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지지 마요, 따지지 마... (중얼중얼)

「닭 쫓던 개」라는 표현을 떠올린 정글스 브라운 형사는 사흘 내리 감지 않은 더러운 자신의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렇다. 자신은 개다. 그리고 망할 놈의 닭은 지붕 위로 올라가 있고. 물어 죽이고 싶어 발악을 해도 닭은 결코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다... 라고 생각했다가 잠시 머뭇거렸다.

닭이 지붕 위로도 올라갈 수 있는 거였던가?

대도시 출신인 정글스는 애들 동화책에 삽화로 실린 닭 그림 외에는 실물로 살아 있는 닭을 구경한 역사가 없다. 닭이라고 하면 대형 슈퍼마켓에서 랩 비닐로 포장하여 파는, 그냥 끓는 기름 속에 집어넣기만 하면 그만인 냉장 닭만 실컷 구경했다. 목이 잘리고, 깃털이 죄다 뽑히고, 내장마저 제거당한 풍성한 먹거리 - 희멀건 닭들의 사체들은 그리하여「절대로 이런 놈들은 지붕 위로는 못 올라간다」라는 걸 그의 머릿속에 단단히 주입시켰다.
뜨끈뜨끈하게 조리되어 나온 닭고기를 먹을 적마다 소박한 의문이 들곤 했다. 과연 이놈들이 날개가 달린 새가 맞을까. 몸통에 흔적기관인양 붙어있는 그들의 날개는 너무도 작고 왜소하여 조루증에 고통받고 있는 현대의 불쌍한 사내들을 연상시켰다.
그리하여 정글스는 목소리를 낮추고 자신의 파트너씨에게 질문했다.

『이봐, 파트너.』
『왜 그러나.』
『닭들도 지붕 위로 올라갈 수 있어?』
조용한 사내 부르무는 어깨를 들썩였다. 그리고 지금의 이 상황이 대단히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투로 입술을 삐죽이는 정글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기름에 튀겨지기에 앞서 산채로 거꾸로 매달려 목이 잘리기는 해도... 그 이야긴 금시초문일세. 요즘에 어떤 닭들이 -간댕이가 부었지- 지붕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건가. 만약 올라간다고 해도 해당 집 주인들이「사유지 무단 침입죄」를 물어 엽총을 발사할 걸? 어느 쪽이든 후라이드 치킨 운명이지.』
그와 오래 사귀지 않은 사람들은 그가 내뱉는 말의 유희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부르무 오토스의 버릇은 농담을 진담처럼 한다는 거였다. 아울러 진담도 농담처럼 했다.
5페이지 남짓의 간단한 사건 요약서를 팔락거리다 말고 부르무는 이렇게 일갈했다.
『때문에 우린 양념 소스를 발라 녀석들을 맛있게 먹어치우기만 하면 그만이네.』

LA에서 굴러다니던 자가 시카고까지 날아와 원래 있던 주인을 내쫓고 자리에 앉았으니 속이 뒤틀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글스가「지붕 위의 닭」이야길 꺼냈을 거다.
그치만 결과적으로는 별 상관 없는 거 아닐까, 라고 부르무는 생각했다. 어쨌든 닭은 식용으로 사람이 키우는 것이고, 짖는 개를 피해 지붕에 올라가도 결국은 기름에 튀겨질 운명이다. 이쪽에선 냅킨을 무릎에 깔고 나이프로 썰 준비만 하면 그만이다.
초최한 모습의 미녀, 전직 FBI라는 여자... 아니, 지금은 현직이라는게 맞겠지만, 어쨌거나 부르무 오토스의 입장에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숨겨진 카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저 쓸모만 있으면 되었다. 범인을 잡고, 범인을 아작내는데 있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 후라이드 치킨을 먹는다. 그럼 된 거 아닌가.

그런데 여기까지 생각한 부르무가 갑자기 얼굴 빛을 바꿨다.
가만 있자. 그 후라이드 치킨 한 조각의 칼로리가... 얼마였더라?
『여보게, 파트너?』
『좀 있다가. 지금은 생각 중이야.』
칼에 찔려도 비명 하나 지르지 않는다는 부르무 오토스 형사의 치명적 단점은 그 생각의 방향이 어디로 튈 줄 아무도 모른다는 거였다.

