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절대적으로」접근이 불가능한 장소였다. 모두가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절대적」이라는 수식어는 평범한 인간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수만개의 부품 중 겨우 나사 하나가 잘못되어서 자동차는 고장을 일으킨다. 작은 모래 알갱이 하나로 값비싼 코브라 헬기는 일명「사막의 폭풍 작전」투입 한 시간 전에 폐품으로 일괄 처리된다.
절대적? 그거야 희망 사항이지. 그렇게 되고 싶다는 이야기와 동의어일 뿐이다.

팔베개를 하고 팔자 좋게 늘어져 있던 제로스는 잠시 생각했다.
자신들 마족들마저「절대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엔 영 버거웠다. 하물며 짧은 생을 살아가는 인간임에랴. 어디까지나 인간은 속옷 빨래를 하얗게 삶는답시고 펄덕대다 누렇게 구워 먹고, 된장찌개 데운답시고 냄비를 송두리째 말아 먹고, 하드 포맷한답시고 엔터 키 하나 잘못 눌러 귀한 자료들을 일시에 몽땅 날려버리는 그런 존재다.
실수투성이. 그게 인간이다.

제로스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을 짜고 죽어라 노력을 해봐도 어긋난다 싶으면 영락 없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저 위대한 세일룬의 성신 여왕 아멜리아를 봐라. 자신의 쉰 여섯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구두 뒷굽을 부러뜨리고는 그대로 나동그라지지 않았더냐. 진귀한 음식에 초대형 3층 케이크, 향긋한 샴페인에다 꽃으로 장식한 테이블을 열심히 준비를 해두었어도 한 순간에 도로아미타불.
다이아몬드로 장식을 단 최고급 소가죽 구두가 모든 걸 망칠 거라고 누가 짐작했겠느냔 말이다. 그저 여왕은 적자색 카펫 위로 서너걸음 정도 걸었을 뿐이다. 하지만 구두는 부러졌고 여왕은 굴렀다. 황금 휘장으로 어깨를 장식한 왕실 근위병들은 새파랗게 질렸으며, 고운 손을 가진 귀부인들이 입을 벌렸다. 그것으로 무려 1개월간 계획하고 준비했던 파티는「없었던 일로 합시다」로 결론 났다.

말이 좀 길었는데.
어쨌거나 하고픈 말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빈틈은 반드시 있는 법, 자만하지 말아라》

제로스는 손바닥에 주먹을 탁 내려쳤다.
그랬다. 지금 저 아래로「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라는 말이 한순간에 박살이 나고 있었다.

담벼락 높다하되 드나들 쥐구멍은 있사옵니다.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군인들조차 쉽게 근접할 수 없다던 저택이다. 그 안으로 침입자가 나타났다.
상대는 닌자 거북이도, 매실 먹고 슈퍼맨도 아니다.
대략 보아 아홉 살. 그것도 계집애.

꼬맹이는 흙투성이로 변한 손바닥을 바지춤에 문질러 닦았다. 돌부리에 긁힌 상처가 쓰라렸던 모양이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상처에 침만 바르고 잊어버렸다. 지금 그게 문제냐. 흙 묻은 옷무새는 냅두고 요물 고양이 같은 커다란 눈을 부리부리하게 떴다.
루비를 연상시키는 붉은 눈동자 속으로 한줄기 뜨거운 열풍이 지나갔다.
흥분과 짜릿함, 아드레날린 분비는 이미 오래 전에 최대치를 넘어섰다.

나무 위로 한가롭게 올라가 있던 제로스는 간만에 웃었다.
이거, 돌아가는 일이 참으로 재미있다.
『굉장합니다, 어린 숙녀님. 철통 수비를 자랑하는 저택 안으로 용케도 들어오셨군요?』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꼬마는 사람이 아닌, 동물의 움직임을 보였다. 아이가 눈을 감았다. 그렇게 잠시 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근처에 누가 지나가지는 않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콧구멍이 벌릉거리는 모양새가 무척이나 희극적이었다. 그러길 한 10초 정도? 레이더망에 걸리는게 없자 엉덩이를 하늘로 들어올린 채 훌쩍 뒤돌아 앉았다. 007의 이름을 빌려 은폐 작전 시작이다. 우거진 잡풀을 이리저리 어루만지면서 자신이 통과해온 담벼락 앞으로 돌멩이 탑을 쌓았다. 두 달은 쫄딱 굶은 말라깽이 여우 한 마리가 겨우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개구멍은 순식간에 그 존재가 지워졌다.
힘든 일인데도 능숙하게 해치운다. 손동작이 소매치기 뺨치게 재빨랐다. 왕년에 귀부인들 허리춤에 꽤나 신세를 졌을 법한 그런 움직임이었다. 단호하면서도 재치로왔다.

