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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테일러 ---> 바르가브
. 참고로 알아두면 좋은 가계도
가우리 가브리에프 --- 이봐 그레이워즈 (제르가디스 그레이워즈의 양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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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미스 가브리에프 (女) --- 엡실룬 그라바스 윌 테슬라 세일룬 (그라바스/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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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모름(女) 세일룬 왕실 족보에서 공식 이름 삭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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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르바 가브리에프 (성별불명) / 센토 가브리에프 (男) --- 아나에 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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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카익 가브리에프 / 이후 가계 소멸


♠ 파편 열 / 성지를 순례하는 3인조 2

바람처럼 날아 번개처럼 쏜다는 건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다.
찰싹 소리가 우렁찼다. 제로스를 집어던진 채 허둥지둥 날라온 바르테일러는 얼굴 색이 돌변해선 리카익의 손등을 세차게 후려갈겼다.
『아얏!』
유리알을 줏으려던 손을 재빨리 거두었다. 통증보다는 바르테일러의 험악한 표정에 놀았다.
『안돼, 리카익. 성지의 물건을 함부로 만져선 절대 안돼. 넌 바보냐? 그런 것도 모르고. 아무튼 모험가 지망생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벙하다니까.』
바르테일러가 허리춤에 손을 얹고 쯧쯧 소리를 내었다.

『절대 안돼? 그거, 그냥 엄포 아니냐?』
성지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면 큰일난다는 얘기는 귓동냥으로 이미 들은 적이 있다.
그치만 아무리 봐도 예쁜 유리알이 사람에게 큰 피해를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갗구운 달콤한 사탕 과자를 한 입에 쑤셔넣으면 죽는다. 절제의 미덕을 가르치려는 어머니는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겁준다. 마찬가지 아니겠느냐며 리카익은 손가락 하나를 입에 물었다.

『엄포 같은 것이 절대 아니쥐!』
바르테일러는 대답 대신 더 크게 혀를 찼다. 아무리 점수를 후하게 준다고 쳐도 기껏해야 리카익의 허리춤에나 닿는 숏다리였음에도 허리를 빳빳하게 세웠다. 그것이 비록 허세라고 해도 리카익은 그런 바르테일러에게 대단한 위협감을 느꼈다. 꼬리를 세운 도마뱀이다. 잘못 만지면 카악~ 하고 문다.

『잘 들어 둬, 리카익. 성지의 바닥에 깔린 저 유리 구슬은 생명 하나하나가 그 모습을 바꾸어서 만들어진 거라고 우리 엄마 피리아가 그랬어. 그 말인 즉!』
맨 손으로 시체를 만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장갑도 안 끼고 아무렇게나 시체를 만질 거냐, 너는.』

한 알의 모래에 한 방울의 눈물, 하나의 유리 구슬에 하나의 생명.
금빛으로 빛나는 어머니의 치마폭 속에서 춤추고 있는 어두운 환몽.
무한대의 희망과 영겁의 비탄이 그 안에 억눌려 있다.

바르테일러는 표정을 달리하고 리카익을 설득하려 했다.
『알겠니? 이건 말도 못하게 불길한 거야. 잘못 건드리는 날엔 적어도 100년은 재수가 없다고. 2천년은 거뜬히 사는 나 같은 드래곤이라면 또 모를까, 기껏해야 80살 정도밖에 살지 못하는 인간에게 100년이나 재수가 없어봐라. 그 날로 인생 종 치는 거야. 알간?! 고로 이 모든 건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이딴 조약돌엔 관심도 갖지 마.』
이래서 인간은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이상한 종족이다. 자칫하다간 자멸을 자초하는 괴상한 습성을 가지고 있어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 망하고 싶어하다니? 이해 불가능이다. 속이 뒤틀릴 적엔 그냥 내버려두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 어리석음이 때로 귀여워 보이니까 손을 내어민다. 아니면 진작에 멸망당하도록 손 놓았다.

『똥 폼.』
낮은 목소리로 제로스가 이죽거렸다.
단 한 마디로 사람 바보 만들기.
정확하게 그게 무슨 일이었는지는 단 한번도 입 밖으로 뻥끗한 적은 없으나, 그간에 한두 마디씩 흘린 이야기를 종합해 억지 추측해 보건데 여자가 관련된 것이 분명한 어떤 극악무도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사원으로부터 한정 기한 파문을 당한 이 극악의 사제는 이런 식으로 곧잘 자신의 성격 나쁨을 드러내곤 했다.
똥 폼이랜다.
핀잔 단 한 마디로 그냥 미사일 격추다.
『이렇게 예쁜 걸 만지는 걸로 100년은 재수가 없다뇨. 당신네들 도마뱀 일족은 썰렁한 농담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그런 엉터리 미신같은 걸 철썩같이 믿고 있었단 말예요? 정말이지 어이가 없네. 리카익? 이런 어린애 말은 듣지도 마세요. 세상에!! 그런 썰렁한 말을... 누가 드래곤 아니랠까봐. 사람 얼어 죽으라고!』

