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입김이 나오고 있다. 한차례 눈이 내리겠다는 일기 예보도 있었겠다, 기온은 어제보다 더 떨어져 창문 밖으로는 고드름도 달렸다.
하아... 손이 시려웠다.
상황이 이러면 석탄을 더 때야하는 거 아닌가. 아마도 군인에게는 난방이 사치인 모양이다. 체력과 정신력으로 육체의 한계를 극복한다. 그리고「망할」이라 하나된 구호를 외친다.

오돌오돌 떨면서 뿌옇게 먼지를 뒤집어 쓴 책 한권을 집어 올렸다. 쓰레기 더미에서도 보물은 발견된다는 말이 있다. 믿져야 본전이다. 동방 사령부 내의 잡동사니 창고방으로 뭐가 굴러다니고 있는지는 저 유능한 - 어디까지나 맑은 날에만 그렇다는 가정이 붙지만 - 머스탱 대령도 잘 알고 있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언젠가는 대여일이 무려 14년이나 지난 연금술 책을 찾아내 착한 일 한다고 생각하며 대신 반납도 해준 적도 있다. 연체료는 모조리 대령 앞으로 돌렸다. 뭐, 그래봤자 최고급 호텔 사흘 투숙비 정도 되니까 대령에겐 가벼운 지출이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쨌든 상황이 그 지경이 되도록 정리정돈을 못한 책임이라는 것도 있을 터이니... 가뿐하게 뒤집어 씌운다. 나중에 귀신처럼 고함을 질러대며 책상을 두둘겨 보라지. 머스탱 대령도 책임론에는 고개를 숙일 것이다. 대령은 가벼워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직책의 무게감은 잘 알고 있는 사내였다. 

『그렇다 해도 이건 좀 심한데.』
이 마당에 제대로 된 자료를 골라내는 건 쉽지가 않을 성 싶다. 순전히 요행과 운에 의지해야할 판국이다. 죽어라 낚싯대를 잡아당겼는데 걸려나오는게 낡은 장화, 부분 가발, 먹다 남은 콜라병일 확률은 대략 97퍼센트에 육박했다. 물고기는 안보였다. 에드워드는 쳇 소리를 내며 보고 있던 책을 집어 던졌다. 그 책의 제목은 「월간 궁녀 2월호」였다.

『형, 추운 것 같지 않아?』

춥다고 말하지 않는다. 추운 것 같다고 말한다. 동생 알폰소가 가정형으로 말을 하는 까닭은 그가 추위를 전혀 느낄 수 없는 몸이기 때문이다. 알은 비참할 정도로 아달달 떨고 있는 형의 모습에서 비로소 냉기를 느꼈다. 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입김과, 파랗게 질린 입술을 보고나서야 공기가 차갑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두 개의 슬픈 감정을 맛본다.

하나는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형이 무척이나 가엾다는 것.
다른 하나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어 떨지 못하는 자신이 미치도록 불쌍하다는 것.

에드워드는 텅 소리가 나도록 알폰소의 옆구리를 때렸다.

『안 추워.』

에드워드는 동생이 느낄 수 없는 거라면 형도 구태여 느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감각이라는 건 의외로 사기성이 농후한 거니까... 그냥 참기로 했다. 알폰소는 가만히 고개를 갸우뚱 하고 형을 쳐다봤다. 그래서 에드워드는 다시 한번 텅 소리가 나게끔 동생의 등을 두드렸다.

비어져 있는 그 몸이 북처럼 울린다.
순간 쭈삣하고 머리털이 곤두섰다.
에드워드는 조금이라도 웃으려 몸부림쳤다.

『아하하... 형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야. 토 달지 마.』
『응.』

그들은 현자의 돌을 찾고 있다. 아직까지는 현실이 아닌 전설에 더 가깝지만... 형제는 모든 연금술을 가능케 하는 그 기적을 믿고 있고, 그 궤적을 따라가고자 발버둥을 치고 있다. 비록 빛은 손으로 잡을 수 없다는 오래된 격언이 쏘는 살이 되어 가슴을 아리게 하고 있을지언정... 언젠가는 그 빛이 손아귀에 들어오리라는 희망을 접지 않는다.

희망만 있으면.

사람도, 짐승도, 미물까지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어라, 에드워드군? 여기서 뭐해?』
갑작스런 인기척에 뒤를 돌아다보니 퓨리 상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방 안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목이 긴 사계절용 고무장화에, 손에는 두툼한 장갑, 거기다 털복숭이 귀마개까지 챙겨들었다. 땅이고 물이고 꽁꽁 얼었을 터인데 공사가 과연 가능하긴 한가. 에드워드와 알폰소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퓨리 상사의 고무장화로 시선을 던졌다. 퓨리 상사가 저 장화를 신으면 동방사령부의 땅이 저 밑바닥부터 울린다는 농담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하다못해 화장실의 볼탑 마개가 고장이 나서 수리에 들어가도 퓨리 상사는 제일 먼저 신발부터 고무장화로 갈아신었던 것이다.
『상사님은 왜 이곳에?』
『아. 여기서 도구를 좀 챙기려고. 그나저나 에드워드군, 알폰소군?』
『예.』
『곰팡내 나는 책은 잠시 접어두고 날 따라오지 않겠어?』
그리고 퓨리 상사는 기분 좋게 함박 웃음을 지었다.
『아직 몰랐지. 지금 밖에 눈 온다~♡』

