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블 소스, 오노 후유미 원작의 [고스트 헌트]. 1편 상단부의 참조글 필독 요망.


마차는 그런 식으로 14시간이나 계속해서 달려 목적지인 신데스에 도착했다.
자, 여러분? 마차의 휘장을 걷고 내려보세요. 여기가 신데스입니다.
오시느라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우와아~.』
움직임이 거의 없이 오래 앉아있던 탓에 다리가 ㄱ자로 구부러져 움직이지도 않는데 감탄사부터 내뱉고 보았다.
그 별명이 해파리의 사촌이라 할지언정 가우리는 어디까지나 촌뜨기는 아니다. 활기찬 용병생활 십수년, 큰 도시를 돌아다닌 적도 많고, 수려한 건물들과 아름다운 구조물들을 많이 보아왔다. 걸어서 무려 왕복 40여분이 걸리는 왕족의 대 저택도 구경해봤다.
『하지만 이런 건 처음이야!』

처음 본다는 점에서는 리나나 제르가디스도 이견이 없었다.
왜냐고?
리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째서 저놈의 집구석은 창문이 일자로 배치되어져 있지 않은 거지?!』
구멍이 슝슝 뚫린 치즈가 생각났다. 어떠한 법칙도 없으며, 어떠한 질서도 없다. 그냥 생각나는데로 송곳을 들고 아무렇게나 뚫어놨다. 크기도 각양각색이다. 모양은 당연히 제멋대로이다. 네모반듯형에 아치형, 그 옆으로는 도넛 모양이 창문이 달렸다. 거기다 달린 높이까지 보는 사람 헷갈리게 해놨다. 축구장 응원단의 파도타기를 실시 중인 윈도우라... 빌 게이츠가 멀미한다.「끝장」이라는 미적 센스를 가진 리나의 눈으로도 이건 영 아니었다.

『네가 보기엔 저게 몇 층짜지 건물로 보이니? 제르가디스.』
『난들 아나. 직접 들어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창문이 층으로 일곱... 어랍쇼, 저쪽은 열 둘. 그렇다는 건 적어도 7층, 아니면 12층?』
『켁- 말도 안돼. 무슨 12층이냐! 일단 높이를 봐, 높이를. 단순하게 한 층에 2m라고 가정하면 6층짜리 건물이야.』
『6층짜리 건물에 창문이 세로로 열 둘이나 달렸다고?』
도깨비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간판은 어디 안 달렸나 살펴봤다.
상식을 초월하는 포스트 모던 스타일의 건축물.
세 명은 뺨 맞은 듯한 표정을 하고 현관을 노려봤다.
무언가... 유령 소동 이전에 이 집은 근본적인 그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

제르가디스는 골치가 아프다며 이마를 짚었다.
『철부지 어린애들이 불법침입을 시도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군.』
『그러게. 이래서는「한 번 뒤져봐주세요」라고 유혹하는 거 아니겠어?』
그들에게 내어밀어진 미끼는 호기심이다. 그 미끼를 옳커니 하고서 물지 않으면 10대 청소년이 아니다. 게다가 순종하는 10대 봤냐.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한다. 반항하고 말썽을 피워대야 비로소 10대이다.

『내기하자. 저 집은 7층이다.』
『난 6층에 한표. 아껴둔 땅콩 비스킷 전부를 걸겠어.』
『가우리는 어디에 걸 거야?』
『우웅... 그럼 난 반으로 딱 잘라서 6.5층.』
『넌 바보냣?! 그런게 있을 리 없잖아!』

그럼 결과를 발표하겠다.
『3층입니다.』
예의 밀짚모자 사나이 리버트는 깔끔하게 대답했다.

