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히 수건이랑 비누를 준비하고 목욕탕 문을 두드렸더니만 영업을 하루 쉰댄다.
에드워드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머스탱 대령의 사무실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늘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사무실이 오늘따라 굳게 닫겨져 있었다. 평상시에도 저녁 늦게까지 불이 훤하게 켜져 있던 곳이다. 가끔은 철야를 한 탓에 얼굴이 까칠해진 대령이 하품을 뒤섞어 양치질을 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때문에 에드워드는 언제라도 방문을 두둘기면 그 즉시 대령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늘처럼 사무실로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날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해봤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다소 근심에 젖은 에드워드의 질문에 하복크 소위는 건성으로 대꾸했다.
『아아, 별 거 아냐. 대령님은 오늘 하루 생리 휴가다.』

새, 생리 휴가?!

남자에게 생리 휴가라는게 과연 가능하기는 가능한 건가?!
에드워드는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려 답답한 나머지 물을 들이켰는데, 덕분에 사래가 들려 한참을 꺽꺽대다가, 그 와중에 식탁을 발로 걷어차 오만가지 반찬통을 머리에 뒤집어 썼다는 식의 표정을 짓고 말았다. 상대가 하복크인 만큼 저 대답에 어느 정도는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을 거라고 나름대로 짐작은 해볼 수 있었다만... 에드워드는 끙 소리를 내며 팔짱을 꼈다. 설마하니 보건법이 개정되어 남자도 한달에 한번 생리 휴가를 갈 수 있도록 배려를 받게 되었... 이쯤해서 도리질 했다. 그럴 리 없다. 무릇 생리라는 것은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끙. 에드워드는 머리를 흔들어댔다.

『그냥 땡땡이 치는 거 아냐?』
에드워드의 질문에 하복크는 눈을 크게 뜨고 정색했다.
『설마. 단순한 땡땡이라면 호크아이 중위가 벌써 권총 한자루 들고 시내로 나갔지.』
『그렇다면 몸이 아프기라도 한 것?』
『그 양반, 비록 통뼈 스타일은 아니지만 감기 한번 안 앓는다.』
『그럼 도대체 뭐야.』
『아까 한 말 못 들었냐. 일년에 한번 있는 생리 휴가라니까.』

여기까지.
하복크는 남은 일이 산더미라면서 애교성 경례를 붙였다. 바지춤으로 양손을 집어넣은 채 덜렁덜렁 걷는 모양새로는「바쁘다」라는 말이 그다지 실감나지 않았지만, 저 건너편으로 자리한 브레다 소위 등등이 빨리 좀 오라며 발을 동동 굴러대는 걸 봐서는 더 이상 붙잡고 있기가 난감했다.
이거 참.
에드워드는 머리카락을 마구 흐트러뜨리며 어쩔 줄 몰라했다.
정말로 생리 휴가야? 진짜 그런 거야? 어쩐지 나, 지금 무진장 속고 있는 거 같은데 말이지...

쩔쩔매는 에드워드가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가던 발걸음을 재촉하던 하복크 소위가 흘끔 뒤를 돌아다 보았다.
『정말 급한 거냐? 에드워드.』
『에, 또, 그러니까... 그렇게 무지 급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현자의 돌에 대한 단서에 대해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
『흐응.』

약간 갈등하는 눈치였다. 하복크는 허리에 손을 얹고 약 2초간 생각했다.
이윽고 짧은 한숨.

『이건 비밀인데... 대령은 요 앞에 케이크 전문점에 있을 거야. 마음만 먹는다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걸.』
『에?』
『하지만 너무 방해하면 못쓴다. 내가 가르쳐줬다고 하지는 말고.』

뭔가 꼬릿말이 더 이어질 것 같은 분위기에서 얘기는 싱겁게 끝나버렸다. 진실로 브레다 소위의 으릉거림이 한층 더 심해졌음이다. 그 옆으로 삽 하나를 든 퓨리 상사까지 나타났다. 작업용 장갑에다 장화까지 착실하게 챙겨 나온 모습을 보아선 밖에서 무슨 큰 작업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에드워드는 엉겹결에 팔을 앞으로 내밀고「잠깐 기다려」식의 포즈를 취했지만... 확실히 말해 이 상태에선 말 못 붙인다. 그래도 어른이라고 가끔은 상대를 안해줄 때가 있었는데 바로 지금이 그런 때였다. 하복크는 하얗게 질린 에드워드는 뒷전으로 넘겨버리곤 몇 명의 동료들과 같이 복도를 돌아 휭하니 사라져 버렸다.

이걸 어쩌나.

이시트 시티는 의외로 그 규모가 작은 편이다. 센트럴이 대형 접시 사이즈라고 가정하자면 이스트 시티는 간장 담는 종지 크기다. 마을은 번화한 편이지만 케이크를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 하복크의 말대로라면 다리품을 약간만 팔면 될 거다.
문제는 그렇게까지 수고를 해서 대령을 찾아낼 필요가 있느냐 하는 것이고... (오늘 당장 대령을 만나지 않으면 천지가 개벽이라도 한다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놈의 호기심이 개구리를 죽인다는 점이었다.