눈 내리는 걸 좋아할 수 있다는 건 나이가 어린 증거라고 하복크는 생각했다. 진정한 어른이라면 결코 눈 내리를 걸 반가워하지 않는다. 첫째, 교통이 마비된다. 둘째, 발바닥 아래가 미끄러워 넘어지기 십상이다. 셋째, 눈이 질퍽거리면서 대단히 지저분한 환경이 연출된다. 넷째, 눈을 치우라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작업에 임하게 되어 허리에 과도한 과부하가 걸리게 된다. 이런 마당에 누가 눈 내리는 하늘이 아름답다 할 수 있으리오. 하복크는 시린 손을 계속해서 비벼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비참한 군인 쫄다구.
아리따운 숙녀분과 데이트를 즐기는 와중이었다면 낭만을 핑계삼아 이런 짓 저런 짓을 궁리하느라 추위를 잊을 수 있을 터인데.

『자네, 안경이 필요해졌나. 아름다운 숙녀분이라면 바로 코앞에 있잖아.』
『호크아이 중위가 미인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닙니다, 머스탱 대령님. 하지만 중위님을 대상으로 이런 짓 저런 짓을 상상했다간 제 이마로 그 즉시 총알 구멍이 뚫린다고요.』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 다른 긍정적인 방법으로 추위를 참아보도록 하게.』
『그러지 말고 대령님, 손가락 한번만 땡겨주시구랴.』
『안돼.』
『하긴, 발화하기엔 습도가 높군요.』

비오는 날만 무능한게 아니네요. 눈오는 날도 무능하군요, 당신.

하복크의 미소가 눈에 거슬렸다. 머스탱 대령은 이마로 굵직한 하늘천(天)자를 그렸다.

『그게 아니라 파손된 물품과 지대를 물어내기엔 내 월급이 지나치게 작아서 그렇네.』
『물어내요? 뭘요? 그저 눈 녹이는 것뿐이잖아요.』

과연 그럴까.
머스탱은 이 바보가 정녕 내 부하란 말인가 하는 식으로 하복크를 쳐다봤다.

『이곳에 쌓인 눈을 단번에 치울 정도의 화력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동방사령부의 총 면적이 13만 평방 제곱미터에 이르네. 오늘의 적설량은 아직 미정이지만 - 계속해서 내리고 있으므로 - 지금까지 약 20cm의 눈이 쌓였다고 하면 적설된 눈의 총량은 13만 평방 제곱미터 곱하기 다시 20이라는 것이지. 이걸 무게로 환산해볼까. 단순하게 눈의 평균밀도를 0.3이라고 가정하면 1cm의 적설은 1세제곱 미터에 3kg의 무게가 된다네. 그렇다면? 말해보게, 하복크 소위.』
『답은 7,800톤이 되겠네요.』
『그만한 량의 눈을 순전히 불꽃으로 녹이려 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하복크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대 재앙이 되겠지요.』
『알았으면 어서 허리를 움직여! 쓸어! 담아! 퍼!』
『네, 네. 그렇게 합죠.』
하복크는 이마에 내천자를 그리고 있는 상관을 슬슬 피해 운동장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편에서는 에드워드와 알폰소가 널빤지 하나를 들고 눈과 씨름을 벌리고 있는 중이었다.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거의 가래질이었다. 코웃음이 나오도록 어색한 동작이었다.
저러다 허리 다친다.
아니나 다를까 에드워드가 아득 소리를 내며 손으로 자기 허리를 주물러댔다.

머스탱 대령은 잠시 생각했다. 두메산골인 로크벨엔 눈이 그다지 내리지 않는다고 들었다. 아이들은 썰매도 타본 적이 없을 것이다. 더더욱 눈 치우는 잔재주 같은 건 익힐 시간도 없었을 것이고... 아니, 아니. 애들이 눈 치우는 거 봤나. 어린애들은 눈 내리면 그저 뛰고 구르는 법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머스탱 대령은 다시금 인상을 썼다.

누구야, 꼬맹이들에게 삽질하라고 시킨 건!

그러다 눈에 띄게 안절부절해 하는 퓨리 상사와 눈이 딱 마주쳤다.
이 맘 착하고 여린 청년은 상관의 캐묻는 듯한 시선을 깨닫자마자 얼굴을 붉혔다.
『난 그저 눈이 내리니까 기분전환도 할 겸 나와서 놀라고 그랬을 뿐인데... 말을 안 듣더라고요. 한다면 한다나요. 자기네들은 어린애가 아니래요.』
『하여간 못말려. 애 취급은 질색이다 이거지? 그러면서 애들처럼 고집부리는 건 왜 그러나 몰라.』

머스탱은 읏샤 소리를 내며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눈 뭉치를 하나 만들었다. 뽀득뽀득 소리가 났다. 장갑 안쪽으로 시퍼렇게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손가락이 금방 얼얼해졌다.
『대령님?』
『퓨리 상사, 자네는 잠시 망을 봐주게. 호크아이 중위가 나타나면 재빨리 신호하는 거다.』
『그런데 말예요... 호크아이 중위님은 이미 대령님 뒷머리를 노려보고 계십니다.』
『헉! 보고하게. 중위가 지금 총을 꺼내들었나?!』
『아니오. 방금 한숨을 쉬고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리셨습니다.』

좋았어!
무언의 허락도 있었겠다, 머스탱 대령은 들입다 눈뭉치를 던졌다.
텅-

『형! 괜찮아?!』
『뭔 짓이야! 이 망할 대령아!』

약 40여분간의 전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