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바쁘게 불러놓고는 때아닌 종이비행기 만들기에 열중해 있다. 그것도 인상을 팍팍 써가며 공들여 종이를 접고 있다. 그 열기와 긴박감은 폭탄 해체시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저 배경을 봐라. 당장 뭐가 안 터지는게 더 이상할 정도이다.

그러든 말든 하복크는 언제나처럼 진지함 제로 포인트의 얼굴로 경례를 붙였다.

『아아, 하복크 소위. 왔나. 한참 바쁜데 불러서 미안하네.』
『뭘요, 대령님. 그나저나 걱정스러워서 그러는데 상부에서 온 격려문을 그렇게 처리해도 되겠수?』
『격려가 아니라 압력이라 하는 거야. 여기서 더 나가면 협박이고.』
날개 부분까지 다 다듬고 나자 머스탱 대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쓰레기통을 향해 종이비행기를 날려버렸다. 비행기는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사무실을 날았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골 인- 최고급 크림지로 만든 종이비행기는 빨려 들어가듯 쓰레기통 속으로 처박혔다.
휴우.
그제야 대령은 기분이 조금 풀렸다며 딱딱하게 굳힌 어깨를 조금 누그러뜨렸다.

『하여간 입만 살아서! 스카를 잡고 싶은 건 오히려 내쪽이란 말이다.』

어제 발생한 이스트 시티에서의 대소동 탓에 동방 사령부는 그야말로 벌집을 쑤신 몰골이었다. 그란 준장의 사망 소식이 센트럴로 전해지자 그 즉시 높으신 나으리들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 전화 회선은 모두 불통이 되어버렸다. 어디 그뿐이던가. 스카의 무차별 습격이 다시금 재현되었다는 두려움에 이스트 시티로 피난차 내려온 국가 연금술사 대다수가 패닉을 일으켰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 농담이겠지. 소리 지르는 모양새는 광분한 엘리펀트 그 자체였으니까.
그래도 거기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도시계획 위원회에서 질러대는 욕지거리에 비하면 그런 건 애교였던 것이다. 지하 수도망 파괴, 담벼락 파손, 개인 저택 파괴에, 일부 도로의 폭삭 주저앉음. 막대한 수리비는 누가 물어낼 거냐며 그쪽 국장이 게거품을 물었다. 머스탱은 두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확인 사살이랍시고 민원까지 폭주했다. 멀건 대낮에 도시 한복판에서 총질을 해놨으니 그 여파야 상상한 그대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카는 여전히 도주 중.
종합 평가.
죽을 맛이다.

『고생이네요.』
『지금 남 얘기 하듯 할 때가 아니잖나. 내가 철야이면 자네들은 야근이다.』
『예이, 예이. 어차피 야근수당은 지급되는 거죠?』
『물론이다. 거기다 과로사하면 별도로 2계급 승진이야.』
『그거 무척이나 위로가 되는 말이네요.』

그렇게 대답한 뒤, 하복크 소위는 척 소리를 내며 구두 뒷급을 붙였다.
『시키실 일은?』
『미안하지만 심부름 하나 해주게.』

머스탱 대령은 책상 서랍을 열고 제법 바스락 소리가 나는 물건 하나를 끄집어냈다.
하복크의 눈이 둥글게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저것은 콩고물 콩과자다. 몸에 좋은 신토불이 영양 간식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제법 비싼 값에 판매되고 있다. 맛은 고소하고 약간 달짝지근하다. 과자 표면은 무척이나 바삭거린다. 반면 오래 씹으면 약간 찰기가 진다. 쉬이 질리지 않는 맛이라서 이곳 이스트 시티는 물론이고 센트럴에서도 인기 있는 과자다.

『그게...?』
『배달품일세.』
『어디로?』
『25블럭에 위치한 보훈병원 2층 401호실이다.』
『흐응.』
하복크는 뒷통수를 긁적거리며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그곳 보훈병원에는 에드워드 에를릭이 입원해 있습죠. 그렇죠?』
『맞네.』
『그러니까 그 에드워드에게 콩고물 콩과자를 주고 오라고요?』
대령은 바로 그거라며 손가락을 휘휘 흔들어 보였다.
『전해주고 와.』

곤란한데.

콩이라면 두말할 것 없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에드워드다.
배식판에 올라온 콩자반만 보고도 장황하게 불평을 늘어놓으며 이를 갈아대곤 한다. 그런 마당에 병문안이랍시고 콩과자를 들고 가라고?

하복크가 주춤거리든 말든 머스탱은 다시 서류 뭉치들로 코를 박았다. 점심 식사도 걸렀다. 당장에라도 망할 보고서들과 제2차전에 돌입하지 않으면 그나마 저녁도 먹기 힘들어진다. 펜대를 잡은 손에 그래서 힘이 들어갔다.