『거짓말!』
잠시 항의 소리가 요란했다. 그 발표 내용은 순전히 사기 아니냐며 리나가 손을 들었다.
하지만 천방지축 하니의 발광은 깨끗하게 묵살되었다.
건물의 층수를 논하기 이전에 정리해야 할 문제는 산더미였다.
그 첫 번째로 랜탈한 마차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면서「누가 이걸 빌렸느냐고 물어보면 그냥 남자들이었수다, 하고 대답하시오」라고 못을 박고는 돈을 찔러주어야 했다. 그런데 그놈의 망할 마부는 돈 욕심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주변을 어슬렁 거렸다. 생각 같아선 구둣발로 걷어차고 싶었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이럴 적에 발끈하면 일만 더 복잡해지는 법이다. 따라서 리버트는 작위적으로 꾸며댄 우아한 얼굴로 - 속은 여전히 부글거리고 있었으나 - 금화 두 개를 더 꺼내 마부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렇게 성질 돋구던 마부가 돌아가자마자 이번에는 하녀 둘이 나타나 윗층에서 토끼만한 쥐가 득시글거린다며 꺅꺅거렸다.
쥐? 누구는 애완동물로도 키운다는게 쥐 아니던가. 그런데 왜 꺅꺅거리는 거지.
리버트는 누런 진땀으로 속옷을 적셨다. 어쨌거나 아가씨들을 부랴부랴 달래고 제자리로 돌려보내는데 20분 소요. 사람들을 놀래킨 쥐는 부지깽이를 들고 손수 잡아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핼쓱해진 얼굴을 쓸어내리고 남 몰래 한숨을 돌리려니 이번에는 눈에 띄게 말 수 적은 동료 가나이가 어깨를 덥썩 잡았다. 바리톤 음조의 가나이 왈, 식수로 쓸 물이 형편없이 부족하댄다.
어쩌라는 거냐. 나더러 모세의 지팡이를 들어 물이 나오도록 반석을 치라는 거냐.
리버트는 코너에 몰려 마구 얻어맞는 권투선수의 장렬한 패배감을 맛보지 않을 수 없었다.

『거짓말이야! 그렇죠? 거짓말이야!』
『거짓말이고 뭐고 정말로 3층이라니까요.』
가뜩이나 머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따라서 층계참이 몇 개냐를 놓고 따진다는 건 울고 싶을 정도의 에너지 낭비였다. 집이 3층이면 어떻고 6층이면 또 어떻냐. 맘대로 해라.

『쉿, 조용히.』
거기다 지금 막 구렛나루가 근사한 신사분 한 명이 모두가 있는 장소로 입장하였다. 리버트는 정색한 채 상관에게 늘 그러하듯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인사했다.

새로운 인기척을 눈치챈 제르가디스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올렌더러스 경?』
구렛나룻 콧수염을 멋지게 장식한 50대 전후의 남자는 고개를 근엄하게 가로저었다.
『올렌더러스 공작가의 대리인인 루톤 베이린이라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편하게들 계십시오. 올렌더러스 공께서는 업무가 바빠 여러분들을 접대하는 일을 저에게 일임하셨습니다. 직접 뵙지 못하는 것을 사죄드린다고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그 장중한 분위기 속에서 작게 쳇- 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리나 인버스였다. 그녀는 짜증난다는 식의 표정을 하고는 바지춤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우리더러 먼 길을 오라 해놓고 정작 본인은 바빠서 얼굴도 내밀지 못하시겠다?』
루톤의 뺨이 살짝 붉어졌다. 그러나 훈련받은 그대로 곧 원상복귀 되었다. 그는 높은 온도에 구워낸 최고급 청자와 흡사한 표정을 하고는 주인의 허물을 사죄하는 의미로 한번 더 고개를 숙였다.
『주인님 대신하여 다시금 사과드립니다.』

에휴.
사과한다는데야.
한숨과 함께 리나의 고개도 예의상 숙여졌다.
어쨌든 첫 대면이다. 적대감을 키워서 뭘 어쩌겠다고?

『그렇다면 우리는 대리인인 당신을 통해 올렌더러스 경과 접촉할 수 있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필요하신 것과 궁금하신 것 모두 저에게 말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성심껏 여러분을 도와드리겠습니다.』
『궁금한 거 있으면 다 말하라고 하니까 물어보는 건데요. 우리, 일 끝나면 돈은 얼마나 줘요?』
유능한 보디가드인양 가만히 뒤로 물러나 벽에 기대어 서있던 리버트가 몸통 그대로 뒤로 벌렁 넘어갔다. 돈? 돈을 얼마나 줄 거냐고? 저 질문은 너무나도 직접적이어서 대답이 곤란하다. 봐라. 루톤 베이린도 눈썹을 파르르 떨고 있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런, 경박한 천민 같으니라고.
자고로 굴지의 귀족은 돈에 대해선 직접 화법을 하지 않는 법이다. 그런 무식한 짓을 했다간 본인의 자긍심에 상처가 난다.
『이해가 안 가. 돈 이야기가 왜 천박하다는 거야?! 난 목숨 다음으로 중요한 거라 생각하는데... 나는 상인의 딸이란 말이야. 돈 얘기가 왜 나빠!』
『에헴.』
『칫. 알았어요. 돈 이야길 안 하면 될 거 아뇨.』
진작에 그렇게 나올 것이지. 루톤의 콧등이 한층 더 뾰족해졌다.

