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는 좀 떨어진 곳에 자리한 단층짜리 집이다. 지붕에도 이끼가 자라난 것이 척 보면 매우 오래된 집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낡은 집 특유의 지저분한 느낌은 없다. 통나무를 손질해서 단단하게 얽어놓은 담벼락은 어린애 허리 밑둥 높이, 심어놓은 관목들도 작아서 친밀감을 느끼게 했다. 들어가는 입구 앞에서 포즈만 잘 잡으면 동화나라 ABC도 될 수 있을지도... 꽃으로 장식되진 않았어도 충분히 사랑스럽다.
크기는 협소한 편으로 많은 식솔이 딸린 가정은 살기 어렵겠다. 마당이라 해봤자 두 평 남짓이고 하나못해 개를 풀어놓을 공간도 마땅치 않다. 애시당초 이 집을 지은 사람은 처음부터 「혼자 사는 사람」을 염두에 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부엌을 코딱지 크기로 만들어 놓고, 침실 하나 덜렁에다가, 그 흔한 텃밭도 없이 울타리를 좁게 두를 이유가 없다.

『아, 예... 그분의 제자들은 이곳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시에*를 입은 어린 소년은 맹꽁이 자물쇠에 열쇠를 찔러박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쪽에서 질문을 하기도 전에 말해주는 걸 봐선 아마도 방문자들 중 절대 다수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장소가 협소하군요」라며 고개를 갸웃거린 탓일 거다.
귀족이 기르는 개의 집도 이보단 더 넓겠다, 불평이 나올 법도 하다.

『청현자님은 시중드는 사람도 들이지 않았습니다. 청소나 요리, 세탁도 손수 하셨더랬죠. 그래서 공간을 넓게 잡지 않았던 거죠. 쓸데 없이 크면 일거리가 늘어나니까요.』
녹이 슬어서 그런가, 열쇠는 잘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소년의 모습에선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 항상 그렇게 해왔던 건지 별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자물쇠를 탈탈탈 흔들어댔다. 쇠붙이가 둔탁한 소음을 내며 그 작은 손아귀 안에서 벌건 가루를 토해냈다. 소년은 다시 열쇠를 비틀었다. 억지는 사촌보다 더 낫다던가, 맹꽁이가 풀렸다.

『자, 들어오시지요. 이쪽입니다.』
내부는 밝았다. 넓은 창문으로 자연광이 한껏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이래가지고는 여름에는 좀 덥겠다 싶을 정도로 집 안으로 빛이 가득했다.
그러나 원래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아무리 잘 손질을 해도 서늘한 한기가 도는 법이다. 그렇게 밝았음에도 온기는 없었다. 바짝 말랐고 창백했다.

『콜록...』
일주일에 두 번씩 청소를 한다지만 창틀 위로 뽀얗게 쌓인 먼지가 눈에 제법 거슬렸다.
책상 커버도 주름이 져서 펴지지 않았다. 게다가 마룻바닥엔 구둣자국이 선명했다. 마지막으로 이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물에 젖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는 얘기인데... 그 전에 비가 왔던 것이 아니라면 걸레질을 하러 들어온 사람이 부주의했다는 뜻이다.
흐음, 전자보다는 후자의 가능성이 높았다. 얼룩덜룩한 발자국은 여럿이 아니라 하나다. 대걸레질로 닦아 젖은 마룻바닥 위로 더러운 신발을 신은 채 거실을 휭하니 가로질러간 거다. 그래서 자국이 남은 것이다.

...... 거실을 가로질러 가다?

왜 그랬을까.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저 안으로 중요한 뭔가가 있는 것이다.
안내를 맡은 소년 역시 발자국 자취를 고스란히 따라 안쪽으로 걸어갔다.
신도들이여, 그대들은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엡스콜룬*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마차는 차도로, 배는 물 위로만 떠다닐진저.

흘끔 뒤돌아 이쪽을 바라보는 것은 가까이 와서 보라는 신호.
소년은 손가락으로 오동나무 탁자를 가리켰다.

