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서 한 세트라지만 같이 갈 수 없는 곳이 있다.
물론 화장실에 갈 적엔 따로따로 들어간다. 지금은 그런 당연한 이야기를 하자는게 아니다. 요컨대 국가 연금술사 전용 도서관이라던가, 군부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사령관실 같은 곳. 둘 중의 하나는 자격이 되지만 그 중의 하나는 자격이 되질 않으니 출입을 거절당한다.

에드워드는 그때마다 묘한 표정을 짓곤 했다. 맨발로 얼음을 밟았을 적의 그런 얼굴이었다. 발바닥이 아파서 걷기가 싫다. 그러나 제자리에 멈춰있으면 있을수록 통증은 한층 더 강해진다. 냉기가 피를 얼리고 살을 에인다. 엄마를 부르고 싶어진다. 

저런. 괜찮으니까 울상짓지 말고 어서 다녀오세요.

알폰소는 형에게 손 한번 흔들어주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곤 했다. 다시 못 만날 것도 아니니까 안절부절해할 필요가 없다. 이어 형보다 먼저 등을 보이고 반대편으로 사라져간다. 그것이 형을 위한 배려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아. 다녀오마.』

언제나처럼.
형님은 죽을상을 하고 건물 안쪽으로 삼켜졌다.
고래 뱃속으로 던져지는 성자 요나의 그림자가 그 뒤로 길게 드리워졌다.

기다리는 건 늘 지루하다. 하품이 나오지 않는 신체라고 해도 그렇다. 알폰소는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 이건 순전히 버릇일 뿐이다 - 시간을 어떻게 죽일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형은 4개월만에 머스탱 대령에게 그간 보고를 올리러 갔다. 서면 제출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미팅에 시간이 오래 걸리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게다가 쓸데없는 일로 한차례 시간도 낭비할 것이고... (땅콩이니 무능이니 해가며 서로 말다툼을 할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차라도 마시며 쉬는게 훨씬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 알폰소의 개인적 의견이다) 아무래도 현자의 돌에 관한 정보라는게 입으로 말하고 귀로 흘리는 종류들이 대다수이다보니 「서류 내려놓았으면 그만 나가보게」로는 일이 안 끝났다. 가끔은 책상을 두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때에는 쥐죽은 듯이 조용한 가운데 은밀한 귓속말이 오고 갔다. 그렇게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두 명의 연금술사는 전투 아닌 전투를 수행했다.
『아아, 어디서 뭘 하고 기다릴까.』
그동안 군인 아닌 민간인은 딱히 할 일이 없다.

『이여~ 알폰소군? 그렇게 멀뚱 서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오지 않겠어?』
드륵 하고 창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눈에 익숙한 금발머리 하나가 나타났다.
알은 반색하고 공손히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짖궂은 청년도 장난스레 거수 경례를 붙였다.
『아, 하복크 소위님. 안녕하세요.』
『안녕이고 뭐고 안으로 들어오지 그래. 그런데 멀뚱 서있으면 좀 그렇잖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연 전신 갑옷 하나가 마당에 전시용으로 세워져 있다고 놀랄 수도 있다. 워낙에 에를릭 형제가 유명해 멀리서도 알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무슨 경우에라도 예외는 있는 법.

『컴 온, 베이비~』
『하지만 전 어디까지나 민간인이고...』
덩치와는 걸맞지 않게 쭈삣거리는 알을 향해 하복크가 너털 웃음을 터뜨렸다. 입에 물고 있는 담배가 요란하게 상하로 흔들렸다.
『괜찮아. 지금처럼 흉흉한 민심의 시대를 무사히 넘기려면 남의 호의 정도는 감사히 받아들여야 하는 거라고. 내부반 안으로 검은 질풍 녀석도 굴러다니고 있는 마당에 강철의 연금술사님 동생분은 애교 아니겠냐. 남에게 들켰다 싶으면 차렷 자세를 하고 구석에 가만히 서있으면 된다구. 그럼 이몸이 나서서「앗? 누군가 여기다 못보던 갑옷을 가져다 놓고 도망갔네!」라고 말해줄게. 됐지?』
『하나도 괜찮지 않아요.』
『그럼 이렇게 말해줄게.「지금 군부에서는 저절로 움직이는 갑옷을 테스트 중입니다. 절대로 수상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어때.』
『그것도 괜찮지 않아요!』
그럼 뭐가 괜찮다는 거야. 하복크 소위의 눈이 얇아졌다.
『들어올 거야, 말 거야. 우짤겨.』
『예, 예!』
알폰소는 착한 아이다. 어른의 말에는 잘 따랐다.

