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리 못하고 굴러다니는 것들 제법 많죠... 날려먹은 것들도 많고... 몰라... (현실도피)
개그 버전입니다. 따라서 심각한 장면은 모조리 삭제되었습니다.


수업시간 도중임에도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학생이 있다면 교사는 부드럽게 질책을 가할 것이다. 화장실은 쉬는 시간에.
그렇다면 도서관에서 누군가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난다면 열람실 책임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나.
뭐, 간단하다. 십중 팔구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킬게다.
다른 사람 방해하려면 아예 퇴장하시오~ 쉭쉭.
그렇게 해서 리나는 변명도 못해보고 여관방으로 쫒겨왔다.

『하지만 그게 문제야? 여~ 제로스! 잠깐 나좀 봐.』
만장하신 가운데 도서관에서 쫓겨났다는 사실마저 뒷전이었다. 잔뜩 흥분한 나머지 그녀의 두 뺨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코 끝으로 심장 조각 일부가 살짝 튀어나왔다.
『헤에, 보기 좋네요. 낮술 한 잔 하셨나요?』
『시끄! 엉뚱한 소리나 하고 앉아있을 때가 아니야, 지금은!』

제로스는 영문도 모르고 끌려갔다. 리나는 온 힘을 다해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밭에서 무우가 맛있게 익었음이다. 부지런한 농부라면 당연히 뽑아야 할 것이다.
『뭐가 그리 급해요.』
『졸려서 하품 나오는 표정이랑 빨리 집어치워. 잔 소리 말고 이것 좀 봐.』
여기를 보세요, 하나, 둘, 셋.
리나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책을 활짝 펼쳐 제로스가 문제의 페이지를 잘 볼 수 있도록 했다.

엄청 심각한 내용이었던 건 확실하다. 제로스의 눈빛이 거짓말처럼 달라졌다. 이웃집 할머니 손주 자랑에 귀 기울이던 여유 만점, 영양 백점 포즈 따윈 당장에 집어치웠다. 갓난아기가 끓는 국냄비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 넣으려 하고 있음이다. 펄쩍 뛰면서 리나가 들이민 책을 단번에 낚아챘다.

『이, 이런 걸 어, 어디서!』
『도서관이지 어디겠냐. 내가 아무렴 빵집에서 책을 가져왔겠어?』
『그런게 아니라... 리나님은 아직 18세가 아니잖아요.』
제로스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책의 겉표지를 지적했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부분엔 선명한 붉은 인장이 박혀 있었다. 18세 미만 열람 금지. 제로스는 근엄하게 눈썹을 찌그러뜨렸다.
『보나 마나 손바닥 위로 마력구 하나 둥실 띄우고 생긋 웃었겠죠. 하지만 그건 나쁜 짓이예요.』
『어머머? 똑바로 하자구. 난 그걸 날리겠다 말한 적 없어. 날리지도 않았고. 난 그저 마력구를 만들어서 잠시 들고만 있었을 뿐이야. 그걸 그 쪽에서 제멋대로 해석하곤 엉뚱하게 착각한 거지.』
『뭐예요. 그래서 협박한 적 일절 없다는 말씀?』
『사실이야.』
비난받을 이유가 없었다. 리나는 천연덕스럽게 손을 뻗어 다시금 표지가 뒤로 가게끔 책을 돌렸다. 아무렴! 지금은 18금 딱지 같은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리나는 초조하게 윗 입술을 핥았다.

