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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조사] 풀피리 26

제5장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되, 사람은 사람이 아니로다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이릉노조.
무려 3천여 명의 수진계 사람들과 다이다이 맞장 뜬 사나이.
비천한 하인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불세출의 천재로 땅을 흔들고, 바다를 뒤엎고, 하늘을 두 쪽 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멋대로 우쭐거리고, 기고만장하여, 결국 친자식처럼 길러준 운몽 강씨를 배반하더니, 기어코 사술을 익혀 모두를 이기려 했고, 끝내 내세에서도 갚지 못할 업보를 쌓았다.
이릉에 자리를 잡은 위무선은 새로운 종파를 세워 스스로 노조의 자리에 앉았고, 사마외도로 높은 단계의 흉시를 만들어 백가에 대적했다.
이릉노조의 힘으로 죽음이 내려오면 흉시가 사람을 죽이고, 쓰러진 자가 다시 일어나 흉시가 되었다.
그가 만든 흉시는 시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행동이 빠르고 자연스러웠다. 두려움이 없었으며 정신이 또렷했다. 사고력이 있었기에 말을 할 줄 알았고, 무기를 사용하여 사람을 도륙함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 흉시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이릉노조의 법보가 음호부다.”
가짜 도사가 수염을 쓰다듬었다.
“음호부라는 거, 직접 본 적 있어요? 어떻게 생겼어요?”
“음... 사악하게 생겼지.”
“그게 아니라 둥글게 생겼다던가, 각이 졌다던가, 용무늬가 조각되어 있다던가... 생김새요.”
“소름끼치는 모습이야.”
“색은 어떤가요. 검정? 아니면 은색? 파란색?”
“다시는 눈에 담고 싶지 않은 역겨운 색이지.”
구라쟁이! 나는 풍성하게 기른 턱수염을 계속 쓰다듬고 있는 도사를 노려봤다.
지금껏 아는 체를 많이 했지만 거짓말을 지어내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고, 음호부는 그가 아는 영역 밖의 일임이 분명했다.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 떠벌린 것과는 달리 아예 이릉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을 수도 있다.
어쩔 수 없군. 내가 발품을 팔아야겠다. 남는 건 시간이니 직접 가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다.

“도사님은 이릉에서 부적 만드는 걸 배웠다면서요. 혹시 음호부 만드는 건 안 배우셨어요?”
“배워볼까 했는데 공물을 많이 바쳐야 한다고 해서 포기했어. 그리고 시체를 다루는 건 좀 그렇잖아.”
가짜 도사는 은근 서민적이었다. 흉시를 만들어 수사들과 싸우는 건 관심이 아니라고 했고, 자신은 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는 주문이라던가, 과일을 말리지 않고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실용적인 주문 같은 게 더 좋다고 말했다.
그러다 콜록 기침했다. 다섯 푼이나 받고 내게 팔았던 엉터리 부적 생각이 났던 것 같다.
“아주 엉터리는 아니야. 나에게도 상도덕은 있다고. 주시에게 효과는 없을지 몰라도 불이 붙는 건 진짜거든. 아궁이 볏단에 불붙일 적에 요긴히 쓸 수 있지. 다만 요령이 좀 필요해. 이렇게 탁!”
성냥 같은 종류였나 보다. 놀부 마누라가 주걱으로 흥부 뺨 때리는 식으로 세차게 후려갈기니 진짜로 부적에 불이 붙었다.
나뭇가지를 비벼 불붙이는 일이 엄청 고되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나는 부적의 효과에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좋아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도사가 주변에 많이 홍보 좀 해달라며 공짜로 부적 두 장을 더 주었다.

화창하고 좋은 날이었다. 잎사귀 하나 입에 물고 숲속을 걸으며 머리 위로 한가롭게 팔짱을 꼈다.
‘결국 음호부에 대한 건 건진 게 없네.’
척 보면 알 수 있는 종류일까? 최강 네크로맨서의 주술도구이니 검게 빛나는 보석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게 의외로 뒤통수를 치는 종류라면? 영화 인디애나 존스, 최후의 성전 편에서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배는 투박한 외견으로 화려한 금잔 뒤에 숨어 보물 약탈자를 기만했다.
‘막연한 추측이지만 반짝거리진 않을 것 같아. 반지나 목걸이, 이런 장신구도 아닐 것 같고. 이 세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악세사리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 같으니까.’
시장에서 구걸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했을 적에 반지나 목걸이를 한 사람들이 얼마 없었다.
결혼을 한 남녀끼리 반지를 교환하는 풍습 또한 없는 듯했다.
‘이릉노조 이 사람... 결혼은 했을까? 자식 이야긴 없던데.’

