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케된 거여~!! 옮겨도 옮겨도 끝이 안 나!! 서관으로 이전 완료율은 약 45% 가량입니다. 그나마 초기작과 미완작은 전멸이고... 잘 한다, 잘 해.


의외로 작정하고 하늘을 감상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인간의 몸 구조는 어디까지나 앞을 바라보도록 만들어져 있지 위를 쳐다보기에는 근육에 부담이 가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뻣뻣하게 당겨지는 목덜미, 결정적으로 보행에 신경 좀 쓰라며 충고하는... 쉽게 말해 앞을 잘 보고 걸으라며 종주먹을 들이미는 친절한 주변 사람들로 인해 「파란 하늘 구경하기」는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그래서 늘 잊고 만다. 하얀 구름이 둥실 떠있는 저 하늘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를...

『이야~♬』

풀밭에 벌러덩 드러눕는 것도 그래서 나쁘지 않다. 만족스럽게 웃어가며 팔과 다리를 쭈욱 뻗어봤다.
저 위는 맑음의 융단이요, 지상은 부드러운 풀들의 바다로다, 이것이 어찌 극락이 아니겠느냐.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왕생할지어다.

3월의 마지막 주.
갗 자라난 1년생 잡초들은 아직까지는 물을 잔뜩 머금고 있기 마련이다. 두어달 정도 지나면 그 줄기 속으로 딱딱한 쇠가 박혀 톱질을 하지 않는 한 부러뜨릴 수 없을 정도로 뻣뻣해지겠으나 아직은 아니다. 어린아이의 땀 찬 머리카락처럼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면 그 촉감이 무척 특이하다. 뿐만 아니라 어떤 풀들은 외부의 자극에 반응, 제법 괜찮은 냄새를 발산하기도 한다. 뭐랄까, 그 향기라는 건 방긋 미소짓는 입술 틈새로 엿보이는 하얀 이를 연상시킨다.

『좋구나, 좋아~♪』
눈을 감았다. 장갑을 벗은 맨 손으로 풀들을 휘저었다. 가냘픈 줄기가 하나 만져졌다. 손가락에 힘을 주자 간단히 둘로 꺾였다.
낭만 만세.
별 생각 없이 꺾긴 줄기를 입술 위로 가져갔다.

- 휘익

하지만 부드러운 줄기를 입에 물고 덜렁덜렁 흔들어 보려던 야심찬 낭만 계획은 순식간에 제지 당했다.
낚시줄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팔이 위로 힘껏 당겨져 올라갔다.
절반은 졸고 있었던 난 부스스 눈을 뜨고 잡혀 올라간 내 팔의 끝자락을 올려다 보았다.
손목을 으스러져라 붙잡고 있는 흰색의 장갑이 보였다.

『이 양반이... 미쳤수?!』
『앙?』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했다.
그러다 퍼득 이해했다. 제로스가 나로부터 빼앗아 내던진 풀이라는 것이 여느 강아지풀 비스므리한 평범한 잡초 종류가 아니었던 것이다.
연녹색 바탕에 선명한 선홍색 반점. 결정적으로 갈고리 모양으로 뒤틀린 어린 떡잎... 흡 하고 숨을 죽였다.

정확한 풀의 이름이 뭔지는 모른다. 흔히「개빛 살살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운다. 이놈은 열매가 치명적인 독초다. 꽃과 잎사귀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덜 해롭긴 한데 그래도 그 효과는 충분히 기분 나쁘다. 이 풀에서 나오는 누런 빛깔의 즙은 이른바 고농축 설사약이다. 데릴라에게 장가들었던 삼손이라 할지언정 얼굴이 개빛으로 변해 바닥을 살살 기어가게 된다고 해서 그 별명이 개빛 살살이... 심한 구토감과 오한이 그 뒤를 따른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대로 혼수상태로 돌입, 황천의 강으로 유람을 떠나게 되는 일도 간혹 발생한다.

아이고야.
쓴 웃음을 지었다. 많고 많은 것들 중에서 하필이면 흔하지 않은 개빛 살살이를 꺾다니.
쳇 소리를 내고 스르르 눈을 감았다.

『뭡니까, 지금 그 반응은!』
『괜찮아, 괜찮아. 별 일도 아니구마.』

부주의하긴 했다. 하지만 그게 어때서?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눈 부시다. 겨우 개빛 살살이 정도로 호들갑을 떨기에는 대단히 억울하지 않을까.
마음을 열고 호흡을 가다듬어라. 내 몸의 우주는 곧 충만해진다.

당연히 제로스는 나의 반응을 곡해했다.
마족에겐 낭만도, 계절 감각도 없는 탓이다.
그는 순진하다 싶을 정도로 깊게 근심하며 이마를 접었다.

『흐응... 어디선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은 있습니다. 내가 독을 먹어도 해를 입지 아니함은 너무 배가 고파서 독초이든 뭐든 소화가 가능함이더라.』
지금 뭐시라. 감겼던 눈이 한쪽만 슬그머니 올라갔다.
『이보게나, 제로스군.』
『예, 리나님.』
『자네는 지금 내가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길바닥에 쓰러졌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닌가 아니라 그런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걱정하고 있습니다만.』

어느틈엔가 내 표정이 뚱해졌다.
포근하게 내리는 비의 느낌이 좋아 일부러 우산을 접고 길을 걸어봤다.
그랬더니만 쪼르르 다가와 「혹시 지갑 잃어버리고 울고 있는 거예요?」라고 걱정스레 물어본다.
슬픈 내용의 시를 읽고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를 묵묵히 지켜보다 말고「좌절하지 말고 힘내세요. 다음 마을에서는 분명 좋은 일거리를 얻을 수 있을 거에요」라며 어깨를 감싸 안는다.
이쪽은 기분을 망치기 이전에 황망해진다.