『밑줄을 그어 미리 표시해둔 부분을 읽어봐.』
맙소사. 이래가지곤 따귀를 맞았음이다. 제로스는 바들바들 떨었다.
『저기... 진심이예요? 나더러 지금 이 문장을 소리 내어 읽으라고?』
『뭐가 어때서. 걍 읽어.』
『마-족-의-정-액-을-직-접-섭-취-하-면-평-범-한-인-간-또-한-막-강-한-마-력-을-소-유-할-수-있-다-(윽!)』

목은 이미 졸릴대로 졸렸다. 새파랗게 질려서는 쾅 소리가 나도록 책장을 닫았다. 도대체가... 제로스는 불길한 예감에 얼른 손가락 하나를 들어 그녀는 제지하려 했다. 그러나 리나가 한 수 더 빨랐다.
『사실이야?』
『이런 걸 믿어요? 새빨간 거짓말이예요. 못 믿겠다는 표정인데...』
당연히 못 믿는다. 리나는 낡아 부스러질 것 같은 커다란 책을 힘겹게 받쳐 들고 진지하게 눈썹을 모았다. 지어낸 이야긴지 아닌지를 누가 감히 구분할 수 있느냔 말이다. 90살 먹은 노파가 아기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하면 웃기지 말라고 다들 비웃을게다. 그러나「좋은 농경의 책」에는 분명 사라가 그 나이에 애를 낳았다고 적혀져 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오로지 저술자만이 알고 있다? 알게 뭐람. 리나는 진지하게 턱을 고였다. 하여간 이 시점에서 분명한 건 제로스의 몸은 여느 인간 남자와 별 다르지 않게 생겼다는 점이었다. 농밀한 섹스 끝에 질펀하게 사정하지 말라는 법 있을소냐.

『여보세요.』
제로스는 물끄러미 응시하는 리나의 시선에 기겁을 했다. 그녀의 눈 위치는 정확하게 바지 앞섶 부분, 더 정확하게 지적하자면 볼록하니 튀어나온 다리 가랭이 사이로 맞춰져 있었다. 샤브라니 아빠시여. 마른 침이 꼴각 넘어갔다. 소스라치게 놀라 엉겹결에 뒤로 물러났다. 체면이 있을소냐, 일단 주장했다. 급한 나머지 말을 더듬거렸지만... 하여간 주장했다.
『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는데 우리 마족에게 정액이라는게 있을 리 없잖아요! 인간이나 드래곤처럼 짝짓기로 아기를 낳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남녀 구분이 있지 않아? 예전에 상대했던 마젠다는 분명 여자였어. 주제에 가슴이 풍선 같았다구! 밥사발 엎은 모양이었단 말이야.』
『모습만 그런 거예요.』
『모양만 비슷한게 아니라 그 기능마저 비슷한 건 아니고?』
『맙소사. 마젠다가 그 가슴으로 애에게 젖을 물렸을 것 같아요?! 그럴 리 없다고요!』
『나도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해. 가슴 모양이 망가지니까 안 그랬겠지. 이봐, 제로스. 긴 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 어쨌든 인간이 아닌 너에게도 그건 멀쩡하게 달려있잖아?』
『그거라뇨.』
『시치미 떼지 마! 그거, 그거 말이다!』

무안한 나머지 얼굴이 붉어졌다. 그래도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리나 인버스, 적당한 선에서 물러설 까닭이 없었다. 리나의 호기심은 여름날 호수 안개처럼 자욱하게 펼쳐졌다.
드래곤 족들은 수백 년에 한 번 꼴로 짧은 교배기를 갖는다. 일이 잘 성사되면 암컷 드래곤은 으슥한 장소에서 혼자 알을 낳는다.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 그렇다면 마족들은 어떻게 그 종족의 수를 지켜나갈 까나.
경험 많은 그녀도 어린이 마족이니 하는 건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래도 지난 천 년간 마족의 수는 최저치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없어진 만큼 그 숫자가 채워졌다. 리나는 골똘히 생각했다. 번식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어딘가에서 새로운 마족이 태어나고 있었다.

『이건 천기 누설이나 마찬가지인데... 하는 수 없군요. 설명을 해드리죠.』
깊은 한숨을 옆으로 하고 제로스는 장갑을 벗어들었다. 꾸물꾸물 동글게 말았다. 이얍, 기압을 넣고 두어 번 주물렀다. 순간 새까맣고 어두운 빛이 느껴졌다. 제로스는 조심스럽게 손바닥을 펼쳐 쥐었던 장갑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리나에게 보여주었다.
유령처럼 흐믈거렸다. 아메바 촉수처럼 생긴 팔이 있고 다리가 있다. 정확하진 않지만 찰흙으로 대충 버무려 만든 인형 같았다. 그 크기는 겨우 손가락 만한 길이... 썩은 찰떡 비슷한 것이 균형을 못잡곤 주룩 미끌어졌다.
윽, 징그러. 그녀는 움찔해서 뒤로 물러섰다.