초상화 속의 이릉노조와 눈싸움을 하며 상상력을 부풀려봤다.
이 피부 시커멓고, 눈 찢어지고, 도깨비처럼 귀가 어깨까지 늘어진 사내가 ‘빛으로 메이크 업~!!’ 이러면서 보석 박힌 손거울을 만지작거릴 리는 없고. 아님 마법서 같은 건 아닐까. 영화 미이라에서 사자를 일으켜 세운 건 기묘한 장식으로 표면이 덮인 한 권의 책이었다.
‘아냐. 숨겼을 적에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라면 서양식 제본으로 책을 만들 리 없지.’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호부’라고 했으니 몸에 지니고 있어도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을 크기다. 기껏해야 머리빗 크기? 쟁반처럼 커다랗지 않다. 배구공이나 축구공 크기도 아닐 것이다.
‘크아앗, 그래봤자 전부 추측이잖아. 이래선 음호부를 코앞에서 봐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치겠어.’
기록 같은 건 없을까.
제작법 이런 건 소실되었어도 그 생김새를 그림으로 옮겨놓은 게 남았을 수 있잖아.
그렇다면 정말 좋을 텐데. 나는 입술을 비틀어 웃으며 이릉노조의 초상화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콧구멍만 있고 코는 없는 이릉노조 위무선 씨. 혹시 생전에 그림 잘 그리셨나요? 뭐 좀 남겨놓은 건 없으시고요?”
무인도에서 배구공 윌슨과 대화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진짜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한 가닥 가능성에 기대했다.
네크로맨서의 핵이 파괴되면 네크로맨서가 만든 언데드들도 먼지로 돌아간다.
마찬가지로 음호부를 찾아 파괴하면 음호부로 만든 흉시 역시 저절로 파괴되는 것일 수 있다.
설양이 이릉노조를 흉내 내어 만들었다는 음호부... 반드시 찾는다.
나는 정말 간절한 마음이 되어 이릉노조의 초상화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런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도령.”
반투명한 그물에 걸려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나를 발견한 흰옷의 소년이 그리 말했다.
“세상에, 의지할 게 따로 있지. 도깨비 그림만 붙잡고 있음 어떻게 해요. 차라리 도와달라고 크게 소리를 내지 그랬어요.”
“......”
길을 걷고 있었을 뿐인데 뭔가가 발을 확 잡아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무 위였다. 생각이 많아져 주의력이 산만해진 탓에 덫에 걸린 것이다.

검을 휘둘러 줄을 끊으면서 소년이 말했다.
“미리 말해두는데 우리가 놓은 덫이 아닙니다. 그러니 원망을 하면 안 됩니다.”
그러고 보니 멀리서부터 ‘잡았어? 잡았냐고.’ 이러면서 허둥대며 다가오는 인영이 보였다.
그들은 소년처럼 흰옷 차림새가 아니라 회색에 갈색, 옥색 등 제각각으로 차려 입고 있었다. 연령대도 훨씬 높아 게 중에는 머리에 서리가 내린 자도 있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호들갑스러웠고, 옷차림만큼이나 한데 섞이지 않고 따로 놀았다.

고소 남씨 소년이 가까이 오려는 그들을 제지하며 말했다.
“식살귀가 아니고 어린아이입니다.”
“아니, 비싼 박선망에 요괴가 아니라 어린아이가 왜 걸려.”
“사람이 걸어 다니는 길에 부주의하게 설치를 했으니 그렇죠. 통제도 제대로 하지 않고 덫을 깔았으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겁니다.”