알고자 하는 욕구는 때로 자기 보호 본능을 상회한다.
에라, 모르겠다.
에드워드는 별반 내키지 않아하는 동생을 끌고 빵 취급하는 가게란 가게는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 여자를 만나러 간 거 아닐까? 형.』
『알. 대령의 나이가 얼마인데. 자그만치 스물 아홉이야. 그 나이의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장소로 케이크 가게를 고른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지 않겠어?』
『그렇지만 여자들은 케이크를 좋아하잖아. 데이트 장소로 이상할 것 같지는 않은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 여자애들은 뚱뚱해진다고 케이크를 꺼려한다구. 먹고는 싶은데 살이 찔까봐 억지로 참는 경우도 많아. 그런데 덜컥 케이크 사줄테니 마음껏 먹으라고 해봐. 미움 받아.』
『헤에. 어딘지 모르게 구체적인데. 설마, 그거 윈리랑...』
『착각 마셔! 윈리는 케이크보다 A형 드라이버나 니들, 그것도 아니라면 에어 실린더 쪽에 목숨을 거는 애잖아. 우리 어렸을 적에도 인형보다 공구세트를 더 좋아했어. 케이크 사줄 돈이 있으면 차라리 나사 한봉지 사달라고 그럴 거야.』
『확실히 윈리라면... 음.』
『쉿! 이쪽이다, 알.』

탐색에 나선지 2시간 40여분만에 목표물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알과 에드워드는 나란히 자세를 낮추고 일단 장식용 화단 뒤로 몸을 숨겼다. 다행히 근방으로는 지나가는 행인도 많지 않아 맘 놓고 수상한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노란 더듬이 - 머리통 위로 뾰족 튀어나온 머리카락 한가닥 -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 채 적당히 허리를 굽혀 전방을 향해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수면 위로 떠오른 미끼의 찌처럼 훌륭한 표시물이 몸에 붙어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아예 배를 땅바닥에 대고 기어갔을 터이지만... 뭐, 지금으로서는 그런가 보다 하고 가볍게 넘어가도록 하자. 그 이전에 아무리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커다란 덩치의 동생이란 문제가 있었으니까.

『이런 이런. 저 두 사람에게 미행 임무를 맡기면 큰일나겠군.』
로이 머스탱은 가볍게 실소했다. 아이들은 이쪽이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 눈치다. 유리창 아래로 바짝 달라붙어 바닥에 넙죽 엎드려 있다. 그렇다고 해도 머리카락 보인다. 결정적으로 알폰소가 내는 덜그럭 소리는「나란 인간이 바로 여기에 있소이다」라는 신호가 되어주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도시에 비가 내린 것은 사흘 전.
비를 흠뻑 맞은 몸에 기름칠을 게을리하면 저런 소리가 난다.
또 집 없는 고양이라도 줏으러 돌아다녔던 걸까. 형에게 늘 혼나면서도 고양이 구제 사업은 곧잘 하는 모양이었다.
『하여간 못말린다니까.』

그러나 에드워드와 알폰소 입장에서 보자면 못말릴 대상은 그들이 아니라 오히려 대령 쪽이었다.
빵가게 창문에 철썩 들러붙은 채 에드워드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언제나의 군복이 아니었다. 사복이다. 깃이 세워진 검정의 양복, 그리고 뾰족한 구두를 신었다. 저런 차림새는 본 기억이 없다. 헤에- 하는 표정이 되어 머리를 들었다 놓았다 했다.
『대령님이 저렇게 옷을 입고 있으니까 꼭 딴 사람처럼 보인다. 그치? 형.』
『그러게. 오늘따라 영 아닌데.』
말은 그렇게 내뱉었지만 속 마음은 정 반대라고 할 수 있었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부대 내 화장실 벽으로「내 애인을 돌려줘! 이 나쁜 놈!」이라는 낙서가 종종 발견된다는게 이해가 갔다. 분명 여자들이 좋아할 타입이다. 반듯하고 단아하다. 그림에 나올법한 미남형과는 거리가 멀지만 전반적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이 보기 좋았다.

거기에...
무어라 형용하기 힘든 분위기가 녹아들어가 있었다.

