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게 정글스 맞느냐, 이게 리나 인버스 맞느냐 고개를 갸웃거리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태클 사절입니다. ^^  당혹스러운 점은 장소가 국내이고 미국이고를 떠나 범죄 수사 관행이 어떻게 되는지를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더 끔찍한 건 영화적 배경이었던 시카고에 대해 아는게 단 한 줄도 없다는 (!) 겁니다. 거기 웃으시는 분들... 즐기고자 쓰는 팬픽션이니 사방이 구멍 투성이라도 그냥 넘어가십시다.


이미지는 하나의 상징이자 기호 텍스트이다. 그것은 미노타우르스의 미궁에 빠진 불쌍한 여행자들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친절한 달빛이며, 진실을 매개하는 헤르메스의 불꽃이다.
읽고.
따라가라.
그러면 올무가 풀려 그대는 천상을 향해 한 걸음에 달음박질해 나갈 수 있다.

원본 사진이 증거 분석실로 옮겨지고 난 뒤.
3시간 넘도록 움직이지도 않고 복제된 사진만 노려보고 았다. 식사 대신으로 겨자 소스 바른 핫도그 하나 입에 물고 자리로 돌아온 정글스 브라운은 이걸 감탄해야 하나, 아님 두려워 해야 하나를 놓고 잠시 갈등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분위기만 보자면 완전히 미친 여자다. 물도 안 마시고, 당연히 밥도 안 먹고, 화장실 한 번 안 가고, 돌부처처럼 굳어 사진만 쏘아보고 있다. 그야말로 정좌하여 부처의 이마를 쏘아보는 티벳의 고승이었다. 혼이 절반쯤 나간 태도로 그저 집중, 숨 쉬고 머리 굴리는 것 이외의 다른 기능은 올 스톱, 저 상태에선 겨드랑이를 강아지풀로 간질여도 절대 안 웃을 거라고 정글스는 상상했다.

- 징그러운 여자.

그녀의 적갈색 눈동자가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흡사 눈 뜨고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렘 수면 상태에서의 급속 안구운동이다. 다시 위 아래 방향으로 요동친다. 그러다 정 중앙에서 따악 멈춘다. 신들려 예언을 밥 먹듯 퍼붓는 무당이 따로 없다. 정글스는 소름 돋은 팔을 쓰다듬었다.

저 상태의 여자에게 말을 걸면 알아는 들을까.
내심 걱정하며 이미 반쯤 열려진 문을 두 번 노크했다.

『사진 인화지 뒷면에 찍힌 일련번호「0032J-50761-00NN-6」번에 대한 추적은 곧 완료될 거 같다는 소식입니다. 작업을 마치면 해당 현상소의 주소지 리스트가 우리편에 팩스로 도착할 거예요.』
『다행이군요.』
음, 귀는 열려있는가 보다. 다행이었다. 정글스는 대놓고 안도해하며 - 저 여자는 아주 맛 가지는 않았다 - 들고 있던 커다란 봉투를 아기 딸랑이인양 흔들었다. 봉투 안쪽에서 버스락 소리가 났다. 안에는 A4지를 두장 겹친 크기로 확대된 여러장의 사진이 들어가 있었다.
『박수치기엔 아직 일러요, 인버스 요원. 리스트에 올라갈 해당 현상소만 해도 무려 천 곳이 넘을 거라고 하니까. 게다가 우리네 범인씨가 문제의 사진을 찍은 장소로부터 버스를 2시간 타고 이동한 뒤에 현상소를 찾아간 거라면 말짱 도루묵 꽝이오.』
리나는 단호하게 그 의견을 부정했다.
『아뇨. 그렇게는 하지 않았을 거예요. 제로스는 아슬아슬한 게임을 즐기니까. 그 정도로 문제를 어렵게 비비 꼬아서 우리에게 풀어보라고 제시했을 거라곤 생각이 들지 않는군요. 게다가... 그는 나에게 직접 말했어요. 천천히 해보자고. 다시 말해, 이번 살인 예고는 난이도 A, B, C 중에서 C급이라는 거죠.』
『오- 야-』
정글스는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그의 눈알이 데굴렁 굴러갔다.
친절하신 범인씨, 상냥하신 범인씨. 마구 마구 사랑스러워진다.

