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바람에 뺨이 거칠다. 턱 밑으로 깔깔한 느낌이 영 신경 쓰였다. 조그마한 화장 통을 열어 허브 향기 가득한 크림을 손가락으로 퍼 올렸다.

『불쌍하기도 하지.』

얼굴을 둥글게 문지르던 동작을 멈추었다. 눈썹을 한아름이나 위로 끌어올리며 그렇게 중얼거린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사실은 쏘아보았다.) 내가 지금 피부 노화의 길을 걷고 있다 이거냐?! 허어~ 고약한지고.
그러나 방향을 잘못 짚었다. 그녀는 내 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허리를 굽혀 노숙용 침낭 속으로 따스한 물을 담은 보온통을 넣고 있었다. 그것으로 냉기 가득한 바닥에 누울 차비가 끝났다. 담요를 잡아당기며 그녀가 부운 눈꺼풀을 깜빡였다.

『정말 굳었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고요.』

아항, 제르가디스 얘기였군.
긴장을 풀고 다시금 허브 크림통으로 손가락을 꾸셔 넣었다.
확실히... 소년의 얼굴은 짠 물의 내음마저 잊어버린 깊은 바다와도 같았다. 돌을 던져도 출렁 소리 나지 않는... 공룡이 다이빙을 시도해도 파문하나 일지 않을 끈끈한 점액질의 물을 연상시켰다. 그는 놀랍도록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가끔씩 나는 마법으로 움직이는 석상을 떠올리곤 했다.

『피부가 돌이라서 쭉쭉- 당겨지거나 하지 않나 봐요.』

반박은 하지 않았다. 글쎄올시다. 모닥불 속으로 잔가지를 집어 던졌다.
어깨를 토닥토닥 주무르는 아멜리아의 그림자가 그 뒤로 길게 드리워졌다.

슬퍼도 그만, 기뻐도 그만, 뱃가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도 그만.
오늘만 해도 그렇다. 굴러오는 낙석에 맞아 오른쪽 엄지 손톱이 절반이나 뒤집어졌으면 아프다는 시늉을 해야 정상이 아니던가. 머리에 혹이 생겼다며 서럽게 울부짖던 가우리와 엄청 비교가 되었던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리나, 리나, 리나! 나 돌에 맞았어!』
가우리는 커다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어린애처럼 울었다. 그런데 그 옆에 선 제르가디스는 벗기다 만 오렌지 껍질처럼 변한 손톱을 무표정한 얼굴로 뽀작냈다. 눈동자는 건조하게 메말라 있었다. 살갗에 달랑달랑 매달린 손톱이 뜯겨져 나가면서 피가 제법 나왔다. 그래도 소년은 잘 참았다.

『안 아파?』
『아파.』
『얼마나.』
『제법.』
그러면서 투명 매니큐어라도 발랐다는 듯이 손톱에 후후 바람이나 불어댔다.

그는 울지 않는다. 하품할 적엔 쉽게 나오는 눈물이 정작 중요한 순간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고집스럽게 입술을 꾸욱 다물고만 있을 뿐, 그것으로 끝이다.

『아마 강아지 풀로 코를 간질여도 재채기는커녕 꿈쩍도 안할 거야.』
『그럴지도.』
『혹시 말이야. 신경이 석화되고 있다면... 불가능한 소린 아니잖아?』
『어떻게 해요, 그게 정말이면!』
『음. 가만있어 봐, 아멜리아. 잠깐, 잠깐만.』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려 소년을 찾았다.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깨끗한 수건에 찬물을 적혀 다친 손을 감싸쥐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눈이 마주치는 것과 동시에 그가 걸음을 빨리 해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왜 자신을 찾느냐는 시선... 나는 허겁지겁 가까운 곳으로 앉아보라는 손짓을 했다.

『뭔대.』
순순히 그가 응해주었다. 양반다리로 제르가디스는 내 옆으로 해서 앉았다.
미안.
싫어한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저질러 버렸다. 손가락을 들고는 푹- 그의 귓구멍을 찔렀다.
『τ§≒§¿αΩ∀---!!』
인간이 들어서는 안되는 비명을 질러대며 그가 고꾸라졌다. 파들파들 떨리는 귓볼이 하늘거리는 해파리처럼 보였다. 빨개진 목덜미가 석탄처럼 뜨겁다. 묘하게 구부러진 눈 가장자리로 눈물이 구슬처럼 매달렸다. 벌려진 콧구멍 만세. 뜨거운 콧김이 아주 반가웠다.

『호오~ 괜찮네요.』
『반응 좋지? 아멜리아.』
『네, 염려할 단계는 아니라고 봐요.』
『석화 같은 소리. 괜한 걱정이었잖아. 정상이야, 이 얜.』

아멜리아와 나는 나란히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침낭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급소를 당한 제르가디스는「도대체 이게 무슨 짓거리야!」마구 화를 내고 있었지만... 뭐, 어때.

평온하다.
모두들 지금처럼 건강했으면.
이 몸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달님에게 비는 소원은 이외로 아주 간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