자기 머리 위로 인간의 행색을 흉내 내는 마족이 자리를 잡았다는 건 꿈에도 모르던 꼬마는 왔던 길을 감추는 일을 끝마치자 이윽고 앞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자세를 낮추고 샤샤삭. 짙은 녹음이 우거진 귀족 나으리님의 정원 속으로 차분히 가라앉았다.

머리카락에 진흙이 잔뜩 엉켰다. 입은 옷은 땟국에 절었다. 총천연색 색동옷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니겠다, 일단 허리를 낮추고 우거진 수풀 속으로 숨어들자 이놈의 자식이 어디로 기어들어갔는지 여간해서는 잘 보이질 않게 되었다. 개구리 위장복에 검댕 칠은 필요 없다. 자세만 낮추었어도 아이는 훌륭히 자연과 동화되었다. 들풀이 어지럽게 흔들리는 모양새가 현재의 진행 방향과 그 움직임의 속도를 어림짐작으로나마 가르쳐주고 있을 뿐, 몸무게가 어찌나 가벼운지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나무와 나무 틈새로, 바위와 바위 사이로.
무릎과 종아리를 움직여 일사불란하게 잘도 돌아다녔다.

제로스는 나무 위에서 자세를 고쳐잡고 양반다리를 했다.
『어라, 저 꼬마 아가씨 좀 보게. 자기네 안마당처럼 돌아다니네. 알고 보니 초행이 아니었군요. 얼씨구, 미리 와서 덫을 놓기까지 하였습니까? 허어∼!! 그것 참 깜찍하군.』
감탄하여 허벅지를 탁 하고 내려치는 바로 그 순간, 아이는 가고자 한 목적지에 도착했다.

가느다란 실과 나뭇가지, 그리고 녹이 슨 쇠붙이로 만든 조잡한 덫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실토실한 토끼 한 마리가 낑낑대며 장딴지 근육을 부여잡고 울고 있었다. 일단 발이 걸리면 그걸로 끝, 토끼는 절망했고 배고픈 인간은 소리 없는 환호성이나 질러댔다. 제로스가 앉은 곳에까지 씨익- 미소 짓는 소리가 들려왔다.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꼴깍 침을 삼켰다. 토끼는 얼었고 사람 형상의 그림자는 사나워졌다.

그것은 살기.
그리고 탐욕.
신이여, 성장기 어린이의 (4bit 바보 sigi ㉿) 4차원 밥통을 축복하소서.

아이는 익숙한 솜씨로 덫을 풀었다. 겁에 질린 토끼를 잘 잡았다. 죽기 싫다며 반항하는 짐승을 의기양양하게 내려다보며 코를 훌쩍거렸다. 그러다가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별안간 표정이 바뀌었다. 왼손으로 토끼의 발을 잡고 오른손으로 잡고 있던 귀를 놓아버렸다. 그러자 거꾸로 매어달린 토끼가 덜렁거렸다. 바로 이때다.
《흡!》
기압을 넣고 근처 바위를 향해 냅다 팔매질을 하였다.
하얗게 빛나는 태양 아래로 허연 토끼의 몸뚱이가 허공에서 빙그르르 둥굴게 회전하였다.
찰나는 영원으로.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는 속담은 이제 고쳐져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토끼로 바위를 친다.
따아악.
『관세음보살.』
아이가 짧막하게 토끼의 명복을 빌었다.

토끼가 움직임을 멈추자 꼬마는 오른팔을 천천히 안으로 다시 접었다.
소년 다윗이 골리앗을 잡았다. 적어도 제로스에겐 그렇게 보였다.
활 시위를 힘껏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죽 펼쳐졌던 기다란 팔, 그리고 단단하게 뭉쳐진 근육들. 비릿한 피내음과 달콤한 호흡... 바위에 묻은 한 방울의 핏자국.