머리에 서리 내린 선사가 이에 발끈하여 뭐라 하려 했다.
그가 뭐라고 할지는 쉽게 짐작이 갔다. 나이도 어린 것이 어른도 몰라보고, 되바라져서 따지기나 하고, 요괴만 잡으면 그만인데 말이 많아서 - 하지만 사내는 얼굴만 벌게진 채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요괴를 잡는다고 설치다 덫으로 엉뚱한 걸 잡은 건 그들의 실수가 맞았고, 무엇보다 남가 소년의 위세가 대단했던 탓이다.
거기다 소년의 동년배로 보이는 자가 크게 소리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사추! 남사추! 좋은 소식이야. 함광군이 곧 이리로 오실 것 같아!”
그 외침을 들은 무리들은 금방이라도 오줌 쌀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다른 장소에 설치한 덫을 살펴보겠다는 핑계를 대며 황급히 자리를 피해버렸다. 함광군이라는 사람이 대단히 두려운 모양이었다.

마찬가지로 화장실 급한 표정을 지은 소년이 근심하여 말했다.
“경의. 이곳에 진짜로 식살귀가 나타난 건지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데 함광군에게 신호했어?”
“아니.”
“곧 이리로 오실 거라며.”
“오실 것 같다고 했지, 오신다고 하진 않았잖아. 그럼 된 거야.”
남경의가 이 정도는 거짓말 측에 속하지도 않는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것보다 얜 뭐야?”
재밌는 구경은 같이 하자며 남경의가 고개를 길게 뺐다.

얼마 전 이 부근에서 무덤이 파헤쳐지는 일이 발생했다는 건 나도 익히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무덤 도굴이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도 아니고, 작정하고 부장품을 노리는 전문 집단도 있는지라 그러려니 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런데 보아하니 일반적 양상이 아니었나 보다.
아까 뭐라고 그랬더라... 식살귀? 그러니까 시체 파먹는 구울?
부장품은 그대로고 시체만 사라졌나 보군.

“여러분들은 식살귀를 잡으러 오신 거예요?”
“상관없는 네가 관심을 둘 일은 아닌 것 같다만.”
남경의가 귀찮다는 내색을 감추지도 않고 내 어깨를 툭 밀었다.
이런 일은 지긋지긋하다며 남의 어깨를 미는 동작이 거칠었다.
남사추는 어린애를 괴롭히면 안 된다며 말렸으나 남경의는 가차 없었다.
“말을 안 하게 생겼냐고. 그깟 그림에 부적만 들고 애가 수행자 흉내를 내고 있잖아.”
“호기심 때문이겠지. 타일러서 집으로 돌려보내자. 얘도 박선망에 걸렸을 적에 충분히 반성했을 거야.”
“저게 어딜 봐서 반성을 하는 얼굴이냐고, 사추. 땟국을 봐. 하나도 안 울었어.”
“너무 무서우면 눈물도 안 나오는 법이야. 경의, 그만해. 애가 아파하잖아.”
내 뺨을 찹쌀 반죽인양 죽죽 잡아당기고 있는 남경의를 말리면서 사추가 그렇게 주장했다.

Posted by 미야

2021/11/17 12:42 2021/11/17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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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조사] 풀피리 25

제5장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되, 사람은 사람이 아니로다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이릉노조, 세 푼에 한 장, 다섯 푼에 두 장! 밤새 잠자리가 뒤숭숭하다? 집안에 우환이 있다? 일단 한 번 붙여봐. 악귀는 악귀로 물리치는 법! 잡귀가 이릉노조를 보고 엉덩방아를 찧는다! 세 푼에 한 장, 다섯 푼에 두 장!”
장대에 홍보 깃발을 달고 크게 외치는 장사꾼의 호객행위에 사레가 들렸다.
이름만 불러도 쳐들어와 흉악을 저지르고 간다며. 그래서 감히 이름도 못 부른다며.
볼드모트는 의외로 싼 값이었다. 한 장에 세 푼밖에 하지 않았다. 술 한 병보다 못한 값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자 장사꾼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스스로 흥이 돋아 이번엔 붉은 물감으로 그린 부적을 꺼내들었다.
“그래도 못 미더우면 이것도 같이 가져가시오. 악귀징벌 부적 한 장에 다섯 푼!”
이럴 수가. 이릉노조 초상보다 부적이 더 비싸다. 볼드모트가 분노하여 어둠을 먹는 자들 표식을 마구 난사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미리미리 준비하여 후회하지 말자! 답녕령 고개에 주시가 매우 많소이다. 왼손에는 이릉노조! 오른손에는 악귀징벌! 양손을 가득 채우면 여행길이 강녕하네~!!”