그럼 무표정으로 후라이드 치킨 생각에 빠져든 부르무는 잠시 잊도록 하자.
쌍방 대화를 진행시키고저 정글스는 가볍게 헛기침 했다. 지독한 독감에 걸렸다가 사흘 전에야 겨우 회복된 듯한 꼬락서니의 여자가 기침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LAPD에서 연락이 있었습니다. 이쪽에서 필요하겠거니 생각되는 자료 전부를 넘겨주겠다고 하더군요. 아울러 FBI에서 당신 후임자로 일하던 자도 가방을 싸들고 허겁지겁 비행기를 탔다고 하오. 거, 이름이 뭐라더라. 자리스 폭스라고 했던 것 같던데. 조만간 우리랑 - 정확하게는 당신과 합류할 거요.』
『자리스가 아니라 지라스, 지라스 레던폭스 요원이예요.』
『여하간 우리네 범인씨가「얼간이」라 불렀던 자 맞죠?』
『형편 없다고 했지, 얼간이라는 표현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그거지.』

노골적으로 이죽거리는 정글스의 발언에 리나 인버스가 얼굴을 찌푸렸다.
아이구, 저 표정 봐라. 그려? 팔은 안으로 굽냐? FBI를 얼간이라 하니까 신경이 쓰여?
정글스는 속으로 흉을 봤다.
『그게 아녜요.』
『호오~ 얼간이가 아니라고?』
『틀려요, 정글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게 아니라...』
앉아있던 자세를 바로잡고 정글스와 똑바로 눈을 맞췄다. 순간 그녀의 모습은 지독한 독감은 물론이거니와 배탈 한 번 걸린 적이 없다는 식이어서 정글스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저 눈빛! 흐트러짐 일절 없는, 그야말로 최고급 고탄력 스타킹의 반들거림이었다.
에이, 기분 잡쳤다.
부담스런 거대한 함박 스테이크를 눈앞에 두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정글스는 쿨룩- 하고 일부러 기침을 터뜨렸다. 두 손바닥을 허벅지 사이에 낀 채 허리를 구부렸다. 일명「엄마가 야단칠 적엔 이렇게 하세요」포즈였다. 몸을 돌돌 말면 마음이 편해진다. 별명이 고릴라 사촌인 국장이「빨랑 나가 당장 범인 잡아와~!」라며 고함을 질러대도 그는 이 포즈부터 취했다. 이러고 있으면 하늘에서 집채만한 바위가 떨어져도 놀라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LA 연쇄살인범 제로스, 아니. 이젠 시카고 연쇄살인범으로 고쳐 불러야 하겠지만... 제로스라는 인물은 욕설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범인의 이름이 제로스입니까?』
몸을 구부리는데 그치지 않고 거기서 정글스는 시선까지 아래로 내리깔았다. 이런 그의 모습은 봄볕에 조는 회사원을 연상시켰다.
『별명입니다, 정글스 형사. 현장에 일체의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하여 0, 처음에는 제로라고 불렀다가 점차 제로스라고 부르게 되었죠.』
『정말로 아무 것도? 머리카락이나 지문, 발자국...』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LAPD 녀석들, 진짜 바보였군. 아니면 그 제로스라는 친구가 대단했거나.』
그런데 머리카락 한 올 찾지 못했다면서 그 친구가「욕설을 사용하지 않는다」라는 건 워케 알았누? 게다가 즉석에서 나눠준 5페이지 분량의 사건 요약서에 의하자면 목격자 또한 찾지 못했다고 했다. 즉, 이 친구의 코가 어떻게 생겼는지, 귀는 둘 다 제대로 달려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얼굴도 모르는데 녀석 성격은 줄줄이 꿰고 있다? 그렇다는 건... 프로파일링을 했소?』
정글스의 질문에 리나 인버스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대답했다.
『했죠. 그게 바로 내가 전문으로 하는 일이었어요.』