생명은 희생을 토대로 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가칠한 토끼의 털을 쓰다듬으며 아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가엾다고 생각하면서도 기꺼이 먹어치울 수 있다. 그것이 본능이고, 삶이다.
전쟁은 무려 3년간 계속되었다. 사랑, 믿음, 소망이라는 달콤한 단어들은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사어(死語)임이 분명했다. 병이든 노인네들은 버림을 받았다. 부모들은 앞다투어 아이를 노예 시장에 내다 팔았고, 젊은 여자들은 강제로 범해진 뒤에 차가운 우물 속으로 던져졌다.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한다. 개나 고양이들의 씨도 말라버린 판국이다. 새들도 하늘 위로는 날지 않았다. 
어느새 싸늘한 미소가 아이의 입가 위로 슬슬 떠올랐다. 죄책감? 웃겼다. 그게 어때서? 하나도 슬픈 일이 아니다. 토끼를 가여워하다간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다. 더러운 손으로 아이가 자기 얼굴을 마구 부볐다. 끈적거리는 감정은 모두 지워버려야 한다. 남을 죽여서 먹지 않으면 이쪽이 죽게 된다.
아이가 거칠게 눈을 비볐다.

귀족의 정원에서 토끼를 훔쳐낸 꼬마 사냥꾼은 서둘러 일을 마무리했다. 문제의 토끼는 허리춤에 잘 매달았다. 덫을 새로이 수리하고 풀잎을 뜯어 핏자국을 지웠다. 틈틈이 주위로 눈을 돌려대면서 조막막한 손가락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기척을 죽이고... 후진. 우거진 수풀이 다시 둥글게 움직였다.

지금까지는 문제 없었다. 아직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계속은 아니었다. 제로스는 지긋이 눈을 감았다.

『불쌍해라. 등뒤를 조심하라구요. 쯧쯧, 이걸 어쩌나. 오늘은 운이 없나 보군요, 침입자씨.』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앙칼진 비명소리 하나가 숲을 꿰뚫었다.
아이는 순식간에 포위당했고, 목덜미를 와락 붙잡혀 허공으로 떠올랐다.

『쥐새끼가 어딜!! 이노무시끼.』
『!』
『감히 주제에 어딜 기어들어와서 도둑질을... 간댕이가 크게도 부었구나.』

병졸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꼬맹이를 일제히 에워쌌다.
그중의 대장격으로 보이는 자가 아이의 몸을 번쩍 들었다.
허공에서 아이의 두 다리가 덜렁덜렁 흔들렸다. 멱살을 붙잡힌 꼬마의 얼굴색은 새까맣게 죽어갔다.
병졸 중 하나가 솥뚜껑 같은 손을 들었다. 그리고 작은 머리통을 사정 봐주지 않고 냅다 후려갈겼다.

『!!』
목이 졸렸으니 비명 지를 건덕지도 없었다. 벌려진 입과 코로 조금이나마 공기를 들이마시고저 발악을 하고 있었을 뿐, 육체의 아픔을 호소하는 일에는 일절 관심 없었다. 다만 두 개의 눈구멍과 콧구멍에서 맑은 액체가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것으로 그 충격이 영 만만치가 않았음을 표현했다.

『이놈이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들어올 수 있었지? 제기럴.』
그들 중 하나가 재수 없다며 반복해서 툴툴거렸다.
『제세성절 이후로 담벼락 보수를 게을리 한 탓입니다. 날씨가 따뜻해지자 지난 겨우내 얼었던 바위들이 녹으면서 일부는 갈라지고 더러는 깨지기도 하니까요. 아마 그 틈새를 비집고 몰래 들어왔을 겁니다. 몸집이 작으니까 개구멍을 만들어 놓고 용케도 들락날락 거렸던 모양입니다.』
『나참, 나으리님이 알면 우린 죄다 경을 친다. 요런 쥐방울이... 어이고!』

자신들의 불찰이었다. 담벼락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이런 어린애가 오작가작 했다는 사실이 혹시라도 알려지기라도 하는 날엔 감봉 조치 정도로는 끝나지 않는다.
그들의 주인은 아틀라스 시티의 제일 가는 세력가이자 품질 좋은 폭약을 수출하는 대단위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이웃 왕국들로 운반되어져 나가는 무기 수출의 계약 문건이 혹시라도 외부로 유출되어 나가기라도 하는 날엔 그 즉시 외교 문제로 불거진다. 그야말로 농담이 아닌 것이다. 새로운 무기를, 보다 강력한 파괴력을... 탑 시크리트 딱지가 붙은 수출품 목록들을 대강만 훑어봐도 전장의 모양새가 어떻게 변해 나갈지 한 눈에 보이게 된다. 철통 방어는 그래서 필요하다. 여유를 부려가며「살다 보면 쥐새끼도 나오고 그럴 수 있습죠, 그러니까 너무 무어라 하진 마십시다」라고 말한다면 지나가는 개가 웃는다.
그들의 주인은 일종의 씨줄과 날실이었다. 조금만 손가락에 힘을 달리해도 전쟁의 모양새가 달라진다. 오늘은 세일룬에, 내일은 달세크에... 주인은 코웃음을 치며 냉소적인 죽음을 팔았다.

