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2개월이나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커다란 종합 무역 상사를 운영하고 있는 인버스씨는 지나간 날짜를 곱씹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아니, 벌써 오늘이...!!
이웃 나라로 수출할 물품들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장부에 숫자를 그려넣다가 시간을 잊었습니다. 배로 실어다 나를 운송용 나무 상자를 포장한 것이 엇그제 같기만 한데 달력에 적혀진 숫자들은 왜 그렇게 빨리 바뀌었느냔 말입니다. 총알 탄 사나이도 아닌 것이 세월은 참으로 빠릅니다.
그리운 마누라 얼굴이 시야에 어른거립니다. 인버스씨는 흐믓한 미소를 띄고서 자신을 반겨줄 사랑스런 얼굴들을 생각합니다. 처녀적부터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해맑게 웃어줄 마누라랑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과도 같은 두 딸들...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을 만끽하며 가던 길을 재촉합니다.

지금 그는 잠시 짬을 내어 시장이라는 곳에 들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줄 선물을 구하러 여러 가게들을 기웃거리던 중이었지요. 진귀한 악세서리랑 골동품 화병이랑 고운 레이스 프릴로 허리선을 장식한 공단 드레스... 몇 번의 악전고투 끝에 얻은 전리품이 옆구리를 이미 푸짐하게 장식했습니다. 선물 꾸러미들로 손이 남지 않고 있습니다. 덕분의 지금의 그는 방울을 잔뜩 매달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연상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인버스씨는 여전히 선물 타령을 해가며 주변 가게들을 다시금 살펴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딱 하나만 더, 마법의 주문은 끝날 기색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책을 좋아하는 큰 딸을 생각하고 서점 근처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어쩌면 큰 딸 루나가 그렇게도 가지고 싶어하던 양가죽으로 된 정장본「걸리버 여행기」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운이 좋다면 초판본으로 찍은 귀한 골동품 책들을 구입할 수도 있겠죠.
뭔들 어떻겠습니까? 인버스씨는 기분이 좋아져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서점가를 느릿느릿 지나칩니다. 유리창에 비친 그의 얼굴이 화사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습니다.
《이상하네. 보소. 저기... 뭔가가 잔뜩 쌓여져서 올라가고 있지? 어째 수상하구먼.》
허리가 구부정한 할아버지 한 분이 경련을 일으키며 언덕 저편을 향해 손가락질을 해보입니다. 바삐 길을 지나가던 행인들 몇이 그런 노인의 모습에 호기심을 느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한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립니다.
그러고 보니 특이한 광경입니다.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방금 잘라낸 것이 분명한 두툼한 나무토막들이 하나의 산을 이루며 점차 높게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캠프화이어 준비는 아닐테고... 그다지 썩 기분 좋은 모습은 아니었어요. 초호화 고급 주택가가 몰려있는 장소에 어연 통나무 산이랍디까? 그것은 불길한 징조였습니다.

사람들의 불안감은 환절기 감기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널리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선물 보따리를 든 인버스씨도 예외는 아닌지라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부근을 근심에 가득차 바라보았습니다.
기억이 맞다면 굴지의 명문가인 메탈리움 백작가의 대 저택이 있는 곳입니다.
메탈리움씨가 대규모 바비큐 파티를 계획한다던 소문은 들은 바가 없었습니다.
혹시나? 독버섯처럼 그의 마음을 야금야금 잘도 파먹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도 예감이라는 놈이 척 하면 들어맞는 편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께름직한 느낌의 직감은 곧바로 현실이 되어 다급하게 경종을 울렸습니다.

