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령, 시간 좀 있어?』
절반만 열린 문틈으로 콩알군이 슬그머니 코를 들이밀었다. 몸은 여전히 문 밖에 두고서 말이다.

당연히 시간 같은 건 없다. 화장실 갈 짬도 아까워 생리적 현상마저 횟수를 조절해서 처리하고 있을 정도니까. 가끔은 샌드위치를 우걱거리면서 서류를 넘겨 특유의 기름 얼룩을 만들기도 한다. 그럴 적마다 호크아이 중위의 잔소리는 천장을 뚫을 지경이다. 하여간 정신 쪼개지도록 바쁘다.

그래도 로이 머스탱 대령은「미안하지만 지금으로선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겠는데」라고 답변하는 대신 손가락을 까딱여 보였다.
망설이지 말고 안으로 얼랑 들어온나.
이어 손수 커피를 준비하러 책상에서 일어났다.

대령이라는 지위를 생각하자면 파격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손님 접대였다. 그러나 일회용 인스턴트 커피를 뜨거운 물에 붓고 스푼으로 가볍게 회회 젓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뭐가 어렵다고 그런 시시콜콜한 일까지 남에게 시켜먹나. 커피 맛이야 그저 그랬지만... 먹고 죽지만 않으면 된다. 따라서 오늘도 봉지를 죽 찢고 - 고운 가루를 바닥에 흘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 45초에 걸친 음료 준비를 끝마쳤다.

그러다 퍼득 깨달았다.
『아차차.』
준비한 잔에 뜨거운 물을 막 부으려다 말고 몸을 빙글 돌렸다.
휴즈 중령이 이럴 때를 대비해서 가져다준 것이 있었다. 그걸 깜빡 하다니.

『이건?』
눈짓으로 자기 몫을 가리킨 강철군에게 대령은 친절함을 가득 담아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대형의 초식동물 몸에서 나온 히멀건 분비물 말린 것에, 카카오 파우더를 섞고, 약간의 향신료와 포도당, 그리고 고소한 통보리 가루 약간을 넣은 뒤, 유능한 불꽃의 연금술사 로이 머스탱의 눈대중으로 뜨거운 물을 알맞게 부은 거라네. 일명 분말우유를 넣은 코코아라는 거지.』
『...』

설명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눈을 부라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책상을 두손으로 턱 짚었다. 그리고는 쟁반의 방향을 거꾸로 돌렸다. 그 행동의 의미는 명확했다. 애들 먹거리는 너나 먹으라는 거였다.

쯧쯧. 또 나왔다. 음식을 가려먹는 나쁜 버릇.
식곤증을 일으킨 것도 아니면서 머스탱 대령의 눈이 절반은 감겼다.

『나야 상관은 없네만... 일설에는 커피를 마시면 키가 자라질 않는다고 그러더군.』

순간 에드워드의 얼굴로 시커먼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조금은 갈등하는 눈치.
마침내 책상을 탁 하고 짚었다. 그리고 쟁반을 필요 이상의 힘을 주어 원위치로 돌렸다.

『예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음식을 가려먹는 건 좋지가 않아, 강철. 그러니까 키가 그 모양이지.』
『무시라! 누가 1/24 축소판 프라모델이라는 거냐! 이 무능 대령!』
『무능? 이봐, 이봐. 동부내란 시기에 손가락을 튕기는 동작 하나만으로 400명분의 라면을 일시에 끓여낸 사람이 바로 나야. 무능 대령이라니. 만능 대령이라 고쳐서 불러주기 바라.』
『400명분의 라면?! 당시엔 취사병이었냐?! 아니잖아!』
『취사병만 밥 하라는 법 있나. 배고픈 놈이 쌀 씻는 거지.』

어쨌든 이런 주제로 왈가왈부 싸우러 온 것은 아닐 터인데?
머스탱 대령은 가만히 자기 몫의 찻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두꺼운 시곗바늘이 오후 3시를 가리켰다. 흘끔 시선을 돌려 창밖을 쳐다봤다. 바람 한점 없는 좋은 날씨다. 허락된다면 운동장에 나가 공이라도 차고 싶었다. 물론 그 전에 호크아이 중위가 축구공에 총알을 쑤셔박겠지만.

『...』
다시 한모금의 커피를 입에 물었다.

기다리는게 다소 지루해졌다.
뭐라고 말 좀 해보지? 강철.

다시 5분의 시간이 지나갔다.

커피는 다 마셔버렸다.

한참만에 소년이 겨우 입을 열었다.
『저기... 있잖아, 대령.』
『응.』

그러더니 풀 죽어 도로 다물어 버린다.
『아, 아냐. 아무 것도.』
『싱겁긴.』

대령은 피식 웃으며 다리를 꼬고 앉았다.
이래서야, 쯧쯧.