이른바 금요일 오후 효과라는 것이다.
자동차도 금요일 오후에 만들어진 것은 불량품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기강이 헤이해지고 규칙이 일부 무시된다. 퓨리 상사가 블랙 하야테호를 품안에 안고「손! 발! 엎드려! 착하지!」라는 주문을 반복하고 있는 걸 보고도 저 호크아이 중위가 총을 빼들지 않고 있다.
하긴, 개의 주인된 입장에서 잔소리가 가능할 리 만무하다. 애시당초 내무반에 강아지를 데려온 본인이다. 평소 그녀가 보여주는 「딱 부러지는」 자세를 떠올려 보자면 이건 상당한 이변이 아닐 수 없는데... 어쨌든 오늘은 금요일이라는 거였다. 따라서 블랙 하야테호가 퓨리 상사의 손을 물어뜯으며 으르렁대지 않는 이상 그녀가 앞으로 나설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호크아이 중위는 그저 온화한 표정으로 공책에 뭔가를 적고 있었을 뿐이었다. 눈치로 보자면 보고서는 아닌 듯.
그 반대편에서 파르만 준위는 체스의 말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며 혼자서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실력 향상을 위해 연습 중인 모양이다. 어쩌면 취미일 수도 있겠다. 오른손으로는 체스에 대해 설명하는 책도 한권 들었다. 뭔가를 중얼거리며 검정의 비숍을 들어 칸을 옮겼다. 한참 후에는 앗 소리를 내더니 움직였던 비숍을 원래의 위치로 되돌렸다. 이어 중이 염불을 외듯 혼잣말을 중얼대며 기사의 말을 잡았다. 기사는 오래도록 파르만 중위의 손을 떠나지 못했다. 위치가 영 안 잡히는 모양이었다.

한가롭다.
알폰소는 일말의 안도감을 느끼며 얌전히 의자에 앉았다.

『손! 발! 착하구나. 다시 해볼까? 손! 발!』
『이봐, 퓨리 상사. 개에게 손이나 발에 대한 구분이 있을 거 같나.』
『있지요, 중위님. 몸통 앞에 있는 건 손이고 뒤로 붙은 건 다리입니다.』
『하지만 보통은 개를 일컬어 네발 짐승이라고 하잖아.』
『그, 그건 그렇지요.』
『라고 하면 자네가 멍멍이에게 가르치고 있는 내용도 수정이 가해져야 하지 않겠어?』

퓨리 상사는 인상을 쓴 채 입을 다물었다.
듣고 보면 그 말이 맞는 것도 같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블랙 하야테호가 컹 짖으며 앞발을 내밀었다. 퓨리 상사는 계속해서 고민 중이었다. 반응이 없자 강아지는 다시금 컹 짖었다. 아울러 열성적으로 꼬리를 흔들어댔다. 하지만 고민에 빠진 상사님은 자기 턱만 어루만질 따름이었다.
에이, 속상한지고. 블랙 하야테는 불만을 가득 담아 컹 짖고는 새로운 놀잇감을 향해 질주했다.

껑껑껑- 여기 이상한게 있네요. 여기 못보던게 있어요. 껑껑껑-

원래 동물을 좋아하던 알폰소다. 상냥하게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데 그게 강아지의 신경을 건드린 것 같다. 블랙 하야테호는 생각지도 못하게 완강하게 거부하며 으렁거리기 시작했다. 알은 깜짝 놀라 손을 거두었다.

