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연 마족 카페? 라고 의아해 하실 분들을 위하여. 제 팬픽의 연작들을 줄줄이 꿰고 계신 분들이 아닌 이상 엄청 생소하실 겁니다. 그러니까 해왕 다루핀은 인간 친구인 골디와 함께 찻집을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가게는 분명 아니고요, 아울러 돈을 벌자고 음료를 파는 가게 또한 아닙니다. 해왕은 이 가게에서 서빙과 청소...;; 를 주로 하고 있어요. 가게 주인은 인간 골디입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만 좌우 쳐다보지도 않고 냅다 하는 말 좀 봐라.
『주방을 빌려주세요.』
하여 해왕 다루핀의 한쪽 눈썹이 연탄불 만난 오징어가 되었다.
뭐? 주방을 빌려줘? 찻집에서 주방을 빼면 장사는 뭘로 하라구. 우물에서 냉수 퍼다 나르고 손님들로부터 요금을 받으라는 거냐.
호박 빛깔 앞치마에 젖은 손을 문지르다 말고 다루핀은 빽 고함 질렀다. 어차피 돈 벌자고 장사를 하는 건 아니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순전히 취미 생활이었음이다) 그렇다고 가게 모양새 갖추는 것까지 포기한 건 아니다. 커피는 갈색. 그리고 홍차는 맑은 오렌지 빛깔. 손님이 주문하면 테이블로 서빙할 약간의 케이크, 아울러 줄줄이 진열된 희귀한 술병! 거기다 이곳 오너가 시간이 되면 배가 고파지는 생물(인간)인 관계상 참치 샌드위치나 당근 볶음밥 정도의 간단한 식사도 가능하다. 그런데! 그런데! 주방을 외부인에게 점령당하면 하다못해 더러워진 커피잔을 싱크대에서 세척할 수도 없지 않은가.

『뭐... 상관 없지 않을까. 빌려주지 그래, 다루핀.』
『골디! 자네는 이 친구를 몰라서 그래.』
『모르긴 뭘 몰라. 수신관이잖나. 수왕부 소속의... 음,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담배 하나 피워물고 세월아~ 하던 골디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그렇게 말했다. 이어 찢어져라 하품... 눈물이 쏘옥 우러나왔다. 겨우 나흘 전에야 용병 계약을 끝마치고 전쟁터에서 돌아온 그는 다소 피곤한 기색이었다. 눈자위는 벌겋게 충혈이 되었고 머리는 사흘 내리 물 구경 못해본 것처럼 지저분했다.
무슨 까닭일까. 열심히 일하다 말고 휴식을 취하면 몸이 가벼워지기는커녕 워째 더 찌푸둥해진다. 그래서 골디는 엉덩이를 긁다 말고 다시금 하품했다.
아아, 칼 들고 나가 누구라도 좋으니까 사람 하나 죽이고 돌아오면 괜찮아질려나. 온 몸에 녹이 슬었나 보다. 졸린 눈을 부비고 바닥으로 담뱃재를 툭툭 털었다.

『이보게! 방금 전에 청소했어!』
『상관 없잖아, 마왕 전하*. 어차피 손님도 없는데.』
※ 이것도 팬픽션 설정. 해왕 다루핀은 항마전쟁 시절에 북의 마왕에게 항명, 무려「싸우기 시려」라며 반항한 죄로 왕이 아닌 왕자로 그 신분이 격하되어 있음. 따라서 그 호칭은 공식적으로는 폐하가 아닌 전하임. 그러나 귀찮아서 참전을 거부했다는 건 순전히 표면적 이유이며, 진짜 이유는 아니다. 전쟁 말기 무렵에 절대묵시록 비나를 찾고자 해왕 다루핀 혼자서 천룡왕의 일족을 대량 학살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오고 있다.
다루핀 전하께옵서 발끈하였다.
『없긴 뭐가 없나. 내 부하 해장군이 저기서 별주부전을 읽고 있는데!』
『자네 부하가 어디 손님인가. 무급 아르바이트생이지.』
『무, 무급 아르바이트!!』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해왕이 순간 비틀거렸다.