그녀의 전공은 범죄 심리학. 그녀가 맡은 일은「범죄 예측 프로그램」이었다.
『비슷한 범죄를 반복하는 범인의 심리를 꿰뚫고 다음의 범행을 예측한다. 그것이 범죄 예측 프로그램입니다. 여기에 선행되는 것이 범인의 성격, 행동패턴, 직업, 거주지 등의 특정 요소들을 추출하는 프로파일링이죠. 우리는 - 나는 살인의 네 단계를 분석해서 범인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범행 전 단계, 범죄 실행 단계, 시체 처리 단계, 범행 후 행동 단계... 그러면서 조각난 그림을 하나씩 완성해 나가는 거죠.』
『그래서 우리의 몬스터씨의 모습이 나왔소?』
리나는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달밤에 발작하는 몬스터라기 보다는 윤활류에 젖은 기계라는 표현이 훨씬 더 그에게 접근해 있어요, 정글스 형사. 그는 내가 아는 한 어떤 범죄 현장에서도 비이성적 판단 착오를 일으킨 적이 없습니다. 철저하게 계산하고, 사전 계획한 바에 의거하여 움직입니다.「충동」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른다는 식이죠. 상당히 똑똑하고, 실제로 교육 수준도 높을 겁니다. 아울러 자기 제어력도요. 그는 지금까지 실수를 하지 않았어요.』

저런. 이래선 상당히 안 좋은데 - 하고 정글스는 걱정했다. 똑똑한 살인자 만큼이나 골치 아픈 건 없다. 머리가 너무 좋아 돌아버린 정신병자들은 때때로 경찰들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앉으려 한다. 이런 녀석들을 대하려면 그보다 곱절로 머리가 좋아야 하는데, 미안한 얘기지만 IQ가 높은 괜찮은 녀석들은 젊어서 비명횡사하기 딱 좋은 대도시의 경찰서가 아닌 증권 회사에 취직해 NASDAQ(나스닥)에 목을 매달고 제2의 그리스펀 의장을 꿈꾸고 있다.
정글스는 주먹을 쥐었다. 곤란하다. 역시 경관들의 월급을 인상시켜야 한다. 그래야 끌어모은 인재들로 범인들과 한 게임 하지!

『그렇지 않소이까? 인버스 요원.』
『글쎄요. 경관들의 월급 인상엔 딱히 반대할 까닭이 없지만... 게임이라는 표현은 싫군요.』
리나 인버스는 노골적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게임.
사람과 사람이 죽고 사는데 그걸 가리켜 게임이라 말한다.
생과 사를 과연 승부로 가릴 수 있는 거였나.
신은 남의 생명을 순전히 재미로 다루어도 된다는 권리를 그 누구에게도 부여한 적 없는데? 

- 짜릿하지 않습니까.

타깃을 정한다. 독신의, 한 주먹감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그 타깃이다.
시간을 들여 대상을 물색하고 마음에 드는 희생양을 고른다.
다음으로는 추적을 시작한다. 살고 있는 곳은 어디인지, 직업은 무엇인지, 몇 시에 출근하여 몇 시에 퇴근하는지를 꼼꼼히 기록하여 체크한다. 당장에라도 손아귀에 쥐고 흔들 수 있도록 쓰레기 버리는 시간대까지 샅샅이 파헤친다. 고성능 망원경으로 하루종일 관찰한다. 때때로 그는 멀리서 침실의 불빛을 쳐다보며 잠옷으로 막 갈아입고 침대로 들어가는 그녀들을 상상한다. 그러다 다음 날 아침, 천연덕스럽게 그녀와 함께 같은 지하철에 올라 러시아워의 고통을 함께 나눈다. 나란히 손잡이를 잡고 덜커덩대는 전동차의 움직임에 몸을 맡긴다. 어쩌다 한번 곁눈질로 그녀의 옆모습을 훔쳐보기도 한다. 어깨가 부딪치면 더욱 즐겁다. 묘한 만족감이 척수를 타고 흐른다. 그때까지도 불쌍한 여자는 무엇 하나 알아차리지 못한다. 시계를 들여다보고 하품을 참는다. 창백한 죽음이 바로 코앞에서 미소짓고 있다는 건 상상도 못하고 하차할 순서를 기다리며 가방끈을 고쳐맨다. 여자는 그렇게 떠나고, 남자는 계획을 실행에 옮길 날이 다가왔음을 깨닫는다.

집으로 귀가하던 여자는 여느 때처럼 저녁 먹을 반찬을 구입해서 손에 쥐고, 우편물을 확인한 뒤에, 현관 열쇠를 찰칵 돌린다. 이틀 연속 야근을 한 탓에 몸은 천근만근 무겁다. 지겨운 어둠이 방안에 깔려 있다. 그녀는 불평을 투덜대며 전등 스위치로 손을 가져가 벗어던진 슬리퍼가 어디로 처박혔는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헌데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전구가 나갔나?」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힘에 고개가 뒤로 확 젖혀진다.