『빌어먹을.』
대장인 듯한 사내의 목소리가 음울한 빛을 띄며 낮아졌다.
『모두들 알겠냐?! 이놈이 어디로 들어왔는지 반드시 알아내어 처리해. 그리고 주변 경계를 한층 더 강화하고. 수상한 자가 나타나면 그 자리에서 죽여.』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살육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사내는 강조하며 부하들의 어깨 위로 하나하나 눈도장을 찍어댔다.
『반드시 죽여.』
성가시다며 손안에 쥐고 있던 토끼 꼬맹이를 흔들었다.
먹지 않으면 먹힌다. 삶이라는 건 항상 그렇지 않더냐.
용병 경력 20년의 사내는 그리하여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마당에 표시 안 나게 파 묻어.』
말귀를 알아들은 병졸들이 내지르는 불유쾌한 신음 소리에 꼬맹이의 얼굴색 또한 확 달라졌다.

병졸들이 투덜대며 자기네들끼리 입을 모았다.
『좀 더 자랐으면 즐겨보기라도 할 터인데... 쯧. 남잔지 여자인지 구분도 안 가는 어린애를 가지고 뭘 하겠어? 어이, 목이나 댕겅 분질러버려.』
『이봐? 그래도 난 한 번 해보고 싶은데.』
『아서라. 저 몸뚱아리에 쑤실 구멍이나 있을 것 같냐?』
『그게 어때서. 없으면 만들면 되지.』
『관둬. 상상만 해도 구역질난다.』

사내들은 가볍게 한숨지었다. 3년만 더 나잇살을 먹었어도 재미있게 놀아봤을 터인데 참으로 아깝게 되었다. 약자를 밟는 즐거움, 망가뜨리는 기쁨, 짓밟고 때리고 고문한다. 옷을 벗기고 그 위로 올라탄다. 몇 번까지 버티나 내기를 해가며 좋아라 희롱한다. 숨이 끊어져 입으로 피거품을 뿜어대지 않는 한 평화는 없다. 그리하여 신 없음에 세계의 존재 자체를 경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껏이다. 경멸도 반복해서 하다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된다.
사내는 지겹다는 투로 아이의 목을 잘 잡았다. 
힘 주어 비틀면 된다. 아니면 뒤로 꺾어버리자.

하지만 바로 그때.
손아귀로 힘을 주다 말고 멈칫거렸다.
『잠깐만. 개 우리에 마지막으로 밥을 던져준 것이 언제냐?』
무슨 의미로 그런 걸 묻는지를 잘 파악할 수 없다며 병졸 중 하나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반나절 전인뎁쇼.』
『그거 좋군. 잠시 여흥을 즐기기엔 더도 말고 딱이야.』
사내는 손가락을 딱 튕기며 머리 속으로 떠오른 얼룩무늬 그림 파편을 즐겁게 감상했다.
그림 속에는 차가운 쇠창살로 만들어진 커다란 짐승 우리와, 위협적으로 이를 갈아대는 송아지 크기의 대형 개 다섯이 들어가 있었다. 하나같이 잘 훈련받았고, 모두가 지옥의 문지기처럼 살기등등한 녀석들이었다. 이런 꼬맹이 정도는 한 입에 뚝딱 헤치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 컹컹 짖어대는 소리에 겁 많은 자들은 오줌을 지렸다.

《...만 있다면!》
멀리서 으르렁대는 짐승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신호, 병졸들은 잡았던 아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놓아버렸다. 그리고는 키득대며 신나라 웃었다.
《...만 있다면!!》

주춤거리며 시간을 낭비하는 바보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아이는 전력질주하며 뛰어나갔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뒤에서 지옥의 개가 황산의 침을 뚝뚝 흘려가며 뒤쫓아 달려오고 있었다.
공포에 짓눌려 심장이 찢어지려 했다. 머리털은 죄다 곤두섰고 다리가 후둘후둘 떨렸다.
식사 시간이 다가온 개였다. 침입자만 봤다 싶으면 무조건 달겨들어 머리통을 아작아작 씹어먹게끔 훈련받은 전문 사냥개였다. 게다가 재미들린 인간들이「워이, 워어어이∼」소리를 질러가며 개들을 독촉하고 있었다.
바람 속으로 매정한 욕망이 녹아들어갔다.
《죽여, 찢어, 먹어!!》

일이 좀 급하게 되었다. 제로스는 나즈막히 툴툴대며 올라갔던 나무에서 재빨리 내려왔다.
날카롭게 날이 선 공기가 그의 귀를 무척이나 아프게 하였다.