『증거 분석실에서 전언이오. 녀석이 보낸 원본 사진에선 쓸만한 지문이 하나도 안 나왔답니다. 봉투에 넣어 배송을 하기 전에 정성것 닦은 것 같다네요.』
『내 그럴 줄 알았지. 방송 쪽은? 정글스 형사.』
『가까스로 협상 완료요. 도와주겠답니다. TV로 3시간에 한 번씩 제인 도우(여성 신원불명자 통칭명)씨의 사진을 약 11초가량 클로즈업 될 겁니다. 집요하게 무슨 일이냐고 꼬치꼬치 따져 묻는 걸 달래느라 죽는 줄 알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뉴스 채널과 약속이 됐수다. 이 숙녀분께서 연쇄살인범에게 쫓기고 있다는 이야긴 당분간은 통제하기로 말이오.「신변에 위험이 닥친 이 여성을 시카고 경찰 당국에서 애가 타게 찾고 있습니다. 이 여성을 아시는 분은 가까운 경찰서로 연락 바랍니다.」이게 멘트요.』
『3시간에 한 번, 그것도 11초 할애? 부족하지 않겠나요.』
부족해? 어이. 정글스가 신경질조로 뒷 목덜미를 문질렀다.
『공중파의 위력이라는게 있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만 해도 우리로선 천군만마입니다.』
그러니까 넘어가지구, 여왕님. 그거 하나 부탁하면서도 손바닥이 닳게 빌었구먼.

이어 그는 확대된 사진을 꺼내 압정으로 하나하나 벽에 부착해 나가기 시작했다. 혼자 사는 노총각이 빨랫줄에 방금 세탁한 양말 거는 식이어서 동작은 약간 굼떴다.
『영상분석 전문가 말이 화질 선명도를 보정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거라고 해서 최대 확대치는 일부러 부탁 안 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이 정도로 만족해 주시오.』
『나쁘진 않군요.』
『아무렴. 내 장담하는데 LA 똥통보단 우리 기술이 조금 나을 거요.』
똥통? 거친 표현에 리나의 표정이 약간 흔들렸다. 시카고 사람들의 자기 고향 사랑 정신은 워낙에 유명한 것이긴 해도... 도가 지나친 발언이었다. LAPD는 NYPD와 마찬가지로 미국 내 넘버 원과 투를 다투는 우수한 경찰 조직이었다. 1년 4개월 전까지 LA에서 살았던 리나는 반항심으로 그에게 대들었다.
『잠시 하나 물어보죠, 형사. 이상하게 당신은 LA 경찰들을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거 알아요? 지금의 당신은 흡사 스포츠 만능에 학교 성적마저 최고인 우등생 형에 열등감을 느끼곤 죽어라 흉보는 동생처럼 보여요.』
당연히 정글스는 울컥했다.
『뭡니까. 그래서 지금 날 분석하는 거요? 심리 학자님?』
『분석당하기 싫다면 입 닥쳐요. 그리고 잠깐 거기 서봐요, 정글스.』
『왜요. 기분이 나빠져서 날 총으로 쏘고 싶어졌소?』
『쓰잘데기 없는 말은 관두고. 거기 똑바로 서서 180° 뒤돌아요.』
『...』

일단 시키는대로 했다.
아무렴, 등 돌리고 선 남자를 무작정 공격하진 않겠지.
그렇게 차렷 자세를 취하고 나니 코앞으로 확대시킨 제인 도우씨의 얼굴이 다가왔다. 그 사실을 깨닫자 심기가 불편해졌다. 어느 사이엔가 그의 자세는 패널티 킥을 방어하는 무명의 축구 선수처럼 변해 있었다. 두 손으로 사타구니를 가리고... 엉거주춤하게 등을 굽히고...
리나는 확신했다. 저 남자는 마음이 불편해지면 몸을 둥글게 굽히는 버릇이 있다.