- 자! 즐거운 시간입니다.

당신은 놀라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준비된 헝겊이 벌려진 입 안으로 마구 들어온다. 팔에 수갑이 채워지는 걸 느낀다. 무겁고도 차가운 금속이 당신이 지금 처한 상황을 고스란히 설명해주고 있다. 공포에 질려 바둥거리며 몸의 자유로움을 갈구한다. 그 댓가로 얼굴에 남자의 팔꿈치가 날아온다. 아프다, 라고는 감히 생각도 못하고 정신이 아득해진다. 몸이 축 늘어지는 것과 동시에 밧줄이 몸에 칭칭 휘감긴다. 꼼짝 못하고 덫에 걸린 것이다.

『변태 같은 새끼! 못 생겨서 여자랑 제대로 데이트도 못하는 놈들이 꼭 그러지!』
『아뇨. 그가 못 생겼을 거라는 추측은 우리는 하지 않았습니다, 정글스 형사.』
『메요?!』
『그는 자신이 잡은 여자를 성적인 대상으로 보지 않거든요.』

애시당초 강간이 목적은 아니었다. 희생자들에게 실시한 성폭력 테스트는 모조리 음성이었다. 범죄에 희생된 자들이 젊은 여성들이었다는 점을 감안하자면 이건 참으로 특수한 케이스라 할 수 있었다. 속옷이 벗겨지는 등의 옷차림새가 흐트러진 적 또한 한 번도 없었다. 다수의 살인 현장에서「굴절된 성적 욕망」을 읽어냈던 리나는 제로스가 벌인 사건에서 만큼은 그 어떠한 성적 뉘앙스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녀들은 의자에 똑바로 앉아 있거나, 나무토막처럼 바닥에 엎어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리나는 이 가여운 희생자들의 최후에서 용도가 끝나 분리수거용 쓰레기통으로 던져진 1회용 플라스틱 그릇을 떠올렸다. 남자의 욕망에 희생당한 여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물건... 장난감 같은...
 
『그는 평소에 데이트를 못하기 때문에 그 욕구불만으로 젊은 여성들을 헤치는게 아녜요.』
키워드가 틀리다.
『범행 현장에는 분노라는게 없어요.』
그런게 아니다. 오히려 철두철미하게 유희적이다.

『CD 플레이어에서는 차이코프스키의 꽃의 왈츠가 흘러나오고, 바닥엔 무거운게 실린게 분명한 의자 바퀴자국이 둥글게 원을 그리고 있죠. 그 자국을 따라가다보면 목졸려 죽은 희생자가 의자 채 굴러다니고 있는데 여기서 생각해낼 수 있는 건 딱 하나예요.』
정글스는 불편한 듯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희생자를 의자에 묶어두고 이리저리 굴려가며 왈츠를 추었다? 당기고 밀면서?!』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여자가 의자에 묶여있다. 방안에선 귀족적 분위기의 왈츠가 흐른다. 범인은 장갑을 끼고 - 지문이 안 나왔으니까 - 의자의 손잡이를 잡고는 리듬에 맞춰 의자를 빙글 돌린다. 따라라라 딴따, 딴따. 참지 못하고 여자가 비명을 지른다. 그런 모습이 너무나 재미있다며 범인은 일부러 의자를 가까이 당겼다가 다시 뒤로 밀친다. 체중이 실린 의자가 세차게 구르면서 바닥에 자국을 만든다... 꽃의 왈츠다.

『음침하고 폐쇄적인 성격이 아니라는 증거죠. 그는 나름대로 즐길 줄 알아요.』
『알았소. 그러니까 잘못된 방향으로 말이죠.』
『말하자면 그렇죠. 어쨌거나 그는 노는 걸 좋아해요. 유머가 풍부하고 사교성도 좋을 수 있어요. 멀리서 봤을 적의 그는 어쩌면 꽤 매력적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얘기예요.』