『자! 그렇다면?』
파란 미역줄기로 변신하여 마음껏 절망하는 해왕은 잠시 잊도록 하자. 골디는 옆구리로 손을 얹은 자세에서 고개만 옆으로 살짝 돌렸다.
『수신관 각하. 주방이 필요해? 마음대로 써. 대신 불은 내지 말구. 우리 가게엔 화재 탐지기라는게 안 달려 있다.』
- Closed
무심히 담배를 비벼 끄다 말고 가게 문앞에 걸린 팻말을 돌려 걸었다. 이때의 그는 묘하게 만족스럽다는 얼굴이었다. 차라리 잘 되었다? 장사엔 취미가 없는 골디였다. 주방 폐쇄 = 장사 끝장. 오늘 하루는 낮잠으로 소일하자. 두고 볼 것도 없다며 슬리퍼를 찍찍 끌며 2층 자기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감사드립니다.』
오너의 OK 허락이 떨어졌겠다, 제로스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상대가 인간인 만큼, 고위마족인 그가 격식을 갖추었다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제로스는 숙이고 보았다. 주방만 빌릴 수 있다면야.

『영문이나 알고 보자.』
약이 바짝 올랐던 것 같다. 해왕은 마지막까지 불만을 토로하며 주방 입구를 가로막았다. 제로스가 왜 이러십니까 하고 난처해 했다. 그래도 해왕은 팔과 다리를 있는 힘껏 벌려 수신관의 주방 진입을 저지하고 보았다.
밀어붙이기만 해봐라, 칵 하고 그어 버린다.
동시에 달력의 날짜를 곁눈질로 확인했다. 인간들의 풍습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지고 있는 다루핀은 달력의 앞 대가리가 3월이라는 점에서 풍요로운 단 맛을 짐작했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사탕을 선물하는 날이 14일이다. 동네에 따라서는 떡이나 과자, 더러는 꽃과 보석으로 대체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만은. 여하간 그런 날이다.

그렇다고 해도... 의구심은 여전히 남는다. 이미 날짜가 20일을 넘어갔다.

다루핀은 이해가 안 간다며 짙푸른 바다의 눈동자로 제로스를 올려다 보았다.
그러다 퍼득 깨달았다.
우와, 이런 제기랄. 무지 기분 상한다. 시선 높이가 아래가 아니라 위다. 기껏해야 15세 소년에 불과한 육신으로는 20대 청년의 모습을 한 상대방을 올려다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다루핀은 지금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생각 짧음을 통렬하게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가브처럼 30대 중반의 몸으로 육화하는 건데! 화가 나서 아랫입술을 질겅질겅 씹었다.

제로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서 의자를 하나 가지고 올까요. 다루핀 님.』
『의자는 왜!』
『어쩐지... 위로 올라서시고 싶어하는 거 같아서요.』
『흥! 그놈의 눈치 대가리는 참치 통조림이랑 같이 비벼 먹어라.』
『어휴. 욕을 하셔도...;; 난 생선은 안 좋아하는데.』
의자가 필요 없으시댄다. 누가 무어라 하지 않았음에도 제로스는 그 차선책으로 얼른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여 그 키를 줄였다.
『사탕은 아닙니다. 지난 14일엔 가게에서 꽃을 사서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뭐냐.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인간들 사이에 새 풍습이라도 생겼든?』
『그런 것이 아니고요. 급히 만들 것이 생겨서 그렇습니다.』
『좋다. 그 만들 것이라는 것은?』
『음... 그러니까...』
제로스는 주저했다. 그러다 한참 뒤에 별 내키지 않는다는 투로 고백했다.
『별 거 아닌데요, 다루핀 님. 그저 불사의 계약 요리라는 걸 만들어볼까 하고요.』

불사의 계약 요리?
이제는 흥미가 동했다. 다루핀은 언제 주방에 못 들어오게 막았느냐면서 제로스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펄펄 끓는 화덕 앞에다 수왕부의 권족을 세워놓았다.
불사의 계약 요리!
호기심 빼면 시체다. 다루핀의 표정이 달라졌다.