『좋습니다. 그럼 먼저 이쪽의 의뢰 내용을 설명드릴까요.』
마차에서 들었던 이야기의 지루한 반복이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유령 탐사를 한답시고 사유지를 불법침입한 청년들 중 열 여덟살 먹은 남자애 하나와 그의 사촌 동생이 행방불명 되었다. 어디서 술이라도 먹고 뻗어있나 싶어 돌아오길 이틀을 기다렸다. 그러나 차후로도 소식은 없었다. 다급해진 가족들은 올렌더러스 공작가로 처들어갔다. 그리고 굳게 닫겨진 대문을 향해 피가 나도록 머리를 박아댔다. 이렇게 주변 친지들이 워낙에 아우성을 친 까닭에 없어진 사람을 찾는답시고 대대적인 수색이 벌어졌다. 수색은 약 일주일간 지속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끊겨진 운동화 끈이라도 찾았으면 그나마 보람이라도 있었을 것을...
이 와중에 수색팀 중 한 사람이 또 없어졌다.
실종자는 스물 여덟의 앞 길 창창한 청년이었다.

『이 집엔 사람 빠지는 수쳇구멍이라도 달렸나?』
『난들 아나.』
마법의 수쳇구멍 설을 내보인 가우리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여준 뒤, 리나는 다시 대변인인 루톤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어쨌든 유령이 사람을 잡아 먹었다는 소문이 돌았을 법도 하군요.』
『돌았다 뿐인가요. 주민들은 돌을 던지며 귀신막이를 하려 했습니다.』
돌을 던지며 액땜을 하는 건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통이다. 더러는 돌을 쌓기도 하지만 일부는 던진다.
『우와. 유리창 같은 것들의 파손이 심각했겠군요.』
『심각만 했겠습니까. 절망적이었지요.』
루톤은 입술을 한일자로 다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흐응. 그러고보니 오래된 저택 치곤 밖으로 난 유리창들이 하나같이 깨끗했다.
설마, 모조리 갈아치운 건가. 그게 사실이라면 비용이 장난 아니었을 거다.
리나는 우에~ 하는 표정을 살짝 저민 베이컨 껍질로 살짝 감추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더 이상의 불상사가 벌어지기 전에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흔적을 찾고 유령 소동을 잠재웠으면 좋겠다... 그런 거죠?』
『정확하신 분석이십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집에 불을 지르려는 사람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죠. 대중이라는 건 분위기에 휩쓸리는 법이니까요.』
남자의 느릿한 어조의 말에 리나는 손뼉을 짝 쳤다.
『좋은 생각이예요, 확 불질러 버리는게 좋겠어요. 그러는게 차라리 깔끔하겠구먼.』
듣고 있던 루톤과 리버트의 눈썹이 치즈버거 셋트 메뉴로 찌그러졌다.
『댁은 일을 해결하겠다는 쪽인 겁니까, 아니면 망치자는 쪽입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망치는 쪽이 맞다.
그렇지만「일을 망치는게 내 취미랍니다」라고 당당하게 떠들 수는 없다.
『아하하.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어머! 심각하게 생각하면 안되요, 안돼~ 아하하.』
체면은 있다. 리나는 더 이상의 과격한 발언은 삼갔다. 항복의 의미로 손바닥을 벌려보였다.
『여하간 이 성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있다는 식으로 단정해서 말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정치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유령을 퇴치하라는 거죠?』
『약간 틀립니다. 정확하게는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찾는 겁니다.』
『그래봤자 집이잖아요. 사람이야 금방 찾겠지.』
『간단할 것 같아도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속단은 금물입니다.』

그 첫 번째 문제.
집의 내부 설계도가 없었다.

