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편 아홉 - 고기를 찾는 남자

그 남자는 자기가 펑펑 울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두 눈과 코는 흡사 망가진 수도꼭지 같아서 멀겋고도 투명한 액체를 쉬지 않고 흘려보냈다. 너무 울어서 퉁퉁 부어오른 눈은 수 십마리의 살인 벌떼에게 한바탕 집중 공격이라도 당한 몰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몸의 현재 상태에 대해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당장에라도 다리가 끊어질 것처럼 근육이 당겨지고 있다는 것도, 술에 취한 망나니처럼 비틀거리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육체는 이미 빈 껍데기나 마찬가지였다.
썩은 수초인양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땀에 절은 목덜미는 후근줄했다. 태엽을 감은 자동인형처럼 무작정 팔과 다리를 번갈아 움직였다. 사고 회로는 이미 오래 전에 정지했다.
『신에게 맹세코 난 미친 거야. 분명 돌았어... 흐흐흐.』
사내는 잠시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 보곤 킬킬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는 너무 절박한지라 오히려 미친 사람의 괴성처럼 들렸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이해해야만 한다.
미치지 않고 제 정신을 유지하기엔 현재 그가 머무르고 있는 공간의 특성이 지나치게 고약스러웠다.
섬짓하고... 끔찍하고... 아울러 치명적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런 곳을 만든 주인의 머리통에 대못을 들이대고 한바탕 망치질이라도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악취미에 오만방자함까지 플러스. 혀를 깨물고 죽고 싶었다. 공간의 실용성이나 안락함 따위는 깨끗하게 무시해 버린 건축가의 센스에 질리도록 치가 떨릴 따름이었다.

완벽한 허무.
실제로 그곳은 먼지하나 없이 텅 비어있음을 자랑하고 있었다. 빛이 들어올만한 창문 하나 없는 회랑엔 그 흔해 빠진 장식은커녕 지붕을 받치는 기둥조차 보이지 않았다. 저주 받을 황량함이다. 심지어 주위를 둘러싼 벽조차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한바탕 발악을 하다보면 저 너머로 뿌옇게 지평선이 보이는데, 그게 신기루가 아니라면 독한 럼주에 머리를 처박고 그대로 잠든 탓에 지독한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도대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무한대로 펼쳐진 텅 빈 실내 공간의 존재가 가능하다니..., 이건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었다!

『금화 열 다섯 개 준다는 말에 속아 넘어간 내가 돌았지. 얼어 죽을, 잔 심부름에 금화 열 다섯이라는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진작 하질 못한 내가 병신이지.』

남자는 영하 20℃의 차가운 얼음물로 채워진 욕조에 처박히기라도 한 것처럼 끅끅 소리를 내었다. 몸이 떨려왔다. 오장육부는 뱃가죽 속에서 더운 여름날의 아이스크림처럼 줄줄 녹아내리는 중이었고, 맨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절망감과 공포는 그를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지배했다. 헐떡거리는 숨소리만이 고요로 꽉찬 공간에서 유일한 소음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용도도 짐작할 길 없는, 우주적 규모로 확장되어 있는 공간에서 사내는 울부짖었다.

『사람 살려. 여긴 어디야... 제기랄. 나는 왜 이곳에 홀로 버려졌나...』

저 멀리 머리 위로 펼쳐진 회색 빛의 천장은 지나치게 높았다. 환기가 전혀 되지 않는 회랑 내부의 공기는 더 이상은 불가능할 지경으로 무거웠다. 촛불 하나 밝히지 않은 실내는 어두침침해서 전반적으로 납골당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납골당, 올커니. 얘기가 고렇게 되었고마.
죽었다. 죽은 것이다. 그러면 납득할 수 있다. 물고기마냥 갈비뼈 속에서 펄떡 뛰는 심장이 약간은 수상쩍었지만 때론 저승사자들도 실수라는 걸 하는 법이다.

『내 이름이 뭐였더라... 뭐냐, 젠장. 서글퍼지네. 내가 생전에 그리도 많은 죄를 지었던가.』

쓰디 쓴 눈물을 삼키며 다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른다. 어쨌거나 그는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사각형의 네모진 시커먼 물체를 향해 쉬지 않고 다가가고 있는 중이다.
얼핏 보기엔 맨질맨질한 돌을 다듬어 만든 석판같기는 한데... 현재로서는 그게 무엇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거대한 빨래판? 시커먼 거울? 그것도 아니면 기념비? 신들이 앉는 의자?

