원 병상에 드러눕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멀리서 제왕학 수업에 비지땀을 흘리는 아멜리아를 대신하여 어연 마족 하나가 사랑(원래는 흑심)과 정의(정직하게 말해 음모)로 무장한 백의의 천사로 둔갑하고 두 팔을 걷어 부친다는 점에 있다.
제르가디스는 졸음이 쏟아지는 독한 감기약을 억지로 먹고 뻗었으니 자느라 조용하다.
바나나를 환자식으로 받은 가우리 또한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쓸 짬이 없다.
그렇다면 마족은?
『열이 내리면 땀이 많이 나오죠? 자요, 따뜻하게 덥힌 타올이예요. 제가 몸을 구석구석 닦아 드릴께용~ 리나님? 협조 부탁~♡』
『우왁!!』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묘한 표정을 짓는 제로스 때문에 리나는 탈수증을 일으키기 일보 직전이었다.

제로스가 간호사 놀이를 무척이나 즐긴다는 점에서...
여기서 우리는 최초에 곤히 잠이 든 가우리의 이불을 몰래 벗겨낸 하얀 손길이 있었다는 점을 미루어 의심해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