금속의 손이 차갑다.
그걸 미처 몰랐다.
동물은 정직하다.
싫다는 건 솔직하게 싫다고 표시해 버린다.

풍선에서 바람이 피쉬쉬 빠져나갔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넋 놓고만 쳐다볼 뿐이었다. 바람 빠진 풍선이 잽싸게 도망가고 있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형이라면...
주먹을 쥐자 끼릭 하고 금속음이 들렸다.

형은 그 작은 키로도 풍선을 잡아보겠다며 껑충 뛰었을까.
뛰고도 남았지.
형은 그런 성격이니까.

하지만 난 안 뛰어.
왜냐면.
너무 슬프니까.
그래서 팔이 무거워. 말을 안 들어.

『어이. 조심하는게 좋을거야, 알폰소군.』
그때 갑자기 하복크 소위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예?』
『질풍이 싼다.』
『어?』
『봐라. 쌌지?』
『흐에에~~~!』

퓨리 상사가 허겁지겁 걸레를 찾아댔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것은 파르만 준위도 마찬가지였다.
『중위님. 아무래도 질풍이 교육이 덜 된 것 같은데요. 싼다 싶으면 비상이다~ 하고 으르렁대는 건 좋긴 좋지만... 짖는다고 됩니까. 궁극적으로 수세식 변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려면 멀었네요.』
호크아이 중위는 담담하게 그 지적을 받아들였다.
먼 나라 브리짓드 바르도가 거품을 물며 난리를 피워대든 말든.
권총을 꺼내들고 가볍게 탕탕-

머스탱 대령과 한참 입씨름을 하다 말고 에드워드는 멈칫거렸다. 어딘가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소년은 고개를 문쪽으로 돌렸다. 총성이라는 건 필연적으로 폭력을 연상시키고, 나아가 죽음을 상기시킨다. 동생이 1층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기분이 한층 더 이상해졌다. 대령의 책상 위로 주먹질을 언제 했더라. 허겁지겁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태세를 갖췄다.

머스탱 대령은 느긋하게 손가락을 깍지꼈다. 이미 예상했다는 투다.
『쌌군.』
『뭐?』
『말 그대로. 쌌다고.』
『누가. 네가?』
『그런 식으로 눈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면 화낼테다, 강철. 누가 바지를 적혔다는 건가.』
대령은 다소 역정을 냈다.
『오늘 호크아이 중위가 멍멍이군을 데려왔거든. 퓨리 상사가 하도 보고 싶어 하니까. 하지만 곤란한데. 교육은 어디에서고 이루어져야 한다지만 건물에 총구멍이 뚫리는 건 별개의 문제잖아.』
예산 문제로 쥐어뜯기고 있는 마당에 이런 식의 사건 전개는 그렇게 반갑지 않다. 응급조처로 종이를 발라 총알이 튕겨나간 흔적을 무마시키는 것도 한계가 있다. 아니, 그 이전에 실내에서 평상심으로 총을 발사한다는 것 자체가... 머스탱 대령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강철군.「현자의 돌은 우리 적법사 레죠님의 것이다」라는 낙서는 전혀 근거 없는 얘기인 것으로 판가름 났다니까. 레죠라는 자가 맹인의 눈을 개안시킨다면서 현자의 돌을 사용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네. 거기다 이 사람이 살았던 시대라는 것이...』

에드워드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창 밖을 쳐다보았다.
겨울이 지나가고 봄비가 자주 내리는 계절이 되었다.
언젠가는 꽃도 피어날 터인데.

『됐어. 그만해. 돌아갈래.』
『어이. 설명 안 듣나.』
『내가 들은 소문이 패스트푸드점에서 파는 냉동쏘세지 같은 거라며. 잘 알아 들었어.』

동생은 이미 계단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둘이서 한 세트.
에드워드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밑으로 쓸어 넘겼다.

『가자!』
『응.』

한 조각의 진실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