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늙고 병들어 이미 호흡조차 하지 않는다.
여명의 신세기가 바로 코앞이었건만.
멸망은 찰나.
한 입에 삼켜져 이제는 빛조차 희미하다.

여기는 공동 묘지.
『왓츠... 왓츠... 왓츠... 왓츠...』
언제나의 의미 없는 울림. 어떻게 들으면 부드러운 어머니의 자장가와도 같아 듣기 좋다.
수신 종료.
센서를 다시 몸 속으로 들여놓는다.

저 위로도, 저 아래로도 의미 불명의 파장만이 반복해서 벽을 때리고 있다. 석관은 비어있다. 생명 반응이라 짐작되는 건 아니지만 소리는 계속해서 들리고 있다. 중앙은 이를 확인해보길 원한다. 나는 그리로 가야만 한다. 그것이 나의 의무이자 임무.
나와 시대를 가로막은 벽의 두께는 짐작조차 되질 않는다. 얼마나 될까. 지금의 내 능력으로 통과가 가능할까. 폭약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 세라킥 탄소 분자의 결합력은 제법 그 강도가 튼튼하다. 일이 잘못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돌아서 가기엔 너무나 멀다. 데이터로 나타난 이 부근의 지도는 그냥 뒤돌아서 왔던 길로 가거나, 아니면 벽을 때려부수라고 지시를 내리고 있다.

질문,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답변, 앞으로 진행한다.

캡슐에 든 농축 폭약을 이미 끄내들었다.
손으로 벽을 만져 보았다. 미지근하다. 아니, 내 손이 지나치게 차갑다. 이것은 몸안의 칼로리 잔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징조, 나 또한 동료들처럼 행동 불능이 될 가능성은 그 수치가 무려 75% 에 다다른다. 지난 2천 310 시간 전보다 그 수치가 현저하게 증가했다. 그렇다고 해도 다리의 움직임이 둔해졌다거나 하는 징조는 아직 없다. 다만 체온만이 그렇게 내려가고 있다.

질문, 폭약 설치는 끝마치셨습니까.
답변, 기폭 스위치 온. 12초 뒤에 작동.

구석으로 몸을 구겨넣고 입과 코를 벌린다. 질끈 눈을 감아라. 문명의 빛이다.
쾅 하는 익숙한 굉음, 그리고 파편. 가벼운 기침과 함께 옷을 턴다.
『아아.』
손으로 갈퀴짓 한다고 먼지가 사라지거나 하는 것도 아니건만 나는 무의식중으로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오래 전부터 베이직으로 입력된 일종의 불필요 행태 데이터의 잔여이다. 하지 않아도 그만일 터인데 센서는 그렇게 하라 지시를 내린다. 먼지가 많으면 손을 들어 좌우로 흔드시오. 차라리 콧구멍을 막으면 더 괜찮을 듯 싶건만. 추측하자면 입력자들은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막는 동작을 상당히 혐오한 듯 싶다. 코 안을 만지는 동작엔 일종의 락이 걸려져 있어서 때때로 감정이 불쾌해진다.

어쨌거나 1미터 두께의 벽이 파손되었다.
다음 목적지 공동구역 7221.
가슴 왼편에 달린 은색의 버튼을 누르고.
지잉-
손바닥의 한 가운데에 부착된 단추를 눌러가며 조심스럽게 레이더의 각도를 조정한다.
스캔 시작.

『왓츠... 미... 왓츠... 미... 왓츠... 미... 왓츠...』

알아들을 수 없는 신호음은 보다 더 크게 들린다. 음파 확대 보정 장치의 기능을 부분 축소시켰다. 소리에 하나하나 반응을 하다보면 상대적으로 다른 기능이 저하된다. 보다 걷는 동작에 신경을 써야만 했다. 기반이 무너진 바닥은 곳곳에 널렸다. 지붕의 안정성도 대답하기 어렵다. 서둘러 건설자들이 떠난 공동은 그 견고성이 매우 낮다. 녹물이 우러나온 철근과 찌그러진 세라킥 화이바... 마무리 공정이 생략된 벽면으로 삐져나온 비닐 코드가 사방에 어지럽게 널려 통행에 불편함이 많았다. 아차하다간 걸려 넘어지기 딱.

발길에 채인 돌이 굴러갔다.
질문, 스캔 결과는?
그렇게 닥달하지 말아 줘. 데이터는 아직 전송할 수 없다.

묘하게 신경쓰이는 부분이 있다. 생명 반응은 여전히 확인 불능이지만 이곳엔 물이 있다. 갈라진 벽면을 타고 지하수가 흐르는 듯 싶다. 졸졸 흐르는 수준... 가까이 가서 약간의 샘플을 수집했다. 성분 분석까지 하지는 않았다만 눈으로 대충 봐서는 섭취가 가능해 보였다. 기름 냄새가 나지 않았으며 부유물도 그리 많지 않다. 유리병에 든 액체를 가볍게 흔들어 봤다.