허리를 숙여 초상화를 구경하던 짐꾼이 속으로 저울질을 하더니 사지 않는 방향으로 마음을 굳힌 모양이다.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건지, 아니면 물건이 마음에 차지 않은 건지는 나도 모른다.
손님이 흥미를 잃고 자리를 뜨려 한다는 걸 알아차린 장사꾼이 재빨리 가격 흥정을 제안하려 했다.
하지만 짐꾼은 노련하게 자신을 잡으려던 팔을 피했다.
“아니 왜?! 이게 어째서 마음에 안 든다는 게야?”
그건 댁이 초상화를 너무 못 그려서 그런 거지.

턱을 괴고 멀찍이 떨어져 돌아가는 모양새를 구경하던 나는 장사꾼의 뒤떨어지는 예술 감각에 혀를 내둘렀다. 눈과 입을 그렸다고 초상화가 되는 건 아니지 않던가. 볼드모트에겐 코가 없었지만 이릉노조에겐 있었겠지. 그런데 저 장사꾼은 콧구멍이랍시고 먹을 찍어 둥글게 점 두 개만 묘사했을 뿐이다.
검은 피부와 송곳니, 힘줄이 툭 튀어나온 인물도 코가 없으니 흉악하다는 인상 이전에 웃겨 보였다.

“왜 웃는 거야, 비렁뱅이 주제에 재수 없게.”
날 알아차린 장사꾼이 침을 탁 뱉었다.
그래도 발로 차거나 욕을 퍼붓지는 않았다. 콘셉트가 ‘도사’라서 어린 거지를 핍박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장사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허리띠에 옥패장식을 걸고 학우선을 모방한 부채를 들었으니 점잖게 손짓으로만 저리 가라고 표현했다.

그런다고 내가 시키는대로 할 사람이 아니지.
“이릉노조가 진짜 이렇게 생겼어요?”
“왜 달라붙어! 살 거 아니면 가라, 얘야. 물건 살 돈도 없으면서 귀찮게 하는 거 아니다.”
“그냥 궁금해서 그래요. 이릉노조가 진짜 세요? 악귀가 보고 걸음아 나 살려라 달아날 만큼 세요? 그런데 왜 부적보다 값이 싸요? 만약 제게 다섯 푼이 있다면 이릉노조 초상 두 장을 사는 것이 좋아요, 아님 부적 한 장을 사는 것이 좋아요?”
장사꾼은 그쪽으로 머리가 비상했다. 생각할 것도 없다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딴 고민을 왜 해! 전부 다 자기 안전을 위해서인데 기왕 돈을 쓸 거, 다섯 푼에 두 푼을 더해서 이릉노조 초상화 한 장에 부적 한 장을 사야지! 한 푼 깎아준다. 사!“
어디 가서 굶어죽지 않을 사람이었다. 세일즈의 귀재였다.
나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수중에 남은 돈을 탈탈 털어 초상화와 부적을 한 장씩 구입했다.
이것으로 얻은 노잣돈이 전부 동났지만 잘 하면 이릉노조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어볼 수 있겠다 싶자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탁월한 선택이다.”
가짜 도사는 태세를 바꿔 빙글빙글 웃으며 돈을 챙겼다.

“그런데 진짜로 이릉노조가 이렇게 생겼어요?”
“그럼! 아주 무섭게 생겼지. 입과 귀에서 연기가 나오고 키가 무려 아홉 척이란다. 이 도사님이 직접 이릉에 내려간 적이 있어 이릉노조 위무선에 대해 아주 잘 알지.”
이릉은 지명 이름이었군.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부적을 이리저리 살피는 시늉을 했다.
“부적 만드는 것도 거기서 배운 거예요?”
“용케 아네. 맞아! 거기서 배웠어. 그 부적을 부정한 것들의 이마에 딱! 붙이면 불이 저절로 붙는단다.”
마음에 드는 설명이었다. 냉큼 부적을 이마에 딱 소리가 나게끔 붙였다.
메야. 아무 일도 안 일어나잖여. 불량품이여? 나는 흉시인데 불 안 붙는데?
“아니, 아니. 네 이마에 붙이는 게 아니라 주시에게 붙이는 거라니까. 얘가 참 아둔하네.”
가짜 도사가 혀를 차며 이마에 붙은 부적을 떼어주려 했다.