《큰일이예요, 큰일! 이걸 어쩌면 좋냐. 메탈리움 가에 엄청난 일이!!》
헐레벌떡 언덕을 뛰어오던 건장한 사내 하나가 동네 사람들아∼! 해가며 고함을 질러댔습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과 줄줄 흐르는 땀... 호들갑을 떨며 마을 주민들을 향해 손짓 발짓을 섞어 설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이게 무슨 조화랍니까? 제라스 메탈리움 백작 부인의 하나뿐인 아들이 장작 더미에 무작정 올라가서는 홀라당 다 태우라고 그러더랍니다. 무섭게 펄펄 뛰는데 말릴 재간이 있어야죠. 당장에라도 하인들을 시켜 나무에 불을 놓으라 명령을 내릴 것 같던데... 큰일입니다. 메탈리움 부인은 지금 출타중이시니 이를 어쩐다.》
《홀라당 태워? 그 도령이 미친나. 와? 뭐 땀시 분신 자살을 한다는 거여?》
《에... 그러니까 말입니다.》
여기서 인버스씨는 딱딱하게 얼어붙었습니다. 말 그대로 일개 군단의 개미가 스멀스멀 피부 위를 지나가고 있다는 식의 그런 기분이었어요.
《거 뭐라더냐? 잘 아는 이웃 처자에게... 도령이 그만 순결을 잃었답니다. 음하하.》

그건 비보였어요. 결정타였죠. 선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집으로 두말없이 뛰어간 인버스씨는 사색이 되어 하느님 맙소사 소리만 연발했습니다. 집에는 이미 많은 지역 유지들이 몰려들어 주인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게 어디 보통 일이어야 말이죠. 사태의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머리를 흔들어댔습니다.

《상황 좀 압시다. 멀쩡한 인간이 왜 타 죽겠다는 겁니까?》
《이름이 제로스던가? 하여간 그집 자제분이 장작더미 꼭대기 위에 올라서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군요.『리나님∼♬ 날 책임 져라∼♡』바로 이렇게요.》
《책임? 뭔 책임.》
《이 사람이! 다 알면서 시치미 떼긴.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대충 그런 거지 뭐긴 뭡니까. 젊은 남자가 팔팔한 외간 여자에게 무슨 짓을 당했겠수. 뻔하지.》
《말 한 번 잘 한다. 그러니까 댁의 말은 [지난 밤에 그들이 무슨 일을 벌렸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이런 거유?》

낯 뜨거운 대화가 아닐 수 없었어요. 인버스씨는 실수로 뜨거운 물을 뒤집어 쓰기라도 한 것처럼 얼굴을 붉혔죠. 만화경 유리 속의 색종이 돌아가듯 시야는 어지러웠고 끼니를 수 차례 굶은 것도 아니건만 세상이 흔들렸습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도대체 딸네미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냐.
그들의 비난하듯 쯧쯧 혀 차는 소리가 가슴을 긁었습니다.
게다가 상대는 고귀한 귀족의 자제입니다. 일이 잘못되면 망하는 건 기본입니다.

평상시 화내는 법이 별로 없던 그였지만 이번에는 무섭게 폭발했습니다. 인버스씨는 당장 딸의 방으로 달려가 다리 몽둥이를 분지르려 했어요.
《리나! 내 딸아. 네 입으로 직접 이야기를 해보렴. 네 성격이라면 맘에 드는 남자의 머리 끄댕이를 붙잡고 와선『이놈과 결혼하겠어요』라고 말할 법도 하다만... 한 입에 삼켰을 적엔 언제고 이제 와서 낼름 토해?! 이게 무슨 짓거리냐.》
그러나 정작 답답한 사람은 리나 인버스 쪽이었습니다.
《아빠. 오해예요. 그저 달 밝은 밤에 재미있게 공 놀이를 한 것이 전부라고요. 축국이라고 하는 일종의 전통 놀이죠. 전 억울해요.》
《공놀이? 축국?! 그 무슨 삼순이 봄바람에 나물 캐는 소리!》

하지만 리나는 더 이상 무어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건 절대 거짓말이 아니었거든요.
어머니가 출타 중이라 혼자 저녁밥을 먹는데 그게 참으로 곤욕이더라, 그러니까 생각 있으면 8시에 집으로 놀러 와라. 같이 밥 먹자.
제로스가 보낸 편지엔 그런 내용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허물없이 친구로 지내던 그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았는데 뭐 하러 거절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리나는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심정으로 메탈리움 댁을 가볍게 방문했습니다.