자신의 말이 한 점 틀림 없음을 증명하듯, 유리돌을 선뜻 주워들어 이리저리 눈가에 가져갔다.
방금 식사를 끝낸 개구리의 뱃가죽처럼 볼록하다. 이물질이 섞였지만 전반적으로 깨끗한 개울물처럼 투명한 느낌이었다. 조약돌 너머로 어릇어릇 굴절되어 보이는 제로스의 보라색 눈동자가 마치 금붕어 눈알처럼 확대되었다. 길다란 속눈썹이 깜빡깜빡 움직일 적마다 조약돌의 색이 자수정처럼 짙어졌다가 원래대로 맑개졌다를 반복했다.

뒤돌아 그 모습을 본 바르테일러는 태양 빛을 본 흡혈귀가 되고 말았다.
산산이 부셔져 아스란히 흩날리는 먼지가 바로 바르테일러일지라.

『오오오옷! 마, 만졌어! 그걸 만졌어!!』
『그럼 이걸 삼키기라도 할까요? 테일러씨. 죽는 시늉은 집어치우세요. 억지로라도 보고 있기가 상당히 힘듭니다.』
『저주 받았다, 저주 받았어!』
『반사~♡』
『네 이놈! 반사시키지 맛!』

눈에 쌍씸지를 곤두세우는 바르테일러나, 손가락을 세워 귓구멍을 후벼파주겠다 위협하는 제로스나 거기서 거기다.
왜 이다지도 두 사람은 사이가 나쁜 것인가. 리카익은 비명이라도 질러대고 싶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앙숙인 사람들도 있는가 보다. 뭐, 때로는 주는 것 없이 싫은 사람이 있고, 받은 것 없이 미운 사람이 있다고 하니까... 그래도 이건 좀 심했다.
테일러는 아예 드러내놓고「난 네 놈만 보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는다!」며 적개심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제로스 또한「도마뱀 구이 바보 테일러」운운하며 자존심을 벅벅 긁어댔다. 중간에서 새우등 터지는 입장에선 환장할 노릇이다.
싫든 좋든, 양쪽에서 삿대질을 해대는 가운데 스포츠 심판관처럼 자리를 잡은 소녀... 소년은 양편을 뜯어 말리느라 생명 에너지가 제로로 고갈될 판이었다. 세 명이 삼각형 구도로 서서 맨 처음 얼굴을 마주했던 바로 그 순간부터 처절하게 예감했던 그대로 말이다.
깨어지지 않는 정 삼각형, 그것은 마법의 도형이자 주술의 기호였다.

『젠장. 이럴 줄 알았더라면 리카익을 데리고「악마가 잠든 숲」으로 가지 않을 걸 그랬어. 도대체 어디에 사는 뉘집 아들이 그 숲속에 무시무시한 악마가 봉인당했다고 헛소문을 퍼뜨린 거냐구! 뭐? 숲에 들어가는 족족 사람이 죽어서 나와? 얼어 죽을... 소문을 낸 놈을 내 만나기만 해봐라. 최하 전치 3주다. 때려 잡을 악마는커녕 그 넓은 숲속에서 우리들 앞에 나타난 건 기껏해야 토끼 몇 마리에다 저런 썩은 쓰레기 뿐이었다구. 그것도 중량제 봉투에 담겨져 있지도 않은!』
여기서 잠시 바르테일러는 가만히 숨을 멈추고 제로스의 일그러진 얼굴을 좋아라 감상했다.
지금만큼은 속이 다 후련했다. 얼굴 가죽 두꺼운 제로스가 썩은 쓰레기라는 표현에선 이상하리만치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한 번 강조해서 씹.었.다.
『썩은 국물 쓰레기!』
제로스의 구겨진 얼굴이 다림질 한 셔츠처럼 원래대로 말짱해지기까지는 다소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바르테일러는 멈추지 않고 언성을 더욱 높였다.
『써어은∼쓰레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사기다. 우락부락한 대마왕은 어디로 가고 처량 맞게 배 곪은 고양이처럼 흙바닥이나 긁어대며 하염없이 쭈그리고 앉아있던 저런 놈과 마주치다니! 게다가 이게 뭐야. 아무리 순진해 빠진 리카익이 100년은 쫄쫄 굶은 면상을 하고 있는 자식에게 공짜로 사과 한 알을 먹으라고 줬다고 해도... 아악! 저렇게 우리들 뒤를 졸졸 따라다닐 이유는 또 뭐람! 어이구, 속 탄다. 속 타!』

사과 한 알이 운명을 갈랐다?
억장이 무너진다며 가슴을 치고 자리에 앉았다. 곡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초상이 난 집에서 애고애고 우는 과부 꼴이다.