“가짜 부적이잖습니까.”
지학의 나이에 이른 소년이 참다 참다 참견하는 거라며 인상을 쓰고 우리 사이로 끼어들었다.
나도 눈이 동그래지고, 가짜 도사의 눈도 동그래졌다.
가짜 도사의 말문이 막힐 법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격식이 있어 보이는 하얀 옷을 입은 소년은 나이가 어렸음에도 신선의 기운을 풍기며 이목구비가 준수했다. 무엇보다 싸구려가 아닌 제대로 된 검을 차고 있었는데 그게 날을 세운 진검이라는 점에서 아무래도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림에 불과한 걸 부적이라고 팔면 안 됩니다.”
소년이 강하게 나오며 내 이마에 붙은 부적을 떼어냈다.
“흉내조차 내지 않았군요. 이건 아무런 효능이 없어요.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 이런 걸 쓰려 한다면 그 사람의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아, 뭐, 어쩌면, 그... 그런가요?”
장사꾼이 비굴할 정도로 저자세를 취했다.
“아이에게 돈을 돌려주세요. 그리고 그 부적은 더 이상 팔지 마시고요.”
“예, 예!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공자님.”
“경고하는 겁니다.”
풀이 꺾인 가짜 도사가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팔던 물건을 챙겨 달아났다.

엄한 표정을 짓던 소년이 기세를 누그러뜨리더니 나에게 돌려받은 일곱 푼을 쥐어주었다.
손이 참 따뜻했다.
“도령도 앞으로 속지 않도록 조심해요.”
“고...맙습니다?”
상대방의 친절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일단 흰옷 자체가 싫었다. 배추 가게에서 나에게 당과를 사줬던 이름 모를 선사도, 효성진도, 눈부시게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친절했지만, 결과적으로 친절하지 않았다.

내 표정이 엄청 이상했나 보다. 소년이 고개를 숙여 내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동전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고 입술을 끌어당겨 가식적으로나마 웃었다.
설마, 내가 흉시라는 거 알아본 거야? 그, 그렇다면 참 감사하네요!

“사추. 이제 출발할 거야. 거기서 뭐 해?”
“별 거 아니야, 경의.”
“무슨 일 있어?”
“아냐. 다 끝났어. 터무니없는 가짜 부적을 파는 사람이 보여서.”
소년은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자기네 무리로 돌아갔다.

상인들이 목소리를 낮춰 숙덕거렸다.
‘고소 남씨다.’ ‘고소 남씨가 야렵을 왔다.’ ‘함광군은 안 보이는데.’ ‘어린 소년들이 대단하군!’
한 귀로 흘리면서 골목길로 들어가 몸을 낮췄다.

효성진이 친우 송자침과 함께 설양이 저지른 악마 같은 짓을 고발하였을 적에 현문 세가의 반응은 각각 달랐다.

고소 남씨는 자기네 식으로 알아본다며 뒤로 빠졌다.
운몽 강씨는 혈기가 왕성하여 ‘엿 드세요!’ 라고 했다.
난릉 금씨는 과장된 헛소문이라고 치부했고, 청하 섭씨는 물불을 안 가리고 ‘죽여라!’ 일갈했다.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꼬부랑 낙서를 한참동안 끄적거리던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현문 세가라는 거, 신선이라는 거, 그야말로 쓸데없었다.
‘그나마 청하 섭씨가 우리 편이긴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과거형이다.
왜냐하면 당시 청하 섭씨의 종주였다던 자가 매우 끔찍한 모습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적봉존 섭명결은 생전에 민심을 잘 살피고 무(武)에 맹진하여 ‘바르고 곧은 사나이’ 이미지로 큰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그런 사내가 갑자기 패도를 꺼내 허공에 휘두르며 주화입마에 빠져선, 말리려던 동생까지 상처를 입히고는 칠백으로 피를 쏟고 급사했다.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었지만 섭씨 일가가 젊어서 요절하는 건 집안 내력이라나.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이른 새벽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모양새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나에겐 그놈의 교통사고가 빨간 마티즈 느낌이라서...’
손바닥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 땅바닥에 그린 낙서를 지웠다.