손님은 그녀 혼자였지만 분위기는 화사한 파티처럼 활기찼습니다. 제로스는 탐스럽게도 잘 먹는 리나가 보기 좋다며 계속해서 주방으로부터 맛있는 음식을 퍼왔습니다. 소녀가 빈 접시로 아찔한 높이의 바벨탑을 쌓고 있었어도 꺼리는 기색이 아니었습니다. 되려 10년 묵은 귀한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는 한껏 리나의 식욕을 돋구었지요. 원한다면 공룡이나 코끼리 통구이라도 해다 바칠 분위기였습니다. 리나는 더할나위없이 행복해했고 제로스 또한 귀엽게 싱긋 웃었습니다.
결국 1시간 무렵이 지나자 소녀는 대형 식품 저장고 하나를 완벽하게 거덜냈습니다. 볼록 튀어나온 아랫배를 통통 두둘기며 꺼억 트림도 했답니다.

《배가 너무 불렀어요, 아빠. 숨 쉬기도 버거우리만치 무척이나요.》
《그래서 소화도 시킬 겸 둘이서 사이 좋게 공차기 놀이를 했다?》
《그 날은 달이 참 밝았어요. 보름달이었거든요.》
《내 딸아. 아무리 휘황찬란한 보름달이라도 다리로 차는 고무 공이 보이겠냐? 말이 안되잖니.》
《아빠 말씀이 옳아요. 그러니까 녀석이 실수로 내 망토를 발로 지근 밟았죠. 쫘아악 찢어졌다고요. 내가 가장 아끼던 물건이었는데 그걸 한 순간에 망가뜨리더군요.》

희미하긴 했지만 리나의 뺨이 가벼운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젖 먹던 힘을 다해 받으라고 걷어차준 고무공은 엉뚱한 정원수를 둘로 쪼개버렸습니다. 거기다 공을 피해버린 당사자는 리나의 등뒤로 폴짝 뛰어들었으니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지요.
밝은 보름달 아래서도 고무공 차기 놀이는 역시 무리였습니다. 고의든 실수이든. 어쨌거나 찢어진 건 찢어진 겁니다.

제로스는 당혹스러워 하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자고 말했습니다. 망가진 겉옷을 벗어 자기에게 달라고 하였습니다. 리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러자고 대답했습니다. 당시 시계 바늘은 정확히 밤 10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손수 망토를 꿰매줄테니까 자기 방으로 가자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인버스씨는 계속해서 딸을 심문했습니다.
《그게 전부예요. 제로스는 바느질했고 전 의자에 앉아 묵묵히 기다렸다고요.》

심리학자 피터 마슈는『눈에는 눈』이라는 저서에서 밝히길, 눈은 속이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거짓말을 할 적에는 아무래도 본능적으로 긴장을 하게 되는지라 상대방의 시선을 피하면서 불안해 하는 기색을 보인다는 것이지요.
《그래도 저 아이는 바로 내 핏줄을 이어받은 내 딸이 아니더냐. 교묘하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식으로 거짓말을 할 수도 있지.》
능숙한 거짓말쟁이는 눈의 표정 또한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습니다. 목소리도 빨라지거나 느려지지 않으면서 말 또한 더듬거리지 않습니다. 아주 먼 과거, 죽자 살자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는 장모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목소리를 내리깔고는『당신 딸은 지금 임신 2개월이오』라고 거짓말을 한 경력을 가진 인버스씨는 내심 불안했습니다. 얼마나 감쪽같았으면 달이 찼는데도 왜 손주가 엄마 뱃속에서 나오질 않느냐며 아내의 친정 식구들이 징그럽게 난리를 피웠으니까요.
쩝. 2개월의 미스테리는 여전히 인버스 가문의 오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여간, 인버스 씨는 딸의 눈을 조용히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거짓인지 참인지를 읽어내려 애썼습니다. 눈의 동공이라는 건 사람의 감정에 반응하면서 그 기복에 따라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는 법입니다.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거짓말을 해도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동공이 크게 벌어집니다.