헹뎅그렁한 곳에서 오직 그것 하나만이 홀로 근엄한 여왕님처럼 위엄을 자랑하고 있다. 텅 빈 공간에서 유일하게 실재감을 가진 단 하나의 존재다. 그 빛깔은 절망처럼 새카맣다. 하늘 꼭대기에라도 닿을 것처럼 위 아래로 길게 뻗어 흑암으로 어서 몸을 던지라며 그를 향해 손짓했다. 그것은 일종의 유혹이었으며, 마법이었고, 나아가 정신을 혼미케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무작정 그것에 한발자국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 바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확실하게 한 발 한 발 내딛으면서... 지면을 뒤로 밀어냈다.
그렇게 한지 꼬박 사흘쯤 지났을까? 아니면 나흘. 그것도 아니면 보름...?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다 잊어버린 채 오로지 걷기만 해서 남자는 겨우 그 물체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위치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희망이 보인다. 이제 곧 그는 그것을 만질 수 있을 것이다.
어제도, 그저께도 그렇게 생각 했었다는 문제가 좀 있지만.
하여간 곧 도달한다.

「좋아요. 당신에게 명령을 내리겠어요. 가서 그녀의 고기를 가져오세요.」

뭐라고 그랬더라. 말라 빠진 음색의 목소리는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서, 교활하게도 그는 아름답게 웃으며 단호하게 명령했었다.

「왕의 권자로 가세요. 그리고 확실하게 살점을 베어오는 겁니다. 사실 우리가 직접 나서면 좋겠으나... 해신관 다루안님이 머리통만 달랑 남은 상태에서 그대로 줄행랑을 칠 수밖에 없었던 그 날의 불행한 사고 이후, 아무래도 저희들은 일을 신중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요. 리나 인버스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위대한 영광의 쌍둥이들이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접근 자체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곤란하게도 일이 좀 번잡스러워졌어요.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때문에 인간인 당신에게 부탁을 좀 해야겠네요. 우리와 같은 마족은 싫어하셔도 사람은 가끔씩 봐주시거든요. 자, 비록 하찮은 것이라고는 하나 그대의 손을 빌려주시죠. 그분의 숭고한 정신을 담을 새로운 그릇을 만드는 일에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가서 그릇을 만들 재료를 꺼내오세요. 자요, 저쪽에 보이지요? 왕의 권자는 저쪽입니다. 당신은 할 수 있어요. 그럼요. 모두 다 합해서 892명의 인간의 여자와 남자들이 권자로 향했다가 무려 11명이나 돌아왔다고요. 이 얼마나 많은 숫자랍디까? 정말이지 대단한 숫자이지요. 그러니 당신, 인간의 남자여? 희망을 가지세요. 몸 조심하구요... 안녕. 부디 리나 인버스라는 이름의 정.육.점.에 잘 다녀 오세요.」

갑자기 남자는 발작이라도 하는 것처럼 상체를 마구 흔들어댔다.
으아아아.
목구멍에 공기가 가득 찼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비명은 나오지 않았다.
살아 돌아간다라. 가능키나 할까. 자유로움과 따스함이 기다리고 있는 현실세계에서의 안락함은 이미 끝장 났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는 이미 분해되었다.
발을 구르며 분해하면서 남자가 코를 패앵 소리내어 풀었다.
『개자식!! 사람에게 사기를 치다니. 저주 받을 마족 새끼!』

다시 검은 석판을 향해 천근만근 무거운 다리를 버겁게 움직였다.
고기를 가지러 왕의 권자로 향하는 남자의 손에는 놀랍도록 번득이는 날을 자랑하는 한 자루의 날카로운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어쩌면 오늘, 그것도 아니라면 내일.
권자에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발 뒷축에 밟힌 말라 빠진 해골이 과자 부셔지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두쪽났다.
이제 곧. 그 여자 앞으로.
시체로부터 작은 살점 하나를 도려내기 위한 그의 발버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 Special Thanks: 맥주좋아팬팬걸. (미야쨩의 키스∼♡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