에드워드는 어릴적에 어머니와 함께 유랑극단을 구경갔을 때를 떠올렸다.
검정의 옷.
뒤집어 놓은 모자에서 흰 토끼를 끄집어낸다.
마법사는 결코 웃지 않는다.
현란한 손놀림으로 카드를 움직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속인다.
이질감.
이 세계에 속하지 않은 듯한 거리감.
그리하여 사내는 모두로부터 신기루의 박수를 받고 커튼 뒤로 사라진다.
눈물의 박수.
남은 건 눈이 아리도록 서글픈 반짝이 가루와 꺼진 조명 등 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에드워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보게, 강철. 몰래 숨어 있으려면 끝까지 숨어 있어야지. 그런 식으로 도중에 그만두는게 어디 있나 왜, 내가 너무 맛있게 먹고 있는 거 같아 약이라도 올랐어?』
『그런 거 아니라는 거 잘 알고 있으면서! 이봐! 로이 머스탱!』
『소리지르지 마. 다른 사람들이 놀라잖아.』
『하여간!』
『이런, 이런... 정말 못 말린다니까. 나, 귀 안 먹었다.』

어쩔 수 없이 주목받는 한 일행이 되었다.
검정의 양복을 빼입은 사내, 그리고 하얀 장갑을 낀 키 작은 어린애, 어디에 가져다 놔도 눈에 띌 수밖에 없는 갑옷의 갑빠맨 3인조가 한 테이블에 앉았다. 그것도 테이블로 크림 치즈 무스에 바닐라 초코 케이크 한 조각씩을 놓고 말이다. 한마디로 말해 비극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조화의 극치였다. 가게에서 차를 나르는 종업원이 무어라 수군거리며 귓속말을 나누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에드워드는 윽 소리를 내며 억지로 무릎 위로 손을 내렸다. 창피하지 않다면 그건 순 거짓말이다.

『가게 앞에서 버럭 소리지를 적엔 언제고.』
머스탱 대령은 그렇게 쏘아주곤 에드워드 몫의 초코 케이크 접시를 앞으로 밀어주었다.
『공짜로 사주는 거야. 고맙게 생각해.』
『...』
『감사합니다, 한 마디 정도는 하도록. 그게 예의잖나.』
『예의고 나발이고!』

에드워드는 가볍게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탁 내려쳤다.
『당신, 오늘 왜 그래.』

불안한 거다.
아이는 곧잘 울음을 터뜨린다.
그래서 아이가 울어도 어른은 걱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른은 여간해서 우는 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울음을 터뜨리면...
당연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

『나는 평소의 나야. 강철.』
무엇보다 매끄러운 목소리로 머스탱이 말했다.
『어제 보았던 로이 머스탱, 그제 보았던 로이 머스탱... 그리고 오늘 네가 보는 로이 머스탱은 동일 인물이 맞아. 뭘 걱정하는게냐.』
『그런데 왜 그런 이상한 얼굴로 케이크를 먹어. 그리고 그 옷차림... 이상하잖아.』
『뭐가 이상하냐. 양복의 다 큰 사내가 케이크를 먹으면 안된다고 법으로라도 정해놨다든?』
그렇게 대꾸하고 케이크 조각 하나를 덜어 입에 넣었다.

그렇지만 이상한 건 이상한 거다. 이번 만큼은 알도 움찔했다. 왜냐하면 맛있는 걸 먹는 표정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 행동은 의식에 가까워 보였다. 미사를 집전하고 포도주를 음미한다. 자! 이것은 나의 뼈요, 나의 살이라. 우물우물 씹는 동작마저 종교 의식의 그것을 연상시켰다.

그래서 불쾌한 거다.

『저기...』
『응.』
『대령. 혹시 말이야... 오늘이 아버지 돌아가신 날이거나...』
『바보. 아버지 제삿날에 케이크 먹는 바보 아들이 이 세상 천지 어디에 있다냐.』
『그, 그렇지? 아, 아하하하...;;』
『...』

한참 뒤.
숨막히는 어색함을 깨고 대령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내가 군인의 몸으로 사람을 처음 죽인 날이야, 강철.』

저주스런 기념일.
그 업보의 무게를 잊지 않기 위해서.
상복을 입고 케이크를 입에 넣는다.

머스탱은 커다랗게 벌어진 에드워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혐오하려면 혐오하도록.
때로는 그 스스로도 용서하기 싫어질 때가 있으니까.

명령은 적을 죽이라 한다.
여자와 어린애라도 상관이 없다.
그 명령은 같은 편인 의사 부부를 향해서도 떨어졌다.
죽여라.
명령받은 그대로.
군인이라면 그 명령에 어떠한 의문을 가져서는 안된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은 그리하여 무죄.

이래서는 안된다고 그대가 울부짓으면...
항명은 유죄.

머스탱은 다시 케이크 조각을 잘라 입으로 가져가려고 했다.

순간 에드워드가 그 손을 덥썩 잡아챘다.

『에드워드?』
『내가 풍선 사줄게.』
『...?』
『풍선 사준다고! 자, 일어나! 뭐 하는 거야. 가자니까! 어서!』


1년에 딱 한번, 로이 머스탱은 사무실에서 행방불명이 된다.
대략 좋지 않은 일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 호크아이 중위는 그 점에 대해선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편이었다.
오후 5시가 넘자 그녀의 상관은 예상했던 그대로 검은 양복을 입고 사무실에 나타났다.

그래도 올해는 예년과 약간 달랐다.
손에는 어연 풍선 하나를 쥐고 있었다.
칼처럼 서늘한 표정을 짓던 작년과는 분명 구분되는, 어딘지 모르게 따스해 보이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