《아빠. 믿어주세요. 나는 제로스랑 같이 자지 않았어요.》
딸 아이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장 결혼식 준비다. 청첩장 찍어 돌리자꾸나.》
《아, 아빠아앗!! 세상에 이럴 수가! 왜 안 믿어 주시는 거예욧?!》

동네 방네 이미 소문이 쫙 돌았습니다. 메탈리움 가문에서는 순결을 잃은 남자가 자신을 장가 보내 달라며 생난리를 치고 있었고, 대 상인의 딸 리나 인버스는 분노한 아버지 손에 이끌려 범죄 현장으로 질질 끌려오고 있었습니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포승 줄에 꽁꽁 묶여선 절망한 얼굴로 타박타박 걸어가는데 이거야말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송아지입니다.
재미있게 되어버린 촌극에 마을 사람들의 귀가 쫑긋 일어섰습니다.
부녀가 앞다투어 찌르는 목소리로 싸웁니다.

《아빠. 아빠는 날 안 믿어? 어쩜 그럴 수가!》
《시끄럽다, 아가야. 자고로 나이가 차서 성인이 되면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지.》
《그런 일 없었어요.》
《정말? 아무 일도?》
인버스 씨가 딸을 노려보았습니다. 리나는 조금 쫄았습니다.
《그야 키스 정도는 해봤지만... 그래도 아빠. 책임이라 하셨나요? 말이 되질 않잖아요. 일단 그 쪽이 남자고 내가 여자인데.》
《성차별 하지 말거라. 남자의 정절도 소중한 것이다.》
《이잇! 화나는군요. 순결이니 정절이니 뭐니 하는 것 자체가 웃기지 않나요? 난 아빠의 전 근대적인 사고방식에 찬성할 수 없어요. 어디까지나 21세기가 내일 모레인데 고리타분한 느타리 버섯처럼 그게 뭐냐고요. 실제로는 결백하지만... 하여간. 남녀가 함께 섹스했다고 결혼까지 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아요?》
《내 딸아.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나. 슬레이어즈 세계에서는 서기라는 연대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21세기? 훗... 여기선 가치관이 달라요.》
쐐기풀 덩어리로 누군가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해도 이만한 충격을 받지 않았을 것 같았습니다.
리나는 악 하고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일은 척척 진행이 되고 있었어요. 나무 장작더미에다 불을 붙인답시며 이리저리 근방을 서성대던 하인들도 아가씨의 등장과 함께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어차피 물에 젖은 나무에 불을 붙일 재주도 없던 사람들이니 사라져도 그만입니다. 젖은 나무 꼭대기 위에 결가부좌를 틀고 앉은 제로스는 꿈에서조차 그리워한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습니다.

《난 싫단 말예요오!! 억울해. 우리 사이엔 아무 일도 없었는데!!》

없으면 있게 만들면 되는 겁니다. 제로스는 숨죽여 웃던 걸 멈추곤 짐짓 눈가에 침을 발라댔습니다. 그럼 울어봅시다. 감기에 걸린 환자인양 코도 훌쩍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아, 내 처절한 사연 좀 들어주쇼∼♬ 청년이 만장하신 가운데 소리쳤습니다.
《그날 밤 리나님은 억지로 날 눕히고!》
- 찢어진 망토를 물어내라며 자근자근 허리를 밟았습니다∼가 정답입니다.
《제발 그만하게 해 달라고 애원도 해보았지만!》
- 기왕에 하는 바느질, 꼼꼼하게 박음질을 하라고 엄청 으르렁댔죠∼가 정답입니다.
《망측하다! 맞을래, 죽을래. 야! 제로스!》
리나가 그 무슨 헛소리냐며 껑충껑충 뜁니다.
그러든 말든, 제로스는 손바닥으로 메가폰 모양을 만들고는 사방팔방 고함을 질러댔습니다.
《그때는 나더러 참 잘한다고 칭찬해 주고는 지금 와선 싹 모르는 척!!》
- 바느질 이야깁니다. 바느질.
《책임 져라~♡》