『어려운 걸 부탁하려는 건 아니니까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형사. 사진을 보고 일종의 연상 작용을 하려고 하는 거니까요. 제가 질문을 드리면 댁은 제일 먼저 머릿속으로 떠오른 생각을 말해주시면 됩니다.』
『날... 실험 도구로 삼겠다는 건가요.』
『설마.』

고개만 뒤로 돌린 채 노골적으로 불안해하는 정글스를 달래면서 리나가 연필을 들었다. 그런데 그 연필이라는 것이 종이에다 글자를 적기 위한 용도라기 보다는 입으로 물어뜯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았다. 방금 전에 비품 서랍에서 꺼내져 최초의 칼질을 끝낸 푸른색 연필의 끝자락은 이미 인간이 남긴 잇자국으로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조금만 더 갈아대면 두쪽으로 뚝 부러질지도 모르겠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리나는 다시금 연필을 이 틈새로 가져가 쩍쩍 씹기 시작했다.

『그럼 시작 해봅시다. 일단 부분 확대된 사진은 치워둬요. 전체 확대시킨 사진만 들여다보는 겁니다. 됐죠? 그리고 제 말대로 하세요.』
실험 도구가 맞구먼. 정글스가 약하게 한숨을 쉬었다.
『난 준비 됐소. 그럼 어떻게 하면 되나요, 요원.』
『머리 속에서 지우개를 꺼내 인물을 그림에서 삭제시키세요.』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의 뜻을 확인하려는 건지 정글스가 다시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때까지도 그는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 말인 즉, 인물은 빼고 배경만 보라고?』
『바로 그거예요.』

배경이라... 배경... 역시 이놈의 범인씨는 사진 공부를 좀 하셔야 쓰겄다. 이미지가 지나치게 흐릿하다. 물론 인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뒤로 있는 배경이야 자동 흐려지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태가 좋지 않다. 정글스는 눈을 부비고 - 그런다고 잘 보인다는 보장은 하나 없었지만, 하여간 눈을 부비고 열심히 쳐다봤다.
『의식해가며 노력을 해도 자꾸만 인물로 시선이 가는군.』
『그럼 손으로 여자를 가려보세요.』
『아니, 그랬다간 내 손등만 열심히 쳐다볼 거 같으니까... 말씀은 고맙지만 사양하죠.』
베테랑 형사에게 불가능은 없다. 두어번 심호흡하고 다시 배경으로 눈을 돌렸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실내로군요, 요원.』
심플한 대답이었다. 아울러 정확한 대답이기도 했다. 리나는 만족스럽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뒷통수에 눈이 달리지 않은 정글스는 그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계속하세요.』
『여기 여자 바로 뒤쪽의 배경 말입니다. 이 부분과 이 얼룩... 초록인 색상으로 보아 나뭇잎이 확실하겠군요. 이쪽 거무잡잡한 건 나무 기둥이고요. 창문 밖으로 보이는 가로수... 라고 하기엔 어쩐지 보이는 각도가 이상하게 납작해요. 아울러 여기 하얀색 반점은 반사광이라 추측되오만. 그렇다는 건 풍경 사진? 그것도 제법 커다란 거 말이오.』
『나도 그 생각을 했어요. 풍경 사진이 맞는 것 같아요. 여자의 늘어진 이쪽 머리카락 틈새로 초록색이 아닌 황색의 굵직한 선이 보이죠? 이건 확실히 액자예요. 풍경 사진이 벽에 걸려져 있는 거죠.』
『풍경 사진이라.』
『네. 풍경 사진.』
『풍경 사진이 걸려져 있는 실내.』

