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이 보이지 않는 [죄는 반복된다] 정리는 지겨워진 나머지 나중으로 미루고 대신 예전 신작 게시판에서 몇 개를 옮겨봅니다.


마족과 인간.
그 사이에서의 신성모독적 맹세.
이것을 일컬어 불사의 계약이라 한다.

『불고기... 계약?』
점심으로 먹은 밥이 이미 꺼져버렸던 걸까. 가우리는 배고파하며 그렇게 되물었다. 덤으로 손가락 하나 빼물고 부러워 죽겠다는 표정까지. 머릿속으로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고 있는 양념 불고기를 상상했던 것 같다. 젓가락으로 집어올려 막 입에다 넣으면... 아유, 그놈 참 맛있겠다.

제로스는 빙긋 웃었다. 이 순진하고 하얀 쿼터 엘프는「이죽거린다」라는 걸 잘 모른다. 따라서 누구처럼 악질적인 말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그는 잘못 들은 것이다. 그러니 이쪽에서 화를 낼 까닭이 없다. 그저... 그저, 있는 그대로의 정정만 해주면 된다.
제로스는 상냥하게 틀린 점을 바로잡았다.

『불고기 계약이 아니라 불사의 계약입니다, 가우리 씨.』
『불고기가 아니야?』
『네.』
『뭐, 그렇다면...』

과시욕에, 명예욕, 출세욕은 물론이거니와 성욕도 없는 이 사내는 곧바로 흥미를 잃어버렸다. 오로지 머릿속에 든 생각이라는 것이 식욕이 전부인 그는 불고기라면 눈에 불을 밝히고 사흘 꼬박 밤과 낮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생각만 해도 즐거우니까.
하지만 불사의 계약이라는 건 하나도 즐겁지가 않다. 왜냐하면 먹는게 아니니까. 그 맛을 상상할 수 없는데 자꾸만 옆에서 불사~ 불사~ 하면 짜증만 치솟는다. 불사가 뭐. 파인애플 맛이 나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서 가우리는 손질하던 중이던 검날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아마도 말이다.
리나도 그런 까닭에 그 이야길 싫어하는 거 아닐까.
옆에서 제로스가 불사의 계약 이야기만 꺼내면 그녀는 그 즉시「징벌의 슬리퍼」로 양손을 무장한다. 무장만 하리? 햇볕 아래 꺼내놓은 이불 때리듯 휘두른다. 그 결과는 끔찍하리만치 암담해서 뿌옇게 먼지로 흐려진 방안에서 모두가 가볍게 기침을 콜록거려야만 한다.
그때마다 가우리는 하릴없이 제로스를 원망한다.
이 녀석아, 웬만하면 그 망토랑 바지를 자주 좀 빨아 입어라. 먼지가 바가지로 날린다아~

제로스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먹을 수 있는게 아니라서 리나님이 그렇게 싫어하는 거라고요?』
『바로 그거야.』
『하지만 요 앞 마을에 산적떼가 극성이라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던데요~ 하면 리나님은 좋아하잖아요. 가우리 씨 주장대로 먹는 이야기가 아니라도 말예요.』
『응? 그게 왜 먹는 이야기가 아닌데? 산적을 잡고 나면 두둑히 돈이 생기잖아. 보상금을 챙기면? 그 길로 맛있는 전골 요리를 사먹을 수 있다구.』
『저, 전골 요리...;; 알았어요. 그건 이해하겠어요. 하지만 제르가디스 씨가 쪽지를 보내서 요 다음 마을에서 만나자고 해도 리나님은 그리도 기뻐하잖아요.』
당연하지! 가우리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다.
『그 녀석이 요리를 얼마나 맛갈나게 잘 하는데! 솔직히 나나 리나나 요리 실력은 꽝에 가깝잖아. 나야「있는대로 먹고보자」수준이고, 리나는「어떻게든지 목구멍 안에 넣을 수만 있으면 장땡이다」니까. 하지만 제르가디스 그 녀석은 동네 음식점 아줌마가 만든 밥처럼 해서 내놓을 줄 안단 말이야. 간이 좀 싱겁다 싶은 느낌이 있지만...』
『그, 그렇다면 아멜리아 씨가 보낸 편지는요!』
『너도 세일룬에서 차려준 어마어마한 식탁에 앉아봤잖아. 당연히 기쁘지.』

제로스는 쓰러져 땅바닥으로 손을 짚었다.
요컨대「계약은 먹는게 아니다」라는 점에서부터 일찌감치 작전 성공은 물 건너갔다?

그래서 궁리 끝에 제로스는 생각했다.
일단 불사의 만두라는 걸 내놓아서... 어떻게서든지 익숙해지게 만드는 거다. 그 다음에는 계약 국밥이라는 걸 준비한다. 다음으로는 불사의 삼겹살을, 이어 계약의 오징어를... 그럼 듣는 시늉이라도 하게 되지 않겠는가. 지금처럼 아예 콧방귀를 뀌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제로스는 푸짐하고도 뜨끈한 그 무엇을 쟁반에 받쳐드는 걸 상상했다.

『바로 이것! 불사의 맛!』
『무슨 맛인데?』
『당연히 마족의 맛이죠!』

알았다, 알았어. 계속해서 자기 무덤이나 파고 있으렴.
가우리는 지겹다는 투로 한숨을 내쉬었다.

당분간은「시식」이라는게 끊이지 않을 거 같다.
그런데 내기를 해도 좋다.
아마도 그 불사의 계약이라는 거, 무지하게 맛이 없을 거 같다는 예감이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