제로스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아항∼! 당신네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이유요? 그거야 아주 간단해요, 테일러씨. 당신이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는 리카익에게 제가 한 눈에 반했기 때문이지라우. 당신은 정말 머리는 텅 빈 도마뱀 구이 그 자체이군요. 보세요. 항상 꿈꾸던 것... 나의 최신 장난감... 은 아니고... 맛있는 만두... 역시 아니지만... 어쨌거나 그렇게나 원하던 것이 이렇게 현실로 나타났는데 제가 이걸 두고 어디로 갑니까.』
조금은 흥분했다. 목소리 톤 올라가는 거 봐라.
『때가 되면 잡아먹을 생각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딜 가요!』

먹어? 무엇을. 사람을? 식인종인가.

라라라라. 갑자기 주변이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제로스는 다소곳이 리카익의 손을 마주 잡았다. 자신이 주워들었던 유리 조약돌을 리카익의 손바닥 위로 올려놓은 채 눈을 빛냈다.
「이 사람을 아내로, 남편으로 맞아하겠느뇨?」
차가운 돌의 감촉을 공유하며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축복의 종소리만 곁들었더라면 영악없는 결혼식 광경이다.
리카익은 영문을 몰라 어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바르테일러는 달랐다.
『이놈이! 어딜!!』

분노하여 돌진해 들어갔다. 고함을 질러가며 황야의 수탉마냥 조막만한 발로 제로스의 정강이를 세차게 걷어찼다. 아니, 걷어차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목표물에 가 명중하질 못했다. 깃털보다도 더 부드럽게 발길질을 피해버린 제로스는 팔을 옆으로 뻗어 땅콩처럼 생긴 바르테일러의 머리통을 한 손으로 움켜잡았다.
거리를 좁힐 수가 없다. 자동 모터가 달린 기계처럼 주먹 쥔 팔을 화라락 휘둘러봐도 닿질 않았다. 화가 치밀어 붕붕 소리가 나도록 주먹질했다. 그래봤자 효율성이 형편없는, 그야말로 비경제적인 행위였다. 자기 딴에는 필사적으로 노력을 하고 있어도 주먹이 닿아야 데미지를 입힐 것 아닌가.

『리키익.』
제로스는 모나리자처럼 수수께끼와도 같은 미소를 지은 채 리카익만 보았다.
이제 우주는 축소되었다. 공간은 눈물겹도록 비좁아졌고 그 안에서 제로스와 리카익은 투명한 벽에 등을 힘껏 떠밀려 서로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에서 쳐다보았다.
『선물입니다, 리카익. 당신께 그걸 꼭 드리고 싶었어요.』
그는 무척이나 상냥하게 속삭였다. 리카익은 자신도 모르게 뺨을 붉혔다.
『하지만 제로스. 이걸 만지면 100년은 재수가 없다잖아.』
『100년의 재수 없음은 이 몸이 다 가져갈테니 그 대신 당신은 그 조약돌의 아름다움만 가지세요. 그럼 되잖아요?』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그가 말했다.

그래도 되는 걸까.
손을 펴서 자신의 손바닥 위로 얹어진 돌을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타원형 모양의 돌은 너무나도 반짝거려 흡사 거인이 흘린 슬픔의 눈물 방울이 그대로 굳어진 것 같았다. 애절해 보이는 아름다움이었다.
황혼이 내려앉으면서 세계는 온통 장미 빛에서 짙은 보라색으로 옷을 바꿔 입었다. 장엄한 색이 저 높은 하늘로부터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검은 옷의 천사는 날개를 펼치며 밤의 장막을 열었다.
그 어둠 속에서... 손바닥 위로 하나의 별이 반짝였다.
『어쩐지 이가 아픈 것 같은 느낌이야.』
약간은 특이한 감상이었다.
『그래요. 정말이지 아름답지요?』
여전히 손을 맞잡은 채 제로스는 아련한 꿈 속으로 가라앉아 갔다.

『옛날에 말입니다... 그리 멀지 않았던 과거에 이 땅으로 신과 마가 동시에 내려온 일이 있었습니다. 정확히 169년 전, 바로 이곳에서였습니다. 한 소녀의 몸에 깃든 신과 마의 힘이 폭발하면서... 하늘이 땅 아래로 주저앉아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산도 물도, 사람도 짐승도 단번에. 사방이 어두워지면서 표효하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한줌의 재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무(無)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대신 오직 순수하고도 근원적인 힘만이 거기에 넘쳐흘렀죠. 성스러운 사악함... 죄악으로 물든 신비로움이었습니다. 눈을 멀게 만들면서 황홀하게 타 올랐어요. 네.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나는, 나는... 나는...』
마치 당시의 광경을 목격이라도 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순식간에 그의 얼굴은 천 살도 더 먹은 노인네처럼 색이 바랬다.