바로 그때 정글스 브라운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대단히 나쁜 쪽의 웃음이었다.
『어련하시겠수. 매력적이라. 그러고보니 인버스씨... 범인으로부터 꽃다발도 받았다고요?』
순간 리나 인버스의 얼굴에서 혈색이 사라졌다. 아니, 시체처럼 새파랗게 질렸다는게 맞을 거다.
저것 좀 봐라. 확실하게 폭탄 스위치를 눌렀다는 걸 깨닫자 정글스는 훨씬 더 잔인해졌다. 신난다 하는 표정으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머리도 좋아, 얼굴도 못 생긴 편이 아니야, 매너도 좋아, 교육 수준도 높아 욕설도 안 해... 그야말로 호의적인 분석이구려. 어떻소이까. 혹시 댁은 녀석에게 반한 거 아니오? 그러니까 놈도 거기에 답하려고 꽃을 보내온 거지.「분발하여 빨리 날 잡아주시오, 수사관님」이러면서. 아주 환상적입니다?』
『정글스 형사. 그 이야긴... 나로서는 대단히...』
『왜 부들부들 떠는 거요. 정곡을 찔려 머리가 어지럽소? 허어, 뭐요, 지금 그 주먹은. 날릴 거요? 나에게? 좋소. 날리쇼. 기꺼이 맞아주리다. 때리쇼.』

일이 이렇게 되면 내분으로 인한 조직 붕괴다. 그때까지도 후라이드 치킨과 칼로리, 다이어트 콜라를 생각하느라 잠시 지구를 떠나 있었던 부르무가 싸우는 두 사람의 험악한 분위기를 깨닫고는 우주선의 방향을 돌려 급히 지구로 귀환하였다. 말려야 한다. 필요하다면 폭력도 사용한다. 그런데 하나는 남자이고 하나는 여자다. 그렇다는 건 하는 수 없이... 이쪽이다. 부르무 오토스는 손칼을 들어 파트너씨의 뒷 목덜미를 정확히 가격, 말 그대로 정글스 브라운의 양쪽 눈알이 앞으로 툭 튀어나오게 만들어 버렸다.

더 세게 내려쳤으면 단두대다. 정글스는 목뼈가 부러졌다는 확신과 함께 비명 질렀다.
『무슨 짓이야?!』
그렇다고 해도 부르무는 표정이 없었다. 대신 엄지손가락으로 죽는 시늉을 하는 파트너쪽을 가리켰다.
『미안하오, 리나 인버스씨. 이 녀석을 대신하여 내가 사과하겠소. 이 친구의 버릇이라는게 생각하고 말을 입 밖으로 내곤 뒤돌아서 죽어라 땅 파는 거라서 말이오.』
그런데 보통은 생각 없이 말을 내뱉고 나중에 후회하는 거 아니었던가.
『그러니까 더 나쁘죠. 아무튼 미안하게 되었소.』
하지만 미안하다는 얼굴이 전혀 아닌데.

『자, 그건 그렇고, 신사 숙녀분.』
쌍방에서 날리는 시퍼런 불만의 신호를 뒤로하고 부르무는 시계를 쳐다봤다.
『그 제로스라는 자가 제시한 타임 아웃까지 이제 47시간 남았소. 정확하게는 47시간 12분이오.』
그야말로 정신이 번쩍 드는 이야기였다. 언제 싸우고 삿대질 했느냐며 정글스가 정색했다. 여자! 여자를 구하고 볼 일이다. 아군을 물어뜯는 일은 나중으로 미루자. 저 징그러운 FBI는 나중에 죽여 땅에 파묻어도 늦지 않다. 넥타이를 고쳐매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런 정글스의 모습은 더도 말고 믿음직한 베테랑 형사 그 자체였다.