청하 섭씨는 이후 쇠락기에 접어들어 지금은 4대 현문 세가로 취급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구색만 맞춰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 몸을 의탁한 수행자 숫자도 적어 지금은 비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적봉존이 여태껏 살아있었으면 참 좋았으련만.
내 입장에서 정리하자면 천하에 의지하고 믿을 구석 하나 없다는 얘기다.

“아, 찾았다. 요놈! 요놈! 내 돈!”
고소 남씨 소년에게 쫄아 도망갔던 가짜 도사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다가왔다.
이릉노조의 초상화와 부적을 팔았던 값이 아쉬워 멀리 도망가지 않고 주변을 맴돌았던 모양이다. 고소 남씨가 사라지기가 무섭게 날 찾으러 다녔는지 숨소리가 거칠었다.
아이고 형님, 나는 웃으며 일곱 푼 동전을 쥔 손을 반갑게 흔들었다.
어차피 부적은 장난감 같은 거였고, 그에게 물어볼 것이 아주 많았다.

Posted by 미야

2021/11/16 13:16 2021/11/16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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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조사] 풀피리 24

제4장 뜬소문과 재화욕심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일단 옷과 신발을 구입했다.
상인이 지저분한 내 모습을 한 번 쓱 훑어보더니 얕잡아보고 터무니없게 바가지를 씌우려 했다.
그런데 내 속 알맹이가 그렇게 순진한 어린아이가 아니거덩요. 목을 감은 붕대를 풀어 상처를 보여주며 귀신을 잡으러 온 수사가 이렇게 만들었다 이야기를 떠벌리자 어색하게 웃으며 가격을 도로 깎아줬다.
상인은 소란만 피우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고 서둘러 계산을 마쳤다.

‘수사들이 어검하여 날아가더니 산이 무너지고.’
무슨 노래 제목 같은 이야기가 이미 마을을 한 바퀴 돌았기에 사람들은 호기심 반, 두려움 반 상태로 예민하게 몸을 사렸다.
얼마 뒤, 검을 소지한 수사들이 트럭 크기의 곰 사체를 가져와 가죽손질을 의뢰하자 숙덕거림은 배가 되었다.
‘며칠 전 산에서 엄청 큰 소리가 들렸잖아요? 그때 거기서 잡은 괴물 곰이래요.’
‘깊은 계곡에서 도를 닦던 곰이었는데 산신이 되고자 욕심을 부려 태산의 법기를 훔쳐 달아났다네요.’
‘그런데 진법을 깔고 수행을 계속해도 진척이 없자 사술에 빠져 사람을 잡아먹어 법력을 높이려고 했다는 거에요.’
‘난릉 금씨가 몰려가서 진법을 부수고 곰을 죽였대요.’
‘난릉 금씨가 아니라 운몽 강씨라던데?’
‘금씨나 강씨나. 수진계 사람들이라는 게 중요하지. 아무튼 저 곰을 깔개로 만들 거라네요. 짐승의 몸으로 분수를 모르고 법기를 훔치고 사람을 먹었으니 깔개로 만들어 죽어서도 그 몸을 밟아 벌을 주겠다는 의도래요.’
‘그나저나 가끔 도사님처럼 보이는 분들이 무리를 지어 저 산으로 올라가는 이유가 있었던 거네? 우리에겐 귀한 약초를 캐러 가는 거라고 했으면서. 실은 잃어버린 신선의 법기를 되찾으려고 한 거군.’
‘그런데 난 저 산꼭대기로 사람 먹는 곰이 어슬렁거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데?’
‘숲에 들어가 몰래 숯을 굽던 사람들이 갑자기 증발하듯 사라진 적은 있잖아.’

먼발치에서나마 수레에 실려 작업장으로 떠나기 전의 곰을 볼 수 있었다.
마을 주민이 전부 나와 법석을 떨며 구경을 하였기에 앞에서 보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깔개로 만들어 죽어서도 몸을 밟는 벌을 주겠다니. 과장이 너무 심하잖아.”
자고로 거짓말이 도는 건 더 큰 거짓말을 숨기기 위함이다.
수사들이 뭔가 중요한 걸 숨기고 짜고 치는 판을 벌렸다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거대한 악이 처단되었고 마을에 평안이 찾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자세한 내용도 모르면서 좋다며 만세를 불렀다.