방금 전에 읽다 말고 뒤집어 덮어놓은 듯한 책이 한 권... 용도를 알 길 없는 유리병이 있었고 그 뒤로는 손바닥 크기의 거울이 놓여졌다. 하지만 그런 잡다스런 소품들은 그다지 중요한게 아니다. 그중에서 눈여겨 봐야할 것은 딱 하나다.

수첩 크기다. 접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고, 뚜껑을 덮으면 자주색의 끈으로 묶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멀리 여행다니면서도 가지고 다니기 쉽게 생겼다. 실제로도 들고 다녔을 거다. 낡은 정도로 봐선 애용한 물건이다. 덧판은 튼튼한 오동 나무이고 앞면은 가죽으로 모서리를 보완했다.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느낌이다. 펼쳐놓은 모습은 두께가 얇은 시집 같다. 옆구리에 차고 다니면 멋스러운 맛이 날지도... 가장자리로 때가 묻긴 했어도 낭만은 그 빛이 바래지 않았다. 전문 수집가가 아니더라도 좋아할 물건이다.
그런 화첩 안으로 고운 세필로 정성껏 그린 초상화가 들어가 있다. 묘사의 기교는 보통이 아니다.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속눈썹 모양새까지 생생하다.

화사하게 웃고 있다. 기분 좋은 표정이다. 까르르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자세는 편안했고 눈가엔 주름 하나 없다. 흘러내린 붉은 머리카락은 금방에라도 바람에 날릴 것만 같다. 맑은 날씨... 시원하다. 노란색의 원피스를 입고 상체를 다소 앞으로 내밀었다. 장신구는 일체 달지 않아 소박한 분위기다. 입술도 붉게 칠하지 않고 그저 미소로만 얼굴을 화장했다. 젊고 건강하다.

『지금껏 전해져 내려오는 것들 중에는 화가의 상상만으로 그려진 것들이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이건 아닙니다. 세일룬 왕국에서도 확인시켜준 사실입니다. 이 초상화 속의 여성은 리나 인버스 본인입니다.』
『마도사 복장이 아니군요.』
『예. 그 덕분에 지금것 진짜냐 가짜냐 말들이 많았더랬죠. 마도사 리나 인버스라고 하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붉은 옷에 검정 망토, 황금의 귀걸이를 딱 생각하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이걸 본 세일룬의 국무대신이 펄쩍 뛰었다 이겁니다.』
『오-』

일부에서는 신으로도 추앙하고 있다. 복을 내려주는 신으로서가 아니라 모두가 두려워하며 기피하는「재앙신」으로 떠받들여져 지고는 있지만... 여하간 터부시 되고 있다.
때문에 그녀의 상징이 된 붉은 장식의 어깨 보호대나 색동 트워클이 달린 장갑, 노란색의 센메니나* 등등은 이제는 착용하는 마도사가 없을 정도다. 완전히 기피 대상으로 찍혔다고 할까, 일부에서는 목 뒤로 깃이 올라오는 검정 망토도 꺼려해서 걸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을 어디 한 번 반대로 말해보자.
쉽다. 이런 것들을 착용한 자가 바로 리나 인버스가 된다.
따라서 원피스 차림새의 리나 인버스라는 건 그 누구라도 감히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소동이었죠. 평상복의 리나 인버스라니, 충격적이잖아요?』
『닮은 사람은 아니고?』
『에이, 사제님도. 세일룬 왕궁 깊숙한 곳으로도 리나 인버스의 초상화가 한 점 남아 있지요. 저 휴대용 액자 속의 여성과 그 초상화의 얼굴은 서로 판박이래요.』
『흐음, 판박이라...』

초상화를 손으로 만지는 건 금지되어 있다. 액자를 집어 올리는 것도 손님에겐 허락되지 않는다. 깨끗한 마른 걸레로 먼지를 닦아낼 적을 빼고 이 물건이 테이브 위에서 움직인 적은 없다. 이것은 귀한 물건이다. 가격으로는 환산되지도 않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자들은 사전에 충분히 다짐을 받고 있다.