『그렇다면 어떤 장소에 이런 식으로 커다랗게 확대된 풍경 사진이 걸릴까요, 정글스 형사.』
정글스는 즉답했다.
『미용실이나 커피숍. 아님 대형 서점, 음반 판매점...』
『그런데 사진을 찍은 우리의 연쇄살인범 제로스는 성별이 남자란 말예요?』
『미용실은 빼야겠군. 녀석이 게이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커피숍?』
『녀석은 여자와 거의 같은 시선 높이에서 사진을 찍었어요. 둘 다 앉아있거나, 둘 다 서있거나. 인물의 턱의 각도를 보면 알 수 있죠. 그런데 배경으로 풍경 사진이 걸렸으니 이 여자는 자리에 앉지는 않은 거예요. 앉은뱅이 높이로 액자를 거는 정신 나간 실내 장식가는 그리 흔치 않으니까. 보통은 인간의 시선 높이에 그림을 걸잖아요? 따라서 제로스와 우리의 제인 도우는 둘 다 자리에 서 있었다는 건데... 상상을 해봐요. 커피숍에서 어떤 남자가 이렇게 가만히 서있는 여자의 사진을 세 방이나 연속으로 찍어댈 수 있을까요. 남들이 호기심에 죄다 쳐다볼 터인데. 말 그대로 이목 집중이라고요. 당신이 범인이라면 그렇게 하겠나요?』
정글스는 입술을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나라면 그런 자살 행위는 안 하지. 알았소. 사람 출입이 그리 많지 않은 상점이겠군요.』
『대형 서점, 음반 판매점, 실내 스포츠 센타 등등 모두 빼야 해요.』
『그리고 구둣가게나 드레스 판매점처럼 남성이 들어가기 쉽지 않은 가게도 빼야 하고.』

일단 한적할 것.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같이 들어가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상점이 바로 이 사진이 찍힌 장소이다. 정글스는 수첩을 들어 메모했다. 뒤져야 할 장소가 줄어들면 아무래도 사람 찾기가 빨라진다. 바닷가 모래밭에서 떨어뜨린 결혼 30주년 기념 반지를 도로 찾아내기는 불가능 하겠으나, 어항 모래 틈이라면 도전해볼 가치가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하나 더 단서가 있어요.』
『그게 뭐죠?』
『두 번째 사진에서 이 측면 부위... 오른쪽 상단부요. 유리로 보이는 이곳에 뭔가가 반사되어 보이는데 보면 볼수록 글자의 일부처럼 보여요. 핑크빛의... 아마도 네온싸인?』

유레카!
메모하는 정글스의 손이 한층 더 빨라졌다. 그게 상호라면 이건 거의 끝난 게임이었다.
하지만 그 눈부신 기쁨은 채 30초를 넘지 않았다. 미스 FBI가 지적한 부분을 찾아낸 뒤엔「다 끝났어~」라는 생각이 도로 싹 바뀌었다.
짜증이 났다. 음, 글씨인가. 어떻게 보면 숫자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아니면 그거다. 히브리어. 그것도 아니라면 외계어. 글자의 일부만 두고 전부를 알아맞히라니, 하여간 무리다.
곡선의 일부와 미묘하게 휘어진 작대기 셋.
『처음의 건... 밑둥이 둥글게 되어 있군요. 알파벳 U? 아님 O? 다음 글자는... 젠장.』
『사물에 이미지가 반사 되어 있습니다. 거울이나 마찬가지예요. 뒤집어서 생각하세요.』
『그렇다면... 어렵군. 하여간 여기 처음 보이는 글자는 M으로 보이는데요.』
『아뇨. M이라고 하기엔 각 작대기의 너비가 너무 벌어졌어요. I, H, Y 같은 글자의 하단부일 수도 있어요.』
수수께끼는 질색이다. 정글스는 머리 굴리길 포기하고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런 남자를 리나는 살살 달랬다.
『봐요, 중요한 단서예요. 통으로 모양을 외우고 간판을 집중해서 찾아봐야 합니다.』
『저기.』
그는 눈에 띄게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이 정도의 것으로 간판 찾는 건 불가능합니다. 난 그렇게 고단수의 일은 못 해요.』
『괜찮아요, 정글스 형사. 그 일은 내가 할 거니까. 사진 속 이미지를 통째로 암기했으니까 시야에 보이면 즉시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녀가 겉옷을 잡아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현상소 리스트가 적혀진 팩스가 상황 본부에 들어오는 즉시 검토에 들어가라고 해요. 그럼 우리는 쇼핑가를 돌면서 전단지를 뿌려보도록 하죠.』
닥치는대로 덤비고 보는 것이다. 어딘가에서 뭔가가 튀어나오길 기대 해보자. 어쩌면 신께서 자비를 베푸실 수도 있는 것이고... 우연이라는 녀석이 행운의 돌을 던질 수도 있다.