『옛날 이야기 하나 해줄까, 강철.』
『에?』
에드워드는 뭐 잘못 먹었느냐며 눈을 동그랗게 떠보였다.
그러든 말든 머스탱 대령은 희극조로 두 팔을 벌려보였다.
『엄청 샤프하고, 지적이고, 유능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7년 전. 강철군이 기저귀에 오줌을 싸면서 편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바로 그 시절...』
『오줌 안쌌어! 지금 내 나이가 얼마인데!』
『어쨌든.』

어느 날인가 한 마을에 커다란 트렁크를 든 수상쩍은 외지인이 나타났다.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인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마을의 남과 북을 하루에도 수십번 왕복했다. 그리고는 술집에 들려 혼자서 맥주 한잔과 가벼운 식사를 주문하곤 했다. 식사를 다 마치면 여관으로 들어가 방문을 걸어잠구고 다음날 오전 늦게까지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았다.
평범한 여행자라고 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자였다. 사람들은 곧 그 남자를 꺼리게 되었다.
뿐만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 남자의 정체는 큰 도시에서 사람을 죽이고 도망쳐온 범죄자라고.

『시골은 시골 특유의 분위기라는게 있잖겠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곡괭이에 몽둥이, 커다란 횟불이 둘러쌌다 이거야. 자칫하면 맞아죽게 될 판이었지.』
『...』
『어땠을 거 같나, 강철. 한번 추측해보게. 그 남자는「나는 살인자가 아니오」라고 필사적으로 주장했을 것 같나?』
『안 했어?』
『그런 바보 짓은 하지 않았네. 남자는 유능했거든. 대신 다른 소문을 퍼뜨렸지. 실은 부잣집 처녀를 임신시키고 도망쳤는데 후일에 여자와 이 마을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더라... 뭐, 대충 그런 내용으로.』
『컥!』
머스탱 대령은 내용물이 텅 빈 커피잔을 딸랑이 종처럼 흔들어대며 박장대소했다.
『효과는 만점. 사람들 태도가 싹 달라졌지. 이제 곧 사랑하는 아가씨가 도착할테니 너무 상심하지 말고 더 기다려 보라는둥, 술 한잔 쏠 터이니 그렇게 우울해하지 말라는 둥... 사찰 나온 국가연금술사라고는 아무도 짐작 못하더라 이거야.』
『심하잖아! 사, 사기꾼...;;』
대령은 딱 잘라 말했다.
『바로 그거다, 강철. 멋들어지게 사기를 치는 것.』

죽은 사람을 되살리려 하는 건 용서받지 못할 대죄.
인체연성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인체연성을 시도한 연금술사는 철저하게 배척받는다.

엄마를 되살리려고 했다.
그 미소를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순수한 마음. 결코 때묻지 않은.
그래서 비난하기 어려운.

하지만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미 그 댓가를 톡톡히 치뤘다고 할지언정.
지옥을 봤다는 것 정도로 용서받을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알폰소는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 갑옷은 텅 비어있다. 왜냐하면 최연소 국가연금술사인 그 형과 같이 엄마를 되살리려 했다가 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 같더군.』

정곡이었다. 에드워드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대령은 또다시 졸린 표정을 하고 뺨을 긁어댔다.
이런, 이런. 이래서야 원.

『목에 힘주고 그때마다 싸우려 하지 마. 웃으면서 넘겨. 소문은 소문으로 응대해. 내 동생은 사실 엄마의 몸을 연성하려다 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내 팔 하나를 주고 동생의 혼을 갑옷에 연성했습니다. 그렇게 떠들고 다닐 거 아니라면 무시해.』
『하지만!』
『어차피 평생 너희들이 짊어지고 갈 짐이다. 매번 움찔거려서야 언제 목적지까지 걸어가겠나. 앞만 보고 가도 다 갈 수 있을지 모르는 길이다. 주의를 흐트러뜨리지 말도록.』

그리고는 에드워드의 어깨로 손을 올리고 두어번 툭툭 쳤다.
『네 동생은 곰에게 잡혀먹힌 거다. 그래서 네가 혼을 연성한 거고. 휴즈가 정보부 소속 답게 이미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넌 그저 입만 잘 맞추면 돼.』
『왜 하필 곰이야?!』
『그럼 호랑이로 할래?』
『어이.』
『어쨌든 넌 엄마를 되살리려 한 적이 없는 거다. 그럼 된 거야.』

있는 그대로의 사실도 분명 좋기야 좋다. 하지만 때로는 거짓이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진실이라는 것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면 잠시 감춰두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그게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어른이 곧잘 취하는 요령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진실이라는 건 찾기도 힘들고... 힘들게 찾았다 싶으면 금새 사라져 버린다.
냅둬라. 안그래도 가뜩이나 알쏭달쏭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