『일단 인원이란 인원은 모조리 긁어다가 전단지를 12,000장 복사했습니다. 순찰업무 경관들은 물론이거니와 일반 시민들에게도 나눠줄 생각이오. 교통계 녀석들도 끌여들었습니다. 안전벨트 착용 여부와 과속 단속을 하면서 운전자들에게 한 장씩 뿌릴 거요.』
서서히 리나 인버스의 얼굴에서 혈색이 돌아왔다. 그녀는 차분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지만 방송국에도 협조를 부탁해요. 1시간에 한 번씩 여자의 사진을 뉴스 화면에 올려달라고 해요.』
『방송? 아이쿠야. 방송을 타려면 흘러가는 이야기가 뭔지 언론에다 시시콜콜 불어야 합니다. 단순히「이 여자를 찾아주는데 좀 도와주시오」라고 하면 콧방귀만 뀔 테니까. 그런데 진짜 불어버릴 겁니까. 연쇄살인범이 LA를 떠나 시카고에 친히 강림하셨다고 하면 기자들이 좋아라 춤을 출 터인데?』
『맘대로 춤 추라고 해요. 일단은 여자를 시간 안에 찾고 봅시다.』
말만 쉽지! 정글스 브라운은 눈동자를 데굴렁 굴렸다.
언론은 상어나 마찬가지였다. 때때로 그들 언론은 범인과 한통속이 되어 경찰 관계자들 모두를 구석에 몰아넣고 신나게 펀치를 날리곤 했다. 이가 부러지고 코피가 흘러도 주먹질을 쉬지 않는다. 폭력적인 경찰, 실수 투성이의 경찰, 범인에게 놀아나는 경찰, 시민의 소중의 세금을 말아먹는 경찰... 화려한 타이틀 탓에 늘 넉 아웃 신세다. 진짜 징그럽다.

그런데 그 상어떼에게 도와달라고 하라구?
방해만 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고 싶은게 본심인데?

『도와달라고 해야 해요.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없어요.』
맘대로 하슈, 여왕마마. 상어떼라도 좋다면야 모조리 끌어다 안겨 드리지.
정글스는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제로스가 보내온 사진을 확대해서 자세히 보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정글스.』
『원본 사진도 상태가 그리 좋지 않잖소. 이 친구, 머리는 좋을지 몰라도 사진 찍는 솜씨는 영 꽝이군. 확대를 하면 픽셀의 선명도가 아무래도 떨어질텐데요.』
『이미지를 망가뜨리지 않고 최대치로 얼마나 확대 가능하죠?』
『글세. 한 50배는 가능하지 않을까. 아, 미리 말해두지만 난 그런 쪽은 정확히 모르오.』
『그렇다면 알아봐줘요. 그리고 사진을 확대해서 나에게 가져와주세요. 특히 사물이 반사되는 이미지를 중점적으로 봐야 합니다. 거울이나, 매끄러운 플라스틱... 뭐라도 좋으니까 물체가 비춰지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키워보라고 해요. 마침 이 사진속의 여성은 구슬 모양의 귀걸이를 착용했군요. 뭔가가 보일지 몰라요. 그리고 머리띠. 운 좋게 플라스틱이네요.』
『알았소. 만들어다 드리리다.』

리나가 흘깃 고개를 들었다.
『지라스 레던폭스 요원은 언제 공항으로 떨어지지요?』
『언젠가는 떨어지겠죠. 냅둡시다, 시간은 금이니. 지금으로선 마중 내보낼 인력도 없소.』
『알겠습니다. 그럼 레던폭스 요원이 도착하기 전까지만 제가 수사를 지휘하겠습니다.』

얼레? 그가 도착하든 말든 당신이 여왕이잖아-
라고 말하려다 가까스로 입술을 깨물었다.
천만 다행이었다. 부르무의 손칼에 다시 맞으면 당분간은 진짜 깁스 신세다.
여전히 무표정인 파트너씨의 눈치를 살살 보며 정글스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말입니다. 한가지 확실히 해둡시다. 당신, 지라스 요원이 도착하면 땡인 거요?』
『네.』
『하지만... 당신은 LA에서 이 시건 담당자였잖소.』
『담당자였다가 은퇴했죠.』
『지금은 돌아왔잖습니까.』
『글세요.』
그녀가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어딘지 무척이나 지쳐보이는 미소였다.
『발 하나만 들이밀었다고 해두죠. 난 여전히 이 사건엔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아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녀는 팔짱을 끼는 것으로 자기보호적 뉘앙스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난 옵저버로 여러분들을 도와드릴 거예요. 그뿐입니다.』

왜?
하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적당한 단어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정글스는 다시금 머리를 긁적거렸다. 사흘동안 물 구경 못한 머리에서 나쁜 냄새가 났다.
아아, 샤워 하고 싶어진다.

한참 뒤에 그는 판단했다.
좋다. 이렇게 말을 하자.
의자를 뒤로 길게 빼고- 사진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둘러 확대해서 가져오지요. 인버스 요원.』

그러나 그녀는 애꿎은 벽만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듯 말이다.
정말로 자기 자신이 싫다는 투로...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