『이제 30시간 남았어요. 운전해요, 정글스 형사.』
어쭈. 운전사 취급? 정글스가 입을 쩍 벌렸다.
『나보다는 이곳 지리에 익숙하잖아요.』
그렇기야 하지만... 그렇게 명령조로 딱 부러지게 말하면 반항심이 들잖냐.
『운전해요.』
재고의 여부는 없음이다. 정글스는 이를 부득 갈았다. 알았어. 하면 되잖아, 하면!

안전밸트를 질끈 묶었다. 열쇠를 꽂고 시동을 걸었다.
담배 생각이 났다. 무의식중에 말보로 담배를 하나 끄집어 들었다가... 운전 중 흡연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겨서 호주머니 속에 다시 넣었다.
『출발합니다.』
워째 기분이 묘해지고 있다. 운전석 옆으로 여자를 태운 지가 한 10년은 넘은 것 같다. 그런데 상대는... 곁눈질로 리나 인버스를 훔쳐봤다. 그것도 젊은 여자다. 언제나 조용한 파트너 부르무 오토스가 아닌, 진짜로 젊은 여자였다.
죄회전을 하여 시내로 접어들면서 정글스는 자신도 모르게 끙 소리를 냈다.

-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 여자와 즐기는 시카고 투어.

지금은 내선에서 작전을 짜고 있는 오랜 파트너 부르무 오토스가 이런 그의 불평을 들으면 무어라 할까 그것이 매우 궁금했다. 배 부른 소리 한다며 손칼로 다시 남의 뒷 목덜미를 내려칠까? 어쩌면 아예 못 들은 척 할 수도 있었다. 둘 다... 가능성은 높았다.

『최고급 브랜드의 가게가 밀집된 고급 상점가는 아닐 거예요, 형사.』
『우리네 제인 도우씨의 옷차림이 그렇고 그래서?』
『눈썰미 좋으시네요. 잘 보셨어요. 바로 그거예요. 화장은 매끄럽고 정교했지만 그녀가 입은 블라우스와 쉐터는 고급 옷이 아니었어요. 그런 여자가 고급 부띠끄가 줄지어 있는 매그니피센트 마일 같은 곳에서 쇼핑을 한다는 건 상상이 가질 않으니까... 보다 중산층의 상점가를 집중적으로 돌아야 합니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뭔지 접수는 했수다만, 요원. 그런 중산층이 애용하는 상점가가 시카고에 모두 몇 개나 될 거 같습니까?』
『아마... 하늘의 별 만큼?』
『제기랄. 이래서는 완전히 똥개 훈련이야.』

그리고 바로 그 무렵부터 위기에 처한 여자의 신원을 파악하는데 제보를 부탁한다는 방송이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차 안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동안, TV와 캠코더가 나란히 놓여진 가전제품 쇼 윈도우에서「제인 도우」양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을 리나는 보았다. 눈 밑의 점 모양까지 암기해버린 그녀 - 앞으로 정확히 29시간 30분 뒤에 목 졸려 살해될 운명인 그 얼굴은 정확히 9초 동안 화면을 가득 채우고 사라졌다. 이어 아나운서가 무감동의 표정으로 준비된 멘트를 읽어나갔다.
이 여자의 이름을 알고 계신 분은 시카고 경찰국으로 연락을...
리나는 자신의 목이 졸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옷깃의 여밈을 느슨하게 풀었다.
 
