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폭탄이다.』
『에엣- 폭탄?!』

하복크 소위의 말에 퓨리 상사는 일.단. 펄쩍 뛰었다.
폭탄이라는데 일단 뛰고 자시고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 그대들이여... 하지만 담배 하나 질겅 깨물고 어디서 잠자리 날아가네 식의 태평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하복크를 보고 있노라면 이게 과연 오렌지 경보인지 아닌지 헷갈릴 법도 하겠거니 이해가 갈 것이다. 불이 났으면 그에 걸맞는 긴박감이 따라주어야 한다. 잔뜩 졸린 목소리로 전화기에 대고「불이 났습니다」 해봐야 장난전화 벌금 100만원만 때려맞는다. 하물며 폭탄이다. 폭탄이라면 폭탄답게 긴장감이 따라붙어야 할 것 아닌가.

『어디에요.』
『저기.』

하복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일명 「창고방」이었다. 원래는 군 관련 서적들 - 연금술 관련 서적도 포함되어 있다 - 을 임시 보관하는 용도의 작은 방이었는데 태만함의 극치를 달리는 일부 관계자가 전년도 회계 장부에 근무일지까지 모조리 처넣어 버린 탓에 지금은 완벽하게 창고로 전락해 있었다. 철제 캐비넷으로 오만가지 잡동사니가 가득 들어차있고 심지어 모서리 부근으로는 세탁한 마포걸레까지 굴러다니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평소 그 방의 문은 늘 닫겨져 있었다. 썩은 종이내와 교묘하게 뒤섞인 곰팡이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30cm정도 문이 열려져 있었고...
그리고 그 틈으로 얼핏 보이고 있는 건...
퓨리 상사는 유행 지난 오래된 안경테를 손가락으로 밀어 올렸다.

『가방이잖아요.』

하아- 하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폭탄이라니. 쯧쯧.
거기다 분명 본 적이 있는 가방이었다. 「추억 속의 아빠의 여행가방」이라는 타이틀이 딱 들어맞을 듯한 고풍스런 디자인 - 일부는 촌스럽다고도 한다 - 의 저 가방은 분명 강철의 연금술사 에드워드 에를릭의 것이다.
전체적 외관은 네모 반듯하다. 앞 뒤로 두 개의 굵은 줄무늬가 넣어져 있다. 모서리로는 철제 장식이 붙어 취약함을 보완했고, 손잡이로는 부드러운 고무 패드가 덧붙여져 오래 들고 있어도 손에 부담이 없게끔 배려를 가했다. 화려함 보다는 실용성을 강조한 제품. 오히려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았다. 유행에 민감한 또래의 아이들은 등에 매는 가벼운 종류를 선호한다. 이런 건 거져 준다고 해도 아마 싫어한 거다.

『그런데 가방 주인은 어디로 가고?』
퓨리 상사는 고개를 길게 빼고 주위를 둘레둘레 살펴보았다. 잠시 화장실에라도 간 걸까? 아니면 대령에게 붙잡혀 일장 훈시라도 받고 있는 건가.

『잠깐, 잠깐, 퓨리 상사. 자네는 어째서 그렇게도 가볍게 에드워드의 가방이라고 짐작해버리는 건가.』
『에?』
『이것 보라구. 이런 가방은 공산품이라고. 유명한 기술 장인이 손수 만들어 앞면으로 금판 장식을 박아넣는 그런 명품 브랜드가 아니라는 거야. 하루에 이런 종류가 과연 몇 개나 만들어졌는지, 과연 얼마나 팔려나갔는지, 자넨 감히 상상할 수 있겠나.』
『에?』
『수천, 아니면 적어도 수백! 그런데 자네는 단순히 그 외견만 보고「에드워드 에를릭의 가방」이라는 단순한 추정을 해버렸다 이거야. 그럼 안되지~ 테러리스트가 몰래 놓고 간 폭탄 가방이 우연히 에드워드의 여행가방과 동일한 모델이었다는 생각은 안하는 거야?』
『에?』
『피망 색깔도 빨간색. 사과의 색깔도 빨간색. 하지만 하나는 야채이고 다른 하나는 과일!』
『에?』
『선입관은 버려. 우린 저것이 폭탄가방인지 아닌지 확인을 해봐야 한다!』
『에에?!!』

퓨리 상사는 식은땀을 흘렸다. 내용만 들어보자면 과연 그럴 수도 있겠거니 생각할 수 있다. 요즘 테러리스트들은 전화기에도 폭탄을 설치한다. 외견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짖궂은 미소를 띄고, 어딘지 모르게 불쾌한 흐흐흐 웃음소리를 흘려가며, 이게 웬 떡이냐 식으로 손바닥을 마주 부비대고 있는 사람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사실상 무리.