『뭣이?! 없어?!』
제르가디스가 약간 황당하다며 큰 소리를 내었다.
당황한 건 리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오래 전에 지은 집도 아니라고 들었습니다만. 도면이 없다니?』
수백년 된 건물이라면야 이해가 간다. 행정 서류를 상자에 넣어 지하실에서 다락방으로 옮기다가 실수로 도면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더러는 중요한 창고에 불이 나는 바람에 홀라당 말아먹을 수도 있고... 요컨대 시간이 역사의 흔적을 지워버릴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리나는 잊지 않았다. 이 집을 지은 사람은 현 당주의 선대, 다시 말해 조부이다. 이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82년 전에 사망했다. 따라서 집을 짓고 30년 가량 살았다고 가정을 하면... 대략적으로 이 저택의 나이는 100년 정도이다.
그런데 벌써 도면이 없으시다?
심각한 행정력 부재다.

루톤은 변명하듯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이곳은 버려진 집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거기다가...』
『거기다가.』
『올렌더러스 경의 분부이셨습니다. 해마다 꼭 어딘가를 손보셨답니다.』
『라고 하심은?』
『대규모 증축이 있었던 해도 있었고, 2층 동쪽의 벽을 약간만 뜯어고친 적도 있었고, 벽을 절반만 쌓다가 노조 파업에 맞물려 작업을 아예 그만 둔 적도 있었고...』
한마디로 기분 내키는 대로 망치와 톱을 들이밀은 관계로 설계도 자체가 쓸모 없었다는 얘기다.
『켁- 그런 짓을 해마다?』
『예.』
『맙소사. 사람은 살지 않았다면서요!』
『세상에는 동물이 나오는 우표만 따로 수집하는 분들도 있으시고, 병뚜껑으로 거북선 모형을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록 사람이 살지 않는다 할지언정 매년 집을 수리했다고 그게 뭐 잘못되었습니까?』
『지금 이게 취미생활의 연장선이라고 주장하시는 건가요. 잘못되었죠! 그건 비용의 낭비잖아요!』
남자는 그 주장에 강하게 반발했다.
『낭비가 아닙니다. 비용의 낭비라는 것은 돈을 사용한 본인이 그 지출이 쓸데없었다고 후회할 적에나 가능한 겁니다.』
『다시 말해 올렌더러스 경은 사람도 살지 않는 집을 매년 증축하면서도「쓸데없는 돈의 지출」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돈이 썩어서 환장할 지경이었다는 건가.
리나는 넌더리를 냈다.
『크아악!! 그럴 돈이 있으면 나라면 테마파크를 하나 만들겠구먼.』

테마파크라는 점에서는 비슷한 점도 없지 않았다.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거라는 까닭 그 두 번째.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며 걷던 루톤이 뒤로 아장아장 따라오는 새끼 오리들을 돌아보며 한마디 던졌다.
『이미 짐작하시고 계시겠지만 방들의 숫자가 장난이 아닙니다.』
『방들만 장난인게 아니군요. 복도도, 계단도...;;』
임시로 사용할 숙소로 안내되어 가면서 리나들은 현기증을 일으켰다.

복도가 S자로 콱 구부러진 집 봤냐.
계단이 천장에서 내려오다 중간에서 뚝 끊긴 집 봤냐.
방문이 바닥에서 40cm 올라오다 말고 잘라진 집 봤냐.
못봤지? 못봤지?

멀쩡하던 가우리가 갑자기 외마디 비명소리를 지르며 고꾸라졌다. 정신 없이 두리번거리며 길을 지나가다 툭 튀어나온 구조물에 이마를 정통으로 박은 탓이다. 각오도 하지 않았는데 머리를 힘차게 박았으니 그 아픔과 당혹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거다.
놀란 리나가 쳐다보자 허공으로 불쑥 튀어나온 벽돌 조각으로 핏방울이 선명하게 남은 것이 보였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걸 복도를 만들면서 때려부순 기둥인 듯 싶었다. 기둥은 깨끗하게 도려내질 않아 천장 쪽에서 머리부분만 살짝 남아 있었다.
너무하다, 너무해. 가우리는 상처부위를 부여잡고 흐느껴 우느라 수습을 못하고 있었다.