그렇고 말고요. 그녀는 청년의 마음을 지배해 버렸습니다. 가져가 버렸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리나는 제로스를 책임질 의무가 있었습니다.
다소의 오버 액션과 허풍을 섞어 제로스는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알았어, 알았다고. 리나의 애비로서 말하는데 책임을 통감하는 바일세. 그러니 내 딸과 약혼을 하게. 내 알아서 다 준비하도록 하지.》
《안돼요. 정확히 3일 뒤에 결혼서약을 하게끔 해주세요. 안 그러면 난 타 죽을 거야.》
《여보게. 시간은 더 주게나. 3일은 너무 빨라.》
《리나님은 내가 아프다고 하니까 거길 호호 빨아주마 말하고∼!!》

바느질하다 손가락 찔린 이야기라는 걸 모르는 인버스 씨는 울상을 짓습니다.
《빠, 빨... 내 딸아. 정말이지...》
《몰라욧!》
리나는 귀를 옆으로 눕히고 완강하게 거부합니다. 약혼? 결혼? 죽으라고 해.
그런 그녀를 인버스씨가 작정하고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립니다.
《리나야. 있다가 애비랑 같이 숯불 돼지 불갈비 먹으러 갈 거지?》
《예!》
먹는 이야기에 귀가 솔직해진 리나가 뭣도 모르고 얼른 대답합니다.
《들었는가? 리나가 자네랑 3일 뒤에 결혼하겠다고 대답했네.》
《아아악!! 아빠아아아!! 모두 용서 못해애애애!!》

그렇게 해서 때아닌 결혼식 준비로 온 마을이 시끄러웠습니다.
결혼식 이틀 전, 제로스의 오른쪽 눈두덩이가 시퍼렇게 변했습니다. 그 다음날엔 왼쪽 눈탱이마저 변색되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식 당일, 신랑은 무사히 신부의 입술 위로다가 맹세의 입도장을 확실하게 찍을 수 있었습니다. 눈이 부었어도 입술은 끝까지 멀쩡했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여차저차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

어라? 제 이야기가 재미 없었습니까? 왜 그렇게 노려보시는 건가요, 리나님. 나름대로 열심히 지어낸 이야기인데... 저런 저런. 너무 그러지 마시라고요. 스마일, 스마일. 그럼 이런 이야기는 어떻습니까.

어느 마을에 눈이 보이지 않는 현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름은 레죠 그레이워즈라고 했는데요 평생 소원이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거였답니다. 그런데 하루는 길을 지나가는 땡중이 말하길, 공양미 300석을 부처님께 바치면 개안을 할 수 있다고 말해서... 그래서 현자는 손자인 제르가디스를...


김유신 장군은 여동생을 장작 위에다 올려놓고 불을 지펴 마구마구 연기를 피워댔다... 신라가 들썩였다. 김유신 장군의 시위는 그야말로 가공할 만한 성질의 것이었다. 이미 정실부인을 두고 귀여운 딸까지 둔 김춘추는 그리하여 눈을 부라리는 여왕의 명령으로 멸망한 가야의 공주와 강제 혼인을 올리게 되었다...
가우리랑 나란히 앉아 사과술을 퍼마시다 말고 리나에게 옛날 이야기를 주절주절 들려주고 있는 제로스를 생각해 주시길. 핫핫핫... 넘어가자고요∼♬
특정 단어 다섯을 놓고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