『그냥 한번 남의 가방을 몰래 열어보고 싶었다고 말씀하세요, 하복크 소위. (눈물)』
『틀려! 이것은 어디까지나 군 임무인 거라구!』
『그렇지만 지금의 소위는 군 임무를 수행중인 군인이 아니라 아들네미 일기장을 검사하는 엄마 같아 보이는걸요.』
『그거 참 시끄럽네. 아무튼 뒤로 물러서라고, 상사. 펑- 폭발하면 위험하잖아?』
『그렇게 위험하다면서 왜 잡고 흔들고 있느냔 말예요!』

퓨리 상사는 무너지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이 동네엔 엉뚱한 사람이 너무 많았다. 거기다 가방이 그리 쉽게 열릴소냐. 이런 종류의 가방은 보안 장치가 걸리기 마련이다. 숫자 키라던가, 아니면 자물쇠라던가... 에드워드의 신분이 국가 연금술사라는 걸 감안하자면 좀 더 독특한 장치가 되어있을 수도 있었다. 퓨리 상사는 이것저것 상상하며 가만히 턱을 어루만졌다. 연금술이 곧 마법은 아니지만... 실제로 스프링 단추를 용접하듯 굳혀놔서 강제로 톱질하지 않는 이상 열 수 없게끔 하는 경우도 종종 봤다. 그것도 아니라면 자물쇠에 난 열쇠 구멍을 틈새 없이 몽땅 막아버리거나... 

『안 잠겨져 있어. 그냥 열리는데. 너무 부주의하잖아, 이거.』
『헉.』

하복크는 흥미롭다며 벌써부터 가방 속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중이었다.
이건 배반이야.
퓨리 상사는 뒤돌아서서 몰래 눈물을 삼켰다.

어쨌거나 하복크의 「군 임무를 빙자한」소지품 검사는 계속되었다.
의외로 별 거 없었다. 옷가지가 거의 전부였다. 양말에 셔츠에... 그다지 괜찮아 보이지 않는 연금술 이론서가 한 권 있었고, 간단한 세면도구가 반투명한 비닐 가방에 들어가 있었다. 조금 특이한 거라면 약간의 정비 기구들, 이를테면 그리스 기름이라던가, 나사를 조이는 십자 드라이버 같은 것들이 가죽 케이스에 넣어져 소중히 다뤄지고 있다는 점이었을 거다. 아마도 오토메일을 손보는 장비들일 거다. 예비용 나사 같은 것들이 그런 짐작을 가능케 했다.
그 외에는 특별히 남의 시선을 끌만한 것이 없었다. 하다못해 액자에 넣어진 사진 한 장 정도는 있어도 괜찮을 터인데... 하복크는 노골적으로 실망했다며 혀를 끌끌 찼다.

『심플 이즈 베스트라는 건가.』
『그러기에 제가 뭐랬어요. 폭탄 따위가 아니랬잖아요.』
『아니다! 이건 폭탄보다 더 심각해! 사실 더 나빠. 상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심각하긴 뭐가 심각하다고 그러세요. 정말.』
『아니라니까! 이건 잘못되었어! 정말 심각해!』
『하복크 소위. 그러니까 제 말은... 그렇게 베시시 웃으면서 정말 잘못되었어, 진짜 심각해 하고 말씀하시면 제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전혀 알 길이 없다는 거예요... 저기, 소위?』


그로부터 약 1시간 30분 뒤.
바람처럼 달리는 에드워드 에를릭 뒤로 묵중한 알폰소가 죽어라 달음박질하고 있었다. 호주머니에 들어간 열차의 티켓은 정확히 2시 5분 발차 예정. 현재 시각은 2시 4분. 출발을 알리는 기적 소리는 이미 두 번 울려퍼졌다. 그걸 신호로 플랫폼에 남아있던 사람들 전부가 부랴부랴 차량으로 올라서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기차 상태를 점검하는 직원들도 빨간 깃발을 준비하고 섰다. 모자를 고쳐쓰고 흔들기만 하면 오케이. 늦으신 분들은 기냥 다음 열차를 이용하시고, 모쪼록 좋은 여행 되십시오.