《좋아요, 당신이 내지르는 강렬한 염원의 소리를 이 제로스는 두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심심하던 터에 잘 되었다. 짧은 여흥이라도 반가웠다.

《...있다면 악마와도 기꺼이 계약하겠다.》
하겠다는데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요? 저와의 계약을 원하십니까?》
신은 어디에도 있지 않았다. 그러나 둘러보면 제법 악마는 우굴거렸다.

『우와아앗!!』
정신없이 달려가던 어린아이가 느릅나무와 정통으로 박치기라는 걸 해보였다.
개들이 컹컹대는 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혼돈이여, 어서 오시오.
겁에 질린 아이는 이성을 잃고 애꿎은 나무를 마구 걷어찼다. 정신착란증세를 일으켰다고 해도 그런가보다 싶을 지경이었다.
『오지마!』
아이는 조약돌을 주워 손에 쥐었다. 그리고 씩씩대며 조그마한 두 뒤를 쫑긋 세웠다. 무엇이든 나타나기만 해봐라, 눈알을 파버릴테다!
아이가 내지르는 혼돈의 말을 인간이 알아듣게끔 번역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마침내 풀들이 흔들리며 그림자 하나가 확 달겨들었다.
아이는 속눈썹을 깜빡여 뜨거운 눈물을 장대비처럼 온 사방에 뿌려댔다.
울부짖으며 팔매질을 했다.
그리하여 제로스는 우왁스럽게 날아오는 조약돌에 머리를 맞았고...
『아얏!』
잠시 깨갱대었다.


병졸들은 벼락에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곳추세웠다. 골방에 들어가 혼자서 막 자위를 하려던 참에 여동생에게 그 흉칙한 모양을 들켰다고 해도 그런가보다 싶을 지경이었다.
『제, 제로스씨! 아, 아니. 저기... 그러니까... 아이고!』
신관은 주인의 귀한 손님이었다.
다시 말해 주인의 귀로 그들의 추태가 고스란히 전해지게 되었다.
『일을 깨끗하게 처리하는 법에 대하여 강의라도 해야 하는 건가요.』
제로스의 눈썹이 활처럼 구부러졌다. 자고로 우아한 자는 나름대로의 대화 방법을 가지고 있는 법이 아니더냐. 제로스는 살짝 고개를 돌려 그들을 외면하는 것으로 덩치 커다란 사내들을 은근히 비난했다.
『아이를 개에게 먹이다니.』
『그, 그건... 그, 그러니까... 부탁입니다, 나으리. 주인님께는 비밀로 해주세요.』
『창피한 줄은 알고는 있습니까.』

제로스는 피묻은 헝겊을 땅바닥에 던졌다. 짐승의 이빨에 맞물린 나머지 헤어지고 찢김을 당한 천쪼가리는 모두의 주목을 받아가며 바닥을 뒹굴었다.
잠시 그들은 사이 좋게 말을 잃었다.
그러길 몇 초? 누군가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내일은 개들에게 밥을 주지 않아도 되겠군요.』
어허라, 인간은 어디까지 냉담해질 수 있는 것일까.
죽은 토끼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쥐고 개구멍 너머로 사라지던 어린 여자아이의 작은 궁둥이를 떠올리던 제로스는 잠시 현기증을 느꼈다.
무시라? 내일은 밥을 주지 않아도 되겠다고라?

뭔가 축축한 느낌이었다. 착 가라앉은 늪처럼 끈적거리면서도 기가 막히도록 서늘한...
그것은 눈물 투성이의 아이의 뜨거운 뺨을 쓰다듬었을 적의 촉감이기도 했다.

《살고 싶어요.》
《살려드리겠습니다. 저와 계약하시겠습니까?》

여전히 그들은 전쟁 중.
뜨거운 눈으로 울부짓으며 진솔한 소리를 내곤 하는 인간들은 어디에든 흔하게 널렸다.
악마의 마음을 침식하는 소리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사방에 가득찼다.
그것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고 어떻게 버티리.



*** 아멜리아가 할머니가 되어 있으니까 좀 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깁니다. 곳곳에서 내전이 벌어졌고... 이 시대에는 폭약을 사용한 살상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전투능력을 갖춘 마법사의 숫자가 적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