핸드폰이 삐리리리 소리를 내며 울렸다.
운전석을 잡고 있던 정글스가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냈다.
『정글스 브라운입니다.』
잠시 후 그는 몇 마디 대꾸 없이 전화를 끊고 리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리의「얼간이씨」가 미드웨이 공항에 떨어져 렌터 카를 탔답니다.』
『지라스 요원이라니까요.』
『그게 그거지.』
맙소사, 저 입버릇은 어떻게 안 되는 건가. 
정글스는 무어라 항의하려는 그녀를 깨끗이 무시하고 다시 우회전했다.

『하여간에 그 얼간이씨가 땅바닥에 내리자마자 한 얘기가 뭔지 짐작 가시오.』
『알다 마다요. 그 사람이라면 왜 벌써부터 언론에 공개했느냐면서 팔딱 뛰었겠죠.』
『오- 미스 인버스 요원. 당신, 어줍잖은 심리 분석은 집어치우고 점쟁이를 하시오.』

그나저나 주차할 장소가 마땅치가 않다. 정글스의 고개가 좌우로 휙휙 돌아갔다. 제길, 하고 그는 욕을 퍼부어댔다. 요즘들어 시카고 시내의 교통 상황은 농담이 아니었다.
『미스 인버스?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오크가 쇼핑 센터부터 시작해 보죠. 핫도그, 서점, 패스트푸드점, 중산층. 아울러 이쪽 지리에 밝은 경관 두 명을 부탁할게요, 형사.』
『맡겨만 주쇼. 그리고 시작하기에 앞서 당신에게 줄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나에게? 껌이나 캔디, 아님 콜라 무료 쿠폰 같은 거?』
하여간에 이 여자는 정말이지... 정글스가 우하, 하고 숨을 토했다.
『기뻐하시죠, 요원. 그보단 훨씬 더 비싼 겁니다. 게다가 공짜요.』

핸드폰이었다.

『위치 추적기가 붙어 있습니다. 당신 집 전화와도 링크되어 있어요. 댁의 집 주소가 어디인지 알아낼 정도의 녀석이니까 조만간 그 전화번호도 알아내어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해올지도 모르는 일이잖소. 그러니까 당신은 혹시라도 제로스란 놈이 전화를 걸면...』
『하수구에 코를 박고 죽어버리라고 속삭여 주도록 하죠.』
『기왕이면 코만 박지 말고 머리 전부를 푹- 박아버리라고 해요.』
리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빠른 동작으로 핸드폰을 주머니 속에 집어 넣었다.
바로 그때였다. 순간적으로 여자의 표정이라는 것이... 베테랑 형사인 정글스는 머릿속으로 빨간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정확하게 무엇 때문이라고는 꼬집어서 설명할 수는 없었다. 하여간 느낌이 매우 안 좋았다.

그때까지도 심술궂게만 대하던 그는 브레이크 페달을 밟다 말고 진심으로 걱정하며 물었다.
『괜찮소? 요원?』
『왜요.』
『아니. 지금 댁의 표정이 좀 이상했거든요.』
뭐랄까. 폐에 구멍이 뚫려 실컷 고통스러워하다 죽은 시체 같아서 소름 돋는다.
『별 거 아니라면 다행이고.』
『신경쓰지 않아도 되요, 정글스 형사. 자, 가죠.』
언제 그랬느냐며 리나는 예의 냉냉한 표정으로 되돌아가 가슴에 두른 안전밸트를 풀었다. 이미 그녀의 손에는 행인들에게 나눠줄 전단지가 하나 가득이었다.