환호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조용히 벽계를 빠져나와 약양으로 향했다.
약양은 멀었다. 그리고 길도 순탄하지 않았다.
중간에 행상을 만나 수레를 빌려 타지 않았더라면 매우 고생했을 거다.
“제법 먼 곳까지 가는 거네. 무슨 볼일인데?”
나는 그럴 듯하게 이야기를 하나 지어냈다. 작은아버지가 장가를 간다고 큰돈을 빌려갔다. 오랫동안 갚지를 않아 독촉하는 서신을 보냈더니 약양에서 남의 집 종살이를 하여 곧 갚겠다고 답장이 왔다. 마침 어머니가 병을 얻었기에 아버지가 나를 보내어 작은아버지를 만나보라고 하였다... 듣고 있던 수레 몰이꾼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나이에 고생이 많구나.”
그러면서 수염이 덥수룩한 턱을 긁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마를 찌푸리더니 잠시 후에 하는 말, 어쩌면 작은아버지가 거짓말로 둘러댄 것일 수도 있단다.
나는 짐짓 놀라는 척했다.
“작은아버지 말씀이 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약양에는 남의 집 종살이를 할 만한 큰 집이 없어.”
“듣기로는 상씨라고 큰 세가가 있다고 했는데요.”
“옛날에는 있었지. 하지만 언젯적 이야긴데, 그게.”

이번에는 진짜로 놀랐다.
내가 알던 약양은 큰 마을이었다. 진짜로 거지 꼬라지에 아무것도 없던 소산과 비교하면 거기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장터엔 파는 물건도 많았고, 군것질이나 장난감을 파는 노점도 있었으며, 마을 겉모양도 번지르르하여 기와를 얹은 집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뉘앙스는 완전 쫄딱 망한 동네 취급이다.
잠깐만. 숨을 고르고 잘 생각해보자. 뉴욕 마천루를 구경해본 사람의 눈엔 10층짜리 건물이 코딱지로 보이는 법이다. 수레 다섯을 끌고 가는 행상이면 약양을 두고 ‘남의 집 종살이를 할 만한 큰 집이 없는 곳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는 거겠지? 그렇지? 이런 행상이 소산에 오면 판자촌이라고 할 거야.
눈에 띄게 말이 없어진 나를 향해 수레 몰이꾼이 쯧쯧 혀를 찼다.
“그러니까 돈은 형제 사이에도 함부로 빌려주고 그러는 거 아니야. 서로 의만 상하지.”

이어 그는 어머니 어디가 편찮으시냐 물었다.
기침을 많이 하신다 둘러댔더니 이것저것 폐에 좋은 약초 이름을 언급하며 가격까지 알려주었다.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를 잘 모셔야 한다. 아이고, 우리 아들과 똑같이 열세 살인데 불쌍해서 어쩌노.”
어디 가서 스물하나라고 말을 하면 큰일 나겠구나 깨닫는 순간이었다.

‘완전 망했어!!’
천신만고 끝에 약양에 도착하니 오히려 갈 길이 구만리였다.
상씨가 망했다. 쫄딱 망했다.
오래전에 버려진 저택은 폐가 이전에 귀신이 나오는 흉가가 되어 있었다.
문은 굳게 닫혔고 부적이 덕지덕지 발라져 있었다.
낮인데도 근처로 사람이 지나가지 않아 주변으로 키 큰 잡초가 무성했다.

“뭐? 상씨 집에서 종살이 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간식으로 먹기 좋은 전병을 팔던 장사꾼이 내 질문을 듣고 인상을 팍 찡그렸다. 아... 이거 반응 안 좋다. 전병 값을 계산하면서 쭈물쭈물 예의 거짓말을 다시 반복했다.
먼 친척 형님이 장가를 간다며 큰돈을 빌려갔다. 오랫동안 갚지를 않아 서신을 보냈더니 약양에서 상씨네 집에서 종살이를 하는 중이니 곧 갚을 수 있다는 내용으로 답장이 왔다. 형님도 만날 겸 막상 약양에 도착을 해보니...
“속았군.”
다 듣지 않고 전병가게 주인이 말꼬리를 잘랐다.
“상씨 가주 상평이 죽은지가 언제인데. 네 친척이라는 자가 돈을 갚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한 거야. 나 참, 풍비박산 난 집안에서 종살이를 한다고 둘러대다니. 돼먹지 않은 사람일세.”
“예? 죽어요?”
언뜻 들은 기억이 났다. 송자침의 말로는 저택에서 벌어진 흉사를 접하고 충격으로 자리를 보전하고 누웠다고 했다. 젊은 가주는 결국 시름시름 앓다 일어나지 못한 건가.