『그러기에 내가 뭐랬어, 알! 고양이를 주워오면 안된다고 누누이 강조했잖아!』
『하지만 형! 그 고양이가 어딘지 아파보였단 말이야. 가엾게도 울음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고... 바들바들 떨면서 머리도 들지 못하고... 우리가 빨리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 했다고 의사 선생님도 그러셨잖아.』
『아아! 그랬지! 그렇긴 했지!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 신세가 이게 뭐냐고.』
『으아- 이걸 워째! 저걸 봐. 열차가 떠나려고 해, 형!』
『날아! 알!』

「뛰어!」가 아니라「날아!」랜다. 그래서는 자이언트 로보가 될지도 모르는 일인데... 어쨌거나 형제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엔진을 등에 짊어지고 날았다. 다음 열차는 앞으로 9시간 뒤에나 있다. 놓치면 낭패다. 하여 에드워드는 빨간 깃발을 흔들며 이상 무 신호를 보내던 역무원의 머리를 기꺼이 밟았고, 엿차 소리를 내며 높게 점프, 세계 최고기록 보유 육상 선수의 몸짓을 흉내낸 뒤, 가까스로 열차 꽁무니로 몸을 꾸셔넣는데 성공하였다.

콰당.

『아이쿠! 살았다.』
『나도.』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어.』
『늦을까봐 걱정 많이 했는데. 다행이다, 형.』
『아아, 오늘따라 이상하게 가방도 무거웠고 말이지. 고생 죽어라 했네.』

일어설 여력도 남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그대로 열차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동생이 줏은 고양이를 동물병원에 데려다주고 나서 줄곧 뛰기만 했다. 한쪽 다리가 오토메일이라고 해도 심장은 기계가 아니다. 숨은 턱까지 차올랐고 겨드랑이부터 옆구리까지 조이고 아파왔다. 조금만 더 뛰었으면 분명 기절했다.
 
『가방만 가벼웠어도 덜 고생했는데. 쳇. 아이고오~ 팔 다리 어깨, 삭신이야!』
『다리라도 주물러줄까, 형?』
『됐네. 조금만 쉬면 금방 괜찮아지니까.』
에드워드는 손사레를 쳤다.
『그런데 형. 그러고보니 오늘따라 왜 저렇게 가방이 두꺼운 거야?』
『두꺼워?』
『응. 두꺼워. 그리고 무거워.』
『설마. 단순히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뭐야, 이거. 정말로 두툼하잖아.』

언제 죽는다 그랬느냐며 에드워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근심에 젖어 가방을 열었다.
가방이 무겁다.
라는 것은?

철컥.

『으왁!』
『형! 왜그래!』
『이게 뭐야!』

100미터 정도 뒤로 도망쳤다.
그리고는 얼굴이 벌개졌다.

『형...』
『아냐! 오해야! 내가 안 그랬어! 알! 넌 믿어야만 해!』

알폰소는 가방에서 폭발하듯 떨어져 나온 종이뭉치들 - 정확하게 말하자면 과월호 플레이보이 잡지뭉치들을 주워들고 지긋이 형을 바라보았다. 사진의 여자는 섹시한 속옷 차림새로 하트를 날리면서 우~ 하는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알은 할 말을 잃었다며 다시 형을 쳐다봤다.

『형... 어른이 되었구나.』
『아니라니까! 이건 음모야! 알! 그렇게 뒤돌아서서 벽을 쳐다보고 웅크리고 앉지 말라니까! 알! 믿어줘! 믿어줘~~!』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동방 사령부의 하복크는 예의 태평스런 표정으로 파르만 준위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성장기 청소년이 무쉰 절간 스님처럼 살아서 되겠느냐고. 안 그래?』
『그래도 지나친 자극은 나빠요, 소위.』
『씁. 그 정도면 딱 좋아! 나쁘긴.』
나름대로 좋은 일 했다면서 만족스럽게 웃는 하복크였다.

***** 아직은 특정 커플링을 주제로는 글을 쓰지 못하겠습니다. 그것이 능력 한계일지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