본부 상황실 쪽에 남아 있던 부르무 오토스는 진심으로「몽둥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때려잡자, 바퀴벌레. 이 위대하고도 굳건한 보건위생 캐치플레이즈의 문구를 떠올리며 수화기 저편의 제보자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지금 선생님께선 이 여성분의 대한 제보의 댓가로 얼마의 현상금이 걸려 있는지가 궁금하다는 건가요.』
《그렇다니까요? 금액만 맞으면 주말 자전거 동호회 회원들끼리 뭉쳐 이 여자를 찾으러 온 시내를 종일토록 돌아다닐 수도 있어요. 저어... 그러니까 얼마나 받을 수 있죠?》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르무 오토스는 정글스와는 달리 다혈질이 아니었다.
『협조 감사했습니다, 선생.』
이런 전화야 그냥 끊으면 그만이다. 부르무는 상대방이 앗 소리를 내던 말든 수화기를 제자리로 내려놓고 보았다. 그리고 소금 뿌린다. 훠이-

『약간 피곤해지는데.』
뭐, 그래도 앞서 15분 전에 받은 전화 내용과 비교하자면 이런 건 애교나 마찬가지였다. 남녀 만남 알선 주식회사라는 곳에서는「괜찮으시다면 TV에 나간 이 여자분의 주소를 가르쳐 주시겠어요? 그녀가 마음에 든다면서 저희 회원 다섯 분이 저희 사무실로 회사로 연락을 주셨답니다」라며 전화를 걸어옴으로써 이곳 상황실 사람들을 재기 불능 상황으로까지 몰아넣었다.
어이가 없다. 주소를 가르쳐 달라고? 그거야 이쪽에서 알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더냐! 이름도 몰라 여지껏 헤매고 있구먼!
주름 잡힌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위험에 처한 그녀의 소재를 묻는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제보는 산더미처럼 몰려들고 있었다. 그런데 제법 영양가 있어 보이는 이야긴 좀처럼 등장해주지 않고 있다. 대신 그 여자가 어떻게 되었는데 그러느냐, 혹시 외계인에게 납치당한 걸 찾고 있느냐 식으로 물어오는 바보는 넘치고도 남았다.
외계인에게 납치를 당했느냐고? 드라마는 그만 봐라.