『말해봐.』 
『뭘요.』
『네 놈의 아이디어.』

제로스는 주방이라는 장소를 잊고 머리를 긁적거렸다.
천만 다행이었다. 갈퀴로 긁어대도 비듬이 나오지 않는 특수한 몸이라서.
『생각해봤는데요, 꼭「계약의 돌」이 물건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계약의 돌」이라 함은 다른 말로 증표의 돌이라고도 한다. 그렇다고 정말로「돌」이라는 건 아니고... 인간과 마족이 서로 불사의 계약을 맺을 적에 그 증표로서 내세우는 것이 바로 계약의 돌이다.
이때의 증표가「반드시 이러한 물건이어야 한다」는 식의 규칙은 헌법으로든, 관습법으로든 정해진 바가 없다. 그래서 세이그람은 자신이 쓴 가면을 계약의 돌로 삼았었고, 북의 마왕 루토는 그 쌍둥이 여동생과 계약하면서 자신의 육체 자체를 계약의 돌로 삼기도 했다. 평범한 루비 반지나 잘려진 손가락, 때로는 장갑, 양말, 심지어 한 권의 노트가 계약의 돌 역할을 하는 일도 많다. 더러는 머리핀이 동원되기도 한다.

『머리핀이오?』
『뭘 놀래. 예쁘잖아?』
다루핀은 눈 똑바로 뜨고 정색했다. 머리핀이 뭐가 어드래서. 시장에 가면 500원주고 살 수 있으니 부담도 적고, 종류도 다양해서 도중에 질릴 염려도 없다.
『그런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어. 골디는 불만 없던데.』
『그 양반은 정상이 아니잖아요. 사람 죽이는 일 외에는 일절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그 무슨 섭섭한 소리. 녀석은 분명히 말했었다. 큐빅 달린 바나나핀은 싫으니까 체크 무늬 실핀으로 해달라고 했단 말이야. 아무거나 좋다고는 절대로 말 안 했어.』

그렇습니까. 제로스는 온몸에 주룩 돋는 소름을 참아내기 위해 짐짓 천장에 낀 먼지를 감상하는 듯한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무서워지고 있다. 인간과 한 고위 마족이 시장을 걸어다니면서... 아녀자들의 전유물이나 마찬가지인 머리핀을 하나하나 골라가며...「이거 모양이 괜찮은데, 우리 이걸로 계약의 돌 삼을까?」하고 머리를 맞댄다.
싫어~!

『여하간에 저는 생각했습니다.』
핑크빛 꽃을 배경으로 다루핀이 골디의 머리로 손수 핀을 꽂아주는 장면까지 진행되자 제로스는 얼른 현실로 돌아왔다.
『그 계약의 돌을 먹는 것으로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어요.』
상대가 조금이라도 호감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계약 쿠키. 아니면 불사 쌈밥. 무궁무진하다. 불사 케이크에 계약 김밥, 불사 삼겹살, 계약 군고구마. 어떤 것을 원하십니까. 무엇이든지 다 가능합니다. 족발, 순대, 오징어튀김! 마족이 직접 조리하여 안방까지 가져다 드립니다. 자! 계약에 동의하십니까? 그렇다면 지금부터 맛있게만 먹어주세요.
제로스는 의욕에 가득차 활활 불타오르며 앞치마를 허리에 둘렀다.
요리하는 거다! 그리고 (그녀에게) 먹인다! 계약이다, 계약!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반드시 해내고 (따내고야) 만다!

『어~이~?』
다루핀은 손가락 하나를 뺨에 지긋이 가져갔다. 아이디어 그 자체로는 나쁘진 않다. 음식으로서 인간을 간섭한 일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명왕 피브리죠도 리나 인버스에게 음식을 대접하여 자신의 신체 일부를 주입시킨 뒤, 사일라그에서 그 몸을 안쪽에서부터 일격에 터뜨린 적이 있다. 만물의 어머니인 로오나의 힘 덕분에「없었던 일」처리가 되었지만 말이다. 이 외에도 마족의 신체 일부가 녹아들어간 물을 먹여 하급마족에게 그 정신을 먹어치우게 한 전례도 있다. 오염된 물을 마시고 하급 마족에게 씌인 로만나의 12대 국왕은 덕분에 발광하여 사흘 만에 죽었다.
어쨌거나 말이다. 다루핀은 손가락을 여전히 뺨에 가져간 채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똥.을. 싼.다.는. 거.다.