『비슷한 거예요. 이제 아시겠어요?』
진흙 인형을 다시금 오무려 원래의 하얀 장갑으로 환원시킨 제로스는 그렇게 리나를 설득했다.
『마, 말도 안돼! 마족이 무슨 신다 내던진 양말이란 말이야?!』
『예를 들면 그렇다는 거죠.』
제로스는 다시 장갑을 끼었다.
『거짓말! 장갑은 의지를 가질 수 없음이야! 내복도! 양말도! 팬티도!』
『믿든 안 믿든, 그건 리나님 마음이예요.』
『아니. 마음 내키는 대로 믿고 자시고 할 것 없어. 직접 해보면 알텐데 뭐.』
『엑?!』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다음에는 공격. 벼락같이 팔을 아래로 내려 제로스의 바지를 훌렁 내려버렸다. 어차피 몸빼 스타일의 기능형 신관복이었다. 싱거울 정도로 잘 끌러져 내렸다. 나이스! 희미하게 맨 다리 살갗의 촉감이 느껴졌음이다. 여전히 두 눈을 꼭 감은 상태에서 리나는 베시시 웃었다. 버, 벗겼다!
『너무해!!』
『하나도 안 너무해.』
어릴 적에 동네 남자애들 바지란 바지는 죄다 벗겨봤다. 나뭇가지 위로 팬티를 집어 던지고는 나 몰라라 줄행랑을 치는 일엔 선수였다. 엉엉 울며 고꾸라진 사내 녀석들을 뒤로 한 동네 아줌마들이 저 년 잡아라 고함 지르던 일도 그리운 추억이다. 그런 이유로 리나는 남자 형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들 앞주머니 모양새가 어떻더라는 걸 줄줄 꿰고 있었다. 사이즈 적으로는 성인 남자의 것과 차이가 날 지도 모르겠다만... 방울 토마토도 토마토다!

빼꼼-
한쪽 눈만 살짝 떴다. 그리고 목표물을 잘 살폈다.
옳커니! 저것이렸다. 물 들어간 풍선마냥 길게 매달린 뭔가 보였다. 폭신폭신해 보였다. 누르면 물컹거릴 것 같다. 살색이다. 주름이 졌고 끝이 둥글다.
음... 그런데 꿈틀거린다.
하얀 것이 살짝 움직였다.
주룩, 흔들흔들.
이상하다. 리나는 눈을 깜박이며 더 자세히 봤다.

삐롱, 흔들흔들.
말렸던 도롱이가 활짝 기지개를 펴고 즐거운 윙크를 했다.
그간 밥 많이 먹고 잘 살고 있었나이까, 소인 괄태충이오.

죽었다 깨어나도 참을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 헛 것이 아니다. 껍질 없는 달팽이가 히죽 웃었다. 리나는 새파랗게 질려 입으로 하나 가득 거품을 물었다.

『더, 더듬이!! 과, 괄태충이다!! 소, 소금 가져와!!』
그녀는 2층 창문 밖으로 기꺼이 뛰어내렸다. 엉겹결에 투신한지라 발목을 분지르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나 죽는다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굴렀다.

내려진 바지를 급히 원래대로 집어 올리면서 제로스는 쓰게 웃었다.
『남자들은 말이죠, 적극적인 여자를 오히려 싫어해요. 분위기 없는 여자는 매력 없다고요. 일종의 교훈이라고 생각하고 다음부턴 이러지 마세요.』
그러면서 급히 꺼낸 민달팽이를 도로 4차원 호주머니 속으로 잘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