리카익은 제로스의 뺨을 쓰다듬으려 했다. 묻고 싶었다. 무엇이 그를 이다지로 괴롭히는 것인지를. 왜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를. 울상짓는 건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일까. 앞으로 뻗은 손은 어이없게도 제로스의 얼굴을 쓰윽 지나쳤다. 완벽하게 허공을 흝은 것이다. 동시에 왼손에 쥐어진 유리 조약돌이 카앙 하고 울었다.

『어엇?』
어디에선가 역겨운 냄새가 났다. 흔들 목마에 몸이 거꾸로 매달려있는 듯한 메스꺼움이 목 위로 치솟았다. 눈앞으로 눈부신 빛이 쏟아져 내리면서 모든 것이 희미해졌다. 빛이 넘쳐 흐른다. 홍수다. 빛은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사납게 소용돌이 치기 시작했다. 리카익은 한 순간이나마 자신의 몸이 완벽하게 투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혈관이 드러나고 뼈가 비추인다. 하여 사라져갔다. 빛 속으로 녹아 들어갔다. 빨려들어갔다.

《여기야. 나는 여기에 있어》
그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왕왕 울렸다. 모르는 목소리다. 시신경을 모조리 태울 것 같은 강렬한 빛덩이 아래서 소년은 가까스로 눈을 치켜 올려 희미하게 떠오른 사내의 실루엣을 어렵게 보았다.
익숙한 실루엣이었다. 설마... 아빠?
그럴 리 없다. 리카익은 어렵게 눈 뜨고 더 자세히 보려 애썼다.
나이가 제법 있어 보였다. 고슴도치마냥 짧게 자른 금발에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입은 검사였다. 그 남자는 목이 터져라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맹렬히 달려왔다.

돌진이라는게 맞는 표현이었다.
이대로라면 부딕친다. 리카익은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 어느 것도 저 사람을 멈추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맹목적으로, 그야말로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창을 들어 찌르려 해도 그냥 달릴 것이 뻔했다.
충돌은 기정 사실이다. 뻐근한 어깨를 각오하고 몸을 낮췄다. 이를 악 다물었다.
앞으로 3미터, 2미터, 1미터...

스윽.
사내의 모습은 거짓말처럼 자신을 통과해서 가뿐하게 뒤로 빠져나갔다!
머리카락이 죄다 쭈삣거리는 순간이었다. 몸의 체온이 5℃는 내려갔다.
《리나! 드디어 나에게로 다시 돌아와 주었어! 리나!!》
허겁지겁 뒤돌아 보니 금발의 검사는 뒤편에 있는 어느 여자에게로 뛰어가고 있었다.
리나라는 이름으로 불리운 여자는 통나무처럼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피처럼 붉었고, 동시에 흰 눈처럼 하앴다. 웃고 있었으며, 마찬 가지로 슬퍼 보였다. 단정한 외모였지만, 마음은 흐트러져 있었다.
금발의 사내는 두 팔을 벌렸다. 그리고 소녀를 와락 안았다. 동시에 소녀의 작은 몸은 화륵 무너져 나비가 되었다. 수천 수만 마리의 하얀 나비가 일시에 하늘을 수놓았다. 소용돌이치고, 물결을 만들며, 구름이 되어 대지를 덮었다.
검사의 뺨을 적신 눈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투명한 빛의 덩어리.

「아아, 그렇게 된 건가.」
기절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발 밑이 한바퀴 빙글 돌았고 10m 깊이로 파놓은 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폭풍... 날아가는 나비떼들... 꽈배기처럼 뭉쳤다 다시 모래처럼 흩어진다.
빛이다.
아니, 그것은 눈물이다.
그렇게 납득한 순간, 꽉 쥔 손안에서 조약돌이 파앙 하고 터져 나갔다.
하나의 별이 그렇게 사라졌다. 빛은 이제 사라졌다.

『왜요? 제 뺨에 뭐가 묻었습니까? 저기... 리카익? 지금 꿈 꿔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로스의 뺨에 손가락이 분명히 닿아 있었다.
확실한 존재감, 분명한 촉감. 거짓이 아닌 온기가 맞았다.
어렵게 침을 삼키며 피가 베어 나오도록 꽉 쥔 왼손을 슬그머니 펼쳤다.
역시나. 이제 조약돌은 없었다. 대신 은색으로 반짝이는 고운 먼지만이 그득했다. 마법의 먼지는 손가락을 살포시 간질인 후, 작은 바람에 실려 새로운 세계를 향해 여행을 시작했다.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내가 지금 허깨비를 보았나... 하지만 분명히 뭐가 이리로 지나갔어.』
한찬만에야 리카익은 끙 소리를 내며 소름이 돋은 양 어깨를 벅벅 문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