「단순히 증표의 돌을 목구멍 속으로 삼켰다는 것으로 인간으로부터 동의를 구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만으로 정상적인 계약이 성립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잖아. 게다가 지금 그게 문제야? 저 녀석 제로스... 지난 천년간 인간 세상에서 살아온 주제에 인간이 음식을 먹으면 반드시 화장실에 간다는 사실은 새까맣게 까먹고 있는 것 같군. 뭐, 인간은 똥을 싸는 행위를 수치스럽게 생각하니까 눈으로 그 광경을 직접 본 적은 없겠지. 그래도 말이지. 모른다는게 말이 돼?!」
계약의 돌이 파괴되면 불사의 계약 역시 파기된다.
음식인 이상, 소화가 되면 몸 밖으로 배출되어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되고 나면? 인간과 마족의 접합점은 사라지고, 언제 그랬느냐며 인간은 자유를 얻어 새장 밖으로 힘차게 날갯짓하여 도망칠 것이다.

뚫어져라 쳐다봤다.
시선을 느끼고 제로스가 고개를 돌렸다.
『왜요? 다루핀 님.』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계속해라.』
누가 가르쳐주나 봐라. 이것도 다~ 공부가 되는 것이다. 다루핀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입 다물고 그의 혁신적 실험 정신만을 칭찬해 주도록 하자.

『그래서? 지금부터 무얼 요리할 거지? 수신관.』

순간 제로스는 허걱- 소리를 내었다.
고백하자.
딱히 이거다 하고 미리 생각해둔 것이 없다.

『...』
글쎄. 일단 요리라고 하면 물을 팔팔 끓이는 것부터 시작하지, 아마.
제로스는 불안한 표정으로 냄비에 물을 부었다. 화덕의 불 조절은 최강으로.
『...』
그리고는? 다음엔 뭘 해야 하는 거지?

『그걸 왜 나에게 묻는 건데? 제로스.』
『아니, 저기... 요리라고 하면 다루핀 님도 잘 아시지 않나 싶어서요.』
『나? 내가 알긴 뭘 알겠냐. 나는 주방엔 잘 들어오지 않아. 난 서빙 전문이라구. 오히려 네쪽이 훨씬 더 잘하지 않아? 듣자하니 취미 있다며.』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건 달라요. 깍둑썰기나 반달썰기라면 자신 있는데... 어쩌지.』
불안감은 증식되어 이제 인상을 찌푸린 마족의 숫자가 둘로 늘어났다.
물을 끓이고 나서는?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지?

『어쩌지. 간장을 넣어보겠어?』
『글쎄요. 간장이라... 수납장에 들어가있는 물건이 제법 되긴 되는데요.』
제로스는 쭈삣거리며 오만가지 물건들을 꺼내 조리대 위에 올려 놓았다. 된장과 고추장, 설탕과 참기름 등등의 기본 맛내기 물품들이 색색의 통속에 잘 정리되어 들어가 있었다. 그렇다면? 잠시 한숨을 쉬었다. 맛내기가 요리의 시작일지니. 그러니 되는대로 덜어 끓는 물 속에 풍덩 넣고 보자.

『그렇게 막 넣어도 되는 거냐.』
『좋은 재료는 아끼지 않는 거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니까 식초도 무조건 한 병을 다 넣고 보는 것이다.
제로스는 다시금 확인했다.
『이거, 좋은 재료... 맞죠? 다루핀 님.』
『10배 강화 사과 식초. 좋은 재료 맞지.』
되었다. 안심하고 콸콸 붓자.

『다음엔 주 재료를 넣는 거예요.』
『주 재료?』
『그러니까 고기 같은 거요.』
『어쩌면 냉동시킨 고래 고기 같은 것이 남아있을지도 몰라.』
다루핀은 재빨리 냉동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음. 고래 고기는 없었다. 대신 오크 고기가 좀 나왔다. 의기양양해하며 오크 고기 전부를 들고 왔다.
『넣을까?』
『넣어주세요.』
무식한 이들은 해동이라는게 뭔지, 핏물을 미리 뺀다는게 뭔지를 전혀 몰랐다.
결과적으로 펄펄 끓는 지옥탕에 얼음덩이 고기가 다이빙을 했으니 뭉게구름이 버섯처럼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꺄악!』
『빨리 뚜껑 덮어!』
그래서 재주껏 임기응변으로 넘어갔다.