“큰 소리 내지 말고 들으렴. 살해당했어.”
“네??”
“좋은 일도 아니니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아. 아무튼 살해당했어.”
“살해를 당하다니. 무슨 일인데요. 왜요?”
“얘가 진짜! 쉿! 목소리를 낮춰!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이름을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그 자가 자기 이름을 들으면 저승에서 돌아올 거야.”
누구여 그건. 볼드모트여?!
전병 가게 주인이 개미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이릉노조 몰라? 이릉노조라니까. 상씨를 멸문시킨 자가 이릉노조 위무선이거든. 지금도 이릉노조라고 하면 현문 세가 사람들이 분하고 화가 치밀어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잖아. 불야천에서 무려 3천 수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그 이릉노조 위무선이 자기 이름을 부르는 걸 듣고 귀신으로 나타나 상씨 사람들을 전부 죽여 버렸다고. 그러니 어디 가서 상씨 집안에서 종노릇 하던 사람을 찾는다며 함부로 휘젓고 다니지 말아. 경을 칠 테니. 전병도 사줬고, 네 신세가 하도 불쌍한 거 같아서 큰 맘 먹고 알려주는 거야.”
“무슨 소리에요. 상씨 집안에 여귀사신을 몰아넣고 공격해서 사람을 죽게 만든 건 설양이잖아요.”
“설양이 누군데.”
“실화냐! 이거 진짜 망했네?!”
아무래도 설양이 만든 음호부를 찾아 이를 증거로 약양 상씨에게 일어난 비극을 증언하겠다던 효성진의 계획은 시작을 해보기도 전에 전부 틀어진 게 분명했다.

귓동냥으로 몇 가지 얻어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5년 동안 상씨는 피해복구를 전혀 하지 못했다.
가주 상평은 거대한 무덤으로 변해버린 저택을 제대로 처분도 하지 않고 이사를 간 듯하다.
이게 왜 추측이냐면 이사를 간 곳이 어디라는 게 알려지지 않아서다. 강을 따라 한참을 내려갔다는 말도 있고, 곧 돌아올 작정이라 가까운 곳으로 갔다는 얘기도 있었다. 아무튼 상평이 집안에서 벌어진 흉사에 큰 충격을 받아 앓아누웠던 건 사실이라서 병을 치료할 목적도 있었던 것 같다.

‘효성진은 도대체 뭘 한 거야! 이게 왜 설양의 짓이 아니라 이릉노조의 짓으로 뒤바뀐 건데?!’

이릉노조가 사술로 상평에게 무시무시한 저주를 내렸기에 온몸에 구멍이 뚫렸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 육신과 혼백이 전부 찢겨져 죽었다는 말도 나왔다.
어쨌거나 이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주 상평이 감히 입에 담지 못할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죽었다고 한다. 남은 가솔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이릉노조를 두려워한 사람들은 미리 작당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설양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 효성진에 대한 이야기도 쏙 빠지고 없어.’
당연히 나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다.
참변의 날, 상씨와는 상관 없는 피해자로 발견되었던 한 시체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품속에서 너덜거려 곧 가루가 되기 일보직전의 서찰을 꺼냈다.
한자를 잘 모르기에 읽는 것은 불가능했다.
효성진은 나를 진법에 가둔 뒤, 도술로 새를 부려 모두 세 통의 편지를 보냈다.
첫 번째 보낸 서찰은 내용이 길었고, 중간 것은 간결했으며, 마지막 것은 비명처럼 짧았다.
‘함부로 이걸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읽어달라고 할 수는 없어.’
글자를 읽으면 약양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단서를 잡을 지도 모른다.
다만 효성진이 나에게 알린 말이 무엇인지 알아내려면 그 전에 글자를 먼저 배워야 했다.


제4장 뜬소문과 재화욕심, 끝.

Posted by 미야

2021/11/15 13:26 2021/11/15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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