『판박이는 무슨... 내가 보기엔 아닌 것 같은데.』
그러나 사내는 그런 사실을 그다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듯 하다. 슬그머니 손을 가져가 기다란 손가락으로 그림의 윤곽을 어루만졌다.
안내를 맡은 소년은 기절하듯 까무라쳤다.
그나마 맨 손이 아니라 흰 장갑을 낀 손이라 천만다행이라지. 휴우-
밖으로 튀어나온 심장을 입으로 덜렁덜렁 물고 있는 소년을 돌아다보며 손님은 웃었다.

『그 사람에겐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댁들은 잘 모르고 있는가 봅니다만...』
파란 물감을 풀어 놓는다고 호수를 만들 수는 없다. 소금을 녹여도 바다는 되지 않는다.

『딸이라뇨? 그분은 평생 독신이셨습니다.』
소년은 의심의 눈초리를 하고 손님을 흘겨봤다.
『예, 결혼은 하지 않았죠. 그래도 딸네미는 있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양녀로 호적에도 올렸는데요. 이름이 이봐라고 하는 여자였습니다.』

그는 기억한다.
차가운 피가 흐르던 여자였다. 맹렬했고 용감했다.
번득이는 눈빛은 한 자루의 검날.
동시에 금방에라도 산산히 부셔져 고운 가루가 될 것 같은 여자였다.

『비슷했지만 결코 닮지는 않았지. 하지만 이런 얼굴을 하고 웃으니까 착각할 만도 해...』
솜사탕은 구름을 많이 닮았다. 그렇다고 솜사탕으로 비를 내릴 수는 없지만... 역시 솜사탕은 구름을 연상시킨다.
설탕으로 꾸며진 둥둥 떠다니는 구름의 맛, 꿈결처럼 달콤하다.
초상화 속의 여성은 그런 솜사탕을 생각나게 했다.

그래서 밑둥까지 썩은 어금니가 지끈 아파오는 것이다...

손님은 햇빛이 들어오는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공기 중으로 가냘픈 몸집의 먼지들이 떠다니고 있다. 아직은 오전, 높지 않은 햇님 아래로 티끌들이 춤을 춘다.
사람들은 이미 죄다 죽고 없어져 버렸는데...

『사제님, 사제님. 이것도 보시겠어요?』
『그건 무엇입니까.』
『세일룬의 선황제가 직접 만들어 현자님께 선물했다는 뜨게질 장갑이랍니다.』
『저런~』
『손가락 길이가 하나같이 짝짝이지요? 이쪽은 엄지손가락이 가운데손가락보다 더 길고요. 진짜 엉망이죠... 아무리 정성이라지만 이래서는 곤란하다 화를 내셨다는 이야기가 있답니다. 그래도 버리진 않고 소중히 간직해 주셨죠.』

그들은 이미 없는데...

『사제님?』
『아니오,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고... 자, 그럼 이번엔 어디를 보러 갈까요?』

손님은 쓸쓸하게 미소지었다.
모두 죽어버렸는데...
어째서 물건들은 쓸데없이 남는 걸까.

『그 전에 창문을 열어두어야겠습니다. 이렇게 환기를 시켜주지 않으면 집이 망가지거든요. 꼭꼭 닫아만 두면 나무들은 습기를 먹고 썩어버려요.』
소년은 발돋음을 하고 창문 손잡이로 손을 가져갔다.
아귀가 맞지 않는 경첩이 서로 맞긁히는 삐그덕 소리가 그 뒤를 따랐다.

세일룬의 성신여왕 아멜리아의 서거 이후 청현자가 1년간 은둔해 살았다던 집.
원인 모를 화재로 전소되기 전에 그 집으로는 단정하게 상복을 입은 손님이 방문했었다.


* 시에 : 성직자들이 입는 간단한 스타일의 겉옷, 루에와는 달리 그 길이는 무릎 아래로는 결코 내려오지 않는다. 소매가 없는 것이 특징.

* 엡스콜룬 : 성물, 또는 성상이 자리한 공간으로 신이 머문다고 생각되어진다. 비유하자면 교회의 경우는 예배당 앞에 걸린 십자가가, 불교의 법당에서는 본존불이 엡스콜룬이다.

* 센메니나 : 다리 가랭이 사이로 두르는 장식용 (보호용) 천. 그 모양새가 겉으로 드러난 팬티 같다고 해서 후대에선 착용을 잘 하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