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예쁜 거 많아요. 한 번 골라봐요~ 좋다, 거기 젊은 오빠!』
판에 박힌 말과 틀에 넣어 굳어진 표정으로 능숙하게 손님을 잡아 끌던 악세사리 수레의 여주인은 간만에 손뼉을 짝 쳤다. 장사꾼들은 보살 다음으로 사람을 잘 본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좋은 손님」과「나쁜 손님」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질이 나쁜 손님으로는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어린 여학생이 있다. 이들은 말이 많을 뿐더러 지갑은 상대적으로 얇다. 지지배배 떠들며 좌판을 밑바닥까지 헤집어 놓고는「그저 그렇네~」한 마디 툭 던져놓고 도망간다.
반면 좋은 손님으로는 어린 공주님과 귀부인 세트가 있다. 어머니들은 이상한 곳에서 허영심을 부리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그녀들이 데리고 다니는 어린 아기들의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예쁘다고 딱 한 마디만 던지면 머리핀 하나 정도는 가뿐하게 팔아치울 수 있다. 자식놈 칭찬에 녹아나지 않는 부모들은 없다.「우리 꼬마 아가씨는 머릿결도 곱지~」그러면 매상은 오른다.

아울러 대표적인 좋은 손님이라는 것은...
『이거 얼마지.』
여자 친구 생각에 뺨이 발가죽죽하게 변한 풋내기 청년이라는 것이 있다.

『안목 좋으시네, 젊은 오빠는. 그건 좀 비싸요. 40디나르. 하지만 물건은 좋아요.』
약간의 실수... 지나치게 세게 불렀다. 생각보다 좀 비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얀 옷의 총각은 40디나르라는 말에 움찔하더니만 곧 좌판으로부터 물러설 기색을 보였다. 안된다. 간만의 매상이 달아나려 하고 있음이다. 주인은 재빨리 표정을 바꿔 가격을 정정했다.
『여자 친구에게 선물하려는 거라면 5디나르 깎아줄게요. 나도 여자인데 그런 건 서비스를 해줘야지. 안 그렇수?』
그래서 장사라는 건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한 맛이 있는 법이다. 주거니 받거니, 당기거니 밀거니~ 여주인은 윙크를 해보이며 모양이 좋은 머리핀 두서너 가지를 더 끄집어냈다.
가격은 40디나르 이하로, 모양은 크고 번쩍일지어다.

남자들은 보통 머리핀의 기능성은 고려하지 않는다. 모양이 화려하고 눈에 띄면 그걸로 만족해 한다. 여자들이 핀의 열리고 닫기는 부분을 세심하게 살피는 것과는 그 행동 양상이 사뭇 다르다. 따라서 신사분들께 물건을 권하려면 제품의 튼튼함은 생략, 그 아름다움을 최대로 어필하는 것이 좋다.

『이거, 크리스탈이예요. 예쁘죠? 햇빛에 반사되면 투명하고 반짝거려요. 구슬 하나하나를 실로 꿰어서 만든 거예요. 아니면 황금으로 도장한 이 나뭇잎 모양의 머리핀은 어때요? 특이한 걸 좋아하시면 그걸로 하시는게 좋을텐데.』

이번 손님은 고집이 강한 편이었다. 여주인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제일 먼저 골랐던 핀에서 좀처럼 눈길을 떼지 않았다. 중간 크기의 머리핀, 가운데로 붉은 빛깔의 채색 유리알이 박혔다. 그 알이 너무 커서 약간은 촌스럽게도 보이는... 어쨌거나 객관적 미는 거두절미하고 자기 맘에 썩 들어하는 눈치다.

『어디 좀 볼까.』
여기서 좌판 여주인은 잠시나마 뇌졸중을 일으키고 쓰러질 뻔하였다.
급성 맹장염으로 병원에 실려갔을 적에도 무의식중에 업무용 스마일을 지어보여 모두를 겁 먹게 만들었던 그녀였건만. 그간 제2의 피부처럼 튼튼하게 달라붙어 있던 미소의 가면이 강한 충격을 받고는 아래로 살짝 떨어졌다.
사내는 자기 머리로 기꺼이 핀을 꼽았다.
그리고 거울을 찬찬히 들여다 봤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그 모양을 잘 감상했다.
빙긋 웃었다.

- 여, 여, 여, 여자 친구에게 선물하려던 것이 아니었어?!

『괜찮은데. 여기, 35디나르.』
『히억!』
노력했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었던지 좌판 여주인은 고개를 퍽 숙였다. 말 문이 막혔을 적엔 아무래도 행동이 최고다. 꾸벅 절하자.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다시는 오지 마세요.

『제르가디스씨. 머리에서 그 핀을 얼른 떼어내세요. 남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잖아요.』
보라색 머리카락의 신관은 안절부절해 마지 않았다. 아무렴. 허우대 멀쩡한 사내가 머리에다가 핀을 꼽고 걸어가고 있다. 그것도 커다란 유리 구슬이 달린 핀이다. 눈에 띄고도 남음이 있다.
제로스는 식은땀을 줄줄 흘려가며 제르가디스 뒤를 따라갔다.

『하지만 머리핀이라는 건 직접 해보지 않고는 그 모양새를 짐작하기 어렵단 말이다. 그냥 봐서는 예뻐도 정작 머리에 꽂고 나면 영 아니올시다인 경우가 있거든. 옷이라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실제로 입어보지 않고는 그 모양을...』
설명은 나중이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이 점차 커지자 제로스는 파랗게 질렸다.
『잘 알았으니까 빨리 빼욧! 다들 쳐다본다니까요!』
『하지만 포장지를 아직 사지 못했는데.』
『주머니에 넣고 있으면 되잖아요.』
『내 옷엔 주머니가 없어.』
『그럼 손에다 쥐고 있으라고요! 아악! 정말이지 이 남자는!!』

투명하고 고운 유리알이 달렸다. 귀여운 머리핀이다.
마음이 두근.
잠시나마 설레는 건 좋다.
어차피 이번에도 그녀의 손에는 건내주지 못한 채 강물에다 훌쩍 집어 던져질 팔자겠지만...
제르가디스는 머리핀을 끌러 손에다 잘 감추었다.

『유별을 떨어도 결국엔 리나님께는 주지 않을 거면서~ 에비~ 길바닥에 버릴 거면서~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다가 항상 쓰레기통에 내다 버리는 주제에~ 리나님이 알면 화낼 거야. 낭비 대왕, 낭비 대왕~』
『시끄러. 리나에게 고자질하면 죽을 줄 알어!』
『뭐하러 말해요, 당신의 푼수 짓을. 도대체 내 머리로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니까. 머리핀 하나 사고 버리고, 귀걸이 하나 사고 버리고, 목걸이 하나 사고 버리고. 바보 짓이라니까, 바보 짓.』

마음이 두근.
심장 없는 마족은 절대로 이해 못한다.
잠시나마 설레는 건 좋다.
기쁘다고 웃어줄 한 여자의 얼굴을 상상만 하는 것으로도 발바닥에 날개가 돋는다.

『어서 오세요, 예쁜 거 많아요. 한 번 골라봐요~ 좋다, 거기 젊은 오빠!』
『이거 얼마지.』

그래서 그는 오늘도 길가를 어슬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