『그나저나 냄새가 무지 지독한데. 뭐가 막 썩는 것 같잖아.』
『그러게요.』
『어떻게 좀 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 아이구, 냄새!』
『알겠습니다. 양파나 마늘, 파 같은 걸 잘게 다져 넣어보지요.』
드디어 그만의 전문 분야, 눈 감고도 잘 하는 분야가 나왔다. 제로스는 신나서 도마 위에서 춤을 추었다. 마늘 마흔 다섯 개가 순식간에 묵사발 되었다. 1초도 지나지 않아 다진 마늘 모두를 냄비 속으로 죄다 쓸어 넣었다.

『어이~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양파는 안 보여. 대신 이건 어때?』
다루핀이 허겁지겁 오이 그림이 그려진 작은 꾸러미를 들고 왔다.
『응? 오이 비누요?』
『오이 냄새가 기분 좋아. 이거 넣어보자.』
『잠깐만요. 비누라면서요. 그런데 이거 먹어도 되는 거예요?』
『그림을 봐. 오이잖아. 왜. 안돼?』
제로스는 영 자신 없다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깔딱거렸다.
『잘... 모르겠는데... 글쎄요. 될지 안될지... 그래도 하나 정도는 넣어보지요, 뭐.』

비누다. 냄비가 부글부글 끓어 넘치기 시작했다.
마족들은 놀라 다시 뚜껑을 덮어 눌렀다.
『뭐야, 이거. 거품이 넘쳐나잖아.』
『뜨거워서 그러는 것 같아요.』
『물을 넣을까?』
『그것보다는... 음, 물보다 더 차가운 건 없어요?』
『너 오면 준다고 골디가 아이스크림 사다가 넣어놨더구나.』
『마침 좋은게 있었군요! 그거 넣어보십시다.』

주걱으로 퍼서 넣었다. 갑작스런 찬 기운에 폭발하듯 치솟던 거품은 다소 가라앉았다. 허나 색이 한층 더 이상해졌다. 끈적거리면서... 뭔가 꿀꿀이죽 같은 것이... 나무수저를 넣어 휘저어봤다. 윽! 나무 국자가 안 빠져나온다! 제로스는 이를 악물고 손에 힘을 주었다. 뚝 소리가 나면서 수저가 반토막났다.
아이구야, 저 깊은 구렁텅이로 가라앉은 나머지는 어쩌지.

『골디가 그러는데 색이 미울 적엔 엿기름을 넣으면 좋다고 했었어.』
『엿기름이오? 그게 뭔대요?』
다루핀은「난들 아나」라는 표정으로 어깨만 으쓱였을 뿐이었다.

제로스는 생각했다.
리나는 욕설을 퍼부울 적에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고「엿이나 먹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가만히 가운뎃손가락을 들고 한참을 쳐다보았다.
『손가락에서도 기름이 나오나?』
마족은 그러는 일이 없는데 인간은 그러는 것 같다.
『다루핀 님. 죄송하오나 골디를 깨워서 손가락을 잠시 빌려달라고 하면 안될까요.』
『난 말리고 싶다. 그 녀석, 잠결에 부리는 성질이 보통이 아니거든.』
『그래요? 그럼 하는 수 없군.』
제로스는 끼고 있던 장갑을 벗고 손가락 하나를 냄비 속에 살짝 담갔다. 나오는 기름은 없었지만... 혹시라는게 있지 않은가.

『다 되어가는 거냐? 불사의 계약 요리라는 거.』
『네. 마지막으로 맹세의 문장을 넣기만 하면 되어요.』

정체불명의 암죽색 물체에 대고 제로스는 고개를 기울였다.
이어 힘 있는 말을 뱉었다.

-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나와 함께 할지니라.

이걸 리나 인버스가 얌전히 먹어줄지는 나중 일이다.
「불고기 계약」이야길 접한 리나가 방독면을 세트로 주문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모른 채, 그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주거니 받았다.

나와 계약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부디 맛있게 먹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