『아파! 아파! 어, 어째서 저런 것이 중간에...? 아우욱!』
『조심하셔야 합니다. 저것처럼 기둥의 일부가 남은 것들도 제법 수가 됩니다. 이런것 말고도 벽의 일부가 무슨 경계석처럼 불쑥 튀어올라온 것도 있고요. 날이 어두워지면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으니 걸려 넘어져 크게 다치는 일 없도록 각별히 주의하여 주십시오.』
『허억! 일반 가정집 복도에 트랩이?!』
『중축의 과정을 여러번 겪다보니 어쩌다 그렇게 된 겁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니까 트랩은 아니지요.』
아니라고 주장하면 트랩이 아닌 거냐. 걸려 넘어지면 그게 트랩인 거지.
일행은 파랗게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거, 이거. 건설업자가 필히 욕 먹게 생겼구먼.』
정신이 바짝 들었다. 복도를 걷는 일마저 고도의 정신 집중을 요구받았다.
일단 바닥을 확인, 다음으로는 천장을 확인. 마무리로 복도의 꺾어진 각도를 확인.
순간적이나마 제르가디스가 이크 소리를 내며 껑충 걸음을 했다. 발에 뭔가 걸렸던 듯 싶다. 그러나 조심해서 잘 좀 걸으라고 주의를 줄 입장도 안된다. 하마터면 삼각형 모양으로 접혀진 모서리에 코를 박을 뻔한 리나는 식은 땀을 흘리며 다시 한 번 주변 경계를 강화했다.
조심하길 잘했다. 가우리처럼 천장 돌출물에 이마를 박아대는 참사를 가까스로 면했으니까.

『길이... 무지 복잡하군.』
튀어나온 것도 많고, 걸리는 것도 많다. 뭐니뭐니해도 가는 길이 뒤죽박죽이다. 이래서는 화장실 간다고 방문을 나섰다가 제2의 행방불명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특히 기억력 빵점에 도전하는 가우리가 요주의 대상이었다. 왼쪽으로 키를 돌린다면서 오른쪽으로 팔을 뻗고 보는 무적의 사나이가 바로 그다. 눈 감으면 그림이 보인다.「엄마, 어디 있어~ 아빠, 어디야~」아들이 울부짖는다.
『설마요. 화장실은 별도로 방 안에 마련되어 있습니다만?』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말이. 루톤씨.』
어쨌거나 4차원 육방면체의 테마파크에서의 즐거운 나날이라는 건 부정하기 힘들게 되었다.
모두의 안색이 다시 한번 나빠지는 순간이었다.

이쪽의 창백해진 안색엔 관심도 두지 않은 채 루톤은 예의를 차려가며 설명했다.
식사 시간은 오전 9시, 오후 12시 정각, 그리고 저녁 8시.
일단은 점심시간 전까지 정해진 방에서 쉬고 계시라면서 루톤은 물러갔다.

벽에 걸린 뻐꾸기 시계를 봤다.
오전 11시가 좀 넘었다.
가지고 있는 짐이 많지 않은 일행으로서는 그동안 딱히 할 일이 없는 셈이었다.
막막한 기분.
리나는 던지듯이 몸을 날려 침대 모서리에 앉았다. 쿠션의 상태를 확인했다. 오래된 가구 특유의 낡고 비틀어짐은 숨길 수 없었으나 촉감은 무지 좋았다. 베개를 들어 얼굴에 비벼봤다. 햇빛의 건강한 내음이 났다. 그래서 죄수들은 햇빛 냄새에 울음을 터뜨리나 보다. 비오기 바로 직전처럼 우중충하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는 듯 하였다.

『어이. 여기서 진정이 되면 그건 무지 수상한 거지!』
축 늘어진 리나를 향해 제르가디스가 불 뿜는 눈동자를 하고는 화를 냈다.
『수상하긴 뭐가 수상하다는 거야? 제르가디스.』
『여자애더러 남자 둘이랑 같이 한 방을 쓰라는데 진정이 되냣?!』
그랬다. 준비된 방은 달랑 하나였던 것.
의뢰는 리나 인버스 한 사람에게 가는 거였으니 당연히 1인실이 준비된다. 급조하여 다른 곳에서부터 가구를 더 가져왔지만 따로 남자들이 머무를 숙소를 마련한다는 것까지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100년간 쓸고 닦은 적 없는 집이다. 찌든 때 벗기는 일이 쉽다면 전문 청소 용역 업체가 왜 생기겠누. 당연히 이곳 사람들은 철 수세미를 쥐어 가까스로 방 하나만 치워냈다.