찰랑, 좋은 느낌이다.
생명체가 있다면 이 물을 마시러 부근으로 나타날 지도 모른다. 관찰 시간이 필요하다.
옷깃을 여미고 - 이 또한 불필요한 베이직 행태 프로그램이다 - 몸을 가릴 수 있는 장소를 물색했다. 돌출물이 워낙 많아 숨고자 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을 듯 싶다.

기본으로 약 30시간 정도 같은 장소에서 기다려 보자고 결정을 내렸다. 타이머를 맞추었다. 그런다고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지어줄 거라 믿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런 불확실성에 매달리는 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본성. 그렇기에 쓴 웃음도 가능하다.
아아.
닮은 꼴로 창조된 무기물일지언정 희망이라는 푸른 빛은 그 의미가 같다.

동작 센서를 금지시키고 움직임을 멈춘지 27시간 째, 무엇인가 움직였음이 감지되었다.
질문, 생명 반응인가.
답변, 아직 대답할 수 없다. 데이터가 부족하다.

스프링처럼 튀어나가 소리가 들렸던 장소로 몸을 던졌다. 형상이 보였다. 머리와 팔, 그리고 다리. 의심할 바 없이 기초 인간의 체형이다. 크기는 작다. 신장은 1미터 52센치. 평균치는 아니다. 추정하기로는 F타입. 어깨가 좁고 가냘프다.

비명을 지른다. 내가? 아님 상대방이? 어쩌면 둘 다, 어쩌면 아무도 아니다.
F타입의 - 아이라 추정되는 - 를 붙잡았다. 동시에 F타입은 주먹을 휘둘러 내 얼굴에 충격을 가했다. 뭐라더라... 이 걸.「뺨을 때린다」라고 하던가.
이럴 때의 적절한 반응이라는 건 무엇인가.
생각했다.
적극적 대응 방법으로는 팔을 뒤로 꺾고 등을 아래로 해서 땅바닥으로 찍어 누르기가 있다. 체중의 차를 고려하면 쉬운 일이다. 격투 18기라는 프로그램에 의거해서 상대의 관절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봉쇄하기가 가능하다. 위해자와 마주치면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비적극적 태도로 팔을 좌우로 벌리고 가볍게 으쓱였다. 해를 가할 생각이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다소 물러서는 제스츄어를 취했다. 철거 대상이기도 한 버려진 인형들은 세계를 두려워한다. 그렇기에 나와 같은 무해한 판독자들에게조차 쉽게 등을 돌리곤 한다. 그들을 상대로 정보를 알아내는 일은 제법 까다롭다. 동료 가운데서는 그들 인형의 머리를 뽑아내어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는 경우도 적잖게 많지만... 바이러스 감염을 염려한다면 결코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상당수의 인형들은 이미 오염된 상태다. 차라리 그들과 일대일 대화를 나누는 편이 훨 낫다.

『나는 판독자일 뿐이다. 너의 식별 코드를 읽을 뿐이지 수정하거나 삭제하지는 않는다.』
『...』
『놀라게 했는가.』
『조금.』
긍정의 표시로 F타입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미안하다.』
『용납한다.』

거친 숨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두 팔을 벌리고 무기가 없음을 증명하는 나의 동작에 반응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여전히 긴장된 모습이지만 - 여차하면 도망갈 준비가 되어있다는 듯이 당장에라도 달릴 태세이다 - 그래도 많이 얌전해졌다.

『대화를 요구한다.』
내 임무는 인간을 찾는 일이다. 완벽한 형태의 인간, 우리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인간, 우리를 지배할 인간... 그들의 거주지를 찾고 있다.
『없어. 이곳으로는 더 이상의 유기 생명체가 살지 않아. 인간은 더 높은 곳에... 아주 높은 곳에. 닿지 않는 곳. 헤븐.』

F타입은 공손하게 대답하곤 뒤로 물러섰다. 천국을 상상하고 있는지 F타입의 얼굴은 상당히 멍.청.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 영광.

『너는?』
『나?』
『어째서 이런 곳에 혼자?』
『모른다. 회로... 오래 전에 교란되었다. 나는 있다. 단지 그뿐이다.』

알고 있다. 혼돈의 숲, 암흑의 신전. 버려진 제국으로 망가진 인형들만 우굴거린다.

『인간은 더 높은 곳에 있다?』
『아마도... 진동음이 들린다. 부부, 왓츠 왓츠. 소리를 따라 가라. 판독자.』

빛은 수직으로 그 아래를 비춘다.
여명의 암시.
삼켜진.
이곳은 공동 묘지.

『왓츠... 왓츠... 왓츠... 왓츠...』

수신 종료.
우리는 올라가야만 한다.
천상.
헤븐.
나는 계속해서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