부르무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전화기를 붙들고 악을 쓰고 있는 동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난 5시간 내내 전화통만 붙들고 있었던 엘로고 스타인 경관 또한 얼굴이 훌쭉했다.
남미계 3세인 그가 부르무의 시선을 깨닫고 푸념했다.
『이제부턴 텔레마케터들을 절대로 욕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위대한 전사가 맞아요.』
혀가 바짝바짝 마르고 목이 아프다. 엘로고는 레몬향 목캔디 하나를 와그작 씹어 삼켰다. 이제까지 그가 먹어댄 캔디는 모두 해서 다섯 통이나 되고 있었다.
앞으로 범행 예정 시간까지 22시간.
다시 따르릉 하고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집어들고 엘로고가 고함을 질러댔다.
『네. 시카고 경찰국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지금 전화주신 분의 성함이... 뭐요. 5년 전에 이 여자를 마이애미 비치에서 봤었다고요? 여보쇼. 지금 나에게 공무집행 방해죄로 체포당하고 싶다는 거요?』
이런 일에 장난치는 인간들은 그저 덜도 말고 잘게 썰어서 곰국으로 만들어 버려야 한다.
쥐꼬리만한 월급쟁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거금을 들여 상원 의원을 매수하겠다. 그리고 법을 만든다. 장난 전화질 = 사형이다.
- 따르릉
『감사합니다. 시카고 경찰국입니다, 네, 듣고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목이 타들어가는 감각에 부르무는 엘로고 스타인의 사탕 통으로「몰래」손을 넣었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어느 틈에 시계는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 파트너... 알로하. 어때, 그쪽은. 좋은 이야기 뭐 없어?』
《없네, 정글스.》
대답 한 번 심플하다. 그래도 잔뜩 쉬어버린 부르무의 목소리 톤에서 분위기가 팍팍 읽혀진다. 이쪽이 반야심경이라면 저쪽은 밀법교화다. 혹시나 싶은 생각에 사무실로 전화를 건 정글스는 덩달아 기분이 착 가라앉는 것을 느끼고 눈을 감았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있건만 그 어느쪽이든 소득이 전혀 없다.
어쨌든 사무실로 되돌아가서... 아니, 그 전에 그 밥맛 없는 FBI 여자와도 연락을 취해봐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화한 것이 - 시계를 쳐다봤다 - 2시간 전이다.
끙 소리를 내며 잡고 있던 운전대를 잡아 비틀었다. 참지 못할 정도로 다리가 무지 아팠다. 하루종일 걷기만 해 발바닥과 종아리 모두 퉁퉁 부어 있는 상태이다. 이런 상태로 계속해서 강행군을 해야 한다면 물집 잡히고 터지는 것도 각오해야만 한다. 그나저나 걱정인 건 나이가 있어서인지 체력이 점점 더 떨어진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말한 말레리나 식당에는 가 보았나? 정글스. 그쪽에서 그녀를 봤다는 종업원이 있었잖아.》
『가기만 했을까. 잘 생각해 보라며 윽박도 질러봤지.』
《아니었어?》
『주소를 얻자마자 달려가봤는데 아쉽게도 얼굴만 비슷한 사람이더군.』
말레리나 식당 종업원이 지적한 여성은 몸무게 77kg의 거구였다. 얼굴은 작고 귀여웠지만. 그녀는 내가 뭘 잘못했느냐는 식으로 겁을 먹고 문도 안 열어주려고 했다. 그런 그녀와 씨름하며 문 손잡이를 잡아당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정글스는 끙 소리를 내며 구두를 벗었다. 양말만 신은 발로 자동차 패달을 밟으면 위험하다는 것이 보험 업계 정설이었다. 그러나 이젠 더 못 참는다. 아우, 화끈거려 죽겠다.
『얼간... 아니. 지라스 레던폭스 요원은 만나 봤나.』
《얼간이? 아아, 그 친구... 말도 말게. 진짜 황망하더군.》
『왜?』
《범인이 보내온 사진 뒷면을 추적해서 알아낸 현상소 주소 리스트 있잖는가. 자기가 가지고 있던 현상소 리스트를 저녁 8시를 넘겨서야 일선 경관들이게 뿌렸어. 그리고 포괄적 방문 수사를 지시했다네. 여기서 문제가 뭔지 아나? 사진 현상소나 필름 판매소 같은 가게는 24시간 영업을 하지 않아. 경관들이 받아쥔 리스트 들고 각각의 가게를 찾아갔을 적엔 이미 셔터가 굳건히 내려졌다 이 말일세.》
켁-
정글스는 그대로 운전대에 이마를 박을 뻔했다. 부르무 오토스의 말인 즉, 가게 문이 다시 열리는 내일 아침 10시까지는 모두가 손 놓고 손가락만 쪽쪽 빤다는 얘기다. 1분 1초가 아까워 미치겠는 이 상황에서!
『돌아버리겠군!』
《이하동문이네, 정글스. 까딱하다간 시간 못 맞추겠어.》

정글스는 주머니를 뒤져 점심 나절에 구겨버렸던 먼젓번 말보로 담배를 다시 찾아냈다.
하얀 연기가 차내로 흘러들었다.
창문을 절반만 열고 그 틈새로 하늘을 쳐다봤다.
구름이 짙어서일까, 시카고의 하늘엔 달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