『그래도 방은 넓잖아. 여기서 열 명도 잘 수 있겠구먼. 뭐가 문제라고?』
여전히 베개에 코를 박고 있던 리나는 가볍게 콧김만 내뿜었다. 그리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파랗고 짙은 소년의 홍채가 곤혹감으로 인해 찌그러지는 모양새는 늘 우스웠다.
『알았다. 그거냐? 나랑 한 방 쓰는게 그렇게 내키지 않는다 이거지? 정 싫으면 너 혼자 따로 붙박이장 속으로 들어가 누으라고. 숙녀는 장미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네 녀석의 프라이버시는 알아서 잘 지켜줄게. 옷장 사이즈로 보자면 침낭 펼치고 누워도 여백이 충분하겠구먼. 들어가서 문 걸어 잠구라고. 침대보다야 불편은 하겠지만 그렇게 혼자 방을 쓰고 싶다면야...』
『요점은 그게 아니야, 리나.』
『그럼 네가 말하고픈 요점이라는 건 뭔대?』
『그, 그, 그러니까! 여자와 남자는...』
『어허! 성차별!』
『미처 다 말하지도 않았어. 그리고 남녀가 유별해야 한다는게 무슨 성차별적 발언이라는 거냣!』
『어쨌든 난 따로 각 방을 쓰자는 의견엔 반대라구. 제르가디스 그레이워즈씨.』

격언에서도 말하고 있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
그녀는 침대 위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정색을 했다.
『우리 셋이서 꼭 같이 있어야 해.』
귀신이 나타날까봐 무서워 혼자 있기 싫다거나, 혹시라도 나타날 수 있는 징그러운 바퀴벌레를 대신 잡아줄 남자가 꼭 옆에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정말 아닌 거야?』
『씁-』
아니고 말고.
뭘 의심하는 거냐, 가우리. 눈 가늘게 뜨고 이쪽을 보지 말지어다.
『귀신이 정말 나오는 건지에 대해 지금은 고민하고 싶지 않아. 여차하면 주문으로 날려버릴 수도 있는 것이고... 정 뭐하면 쟁반으로 내려칠 수도 있는 것이고...』
쟁반으로 귀신 퇴치가 가능한가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접도록 하자.
리나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지금으로서는 이 집의 상태가 완벽한 미로에 가깝다는 것이 더 신경씌여. 보라구. 갑자기 불이 났다고 했을 적에 무사히 현관까지 한 걸음에 달려나갈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
전무(全無).
『따라서 머리를 모아 전력해야 함은 지당하다. 흩어지면 죽음. 내 말이 틀려?』
반론의 여지 없음.
그녀는 마무리로 관 뚜껑에다 못질 쾅쾅 쳤다.
『지금까지 수백 번이나 같이 노숙하면서 방귀 뀌는 거랑, 입냄새 나는 거랑, 배꼽 내놓고 자는 거랑, 아침에 눈꼽 낀 것까지 다 본 사이잖아. 체면이 어떻네, 남녀가 유별하네 하지 말자구.』
『그렇게 말해놓고 자기가 먼저 밤 사이 이 가는 소리 때문에 죽을 것 같았네 하고 불평할 거면서.』
『안할게, 안할게. 실컷 이 갈아둬, 가우리.』
『약속한 거다?』
『하늘 땅, 별 땅. 맹세하지.』
불평은 안한다. 대신 프리즈 에로우 주문을 날려 냉동 생선으로 만들고 본다.

설득이 먹혀 들어간 듯 싶었다.
『음. 뭉쳐야 산다... 라는 건가.』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리나의 의견이 옳다. 같이 있는게 안전하다. 무슨 일이 생겼을 적에 대처하기도 빠르다. 무엇보다 방이 떨어져 있으면 서로의 안부가 걱정되어 밤새 뒤척거릴 것이다. 귀신이 안 잡아갔나, 귀신은 안 잡아갔나, 귀신은 안 잡아가고 뭐 하나... 아니, 아니. 여하간 걱정된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제르가디스는 기분을 달리하고 쥐었던 주먹을 도로 폈다.
같이 있는게 좋다.
그렇다면 팔을 걷어 부친다. 침대 및 걸상 정리다.