『에드워드가 귀신같이 화내면서「그래! 네놈이 원하는 건 동족상잔의 비극이다 이거냐!!」라고 떠들면 머리든 몸이든 어디 하나 이상 없다는 얘기니까 당장 퇴원 수속 밟도록. 하지만 건성으로 응응 대꾸하면 그건 심상치 않다는 뜻이니까 사흘동안 강제로라도 입원시키고 면회도 사절시켜.』

하복크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렇게 합지요, 대령.』

그러나 답은 A도 B도 아닌 C였다.
선물 꾸러미 속에서 예의 콩과자가 튀어나왔어도 한쪽 눈썹만 살짝 치켜떴을 뿐, 에드워드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뜨뜻미지근했다. 화는 좀 난 눈치다. 그래도 고함은 지르지 않았다.

당장 퇴원이냐, 사흘간 강제 입원이냐.
이래서는 답이 안 나왔다.

『속 보인다, 속 보여! 대령보고 그렇게 전해. 잔머리 그만 굴리라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했던가, 팔 하나만 남았음에도 불편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능숙한 태도로 과자의 모퉁이 부분을 발가락에 끼워 고정시켰다. 그리고 왼손을 이용해서 봉지를 북 잡아 뜯었다. 동작은 섬세하지가 않아 과자 몇 개가 침대 바닥으로 와르르 떨어지긴 했다. 그렇다고 누가 혼내킬 것도 아니겠다, 에드워드의 표정은 태평스러웠다. 바닥에 흘린 건 어쩔 수 없다고 치고 나머진 주섬주섬 주워다 먹으면 그만이었다.
하긴, 바지도 혼자 갈아입었고, 화장실도 혼자 다녀왔는데다, 머리도 혼자 빗어 한 가닥으로 묶은 마당에 과자봉지 하나 혼자서 뜯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되었다. 에드워드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콩과자 몇 개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모두로부터 금 간 유리병 취급당하는 건 불쾌해. 다들 정도껏 하라고. 쳇!』

반응이 나쁘진 않군.
오늘은 쉬고 내일 퇴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하복크는 가까이 놓여져 있던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았다.

『그렇지만 오토메일이 박살나는 건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닐 거 아냐. 오토메일이라는 건 신경과 연결해서 제2의 수족으로 쓸 수 있게끔 만든 거라고 들었다. 신경이 연결되어 있다는 건 어느 정도의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아픔 또한 느낄 수 있을 터... 그런게 망가진다는 건 나무 의족 부러지는 것과는 사뭇 다르겠지.』

에드워드는 힐끔 곁눈질로 하복크를 쳐다봤다.
뭐, 그럴 수도.

하지만 그런 것쯤이야. 몸은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 팔과 다리가 잘려져 나갔을 적의 그 통증이라는 것을... 치사량에서 겨우 한줌 덜어낸 아픔과 비교하면 이런 건 껌이다.

『거기다 듣기로는... 어흠.』
하복크는 다소 불편한 듯 말을 이었다.
『스카가 네 머리에 손을...』
『됐네!』

이겨낼 수 있다.
그깟 공포.
언제든지 오라고 해.
정말로 무서운 건 그런게 아니니까.
하마터면 머리가 터져 죽을 뻔했다고 징징거릴 줄 아나.

밤에 꿈을 꾸었다.
파열음.
갑옷이, 동생의 몸이 가냘픈 파편이 되어 흩날렸다.
지금도 그걸 생각하면 차갑게 소름이 돋는다.
무너지는 건 동생의 신체일까, 아니면 내 억장일까.

에드워드는 과자를 한웅큼 쥐어 다시금 입안에 꾸셔 넣었다. 뺨이 콩고물로 범벅이었다. 손을 들어 얼굴에 묻은 가루를 가볍게 털어냈다.

『동생은?』
『퓨리 상사와 호크아이 중위가 번갈아서 살피고 있어.』
에드워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퓨리 상사... 무서워 하던데.』
그가 부숴진 알의 갑옷을 보고 아악 소리 지르던 걸 놓치지 않았던 것 같다. 에드워드는 눈에 띄게 풀 죽은 표정을 지으며 담요를 꾹 쥐었다.
알은 남들이 자기를 무서워하는 걸 슬퍼한다. 그는 늘 조심스럽게 묻곤 했다. 내가 무섭느냐고... 그때마다 에드워드는 늘 죄책감에 시달렸다.

『괜찮어, 괜찮어. 비오는 날에 떨고 있다고 엉겹결에 강아지를 주워오는 인간이야. 그 사람이라면 전적으로 맡겨도 문제 없음이다.』
『그치만...』
『괜찮다니까! 인상 펴. 그러다 누구처럼 이마에 주름 잡힐라.』

하복크는 읏샤 소리를 내며 앉았던 의자에서 일어났다.

『스카는?』
『행방이 묘연하다. 덕분에 머스탱 대령이 정보부를 잡아 족치고 있지. 덕분에 휴즈 중령은 딸네미 재롱 볼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푸념이고... 자! 슬슬 돌아갈까나. 난 이만 일하러 가봐야겠다. 자네도 그만 쉬게나. 내일은 기다리던 퇴원 날이야.』
그리고는 슬쩍 윙크를 했다.
『아참. 심심하면 전화해, 잡지 보내줄게. 최대한 야한 걸로.』
『필요 없스---!!』

화내는 건 건강하다는 징조.
날아오는 베개를 피해 하복크는 재빨리 달아났다.
그 뒤로 껄걸껄 웃음 소리가 목숨 아홉 고양이의 그림자처럼 길게 드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