- 엇박자도 이러면 중증이잖아!

팔을 위로 뻗었다. 부드러운 촉감의 옷깃이 손가락에 닿았다.
번개 같이 잡아챘다. 그걸 힘 줘서 아래로 잡아당겼다.
『우왓?!』
마족도 예기치 않게 나뒹굴 적엔 깜짝 놀라서 외마디 비명 정도는 지른다. 거기다 쓰러뜨린 당사자가 이 몸이고 보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지난 천 년간, 그의 팔뚝으로 하얀 이를 박아댄 간덩이 분 인간이 딱 두 명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바로 나라는 여자다. (또 다른 한 명이 누구냐고는 묻지 마라. 나에게「어서 저 작자를 물어~!」라고 명령받은 가우리라고 말하기엔 내 입장이 너무 난처하지 않겠는가) 어디 그뿐이던가, 화려한 목 조르기에다가, 허리 감고 뒤틀기에 이름도 생소한 아크로베타, 베어 하프...
제로스는 깜짝 놀라 방어적으로 외쳤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게 다 보였다.

『가까운 마을로 가서 재빨리 샌드위치라도 사오도록 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임마, 그게 아냐.』
『에?』

깜짝 놀란 척 하긴.
소문으로는 인간이 400년을 살면 신선이 된다고 한다. 감정을 잊고, 번민을 씻고, 궁극적으로는 내가 누구인지마저 기억해내지 못하게 되면서 신선이 된다.
그렇다면 마족은 사정이 어떨까.
가벼운 마음으로 제로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겉으로 보기에 애완견을 귀엽다고 어루만지고 있는 듯한 동작이긴 했지만... 일단은 쓰다듬는 쪽도, 쓰다듬을 당하는 쪽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자자, 눈을 감고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말해봐.』
『그, 그러니까...』
『마음을 편하게 먹고 말해보라니까.』
『리나님 뱃속으로 소화액이 꿀렁꿀렁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만...』
『멍청이! 그런게 아니라니까!!』

그간 난 제로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왔다.
시치미떼기, 땡깡부리기, 허풍치기... 등등.
이제 또 한 가지를 가르치려 하고 있다.

풀밭에 누워 손으로 꺾은 들풀 하나를 입고 물고는 콧소리를 흥얼거린다.
귀로는 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멀리 날아가는 들짐승의 날개짓 소리를 한가롭게 흘려보낸다...

『이것이 바로 「춘곤증에 쓰러져 게으름 피우다」라고 하는 것이다. 알겠어?』
『리나님... 저기 말입니다. 그런 것까지 제가 꼭 알고 있어야 하는 겁니까?』
『몰라도 상관은 없지. 하지만 말이야...』

여기 천년을 살아온 순수 마족이 하나 있다.
이제 그는 자기 이름이 뭔지 알고 있으며, 드디어 번민을 하기 시작했으며, 서서히 감정을 학습하고 있다.
제로스를 쓰다듬던 나의 손가락이 별안간 그 움직임을 뚜욱 멈췄다.
신선이 타락하면 다시 인간이 된다. 그렇게 해서 불노불사의 신선은 기어코 죽는다.
그렇다면 마족도 비슷하지 않을까.
타락한다.
그래서 인간이 된다.
필연적으로 죽는다.
그것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이가 바로 이곳에 있다.

『몰라도 상관은 없겠지. 그래도 난 네가 알고 있었으면 해.』
『왜요?』
『짜샤- 이유는 없어. 그래도 굳이 이유를 대보라고 한다면 지금 내가 무지무지 심심하다는 것이고, 따라서 넌 거기에 장단을 맞춰줘야 한다는 거야. 싫다고 말하면 미워할테다. 그러니까 싫든 좋든 나랑 같이 놀아줘~』

흐응. 제로스의 고개가 살짝 옆으로 기울어졌다.
『글세요. 지금 말씀하시는「춘곤증에 쓰러져 게으름 피우다」라는 것에 대해선 그다지 흥미가 동하지는 않군요. 하지만 말입니다...』
일순간 그의 표정이 짓궂게 변했다.
『난 달리 이런 걸 알고 있어요. 풀밭에 쓰러진 여자는 일단 덮치고 볼 일이다...』
『울레.』
천둥번개도 치지 않았건만 푸른 하늘에 시커멓고 진한 빛깔의 구름이 올라왔다.
이어 가볍게 입술을 빨아들이는 촉감이 느껴졌다.

난 알고 있다.
언젠가... 나라는 여자는 <마족에게 살해당한 불운한 여 마도사>로 기억되게 될 것이다. 어머, 그런 표정 짓지 말라구. 내가 무슨 무식쟁이 석상이라도 되는 줄 아나. 나도 눈치는 훤하다. 예언이나 운세 상담 전화 따위가 아니더라도 그 정도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가까운 시일 안에 아마도 난 끝장날 거다.

하지만 앞으로 2천년 뒤에는 지금과는 달리 사정이 약간 달라질지도 모른다.
혹시 아나.
<수신관을 궁극적으로 소멸하게끔 만든 대단한 여자>로 내 이름이 거론될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2천년 쯤 뒤에... 그 정도로 먼 미래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