왜 있잖는가. 사람이라는 건 익숙한 분위기를 좋아하기 마련이다. 침대는 항상 창문의 왼쪽으로 자리를 잡을 것. 아울러 책상 위의 촛대는 정 중앙이 아니라 측면으로 약간 치우치게 해서 세워둔다. 촛대 바로 옆에는 깨끗한 메모지를 준비해 둔다. 심리를 안정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 마음에 드는 곳으로 가구를 옮긴다.
『제~르. 이 마당에 인테리어 사업이냐!』
고집을 피워대며 의자를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옮기고 보는 소년을 향해 리나는 버럭 고함을 질러댔다. 조금은 마음 편하게 있을 수는 없는 건가. 가뜩이나 고 미술품 가구들에 둘러쌓여 있는 마당에 그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품격에 취하지는 못할망정「좌향좌, 우향우!」해가며 책상 다리를 질질 끌고 있다니.

리나의 지적은 정확한 거였다.
골동품 가구들과 골동품 양모 카펫트. 그쪽 계열로는 지식이 부족한 편이었지만 눈 튀어나오도록 비싸보이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금박으로 세공된 테이블의 모서리는 만지기도 겁이 났다. 정교한 무늬가 조각된 옷장의 손잡이, 나무결이 풍성하게 잘 살아난 침대, 상감기법으로 모란꽃이 그려진 동양 풍의 화병... 아름다웠다.
옆으로 붙어있는 화장실과 욕실도 고풍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리나는 헤에~ 소리를 내가며 도자기 재질의 세면기를 어루만졌다. 바닥에는 푸른 빛깔로 조개를 그린 타일이 깔려 있었다. 수납장에는 깨끗한 수건이 하나 가득! 부착되어진 거울에는 동으로 만든 작은 천사상이 붙어 있다. 세안용 물이 담겨진 물병은 너무나도 하얗다. 그리고 그 표면은 실크처럼 보드라웠다.

『멋지잖아?』
『응. 멋지군.』
『그러니까 조금만이라도 느긋해지자고. 예술을 즐겨.』

하지만 느긋해질 수 없는 이유가 하나 있다.
답지 않게 초조한 표정을 하고 가우리가 손가락을 빼물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는 거 아니야? 리나.』
『에? 영문을 모르겠구먼.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 가우리.』
『음... 말하기만 조금 미안하지만... 너, 그거잖아.』
『그거?』
리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거? 대명사 It? 허벅지 위로 삐죽 튀어나온 실밥? 먹다 남은 햄버거? 지나가는 거미? 그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

약간은 민망했던 것 같다. 가우리는 한참을 뻘쭘대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생리.』
『뭐어~?! 생리?』
기가 찰 노릇이다.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생리?
리나는 본능적으로 엉덩이로 손을 가져갔다. 혹시 또 아는가. 케첩이 튀어 하필이면 그 부위에 얼룩을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일. 그렇다고 해도 근래에 케첩이 들어간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다. 게다가 빨간 바지에 빨간 얼룩이 묻어서야 눈에 잘 띄지도 않을 터.
이해가 잘 안 간다며 리나가 커다란 의문 부호를 만들어 보였다.
위스퍼 커버는 아직 필요하지 않다.
그 대단찮은 착각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

『저어... 그러니까 그게... 피 냄새가 나서. 너, 마력 떨어지는 거 아니니?』
『피이-? 피 냄새?!』
『어라. 반응으로 보자면 내 착각이었나보네. 정말 생리 안하고 있니? 리나.』
『아냐. 나 아직 그 기간 아닌데.』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피 냄새라니?
제르가디스도 놀란 듯 했다. 쿼터 엘프와 비교할 수준은 아니라고 할지언정 태생적으로 감각이 예민한 그다. 하지만 그 역시 지금껏 피 냄새는 맡지 못했다.
『혹시 그거 아냐? 녹이 잔뜩 슨 쇠 파이프.』
『어디에서고 쇠 파이프 굴러다니는 거 못 봤잖아.』
『뭐야... 그렇다는 건 정말 피냄새? 싫다, 싫어. 착각이었다고 말해줘. 소름 돋았어!』
조금 불안해졌다.
역시 유령의 저택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